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5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53화(153/599)
간만에 반가운 얼굴을 봤다고는 하나 피곤한 사람들을 붙잡고 늘어질 수는 없는 법.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라비엘 비룡 정거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그냥 여관에서 헤어지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큰 도움을 줬다며 한사코 정거장까지 배웅을 해주겠다는 그들의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피곤할 텐데도 유쾌하게 웃으며 함께 거리를 거니는 이들을 옅은 미소와 함께 바라보던 아실리에가 내 옆구리를 콕 찌르며 말을 걸어왔다.
“한 번밖에 동행한 적 없다는 것 치고 상당히 신뢰받고 있네?”
“당연하지. 누구한테 배웠는데.”
다른 건 몰라도 4등급인 적급 정도는 되어야 우리들 수준과 비슷한 모험가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걸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한 단계 위인 자급 정도 실력은 어렵지 않게 쌓겠지. 물론 그게 단순 무식하게 전투 능력만 놓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보니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마력의 흐름이 보인다니. 살면서 그런 건 처음 들었어. 마안과 같은 종류이려나? 그럼 마력시라고 불러야 할까?”
가엔달 일행이 장구류를 내려 두기 위해 숙소로 올라간 사이 아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빠르게 전해 듣고 난 뒤 아실리에 보인 반응은 생각보다 무미건조했다.
본인 입으로도 처음 들었다고 하고, 실제로 라그니스를 비롯해 이걸로 마법을 자를 때마다 모두가 경악했던 걸 떠올리면 좀 더 당황할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굉장히 태연하게 받아들이네?”
“당연하지. 누구랑 살아왔는데.”
졸지에 120년 넘게 살아온 엘프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무언가의 집합체가 되어 버린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온상인 것처럼 말하시네요. 세상에 저보다 더 날아다니는 녀석들도 많잖아요.”
“그렇긴 한데, 15살에 엘디처럼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손에 꼽지 않을까? 최연소 오러 마스터라고 불리던 인간마저 25살이었을 걸. 근데 지금 엘디는 마력을 써서 그렇지 움직임만 놓고 보면 오러 익스퍼트 정도 되는 사람들하고도 무리 없이 싸울 거 같던데?”
“뭐여. 오러 마스터? 익스퍼트? 그런 게 있어?”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일하면서도 생전 처음 듣는 판타지스러운 단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 보면 죄다 오러 사용자라고만 부르던데?
“마법에도 급이 있는데 당연히 오러에도 급이 있지.”
“아니, 날 본 놈들은 전부 ‘오러 사용자다!’ 이러던데?”
“엘디에게서는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오러를 쓰는 놈들에겐 미미해서 오러 사용자고, 오러를 못 쓰는 놈들에겐 그냥 그 수준을 알 수 없으니 두리뭉실하게 오러 사용자인 것인가.
생각해 보니 참 지당하고 합당한 추론이다.
결국 나는 이세계 전생 15년 만에 오러를 쓰는 부류의 인간들을 비기너, 익스퍼트, 마스터로 나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뭉뚱그려서 오러 사용자 혹은 오러 유저라는 형태로 불리는 거고.
“구분이 꽤 단순하네.”
“마법사들처럼 학문적인 영역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거의 감에 의존하는 능력이니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하면 이 등급이다.’로 구분짓는 게 아니라 ‘대충 이거 할 수 있으면 이 정도 등급은 되는 거 같더라.’로 기준이 잡혔다고 들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전사스러운 이유였다.
그렇게 다 같이 어울려 내가 없었던 일주일 사이에 겪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적당히 나누며 비룡 정거장에 도착하니 비룡에게 먹이를 던져 주며 물을 마시고 있는 기에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일찍 도착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한 와중에 가장 놀란 예카트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야, 이미 와 있었네?”
“아, 여러분. 일은 잘 정리하셨습니까?”
“나름 괜찮게 정리했지. 근데 넌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냐?”
아까와 달리 먼지를 닦아낸 것인지 반들거리는 비룡과 두 팔을 걷어올린 기에스의 모습 등을 근거 삼아 이리저리 계산해 보니 우리가 날아올 때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건 분명했다. 길드장 갈구는데 시간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신기하네.
그런 우리의 공통된 의문은 의외로 맥없이 해결되었다.
“탑승객이 없으면 굳이 속도 조절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최고 속도로 다녀왔습니다.”
뒤에 싣고 갔던 궨스라는 놈을 정말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며 기에스는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품에서 고풍스러운 편지 봉투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저택에 도착했더니 경비 분들께서 엘드미아 님께 편지가 와 있다고 전해주시더군요.”
