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4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48화(148/599)
용병의 이름은 궨스라고 했다.
가엔달의 말로는 작정하고 고문하려던 게 부질없게 느껴질 정도로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바람에 그냥 그대로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반역에 대한 것도 자네와 얼마든지 이야기할 의사가 있다더군. 우리는 그저 이들을 막는 게 목적이었으니 이놈에 대한 건 자네의 판단에 맡기겠네.”
그리 말하며 내 쪽으로 툭 밀치는 가엔달에게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처럼 표정 관리를 하며 걸어온 놈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궨스라고 합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습니다.”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혼자 눈치 빠르게 살아남기도 해서 여차저차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끌고 온 놈이기도 했으며, 이렇게 협조적이기까지 하니 상황이 참 형편 좋게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막상 이렇게 놓고보니 그냥 죽여 버리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이렇게까지 개입하는 건 좀 오랜만이지만, 아무래도 마을을 불살라버린 것들과 한패라는 게 영 아니꼽네.
“친구 이름이 궨스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널 살려 둘 만큼 의미 있는 정보가 있을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거든? 네가 보기엔 어때?”
순간 움찔거리는 걸 보면 바짝 긴장한 건 맞아 보였지만 용케 고개를 들지는 않는다.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 걸 보아하니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며 살 방도를 궁리하는 듯싶다.
사실 좀 더 편하게 갈지, 귀찮게 갈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왕실은 보샤 백작을 작정하고 털기 위해 긴 시간 준비했던 거 같고, 그 준비가 미흡하든 충만하든 간에 일단 나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놈을 박살 낼 요량이니까.
이 녀석을 살려서 여러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꼬투리를 더 잡으면 보샤 백작의 숨통을 조금은 더 쉽게 조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정도까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난 협조하는 놈은 반드시 살려보내. 사실 아까 널 잡을 때만 하더라도 네가 뭔 짓을 저질렀든 신경 안 쓰고 협조적이면 살려서 수도로 데려갈 생각이었거든. 근데 너랑 별개로 이 광경이 내 안 좋은 어릴 적 기억을 자극해서 처음 세웠던 계획이 자꾸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네.”
애당초 파비에라인지 파바에라인지 했던 놈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어 불쌍한 모험가들을 학살하던 놈도 협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곱게 살려 준 게 나다. 지금 이놈의 행실이 아니꼽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문제라는 거지.
아실리에는 여전히 뒤에서 날 안아 주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의사를 완전히 존중한다기보다는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두고 보려는 듯하다.
어중간하면 그냥 죽은 이들을 기리며 미련 없이 베어 버리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긴 해.
“저는 매의 발톱단 부단장으로 실질적인 용병단의 중요 업무를 도맡아왔습니다. 서류부터 반역자와의 연락체계까지 모든 걸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절대 살려 둔 것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유용한 증인이었다.
“뭐? 부단장? 너 다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어차피 들킬 거짓말을 왜 여기서 하겠습니까.”
몽순이부터 시작해서 자꾸 뭔가 하나씩 큰게 얻어 걸리다 보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네. 난 영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녀석의 귓가에 닿을 수 있도록 허리를 숙인 뒤 조용히 물어 봤다.
“반역자 이름. 말해 봐.”
“엔벨데 다 보샤 백작입니다”
에잉, 진짜네.
그 외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한해서 이것저것 단편적인 질문으로 놈을 떠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부 정답이었다.
여러 의미로 의도치 않은 수확이지만, 결국 모든 조건들이 이 녀석을 살려 두라고 말하고 있군. 그럼 좋게 좋게 생각하고 살려 놔야지 뭐.
결단을 내렸으면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법. 난 그대로 놈을 들쳐메고 착륙해 있는 기에스에게 다가갔다.
“기에스. 이거 좀 오가토르프 가문에 던져줄 수 있어?”
