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3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36화(136/599)
빡빡한 세상이다.
꿈과 낭만의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리얼리티 판타지라서 몬스터도 많고 미친놈들도 많고 그런 놈들에게 시달리며 먹고 살기 힘든 이들도 많다.
그런 주제에 정말 평생 칼 한 번 잡아볼 기회 없이 요절하는 이들 또한 많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악 조건이 좀 겹치면 도적이나 강도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이 악물고 찾아보면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이놈들은 그 수많은 방법 중 자신들과 달리 멀쩡히 잘 살고 있거나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인간을 잡아다 파는 방법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놈들이라는 말이지.
“그리고 난 그런 놈들 싹 다 죽여버리기로 결정했을 뿐이고!”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먹고 살아야 했던 사축 노예인 인생도 지치고 힘든마당에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노예로 강제 전직이라니? 하다 못해 이티스엘에서 노예 사업이 합법이고 이놈들이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놀았으면 내버려 두기라도 했지, 이건 용서가 안 되거든요.
“저 미친놈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석궁! 석궁 가져끄어억…!”
저 멀리서 석궁을 부르짖으며 몸을 돌린 도적 한 놈이 탑에서 아실리에가 쏜 화살에 맞아 한큐에 두목을 따라 가는 것을 보게 된 놈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씨발 혼자가 아니다! 탑에서 화살이 날아 왔어!”
“잠깐, 그럼 대장은…”
다급한 건 이해하겠는데 아무리 나랑 좀 거리가 있다고해도 한눈을 팔면 쓰나.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나 씩 죽어나가는 마당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네.
“진즉 뒈졌지! 저승에서 너희 누울 자리 봐 주고 있을 테니 빨리 따라가서 도와!”
“으아아악!”
체계도 없고, 목적성도 없다. 그저 제 한 목숨 살기 위해 남을 팔아 먹던 놈들은 갑작스러운 습격 속에서 대장이 사라지자마자 자신들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 놈들 서른 명이 있든 마흔 명이 있든 귀찮을 뿐이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벼 이삭 베어내는 농부마냥 도적 놈들 머리를 추수하는 와중에 다섯 도적들이 저들끼리 뭉치더니 방진을 짜며 나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들고 있는 게 방패가 아니라 방패 흉내도 겨우 낼 법한 판떼기들이라는 게 문제지. 진짜 방패는 가운데 놈이 들고 있는 거 하나 뿐이네.
“어쭈? 탈영병이라도 계셨나? 꼴에 방진 비스무리하게 짰네?”
“넌 누구냐!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딴 짓을 하는 거냐!”
대항이라는 말은 취소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거 같다.
여기서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정말 중요하면 잡아다가 팔 다리 정도는 자르고 물어봐야지. 그나마 가장 방패다운 방패를 든 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놈의 행동조차 내가 보기엔 현실도피에 불과했다.
“난 다 죽일 땐 자기소개 안 하는데. 의미가 없잖아?”
“갑자기 학살을 저질러 놓고서!! 그딴 말을 지껄인다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하는 짓이냐! 우리를 다 죽인다고 네놈이 안전할 수 있을 거 같아?! 이 근방 도적들은 연합이라고! 우리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널 죽이려고 수십 명의 도적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다! 우리 뒤를 봐주는 귀족도 널 잡아 죽이려고 하겠지!”
허. 연합이래. 도적놈들 주제에 아주 가지가지하는구나. 그래도 문서에는 없던 정보를 자발적으로 알려 준 것을 기특하게 여겨 나도 놈의 의문 하나 정도는 해결해주기로 했다.
“넌 학습 능력이 덜떨어진 프렌즈로구나!”
“뭐…?”
“내가 여기 오자마자 너희 대장 죽인 걸 보고 느끼는 게 없냐?”
떠들던 놈을 제외한 나머지 도적들도 딱히 이해는 안 되는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날 노려볼 뿐이다. 그 꼴을 보고 있자 하니 문득 놈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나 호기심이 들어서 난 최대한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해줬다.
“난 떨거지를 상대할 땐 대가리부터 쳐. 그럼 너희 같은 떨거지를 집단으로 치기 전에는 누굴 먼저 죽이고 온 걸까?”
“…으, 으아. 마, 말도 안 돼…”
“당연히 말이 되죠!”
지휘봉을 잡을 만큼은 똑똑하고 내 실력을 보고 어떻게든 말로 살 궁리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만큼은 머리가 굴러가던 놈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너희 후원자인 노예 상단은 싹 다 뒈졌어. 상단 뿐만 아니라 그 상단을 후원하던 귀족 새끼도 정치적으로 뒈지기 직전이지. 궁금증도 해소 됐을 테니 이제 가자!”
“어, 어디를?”
“당연히 지옥이지!”
쇠문도 걷어차서 찌그러트리는 나에게 개뿔 훈련도 안한 도적놈들의 허술한 방진이 통할 리가.
-콰앙!
“끄어억!”
