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4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47화(147/599)
거의 발광하듯 장비를 벗던 놈의 안면에 사커킥을 날려 기절시킨 뒤 둘러본 주변은 처참했다.
하늘에 떠 있던 불덩이는 점점 작아지며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30여구에 달하는 불타는 시체들은 한동안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일만 정리되면 이론 마법 좀 공부해야겠는데.”
마법을 쓸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영역이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어져도 대처가 불가능한 이런 마법이 존재한다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솔직히 모골이 송연해졌다.
마력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기에 어떤 원리인지는 대충 이해했다. 허공에 떠 있는 불덩이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눈 역할을 했다는 것도, 거기서 실처럼 뿜어져 나온 마나가 용병들이 착용하고 있던 갑옷에 인위적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리고 그 마나를 연료 삼아 죄다 태워 버렸다는 것까지.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피는 수준의 구성이지만 그걸 마법으로 해냈다는 게 무서웠다.
분명 시간뿐만 아니라 마나도 오지게 잡아 먹고 술자의 연산 능력까지 요구하겠지. 돌멩이 하나라도 잘못 날아가서 술자의 주문을 방해하면 어떤 대참사가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렐리에가 굳이 지리적 이점을 포기하고 개활지와 다를 바 없는 곳까지 나와 시전한 것을 보아하니 사거리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걸 감안 하더라도 위력에 비해 발동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렐리에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비슷하면서도 더 은밀한 방법으로 저런 형태의 마법을 시전하면 일단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일단은 지금의 온전한 승리에 만족하는 게 맞겠지.”
기절한 웨리Mk.2를 질질 끌면서 원래라면 마을의 광장 역할을 했을 공터 쪽으로 걸어가니 가엔달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숲속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아실리에도 있었고, 상황이 정리된 걸 확인한 것인지 저 위에서 기에스도 착륙을 하기 위해 빙빙 돌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엘디? 이 분들은 누구시니?”
아, 폐던전과 관련된 이야기는 편지를 쓰지 못했었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아실리에가 엘프라는 것과 날 애칭으로 부른다는 점에서 감을 잡은 듯 ‘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우선 아실리에에게 이들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지난번에 같이 의뢰를 해결했던 적 있는 모험가분들이야. 가엔달, 긴, 예카트리나 그리고 저 뒤에 힘들게 오고 있는 분이 렐리에.”
렐리에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힘들게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가 부축해 줄 법도 한데, 예카트리나조차 다가가지 않는 거보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지도? 역시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부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네.
그래도 아주 먼 거리는 또 아니라서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힘겹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다.
“이쪽은 아실리에입니다. 제 은인이자 보호자죠. 그리고 지금 저 위에서 빙빙 돌며 착륙 장소를 알아보고 있는 친구는 기에스라고 합니다. 정식 비룡 조종사죠.”
“후후. 이젠 보호자라고 하기도 애매한 거 같지만 말이야.”
“역시! 이분이 그때 말해줬던 엘프시구나?”
손뼉을 짝 치며 반응하는 예카트리나와 새삼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가엔달의 반응과 달리 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뭔가 기억을 되새기는 듯한 모습인데, 혹시 구면인가 싶어 아실리에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형식적인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실리에. 솔직히 엘드미아를 길러낸 분이라고 하셔서 북방 엘프 같은 분인 줄 알았습니다.”
“후후. 반갑습니다. 엘디가 워낙 크게 자라긴 했죠.”
가엔달이 말한 북방 엘프는 흔히 생각하는 미형의 호리호리한 엘프가 아니라 두개골을 당수로 쪼개고도 남을 법한 근육 마초들이라고 한다. 키도 엘프들 평균 신장을 한참 상회한다고 하니 어찌 보면 나와 이미지가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물론 그 옆에 서 있으면 난 근육과 덩치만 비슷한 오징어가 될 게 뻔하니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우선 주변의 위협은 다 정리된 거 같으니 살아남은 사람들부터 돕고자 하는데, 괜찮겠나 엘드미아?”
“당연하죠. 저는 이미 목적을 이뤘으니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웨리Mk.2의 뒷덜미를 잡고 적당히 흔들어 보이며 대답하자 헛웃음을 터트린 가엔달이 간단히 업무 분담을 해주었다. 리더로서의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난 두말 않고 그 지시를 따라 예카트리나와 함께 만신전으로 향했다.
아직 하늘에 떠 있는 기에스에게 공터에 있는 이들과 합류하라는 언질을 넣어 주는 것도 잊지 않으며 도착한 만신전의 문은 거대한 걸쇠로 굳게 잠겨 있는 상태였다.
“조용한데?”
“두려워서 그런 거겠죠. 열겠습니다.”
“워, 워. 잠깐 엘드미아.”
