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2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25화(125/599)
“오가토르프 가문이라… 이빨 빠진 레비엥의 이름으로 그 정도 인연이 유지될 줄은 몰랐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전부 손을 떼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두침침한 방 안을 밝혀주는 유일한 등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남성을 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있던 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인이 입에 담은 말이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닌 단순한 혼잣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남성은 얼마 없는 레비엥 변경백의 가신들과 달리 이번 사건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 오가토르프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추적을 명령했던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천출답게 재빨리 주인을 배신하고 다른 배에 올라탄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번 행적을 보아하니 의외로 어느 정도 충성심은 있어 보였다. 주인의 명예를 위해 귀족원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강단이라,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사건 이후 구 귀족파의 수장인 레스롬 공작을 만났다는 정보가 지금 자신의 손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선점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비록 그 정보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정말 쓸모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일반 사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한참 퍼진 이야기라는 건 그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 천한 것들과 귀족은 같은 이야기를 해도 다른 거니까.
마치 유행하는 장신구를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선점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하는 귀부인처럼 그 역시 정보를 통해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 그럼 이제 이 잘 드는 칼 같은 놈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내일 있을 재판에 귀족이 아닌 자는 참여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요주의 인물에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았고,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남성의 머릿속에 사람을 보내 접근하여 자신에게 오도록 구슬리기 위해 무엇을 제시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오가토르프 가문은 그에게 아무런 걱정거리도 아니다. 왕의 10검 중 3검까지 올라간 그 실력만큼은 진짜일지언정 결국 거기까지였다. 명예만 바라보며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오가토르프 가문의 부는 분명 적지는 않았으나 그 명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고, 결국은 전장에서 죽어나갈 병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으니까.
보샤 백작의 계획만 잘 성사되면 원치 않아도 그렇게 될 가문이다. 오가토르프 가문의 여식은 꽤 예쁜 편에 속했으니 어떻게든 다른 데 쓸 수 있겠지만 에카프는 왕가를 향한 충성심도 그렇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인물인 만큼 이는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변경에 비룡 한 마리만 선물해 줘도 놀라 자빠지지 않으려나?”
귀족은 어떨지 몰라도 천것들은 명예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돈으로 움직인다는 게 그의 오래된 지론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어떠한가? 자신 있게 말하건데 신 귀족파 내에서 그의 자본력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남작이라는 지위에 머물러 있는 건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 났을 뿐. 그마저도 이제 곧 과거가 될 게 분명했다.
비록 2년 정도 전 비룡 두 마리를 에타빌 자작에게 빌려줬다가 잃어버리는 큰 손해가 나긴 했지만 그가 몰래 기르고 있는 비룡들은 아직 건재했다.
“용사도 이기고 돌아온 무력의 소유자에게 비룡 한 마리 정도는 아낌없이 줄 수 있지.”
자신은 그 정도 도량과 능력이 있는 남자였다.
다시 한번 자신의 잘난 능력에 심취하여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이 누군가 이 방을 막고 있는 육중한 철문에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똑똑
-누구세요?-
“응?”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같은 의문을 공유했다.
자기가 노크를 하고 자기가 누구세요 라고 물어보는 정신 나간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면 가질 법한 의문.
모두가 그 의아함 속에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때.
-콰앙!
“나야! 나! 나! 나!! 나! 나! 나!”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철문이 우그러지며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으아아악!”
재수 없게도 철문이 날아드는 경로에 있던 하수인 중 한 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철문에 머리를 박는 걸 보면서도 그들의 주인인 남성은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뿐마나 아니라 미행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던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었다.
“힘 세고 강한 저녁! 내 이름을 묻는다면! 몰라도 된다. 난 다 죽일 땐 자기소개 안 해.”
그러거나 말거나 철문을 종잇장처럼 걷어차며 방에 들어선 요주의 인물은 알 수 없는 자기소개를 입에 담을 뿐이었다.
◈
“자, 잠깐! 에가 경! 오해입니다! 무언가 단단히 오해를…!”
“암살자마냥 내 뒤를 밟던 놈들에게 오해가 있을 리가.”
철문에 맞고 쓰러져 대가리가 깨진 건지 어쩐건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놈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려는 놈의 목을 베어낸다.
그림자 발의 약도는 아주 정확했고, 내가 모험가 복장으로 다시 갈아입고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위치는 수도 남쪽 길거리 시장에 있는 건물 중 한 곳의 지하였는데… 정말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건물이라서 솔직히 처음엔 좀 당황스럽더라. 그래도 그림자 발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지하로 내려와 문을 걷어차고 안을 보니 참 전형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딱 봐도 ‘비밀스러운 모임을 가지기 위해 임시로 구한 장소입니다.’ 라는 느낌으로 꾸며진 공간이 나를 맞이한 것이다. 이 새끼들은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건가 아니면 대가리가 나쁜 건가 하는 짧은 고민도 있었지만 나도 뇌를 비우기로 마음먹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모욕을 주는 것이냐!!”
그렇게 나머지 놈들도 싹 다 목을 치려는 순간 지 혼자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 배불뚝이가 벌떡 일어나며 역정을 냈다.
뭐지? 낯선 남자에게서 익숙한 루드라의 개새끼 냄새가 나는데…?
“누, 누구십니까?”
잠깐 어울려줄까 싶어서 주춤거리는 척 넌지시 물어보자 더욱 기세가 오른 배불뚝이가 목청 껏 외쳤다.
