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4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44화(144/599)
“피 냄새가 나는데.”
그다지 달갑지 않은 자극에 미간을 찡그리며 예카트리나는 거병을 고쳐 쥐었다.
지금까지 뿌려온 피가 흘린 피보다는 많은 그녀가 이제와서 혈향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그저, 하필이면 지금처럼 원치 않은 순간 냄새가 난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그런 반응을 인지한 렐리에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가엔달 씨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럴 거 같진 않아. 훅하고 풍겨 온다기보단 우리가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는 거에 가까워.”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렐리에의 얼굴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건 예카트리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두르세나. 혹여라도 용병단과 시비가 붙을 경우 가엔달이 위험할 수 있으니.”
그런 둘이 잡념에 빠지는 것을 막아선 것은 긴이었다. 가엔달이 아무리 척후로서 유능하다 할지라도 상대는 40여명에 달하는 숙련된 용병단이다. 이미 며칠간 강행군을 이어오며 교대없이 척후 일을 도맡은 상태에서 원치 않게 일이 틀어진다면 무사히 도망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엘드미아도 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예카트리나? 너 이번 의뢰에 들어서 벌써 그 말만 서른 번은 넘게 했다는 거 알고 있어?”
“내가? 그렇게 자주 말하진 않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자주 말했다네.”
점잖게 렐리에의 주장을 긍정하는 긴을 보며 예카트리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서른 번? 겨우 3일 사이에? 꽤 많이 말하긴 했네.
“뭐, 그럴 수도 있지. 유능했잖아.”
“……하아. 불안하다 불안해.”
“응? 뭐가?”
“아냐. 일단은 가엔달 씨와 합류부터 하자.”
지난 폐던전 사건 이후 꽤나 손발이 잘 맞았다는 점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들은 좀 더 장기적인 관계를 고려하며 파티로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원래는 엘드미아에게도 권유할 생각으로 길드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다른 일이 있는 것인지 한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일단 넷이서 움직여 보는 중이었다.
실력부터 인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딱딱 들어맞는 이들답게 겨우 네 개의 의뢰를 같이 했음에도 일행들의 만족도는 내려갈 줄 몰랐고, 좀 더 장기 의뢰를 받아보자는 의견일치 끝에 이번 일을 받게 되었다.
의뢰는 단순했다. 최근 자리 잡기 시작한 피난민 마을에 일종의 임시 경비병이 되어달라는 것.
마왕군을 피해 수도 인근으로 도망쳐 온 피난민들은 새로운 터를 잡으면서도 법을 어길 생각은 없었고, 합당한 절차를 걸쳐 도시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도시는 그런 피난민들의 결정을 반겼지만 그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잠시 모험가들이 보호하는 사이 공권력을 준비하고 투입한다는 게 의뢰의 내용이었다.
당연히 네 명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의뢰였고, 다른 모험가도 포함하여 처음엔 열 명 정도 되는 규모로 움직였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마을이 초토화가 되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매의 발톱단이라는 용병들의 짓이 분명하다고.
아직 합법적으로 보호받지 못 하는 마을 사람들을 약탈하거나 노예로 파는 등의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며 악명을 쌓아 온 용병단이라고 했다. 실력이 출중한 것은 물론이고 항상 도적과 일반 마을의 구분이 애매한 이들만 노리기 때문에 이 바닥에서는 알면서도 쉬쉬하는 것에 가까운 이들이라고.
이번 일은 명백히 위법인 만큼, 다른 이들은 용병단의 만행을 길드를 통해 알리겠다는 명목하에 걸음을 돌렸다.
물론 핑계였다. 그들은 혹여라도 용병단의 추적을 받게 될까 싶어 한시라도 빨리 그 참사의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할 뿐이었다.
네 사람은 무고한 이들을 몰살한 놈들이 또 무슨 개짓거리를 할지 모른다는 점에 꼭지가 돌아버렸기에 그들과 떨어져 이렇게 추적에 나선 것이었다.
“…젠장.”
정보상을 통해 체크해 두었던 화전민 마을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뒤 서둘러 걸음을 옮긴 것이 이틀 전의 일이다. 용병단과 얼마만큼 차이가 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기에 강행군을 하며 서둘렀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화전민 마을은 이미 용병단에 의해 약탈당한 뒤였다.
“이건 이미…”
“가엔달! 괜찮습니까!”
그런 마을을 뒤로 한 채 일행들을 향해 힘없이 걸어오는 가엔달이 잔뜩 피로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루. 단 하루가 부족했어.”
일행의 도착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 가엔달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설명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폐허. 그에 비해 멀쩡하게 구성되어 있는 야영지. 이른 새벽임에도 그 야영지를 중심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용병단의 보초들.
“태연하게도 말하더군. 촌락을 이루고 약탈을 일삼던 도적들을 처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아이들은요? 여자나 노인들도 있었을 텐데…!”