당장 걸쇠를 들어 올리려는 나를 막는 손길에 말없이 두 손을 들어 수긍하자 크게 숨을 들이쉰 예카트리나가 외쳤다.
“안에 계신 주민 여러분! 저희는 여러분을 도우러 온 모험가 입니다! 대답 가능하신 분 계십니까!”
“구, 구해주러 오셨다구요?!”
조용하던 만신전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내뱉는 탓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예카트리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 세 부류거든. 혼란에 빠진 상태로 도움의 손길을 붙잡으려고 난리를 치거나, 마지막 순간에 복수라도 하겠다는 식으로 문을 열자마자 일단 아무거나 들고 찌르고 보거나, 정말로 모든 걸 포기하고 있거나. 마지막의 경우엔 정말 살아 있는 시체처럼 반응해.”
아무리 봐도 마지막은 아니었던 걸 보면 앞의 두 경우 중 하나였을 텐데, 예카트리나는 아무래도 두 번째의 상황을 우려했던 모양이다. 이건 또 생각하지 못했던 경우로군. 역시 숙련된 모험가는 다른 법이야.
이쪽에서 대답이 없자 점점 안에서 들려오던 수많은 목소리가 하나하나 줄어들기 시작했고, 거기에 맞춰 예카트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습격한 용병단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당장은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여러분이 인근 도시까지 갈 수 있도록 저희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그러니 불안에 휩쓸려 돌발 행동을 하는 일 없도록 서로 잘 보듬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알겠어요!”
역시 예카트리나는 문명전사가 분명해. 일상 회화에서는 발휘하지 않는 어휘력을 갑자기 뽐내다보니 괴리감이 엄청나다.
일단은 안의 소란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아 드디어 걸쇠를 치우고 만신전의 문을 열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불안과 기대가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잠깐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들 앞에서 취해야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예카트리나는 자기 키만 한 거병을 당당하게 어깨에 걸쳤고, 난 대수롭지 않은 듯 태연한 동작으로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오시죠. 이제 여러분들은 안전합니다.”
영웅을 바라고 기적적인 구원을 바라는 이들 앞에서, 그들이 바라는 영웅을 연기할 때였다.
◈
정적, 불신, 놀람, 기쁨, 슬픔.
살아남은 이들이 보인 극적인 감정의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남자와 노인은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아이와 여자 뿐. 남자 노예라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니, 실상 이들을 지키고자 솔선수범해서 싸움에 나섰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리라.
이들은 국경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고 한다. 도망치고 도망쳐 그나마 안정적이라 여긴 내륙까지 온 끝에, 인근에 있던 다른 피난민들과 뜻을 같이해 관문 도시에 보호를 요청하고 마을을 세우는 중이었다고.
“마족보다 더한 게 사람이라니까.”
좆같음이 차오르다못해 넘쳐흐를 지경이라서 잠시 그들에게서 떨어져 구석에 박혀 있었더니 아실리에가 다가와서 별말없이 뒤에서 날 안아주었다. 생각보다 내 표정이 더 많이 썩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예카트리나도 내 상황이 신경 쓰이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길래 괜찮다는 의미로 손이나 한 번 흔들어 줬다.
“가엔달 씨는 아직 안 돌아왔지?”
“응.”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굳이 숨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말하지도 않았지만 일단 놈들이 반역자의 하수인이라는 것까지는 말해 두었다. 그러자 내가 필요한 정보까지 뽑아내겠다며 가엔달이 놈을 이끌고 숲속으로 사라진 게 벌써 20여분 정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비명 소리 한 번 안 들려 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꽤 멀리 이동했거나, 매우 협조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모양이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혼자 장비를 벗어 던지는 모습을 떠올려 봤을 때, 딱히 참을성이 엄청나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고수하는 타입의 인간 같지는 않았으니까.
“우리가 모르는 노예 상단이 또 있는 건 아니겠지?”
“지크멜이 줬던 정보 내에선 없었으니까. 그러길 바라야지.”
긴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 말고 다른 마을도 똑같이 당했다고 했다. 만신전에 있던 이들 중 일부는 그 마을 사람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매의 발톱단인지 뭔지 하는 용병단 놈들이 저지른 게 맞는 거 같다고도 했고.
정황상 우리가 첫날에 박살 낸 노예 상단 놈들이 접촉하러 와서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게 놈들의 계획이었을 거 같다. 제대로 된 마차도 없이 겨우 40명의 인원으로 20명의 포로들을 이끌고 국토대장정에 나설 수는 없었을 테니까.
결국은 유일한 생존자가 어디까지 협조적으로 나오느냐가 관건이었기에 고민하는 걸 그만두고 멍하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십여 분 정도를 더 보냈을까.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가엔달이 생존자를 데리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