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3화(13/599)
멀리서 잠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체계적이다.
이미 몸에 익은 것처럼 움직이는 애들만 봐도 하루 이틀 해 보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거랑 이렇게 제대로 된 분업화 작업을 구상한 건 별개지.
솔직히 치솟아오르는 궁금증을 참기 힘들 정도였기에 말에서 내린 뒤 알리샤에게 물어볼 요량으로 천천히 다가가자 사방팔방에서 나를 알아보는 애들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안녕하세요 오빠!”
“그래그래. 아침부터 열심인데 나 신경 쓰지 말고 돈 벌러 가.”
아예 날 모르는 부랑아들을 제외하면 그래도 인사하는 애들은 혈색이 좋다. 웃을 여유도 있고 힘이 넘치는 모습은 얘들이 잘 먹고 잘 잔다는 증거겠지. 최대한 빨리 알리샤를 만나 물어볼 요량이었지만 그 인사의 향연 때문에 한창 열심히 아이들에게 빵을 나줘주던 사제님들까지도 나를 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다행히 바쁜 탓에 적당히 눈인사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알리샤 누나! 나 왔어!”
“왜 바쁠 때 오고 지랄이야!”
역시 바로 앞에 사제님들이 있더라도 변함없는 뚝심의 욕지기다. 안에서 일하던 애들이 그 욕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저 한결같은 애정 표현을 겪으면서 이젠 익숙해진 거겠지.
내가 알리샤와 대화하는 거 같으니 나와 마주친 애들도 그냥 고개 숙여 인사하며 제 할 일에 치중하기 시작했기에, 난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 이거 처음 봤어 누나.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랬나? 하긴 요즘 너도 바쁘다고 잘 안 왔으니까. 얼마 안 됐어. 반년 정도?”
“꽤 됐네? 누가 생각해낸 거야? 성광십자회에서 제안한 건가?”
“아니. 레비가 먼저 제안했다.”
레비? 분명 3년 전 처음 애들을 도와줬을 때 있었던 유일한 고아였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살짝 있는.
이제 와서는 유일하게 나한테 말까지 놓은 당찬 녀석이었다. 그런데 걔가 이걸 제안했다고?
“그래? 일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머리가 비상하네?”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 말할 때 막 이것저것 설명해주는데 난 당최 못 알아들었거든. 그래도 사제님들은 바로 이해하시더니 저렇게 도와주시지 뭐냐.”
이거 좀…쎄하다.
이세계 일반인들의 지식은 가업과 자신들의 삶에 치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얻기 쉽지 않고, 그러므로 누군가의 지식과 기술을 배운다는 건 배울 기회를 얻는 것만으로도 어렵고 돈이 들어가는 일인 것이다.
당연히 효율적으로 사람을 굴리고 계산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만한 사람을 부리고 움직이게 만들며 외부 단체까지 끌어오는 발상과 능력이 있다는 건, 상단 이상의 무언가에서 요직에 종사했던 경험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나마 어른이라면 경험과 짬밥으로 어찌어찌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제 겨우 16살이 될 뿐더러 3년 동안 마을의 소일거리를 해오던 어린애는 얄짤없다.
레비가 고아가 된 건 13살 때였다. 누가 13살 애를 그런 자리에 앉혀? 교육에 걸리는 시간을 따져 보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런 일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조기교육을 받았을 경우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런 교육이 가능한 건 상단을 운영할 정도로 잘나가는 상인 아니면 귀족 정도다.
“요즘 애가 반항기인지 예전 같지는 않은데 일머리는 한결같아서 정말 든든하다니까.”
“어떻길래?”
“어디서 구해왔는지 뭔지 모를 걸로 머리를 염색하질 않나, 안 그래도 길지도 않은 머리를 사내아이마냥 짧게 자르지를 않나 말도 마라.”
갑자기 아침에 아실리에와 나눈 대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마을에서 귀족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성년이 될 때까지 숨어 있었네 뭐네라며 나 혼자 했던 뻔한 상상.
나조차도 그 상상을 ‘뻔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런 레퍼토리는 흔했고, 흔하게 쓰일 정도로 실제로도 일어난 사례가 있는 일들이었다.
“그냥 꾸밀 여유가 있어서 제멋대로 꾸며보는 거 아니야? 레비가 몇 살이더라?”
“올해로 16살이라더라. 조금 있으면 생일이라던데?”
씨발.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진짜 존나 심상치 않다. 내 머릿속에서 안 좋은 방향으로 자꾸 머리가 굴러가던 그때.
“응? 엘드미아왔어?”
