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2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29화(129/599)
“세상에, 엘디보다 더 큰 사람도 있네.”
처음에 올라갔던 경계탑과는 다른 위치에서 달려온 아실리에가 대장 놈의 시체를 보고 입에 담은 첫 감상은 사뭇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니, 누나? 마치 내가 거구의 표본인 것처럼 말하네?”
“으음. 실제로 그렇잖아…?”
“어째 억울하기 그지없는데.”
내가 또래에 비해 월등히 거대한 건 사실이어도 이미 예카트리나나 라드넬반데스 같은 사례도 있는 마당에 아실리에의 평가는 부당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하지만 내 억울함에서는 가볍게 눈을 돌리며 대장 녀석의 품을 확인하던 아실리에가 열쇠 꾸러미 같은 걸 찾아 건네주며 말했다.
“잡아 온 사람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으려나? 아까 정찰했을 때 이 천막으로 사람들이 오고 갔던 걸 떠올려보면 여기가 경매장이었을 거 같은데 말이지.”
“자기 말로는 저기 죽어 있는 놈들을 부하라고 부르던데, 잠깐 대화 나눈 거로는 좀 모자라보였어. 어쩌면 머리 쓰는 놈은 다른 곳에 숨어 있을지도?”
“하긴, 귀족을 끼고 장사를 하는 녀석들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비명은 뭐였어?”
“예상치 못한 변수. 매춘부를 몰래 숨겨두고 있었더라고. 지금은 혼절한 건지 조용하네.”
“흐으음. 보안이 허술하네. 뒷배가 있어서 안일해진 걸까?”
그런 쪽으로는 생각 안 해봤는데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우리가 잠깐 확인한 손님들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숫자였던 걸 되새겨보면 얘들이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말이지.
결과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마흔 명이 넘는 인원을 케이크 먹듯 쉽게 해치웠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일단 혹시 모르니까 주변을 좀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발견 못한 놈이 있는지 확인해줄래? 아무래도 나보다는 누나가 더 색적에 능숙하니까.”
“후후. 이렇게나 손쉽게 이겼으면서도 신중함을 유지하는 건 아주 좋은 자세야. 금방 다녀올게.”
그러고 보니 아실리에한테는 매번 배우기만 했지 이렇게 실전에서 움직이는 걸 직접 보여 줄 기회가 없었네? 얼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나니 갑자기 콧대가 높아지는 기분이다.
“계십니까! 정기점검 나왔…염병. 아주 본격적이었네.”
평생의 스승에게 칭찬받아 나름 텐션이 오른 기분을 추스르며 들어선 천막 내부는 바닥을 파고 깎아 아주 본격적으로 경매장처럼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덕분에 아까 그 대장 놈 외에 두뇌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조명부터 시작해서 그리 깊진 않지만 땅을 파고 통로를 뚫어 노예를 끌고 오기 위한 통로까지. 엔터테인먼트에 재능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누군가가, 흥을 돋구고 소비자의 구매욕을 충동질하기 위해 무대 연출을 해 놓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거든. 하나부터 열까지 분위기로 시작해서 분위기로 끝장을 내놓았다.
“꼭 좀 잡아다가 얼굴 한 번 보고 싶네.”
누군지는 몰라도 머리를 굴릴 줄 알고, 이익을 위한 여러 요소들도 따질 줄 안다. 어쩌면 목숨을 위해 보샤 백작이라던가 그와 관련된 이들 정도는 가볍게 팔아먹을지도 모른다. 끌고 갈 수 있다면 에카프 경이 알아서 유용하게 써먹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딱 봐도 사슬에 묶어 노예들을 이동시킨 흔적이 보이는 어중간한 땅굴을 통해 조금 더 이동하자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철장 속에 종족 구분 없이 갇혀 있는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 딱히 적대적인 종족은 없는 모양인지 구분 없이 가둬져 있음에도 서로를 향한 불안감은 보이지 않는다.
판매 대상이 귀족이라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위생은 좋아 보인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인 광경 속에서 난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노예 해방 전선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어딘가에 노예 상인이 숨어 있을 거 같은데 아는 분 계십니까?”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발언은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바짝 경계하던 이들의 시선이 ‘해방’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확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는 언어가 다른 건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았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읽는 이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시선과 달리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온전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게끔 만드는 무언가가 작용하는 것처럼.