가엔달은 대답 대신 아직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목조건물을 가리켰다. 주변에 있는 어떤 집들보다도 가장 정성스럽고 튼튼하게 지어진 그 건물이 무엇인지, 가엔달의 손짓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부디 이곳에서는 안전할 수 있길 바라며 피난민들이 지은 만신전.
생존자들이 그 안에 갇힌 채 노예로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어찌 신들 앞에서… 그딴…”
변명거리는 뻔할 것이다. 법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피난민들의 촌락에 증거라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이미 도적들이 마을 주민들을 해한 거고 자신들은 연관 없다. 자신들은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도적들을 잡은 것이지 피난민을 해한 것이 아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만으로도 저들은 무죄를 주장할 수 있었다.
“진실의 수정구 앞에 끌고 가서 머리통을 쪼개버려야 할 놈들 같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으로 이를 가는 렐리에의 말이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걸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상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고, 장비도 좋다네. 용병단이 아니라 무슨 군대를 보는 기분이야. 분하지만 일단 길드에 보고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그들은 모험가다. 의뢰에 따라 사람과 적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된 상대는 결국 몬스터다.
그에 비해 저들은 용병단이다. 사람과 싸워 돈을 버는 이들인 것이다. 아무리 실력에 자부심이 있다 하더라도 40명이나 되는 용병단에게 검을 겨누는 것은 만용에 불과했다.
설령 저들을 이기더라도 일행 모두가 멀쩡하지는 못하리라.
착잡한 얼굴로 폐허가 된 마을을 자기들 것처럼 지키고 있는 용병단을 노려 보던 예카트리나가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하… 엘드미아였다면 어떻게 했으려나.”
이미 끝난 일이다. 모험가 일을 하며 이런 불합리함을 마주한 게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이럴 때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선 농담이라도 던지고 봐야 했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엔달도 애써 미소 비슷한 걸 만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보여줬던 것처럼 웃으면서 다가가 한 열 명은 죽이고 시작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이 그런다면 미친놈 취급할 텐데 에가 씨라면 어쩐지 진짜 가능할 거 같다는 게 무섭네요.”
아쉽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것을 알았기에 모두들 암묵적인 동의 하에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음? 저건… 비룡 아닌가?”
착잡함을 미처 다 떨쳐 내지 못한 탓에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던 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뱉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런 거 같군요. 근데 원래 비룡이 저렇게 낮게 날아다니던가?”
“점점 낮아지는 거 같은데요…? 어디 이상이 있는 게 아니면 좋겠는데.”
비룡의 추락사라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이미 씁쓸한 상황을 직접 목도한 일행들은 부디 저 비룡이 추락하는 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멍하니 하늘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바람과 달리 비룡의 고도는 점점 낮아지더니 숲의 나무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지경까지 내려왔다.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닌가?”
“젠장. 비룡 조종에 대한 건 들은 바가 없는데. 잘 보이지도 않고…”
“아니, 그런 거치고 조종사는 당황하는 거 같지 않네. 의도적으로 낮게 나는 게 맞는 거 같아.”
가장 눈이 밝은 긴의 설명이 있고 나서야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무리 타인의 불행이라지만 연속으로 그 불행을 마주하는 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엘드미아?”
“뭐?”
하지만 그 속에서 예카트리나는 홀로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저기 조종사 뒤에 있는 사람. 엘드미아 아니야?”
“카샤. 너…!”
렐리에는 경악했다. 유독 그 뒤로 엘드미아를 자주 그리워한다 싶었는데, 그녀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사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날 있었던 술자리에서도 묘하게 가깝게 있으려고 하는 거 같아 설마설마 했는…!
“응? 진짜로군. 엘드미아야.”
“예? 진짜라구요?!”
렐리에의 망상을 끊은 건 긴이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그녀도 최대한 집중해서 비룡이 날아오고 있다는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완전히 밝다고는 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그녀의 좋지 않은 시력으로 저 멀리 있는 비룡 탑승자들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가엔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굳이 정말 엘드미아인지 확인하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 긴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걸 택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아니, 근데 대체 어딜 가길래 저렇게 낮…게…?”
설마.
하지만 모두가 한 마디의 대화없이 공유한 그 ‘설마’에 네 명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등 뒤의 폐허 속 야영지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연이겠죠. 설마 저 용병단에게 용무가 있겠어요?”
“하, 하하. 그렇지. 아무리 우연이 겹치더라도…”
그사이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비룡에게로 다시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들의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대감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그들은 비룡의 위에서 엘드미아로 보이는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갑다 개새끼들아!!”
우렁찬 욕지기. 분명 지난번에 들었던 엘드미아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리고 저 반응으로 미루어볼 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용병단에게 용무가 있는 것도 맞는 것 같았으며 결코 호의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비룡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저대로면 그냥 용병단의 야영지를 지나칠 게 분명했다.
‘대체 어쩌려고?’ 라는 의문이 모두의 머릿속에 맴도는 찰나.
“나는! 엘드미아 에가다!”
엘드미아가 검을 뽑아 들며 비룡에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