계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레비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쫙 달라붙는 가죽바지에, 가슴골 노출이 좀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파여 있는 셔츠, 지저분한 적갈색 머리로 염색된 숏컷 머리. 하나같이 원래 레비가 입던 옷과는 차이가 있었다.
여자아이 혹은 귀족 영애하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마치 의도적으로 마을의 부랑자나 거친 이미지를 꾸민 것처럼…
하지만 나를 부르는 목소리나 행동 그리고 표정은 한결같았기에 난 결국 그대로 레비의 팔을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너 잠깐 따라와라.”
“어? 어어어??”
“너, 너 이 새끼! 레비한테 발정하면 죽는다!”
“애들 앞에서 뭐래! 날 뭘로 보고!”
범죄라고 그거!
◈
“너 귀족이었냐?”
애들한테 이런 거 물어볼 땐 그런 주제가 나올 거라고 예상도 못했을 때 들이받아버리는 게 최고였다. 실례를 무릅쓰고 레비의 방에 들어온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나보다 20센티는 작은 레비를 내려다보며 양쪽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고정한 체, 눈을 마주친 자세 그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짧은 순간이나마 레비의 눈동자에 머물던 단순한 놀라움이 한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가까스로 표정 관리를 하며 짐짓 태연하게 대답한다.
“바, 발, 발저…핫! 가, 갑자기 아침부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귀족이라니?”
좀 더 능숙했다면 전혀 몰랐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부족했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놀랐는지 말이 빨라졌다.
“너 형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다.”
“나, 나이는 내가 더…그리고 구, 굳이 따지면 오, 오빠…”
“말 돌리지 마 말고. 방금 놀란 거 숨기려는 거 다 보였어.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확신했거든? 빨리 네 입으로 지금 무슨 상황인지 사실대로 말해. 너 곧 생일이잖아.”
이세계는 16살 생일이 지나가면 성인이다. 평민들이야 그냥 축하하고 마는 부분이지만 계약서가 오고 가는 상인들이나 저 너머의 귀족들에게는 엄청나게 중대한 이벤트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집안의 재산과 권리를 상속받을 수 있다는 의미니까. 성인이 되지 못한 상속인은 친척이나 가문의 사용인이 보호자 명분으로 대리인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러면 어린 상속인이 손을 쓰기도 전에 재산이 공중분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 내 생일 기억…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넌 배운 걸 기반으로 실천한 거겠지만 지금 저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자선 사업은 일개 평민 머릿속에서는 구상조차 못한다. 알리샤 아주머니가 네 이야기 들었을 때 이해 못했던 거. 기억하지?”
굳이 깊게 살펴볼 것도 없을 정도로 레비의 시선이 요동쳤다. 그래. 흔히 하는 실수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보편적일 거라고 믿는 실수.
평민 귀족 모두를 아우르며 거래하는 상인보다, 그들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귀족이 할 법한 실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애가 그만한 지식을 가진 것도 모자라서, 16살이 다가올 무렵에 뒤 늦은 사춘기로 행동거지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여유가 생기자마자 챙겨입던 치마를 다시 바지로 바꾸고 하지도 않던 노출을 올리고 짧게 머리를 자를 뿐더러 염색까지 했다고? 심지어 마을에 갑자기 귀족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도는 타이밍에?
“마을에 돌고 있는 귀족이 발견되었다는 소문. 갑자기 바뀐 네 옷차림. 더 자른 머리. 염색. 이게 지금 소문에서 도망치려는 위장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냐?”
일상 속을 살아가며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길 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들이 연장선에 불과할 테니까. 그걸 연결시킨다는 발상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이세계에 떨어진 그날부터 모든 게 비일상이고, 모든 게 의심되고, 모든 게 사건으로 보이는 사람이니까.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없는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조건은 갖춰져야 천재성이 발현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레비가 사람 다루는 천재이자 사업 구성의 천재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우연? 오늘 아침의 광경이 레비의 작품이라는 사실만 몰랐어도 나도 그냥 레비의 파격적인 외형 변화를 한순간의 일탈 정도로 넘겼을 거다.
그 두 개가 겹쳐진 이상, 이건 우연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웠다. 아니라면 얘도 나처럼 전생자여야하는데, 그랬다면 이미 내 태도에서 자기도 의심하거나 눈치를 챘을 것이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거였으면 모습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너 정도 머리 쓰는 애가 단순히 모습만 바꾸고 도망을 치지 않았다는 건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건가? 시간 끌기?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올 때까지 눈속임만 하면 되는 거라서? 언제까지…아니지, 그건 생일까지인 게 당연한 거네.”
“대체…”
잡은 레비의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주저앉는 것 같아 황급히 뒤에 있는 침대에 앉히자, 조금 전까지 태연한 척 웃어 보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아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