“내가 바로 보샤 백작님의 측근이자 루빌리 영지의 주인인 디오티 다 루빌리 남작이다!”
“그, 그게 제가 알 바입니까?”
“뭐?”
“내가 알 바냐고!!”
안 그래도 볼일 없었는데 이름 들었으면 정말 볼일 없다.
난 주저 없이 달려들어 그대로 배불뚝이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리 높은 천장도 아니라서 놈의 머리통은 어렵지 않게 천장을 한 번 찍은 뒤 바닥에 떨어졌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두 예비 시체들의 안색이 밝지만은 않은 방 안에서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창백해졌다.
“흐하악?!”
“나, 남작님을 죽였어!”
“그렇게 놀랄 시간이 있니? 너희도 죽을 텐데.”
어쩌다보니 먼저 죽은 게 전부 남자였지만 애당초 여자라고 딱히 봐줄 생각은 없었다. 칼 들면 사람 죽일 수 있는 건 남자 여자 똑같으니까.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같은 식상한 변명이 나와도 깔끔하게 무시해 줄 생각이다.
“기사님! 제발! 제발 목숨만은!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남작보다 너희가 뭘 더 많이 알고 있을 거 같진 않네.”
울고 불며 달라붙으려는 사람에게 희망 고문하는 취미는 없기에 마찬가지로 목을 베고 남은 한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얜 좀 색다른 반응을 보여서 휘두르려던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첩자가 되겠습니다.”
분명 방금 죽인 애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공포 속에서 정신 못 차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걔가 죽자마자 갑자기 엄청나게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날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말뿐이면 그대로 베어 버렸을 텐데 이중인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훅 변하는 태도가 신경 쓰인다.
“남작의 끄나풀이가 얼마나 대단한 첩자가 될 수 있길래?”
“전 보샤 백작이 고용해서 심어놓은 눈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보샤 백작을 배신하겠습니다.”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라서 네 말이 진짜라서 얻을 이익보다 가짜라서 얻을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지 않냐? 심지어 목숨이 걸리면 그렇게 손쉽게 배신하는데?”
“그건 보샤 백작이 저희와 맺은 계약의 한계 때문입니다.”
“저희? 계약?”
여성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빠르다고 여긴 것인지 조심스럽게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가 천천히 손을 치웠다.
“무슨…?”
그러자 여성의 얼굴이 조금 전과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신성력?”
혹시라도 개수작을 부릴까 싶어서 마력을 움직여 감각을 확장시킨 상태였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못했다는 건, 얘가 모습을 바꾸는 괴물이거나 저런 권능을 부여하는 신을 섬기거나 둘 중 하나라는 소리다.
당연히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지. 그런 괴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걔들은 말을 못하거든.
“어떻게 아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저는 꿈을 섬기는 자입니다.”
마치 당연히 자신의 정체를 알 것이라는 듯이 말하는 여자와 달리 난 머릿속의 기억을 열심히 뒤집고 탈탈 턴 다음에야 겨우겨우 그녀가 말한 내용과 비슷한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전에 대륙에 있는 수많은 신앙들에 대해 찾아봤을 때 신의 권능으로 외형을 바꿀 수 있는 종교가 있다는 내용을 스치듯이 본 적이 있다. 정말 대충 보고 넘어간 내용인지라 당시엔 무슨 판타지식 성형 외과라도 운영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들의 특기를 살려서 할 수 있는 돈벌이는 따로 있었나보다.
“저희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계약은 비쌉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금전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나죠. 보샤 백작은 좀 더 저렴하게 저를 고용하는 대신 목숨의 위협이 전혀 없을 거라 여긴 곳에 투입했습니다.”
“그게 저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그렇습니다. 이런… 형태로 위협이 닥칠 일이 없는, 철저하게 자신의 보신에 신경 쓰는 자였으니까요. 위협 앞에서의 도주 역시 계약의 일부였지만…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난감하네 이거.
죽이면 죽인대로 소식이 없는 걸로 보샤라는 놈이 눈치를 챌 거 같고, 살려두자니 이렇게 밥먹듯이 배신하는 생물을 믿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정보를 팔고 배신할 수 있는 인력을 안일하게 찔러넣었다고 보기엔… 그놈이 저지른 일이 워낙 광범위해서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다.
사실 어지간한 상황은 저 능력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걸지도?
“내가 널 안 죽인다치고. 여기 이 난장판이 놈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제가 보고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모를 겁니다.”
“근거는?”
“루빌라 남작은 허영심 때문에 몰래 움직이길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뒷세계의 정보를 주름잡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죠. 하지만 그런 망상과 별개로 넘치는 재력을 통해 이런 은신처를 만들거나 몰래 움직이는 데에는 진심을 다했습니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건 알아도 루빌라 남작이 이곳에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보고는 얼마나 간격을 두고 하기로 했지?”
“……나흘입니다.”
마지막 대답이 늦어진 건 아마 내가 시간을 계산한 뒤 자신을 죽여도 아무 문제없다고 여길 경우 검을 휘두를까 봐 그런 거 같다.
그런 양아치로 취급받다니 살짝 불쾌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착한 내가 봐준다.
“넌 일단 나랑 같이 간다.”
일단 데려가면 하다못해 에카프 경이 얘의 쓸모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중간한 믿음에서 내린 결론이었지만,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이중스파이로 쓰지 못하더라도 뽑아낼 정보는 많지 않을까?
검을 집어넣으며 선언하자 녀석은 덤덤하던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