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3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30화(130/599)
서커스단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천막을 벗어난 나는, 아직 투명 인간 상태인 놈을 한 번 더 묶어 끌고 다니며 대장같은 놈들이 썼을 법한 천막을 찾아 숙영지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뭘 알고 움직인 건 아니다. 철장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저 사람들 사이에 멀뚱히 서서 아실리에만 기다리기엔 너무 힘든 분위기인지라 도망쳐 나온 김에 그럴싸한 천막이 있길 바라며 돌아다닐 뿐이다.
고요한 밤공기 사이로 질질 끌리는 투명 인간과 내 발소리만 울려 퍼지며 꼭 시체를 유기하러 가는 연쇄 살인마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긴 했지만 어차피 보는 이도 없는 마당에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아실리에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고 그녀는 내 뒤의 투명 인간을 보며 아리송한 표정과 함께 물었다.
“엘디? 뒤에 뭘 끌고 다니는 거니?”
“투명 인간. 아까 그 천막 안에 숨어 있더라고.”
“아!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잡았어? 기다려보렴. 아마 디스펠이 먹힐 거야.”
“소음 억제 같은 것도 걸어놓은 거 같던데 같이 풀리겠지?”
“응. 외부에 인위적으로 두르고 있는 마법의 흐름을 끊어서 구동을 막는 구조니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다 해제될거야.”
시전 중인 마법은 끊어내도 이미 시전 완료된 마법은 해제할 방법을 몰라 끌고 다녔던 건데 덕분에 수고를 줄일 수 있게 됐다. 투사체와 달리 버프형 마법은 꼭 피부가 한 겹 더 생긴 꼴이라서 영 감이 안오더라.
아무튼 아실리에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해제하고 나니 지극히 평범한 복장의 남자가 나타났다. 겉 늙은 게 아니라면 이제야 서른 정도 됐을 거 같은 얼굴을 찬찬히 훑어봤지만 딱히 내가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저씨. 일어나 봐요. 저승사자님이 찾아요.”
놈의 뺨따구를 같은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며 세 번 때리자 반쯤 풀린 눈을 하며 녀석이 정신을 차렸다.
“어? 어어…여긴…으아아악! 괴물!”
“노예 상인 새끼가 누구보고 괴물이래? 그리고 이렇게 잘생긴 괴물이 어딨어 이 자식아. 너야말로 사회가 낳은 괴물이 아닐까?”
“으아아아!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 한들 속지 않는다! 살려줘! 아무나 도와주세요!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아니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그게 지금 멀쩡한 사람을 납치 감금 위조 후 노예로 팔아치우는 새끼 입에서 나올 말이냐?!”
가만히 듣고 있어 주려고 했더니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일단 마력을 해제한 후 최선을 다해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표출에는 아실리에도 동참했다.
“감히 인간 사냥꾼 주제에 누구 보고 괴물이래?! 괴물은 너야 이 자식아!”
“으아악! 에, 엘프?! 엘프가 어째서 여기에?!”
당장 나만 눈에 들어왔던 놈은 갑자기 자신을 짓밟는 다리가 두개로 늘어나자 더욱 정신을 못 차리는 듯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이성적인 회화의 장이 아니라 2분간 증오지. 상황 파악 못 하고 멀쩡한 사람을 괴물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감히 죄를 지은 놈이 구원을 요청하다니!
“으아악! 그만! 그마아안! 사, 살려주시오! 제발!”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걱정하지 마라! 이걸로는 안 죽으니까!”
“아아악!”
그렇게 대충 체감 상 2분 정도 폭력을 휘두르자 지칠 대로 지친 놈이 헉헉거리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그만!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네가 말 안 해도 네 잘못인 거 알아! 어느 머저리가 알고 있는 대답을 듣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나! 내가 모르는 걸 말해!”
“우으으윽… 무, 무엇을 원하는 거요. 신께 맹세컨데 우리는 그저 평범한 노예상…”
“노예상에게 신은 없어!!”
“으아악! 잘못했소! 제발 그만 때리시오!”
금수만도 못한 놈이 신을 팔면서까지 혼이 담긴 구라를 치려고 하네. 하긴 신이 실존하는 세상에서 신 정도는 팔아먹을 각오를 했으니 사람도 팔아먹는 거겠지. 난 좀 더 겁을 줄 요량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묶여 있는 놈의 손 쪽으로 가져갔다.
“감히 신의 이름까지 팔아서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려고 하다니. 넌 내일의 태양을 보긴 힘들 거 같다. 네 죄를 회개하기 전에 일단 손가락부터 자르고 보자.”
“으아아, 안 돼!”
잔뜩 겁먹은 놈이 바둥거리며 도망치려는 것을 힘으로 억누르며 그대로 그어버릴 것처럼 검을 들이밀자 놈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게 꽤 볼만 하다.
“안 되면 되게 하는 거야! 네놈 입에서 이티스엘 귀족파와의 연관성을 비롯해 노예 문서 위조에 대한 자백이 먼저 나오는지 혓바닥이 먼저 뽑혀 나오는지 신께서 지켜보실 것이다!”
“다, 당신 말이 맞소! 위조 했소!”
“건방지게 자꾸 하오체로 말할래? 흙바닥을 핥아도 모자랄 판에 자존심을 지켜?!”
이제 슬슬 됐겠구나 싶어서 언성을 높이자,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박고 무릎을 꿇으며 놈이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성기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제가 멀쩡한 신민을 납치해 문서를 위조하고 노예로 바꾸어 팔아넘겼습니다!”
뭐? 성기사?