“흐음. 신기하네. 딱히 마법적인 조치를 취한 거 같진 않은데…”
루드라의 개새끼를 통해 입증된 눈으로 혹여 그들에게 채워진 족쇄나 사슬들에 마법이라도 걸려서 말을 못 하나 했더니 그건 또 아니다.
공간에 뭐라도 장치가 되어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에… 뭔가 미묘한 게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형태를 한 마법 덩어리가.
“…이상하네.”
혹시라도 내 시선을 의식할까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가 마력 덩어리가 정말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거 딱 봐도 투명화 마법이나 은신 마법이구만.
마법 간파도 가능하다니. 지금까지 저런 지속형 마법을 쓰는 놈들을 만나 보질 못해서 처음 알았다.
“벙어리만 모아 뒀을 리도 없는데? 저기요? 밖에 있던 오라질 놈들은 다 죽었거든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몰래 들어온 게 아니니까요.”
천천히 철장들의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힐끗 힐끗 바라본 마력 덩어리는 그대로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품에서 날붙이로 보이는 형태의 무언가를 꺼내 내 뒤쪽으로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온다.
허. 부하인지 동료인지 모를 것들을 다 죽였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도 내 목을 따기 위해 접근한다고?
조금씩 빨라지는 보폭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했고, 그럼에도 발소리 하나 안 나는 것을 보아하니 소음 억제 마법마저 시전해 놓은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은밀하게 도망치거나 암습하는 것에 특화된 놈이라니. 만나 본 적 없는 부류라서 신기하긴 하네.
“거짓말 아닌데 안 믿네…”
아쉬운 척 중얼거리며 모르는 척 몸을 돌려 놈을 향하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단검이 쥐어져 있던 손을 움켜쥐고 화사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걸어 주었다.
“왜 안 믿어?”
“……!”
확실하다. 놈의 움직임이나 손을 타고 느껴지는 떨림을 보아하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려는 놈보다 빠르게 품 안으로 파고들어 냅다 코가 있을 위치에 박치기를 갈기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피가 튀며 놈이 축 늘어졌다.
“음. 못 쓰더라도 역시 마법은 공부해야 해. 별 희한한 게 다 있네 진짜.”
“마, 마법사를 맨손으로 잡으셨어!”
“영웅이시여! 제발! 제발 여기서 꺼내주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놈의 손을 잡을 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 못 하고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게 바로 이…놈? 년? 이었나보다. 허공에 피가 튀고 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쥐고 있던 손을 떼는 것을 신호로 사방팔방에서 애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이 녀석만 적당히 묶어둔 다음 다시 오겠습니다.”
“가지 마세요! 제발!”
“영웅니이이임!!”
흐으으음. 인간 불신이란. 이런 곳에 잡혀 왔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말이지.
종족을 불문하고 남여 구분 없이 철장에 매달리는 걸 보고 있으면 그냥 무시하고 다녀오는 것조차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 투명화 상태인 놈이 정말 제대로 기절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포박도 하지 않고 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골치 아파진다. 잠깐 고민을 마친 나는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일단 내 검을 검집 째로 꺼내 바닥에 때려 박은 뒤 조금 언성을 높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예 상인들은 전부 죽음으로 대가를 치렀고. 여러분은 지금 안전합니다. 하지만 이 정체 모를 마법사를 묶어두지 않으면 여러분이 풀려난 뒤에 다른 위험이 생길 수 있기에 포박을 우선시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종식시키고자 제 검을 두고 갈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 정말이시죠? 저희를 버리고 가지 않으실거죠?”
계집애도 아니고 사내놈이 그렇게 애걸복걸하면 버리고 가고 싶어지잖아. 본심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밉다 미워.
“제 검에 걸고 맹세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설픈 기사 흉내를 내는 것을 통해 소란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검에다가 맹세를 하네 마네 하는 말이 의미 있다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통하면 그만이지.
적당히 문제없어 보이는 밧줄로 투명 인간을 묶는 진귀한 체험을 마친 뒤돌아와 흙 투성이가 된 검을 다시 차고 문을 열어 주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하나하나 날 붙잡고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할 기세라서 그거 받아주다 보니 진짜 한도 끝도 없더라.
“일단 제 일행과 함께 주변에 다른 위협은 없는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밖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하니… 되도록 이 안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다행히 왜 깔끔하지 못한 건지 물어보는 눈치 없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누구 하나 내 말을 무시한 채 당장 나가겠다고 우기지도 않은 터라 난 매우 흡족하게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