내가 달려드는 것만으로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방진 한가운데에 있는 놈을 한껏 마력을 끌어 올려 밀어 차버리자 그대로 2미터 정도는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 그사이 양 옆의 놈들이 날 찌를 걸 대비해서 냅다 주먹을 휘둘렀지만, 내가 놈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인지 반격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휘두른 주먹에 얻어맞은 두 놈의 숨이 부질없이 끊어지는 걸 본 나머지 두 놈들은 그대로 판자를 내팽개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야아!”
“으아아아!”
어김없이 정확하게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 아실리에의 화살이 그런 두 놈의 목숨을 가차없이 앗아간다.
“어라. 끝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순 시체 뿐이네. 혹여라도 시야가 닿는 범위 내에서 뭐 다른 게 있지 않나 둘러보는 사이 탑에서 내려온 아실리에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찾니?”
“아니, 벌써 다 죽었나 해서.”
“죽거나 도망쳤지. 아까 우리 들어올 때 보초 서고 있던 인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던 걸?”
“허어어… 상황 판단 능력 기가 막히네.”
멀찍이 나에게 걷어차여 날아간 도적놈에게 쫄래쫄래 걸어가 보니, 양손으로 방패를 쥔 자세 그대로 두 눈을 부릅 뜨고 헥헥 거리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방패를 안 놓친 게 아니라 팔이 부러지고 갈비뼈가 나가서 꼼짝도 못 하고 방패에 눌려 있는 것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야. 한 다섯 놈 정도 도망쳤다는 거 같은데 걔들이 아까 네가 말했던 도적 연합이라는 놈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할까, 아니면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까?”
“씨발… 나가 뒈져…!”
“그래? 대답하면 네 부러진 팔과 갈비뼈 고칠 포션이나 주려고 했는데. 싫으면 말고”
“뭐?! 자, 잠…!”
말하기 싫다는 놈 붙잡고 고문할 정도로 극성일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주저없이 놈의 목을 베어 넘겼다.
주변에 적도 없는 거 같아 날을 닦은 뒤 검집에 넣는 사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실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걔 정도는 살려둬서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 같은데?”
“어차피 정령님들께 말씀드리면 숲속에 있는 도적들 위치는 얼추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냥 죽였어. 괜히 살려뒀다가 또 다른 곳에서 사람 팔아 먹고 있으면 찜찜해.”
마을 양아치라던가 그런 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급 낮은 모험가들은 그래도 갱생의 여지라도 있지, 사람 잡아다 파는 놈들은 내 기준에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서 대답하면 포션을 주려고 했어?”
“포션 준다고 했지 안 죽인다고는 안 했으니까. 치료하고 죽이려고 했지.”
“그거참…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놈들에게 알맞은 고문이네.”
“당연하지.”
그래도 거점 하나를 초토화시켰으니 죽은 놈들의 주머니와 두목 놈이 있던 탑을 털기로 한 우리는 빠르게 행동했다.
솔직히 이놈들의 장비 상태가 상상 이상으로 멀쩡했던 터라 노예 상인 놈들과 거래해서 번 돈 대부분을 장비에 투자한 게 아닐까 싶었던 내 우려와 달리, 두목의 침대 아래에서 찾아낸 궤짝에는 적지 않은 은화가 담겨 있었다.
“얼추 금화 한 개 정도는 되겠는데? 그리 품질이 뛰어난 거 같진 않지만 포션도 세 개 있고.”
“규모도 규모지만… 어쩌면 도적들 중에서는 꽤 거물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인연이 닿아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군.”
그 외에도 꽤 쓸만한 장비들은 있었지만 챙겨가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이럴 때 게임처럼 인벤토리 같은 게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수납 마법이 부여된 가방 같은 건 정말 끔찍하리만치 비싼 물건이라 우리 수중엔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 군장 정도 되는 물건들이 내 주먹만한 파우치에 다 들어가는 건 정말 정말 매력적이지만, 그 가격이 금화 20개면 아무래도 기가 죽어버린다.
“아. 어디서 수납 마법 걸린 가방 안 떨어지나.”
“풉.”
“이 순수한 바람의 어디가 웃기다고 웃으시는 거죠? 선생님?”
“아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생각?”
수납 마법 걸린 가방을 찾으려던 누군가의 웃긴 에피소드라도 있나 싶어 되물었더니 아실리에의 입밖으로 나온 건 의외로 나와 같이 공유하는 기억이었다.
“엘디랑 처음 만난 날. 그 아무것도 아닌 검보고 마검이라면서 도적놈들이 난리 쳤었잖아.”
“아, 그때. 맞아. 그랬었지.”
“그 당시 마검이라고 난리 치는 놈들 보고 나도 모르게 어떤 멍청이가 마검을 떨구고 다니냐고 생각했었거든.”
“흐흐. 솔직히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지.”
참 긴박했던 그 순간마저도 돌이켜보니 추억이다. 이렇게 느끼게 될 날이 오다니 역시 세월은 세월이구나. 새삼 나의 성장도 그렇고, 열심히 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아실리에는 웃음을 참으며 나의 그런 대견함을 한 큐에 무너뜨리는 발언을 입에 담았다.
“근데 지금 엘디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걔들이랑 겹쳐보였어.”
“……”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멍청한 소리였기에 추억을 회상하며 대견함을 양분 삼아 입가에 번지려던 미소가 쏙 들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