“예? 뭘… 아니, 무슨 사람을 짐짝처럼 말씀하십니까 헷갈리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묶여 있는 놈의 정체를 뻔히 아는 만큼 기에스는 자연스럽게 비룡의 안장을 정돈하며 말했다.
“아예 짐짝처럼 묶어 버리죠.”
“말이 잘 통해서 참 좋구나.”
날아가면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 굳이 배려해 줄 필요는 없지. 녀석도 화장실이 급하거나 하진 않은 모양인지 묶이는 내내 아무런 불평불만도 내뱉지 않았다.
“그럼 엘드미아님은 저분들을 도와 관문 도시로 가실 겁니까?”
“당장은 그래야 할 거 같네. 여기서 헤어졌다가 이상한 것들이랑 엮이면 찜찜하기도 하고.”
어차피 용병단을 터트리는 거 외에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서관을 가든 어딜 가든 마법 서적을 좀 구해서 공부를 해보는 거였으니까. 오늘 밖에 할 수 없는 일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이상 당연히 전자의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지.
그렇게 봇짐마냥 얹어진 놈을 데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등진 채 날아가는 비룡을 가만히 보고 있는 사이 아실리에가 팔짱을 꼈다.
“대견해 엘디. 감정적으로 힘들 때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누나한테 칭찬받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판단이었네.”
“말은 참.”
아예 빈말인 것도 아니었는데 농담이라고만 생각한 건지 아실리에는 그저 웃어 보였다.
그 뒤의 일들은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우리의 인솔에 따라 도시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마족을 피해 안주하고자 했던 땅에서 오히려 인간의 손에 가족을 잃게 되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서 생기를 잃지 않은 채 꿋꿋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경이로워 보일 수 있었다.
“강한 사람들이야.”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이미 전사입니다.”
출발 준비를 마친 예카트리나와 가엔달이 생존자들에 대한 소감을 입에 담았지만… 나는 쉬이 공감하기 힘들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저들을 나아가도록 만드는 연료가 용기와 굳건한 의지만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전부 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이들의 눈에 새겨져 있는 건 분명 광기였다. 나 역시 인생 2회차가 아니었으면 똑같이 품었을 종류의 광기.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드는 복수심.
“뭐라도 말해 줄 수 있는 게 있지 않니?”
착각인지 어떤 건지 몰라도 내가 그걸 읽었다고 느꼈을 때, 마치 내 생각을 같이 읽은 것처럼 아실리에가 말을 걸었다.
“내가?”
“엘디니까 가능한 게 있다고 생각해.”
“…글쎄. 구해 준 건 고마워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저들의 삶에 대한 조언을 15살짜리 꼬맹이가 던지는 꼴은 좀 우습지 않을까. 매번 이런 사람들 만날 때마다 훈수를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엘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이야기를 꺼낸 것치고는 싱겁게 마무리 지은 아실리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게 기대서 출발을 기다렸다.
아니, 괜히 사람 심란하게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이렇게 싱숭생숭하게 마무리 지으시면 제가 곤란하잖아요.
“그걸로 끝?”
“응. 누나는 엘디의 판단을 존중할 거야. 그렇게 결정하고 움직인 거니까.”
정말 물어보는 게 목적이었다는 듯 아실리에는 태연했다. 덕분에 가엔달의 지시에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도 난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숲길을 거닐며 관문 도시로 향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된 나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도 머리는 쉬지 못하게 되었다.
그 고민의 결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대로 호위만 한다.’로 점점 기울어 질 때 즈음, 휴식 시간을 틈타 일부 여성들이 모여 내 쪽으로 다가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작은 감사의 인사였지만, 난 순식간에 그녀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론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내가 아까 봤던 광기가 느껴지는 이들 대부분이 모여 있었던 터라 그리 어럽지도 않더라.
휴식 시간은 15분 정도였기에 난 본론만 말하기로 했다.
“아까 그놈은 못 줍니다.”