“편지? 오가토르프 가문으로 나한테 편지 보낼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것치고는 좀 고풍스러운 봉투와 봉랍이던데요? 안에 뭐가 들어 있기도 했구요.”
비행 허가서조차 몰래 보낸 레스롬 공작이 새삼 편지를 보냈을 리도 없고, 지크멜은 비싼 편지 봉투와 인장따위 존재하지 않을 텐데 대체 누굴까. 딱히 비밀스러울 것도 없어서 적당히 다 보는 앞에서 뜯어볼 준비를 하자 일행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다가왔다.
비밀스러운 게 아니면 편지를 읽는 것마저도 하나의 컨텐츠인 세상이다. 나도 이젠 거기에 익숙해진 만큼 딱히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도 읽기 편하게 일부러 무릎까지 꿇어 높이를 맞췄다.
“오, 봉투부터 좀 비싸 보이는데요?”
렐리에의 말에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조금 큰 듯한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봤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백지?!”
“아 잠깐. 나 현기증 일어날 거 같아.”
무슨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현대에서는 손쉽게 볼 수 있는 하얀 종이로 만들어진 편지 봉투가 하나 더 나왔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사치품이다. 진짜 어지간히 좋은 책들도 백지로 만드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말 다했지.
그걸로 편지 봉투를 만들어서 보냈다는 것만 놓고봐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거의 돈지랄에 가깝게 느껴지는 게 정상이다.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린 편지 봉투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짧은 순간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킨 편지 봉투를 마저 꺼내 봉랍을 살펴보니 조금도 일반적이지 않은 새하얀 봉랍 위로 무슨 별사탕 같은 문양이 찍혀 있었다.
하얀… 별…?
“하얀 종이에 하얀 봉랍이라니. 제국의 서신이라 해도 믿겠군.”
그걸 보자마자 이번엔 가엔달이 반응했다. 봉랍도 비싼 건가? 이건 전혀 모르겠네. 어찌 되었든 그의 반응도 놀라움 반 경악 반에 가깝다.
모험가 입장에서야 뜬금없이 고위 귀족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받게 되면 엄청 불안하긴 할 거다. 심지어 누가 보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와중에 어지간히 높은 귀족이 아니면 부릴 수 없는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게 실시간으로 눈에 들어온다는 건, 보통은 있어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현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보통이 아니라서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에스뮈에?”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봉랍을 조심스레 뜯어 내용물을 살펴보자 봉투만큼이나 고급져 보이는 편지 두 장과 얇은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편지의 내용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장 앞에 있는 편지의 서두에 깔끔하게 찍혀 있는 문장이었다.
“검을 휘감은 용 문장과 별 문장…!”
“지, 진짜 제국이잖아? 심지어 1 황녀라고?!”
고개를 내밀어 나와 함께 내용을 살펴보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억누르며 감탄한다. 그리고 혹여라도 주변이 들었을까 싶어 황급히 입을 막는다.
“에가 씨? 이거 진짜 제국 서신이에요? 진짜? 무려 그 철혈 황녀라 불리는 1 황녀의 서신?”
아실리에와 나를 제외한 일행들 중에서도 특히 렐리에가 유독 경악과 놀라움 속에서 이걸 구경 해도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갈팡질팡했지만, 나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인지라 거기까지 대응해 줄 수는 없었다.
우선 편지를 빙자한 공식 서한의 내용이 라그니스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음모와 사건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녀의 무죄를 위해 제국은 최선을 다해 나설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왜 나한테?”
아무리 봐도 내가 직접 받아 왕실에 전달할 이유는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왕실에 대한 압박 혹은 경고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조용히 서신을 같이 읽던 아실리에가 짧은 고민 끝에 대답해주었다.
“이미 이번 사태가 일어난 것만으로도 왕실은 제국의 공식 서한을 직접 받을 자격이 없다… 라는 식으로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 거에 가깝다고 봐. 엘디가 직접 전달하든, 에카프 경을 통해 전달하든 왕실은 꽤나 시끄러워지겠지.”
“이런 게 흔한 경우인가?”
“흔하지도 않고, 원래대로라면 제국이 무례한 거라 해도 무방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지.”
굳이 아실리에가 부연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이번이 다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서신은 그것으로 마무리된 듯 했지만 반지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길래 난 두 번째 편지를 펼쳤다.
서신과 같이 왔으니 이 반지를 통해 신분을 증명하고 보장 받아라 같은 내용이 적혀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두 번째 편지지를 펼쳤을 때, 나는 스스로의 안일함을 후회해야만 했다.
“하얀 별이… 사랑하는 검은 별에게…?”
숨길 틈도 없이 첫 서두를 다 같이 읽어 버린 탓에 이젠 편지가 아니라 내게 시선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