순간 표정 관리 못하고 진심으로 빵 터질 뻔한 걸 겨우겨우 참으며 놈의 뒤통수에서 아실리에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대충 봐도 비실비실한 몸에 걸맞게 물리적 고통에 대한 내성이 전무한가 보다. 이렇게까지 지레짐작을 할 정도면 어지간히 다급한 모양이야. 딱히 성기사를 사칭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도 없었기에 난 적당히 비꼬는 어투로 어이없는 것처럼 말했다.
“방금 전에는 마법으로 숨어 날 기습해 죽이려 했으면서 성기사라 칭한다고? 너무 많은 죄를 저지르다 보니 두어 개 더 얹는 거로는 기별도 없나보군?”
“죄송합니다! 미천한 것이 귀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성왕국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음하실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이게… 착각물의 맛?
햐. 이거 직접 겪으니 재밌네. 아실리에는 혹여라도 들킬까 이미 세 걸음 이상 떨어진 상태로 입을 틀어막은 채 눈까지 질끈 감으며 웃었고 나도 조심해야 할 거 같아 잔뜩 숙이고 있던 허리를 피며 거리를 뒀다.
“이딴 짓을 해 놓고 아무거나 용서를 빌면 끝날 거라 믿은 거냐? 하나부터 열까지 글러 먹었구나.”
“다, 다 말하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거짓 없이 모든 것을 다 말하고 회개하겠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닐 테니까! 네놈들이 작성한 위조 문서와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놈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며 등을 떠민 나는 돌아볼 엄두도 못 내는 녀석의 등 뒤에 서서 아실리에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양손으로 따봉을 날렸다.
양손을 맞대어 용서를 구하는 것만큼 범차원적인 제스처에 아실리에는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웃음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
“이, 이곳입니다. 중요 거래와 기타 문서 작업은 모두 여기서 처리했습니다.”
작업실이라는 장소로 오면서 이놈만큼은 안 죽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순 숙영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작업실은 아예 별도로 작정하고 만든 비밀 공간이었던 것이다.
분명 우리가 지나왔던 평범한 천막 바닥에 목재 비밀문이 있는 모습은 동심을 자극할 만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이 미친놈들이 그만큼 여기서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해서 매우 불쾌하게 다가왔다.
“대체 몇 년이나 이 모독적인 짓거리를 해온 거지?”
“저, 저희는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있던 사냥꾼들이 거래 실패로 죽어 없어진 덕에 생긴 빈자리를 꿰찬 것에 불과합니다. 비용을 지불하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거니까요.”
3년씩이나 사람을 팔아먹으며 살아왔으면서도 ‘밖에’라는 표현을 쓰다니. 정신머리가 나가도 단단히 나간 놈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매우 쓸모있는 정보싸개지. 나와 아실리에는 놈을 앞장 세워 내부에서 간단하게 챙길 수 있는 중요 문서는 싹 다 챙기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귀족파 뿐만 아니라 국왕파 내부에도 협력자가 있다는 내용들이 담겨있기도 했다. 이 부분은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지경이면 국왕파가 직접 나서서 뭔가 손을 썼을 법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다른 수단을 통해 손을 썼지만, 어쩌다보니 내가 더 빨리 얘들을 작살 낸 것일지도 모르지. 이건 나중에 에카프 경에게 기회를 봐서 물어봐야겠다.
“엘디. 이 정도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중요한 건 다 추려서 챙긴 거 같아.”
“나도 그래. 이제 슬슬 가자.”
“이, 이대로 성왕국까지 가는 겁니까?”
열심히 눈치 보면서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질문을 던진 놈이었지만, 당연히 설명해 줄 의리따위 없었기에 난 귀찮게 입을 놀리느니 그냥 놈을 기절시키는 걸 택했다. 주둥이도 가벼우니 데려가면 알아서 잘 써먹겠지.
내게 당장 중요한 건 문서의 내용이었다. 비록 보샤 백작과의 접점이 될만한 건 없었지만 한통속이라서 박살낼 것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전쟁이 길긴 길었구나. 도적들이랑 노예 상인이랑 이 지경까지 작당모의를 하고 있을 줄이야.”
말이 도적이지 마치 숨겨 놓은 사병처럼 쓰이는 놈들과의 거래 기록과 위치 등이 적힌 문서를 보고 있었더니 아실리에가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흐응. 이게 정말 보샤 백작의 작품이라면 도적들로 군대를 만들 생각이었을지도?”
“그래서 다 박살내버리고 싶은데 거리가 좀 머네.”
“어디보자…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 숲 정도는 이틀이면 다 돌 수 있을 걸?”
그렇게 말하며 아실리에가 짚어준 도적들의 은신처로 예상되는 숲은 하나 하나가 못해도 3일은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여길? 비룡은 들킬 수 있으니까 못 써.”
“괜찮아. 이건 정령들하고 합의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서 일단 숲에만 들어가면 거리는 아무 의미 없을 거야.”
“그런 게 있어?”
그렇게 같이 지내면서도 처음 들어 본 이야기에 깜짝 놀라자 아실리에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저들은 숲과 정령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에 불과하니까. 그 문제 거리를 해결해준다는 명목으로 거래를 제시하면 정령들도 기꺼이 도와줄거야. 물론 엘프인 나와 함께 하니 가능한 이야기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잘 기억 안나는데…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거리가 한 시간으로 줄어드는 수준?”
“정령식 게이트 같은건가? 엄청나네.”
“개념은 다르지만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하루 종일 힘 쓰고 돌아다녀서 피곤할 법도 했는데 아실리에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갑자기 생기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내일도 보람찬 하루가 될 거 같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