어설프게 가장한 평온의 가면이 그 한 마디에 박살 나며 눈에 독기가 아른 거린다.
“……어째서죠?”
“내가 잡았잖아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여성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다가와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눈에 안 띌 수가 없던 만큼 가엔달이 다가오려 했지만 난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확실히 해두죠. 여러분들은 복수를 할 수 없습니다. 사건의 원흉은 곧 죽을 거니까요.”
광기가 적의가 되어 쏟아진다. 그게 위협적이진 않을지언정 달가운 모습도 아니었기에 난 대놓고 인상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룡에 태워 보낸 놈은 그와 관련하여 중요한 증언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무죄가 되진 않을 지언정 정당한 법의 심판에 따라 감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을 그날 출소한 놈을 여러분이 직접 찾아가 살해하겠다면야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건 범죄라는 것만 알아두시죠. 어쨌든 그전에는 여러분들이 복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체… 무슨 권리로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내 친절한 설명을 전부 스킵하고 적당히 자기들이 복수할 수 없게 내가 막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거 같다.
“대체 무슨 권리로 저희가 복수할 기회를 빼앗으려는 거죠?”
한 켠으로는 정말 이게 일반적으로 가능한 사고의 흐름인가 싶으면서도, 정신이 없고 눈이 돌아가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적당히 맞춰서 대답해주기로 했다.
“40여명의 용병단과 직접 싸워 놈들을 죽이고 전리품 삼아 증인을 획득한 권리.”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긴 하다. 비록 그게 사람일지라도 전리품은 전리품이니까. 도적놈들 잡아다가 노예상에게 노예로 파는 것처럼 이세계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저희는 그들에게 가족을 잃었어요.”
“압니다. 저도 마족에게 모든 것을 잃어서 열심히 복수를 준비 중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마을을 불태운 마족들의 목숨이 제 소유가 된 건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가 죽여 버린다면 전 당연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겠죠.”
최대한 의연하게 말하고 나니 나를 향해 쏟아지던 적의가 잠시 주춤하는 게 느껴졌다. 근데 주춤거린 포인트를 잘 모르겠네. 나도 전쟁 피해자라는 부분을 믿고 한 발 물러난 것이려나?
솔직히 ‘거짓말하지 마세요!’같은 반응까지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몰상식한 사람들은 아닌가 보다.
“그, 그런데도 저희가 복수하는 걸 막겠다구요?”
“아뇨. 막을 생각 없습니다. 그저 당신들은 복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줬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
“다릅니다. 당신들이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들이 곧 싹 다 죽는다니까요? 복수할 대상이 다 사라졌는데 어떻게 복수를 할 겁니까? 전 그냥 그 사실을 알려드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걸 저희 보고 믿으라구요?”
“안 믿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으니까요. 놈들은 역모를 꾸미는 무리의 일원이었고, 이티스엘 왕실은 이를 가벼이 넘길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기에 역모라는 단어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내게 분노를 표출하기 직전이었던 여성들조차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당황하기 시작했으며, 가엔달과 아실리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보다 훨씬 당황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가엔달한테만 말해줬었지. 긴 마저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걸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럼, 그럼 이대로 끝이라구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 하고…로 느끼기보다 손 안 대고 코를 풀었다고 느끼시면 좋겠지만, 네. 아무튼 이대로 끝입니다. 물론 아까 그놈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놈을 죽일 기회는 있을 겁니다. 그땐 여러분들이 범죄자가 되겠지만요. 당연히 추천하지 않습니다.”
나는 덤덤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들이 살아갈 이유라 여긴 것을 면전에서 꺾어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영향이라도 받은 것처럼 내게로 왔던 여성들 모두 허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있던 다른 여성들이 천천히 다가와 그녀들을 위로해주기 시작했지만, 그 짧은 사이 혼이라도 나간 것처럼 반응을 잃어 버린 것을 보아하니 이번 휴식은 조금 더 길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