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5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54화(154/599)
후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걸 보아하니 편지마저도 햄찌답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건 내 잘못이 큰 게 맞는 거 같구나.
“이건 아무래도 개인적인 편지 같네요. 따로 읽겠…”
“아니, 에가 씨?! 이게 지금 그런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내가 방금 읽은 게 맞아? 맞아?”
“뭐, 뭔가 알면 안 될 것을 알아버린 기분인데.”
그러니 이 혼란은 내가 감내하는 게 맞겠지. 역시 사람은 언제나 철두철미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면 안 된다. 한 끗만 삐그덕 거려도 이 난리가 나잖아.
무려 긴 씨 마저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재밌는 걸 놓쳤다는 듯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상식인들 답게 내가 편지를 읽을 때까지 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아실리에는 같이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시선을 돌려봤지만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음으로써 에스뮈에를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모두의 양해를 얻어 혼자 읽기 시작한 편지는 한결같이 에스뮈에 다웠다.
[여가 이런 글귀를 적게 될 날이 올 것이라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벌써 한 달은 못 본 것 같은 기분 속에서 그대와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대와 함께한 순간을 모은 다고 한들 삶에서 겨우 한 줌에 불과한 시간이거늘, 그것만으로 여가 살아온 평생을 흔들어 놓았으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느니라.]…아니, 어찌 보면 비대면이라고 좀 더 뻔뻔할지도 모르겠다.
[그대들이 왕국에 발을 들이자마자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당일 날 바로 여의 귀에 들어왔으나,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금 유예를 두고 움직일 필요가 있었느니라.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을 때 쯤이면 재판도 3일 째에 이르렀을 것이고 라그니스는 왕실의 계획에 맞춰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탐탁지 않은 왕실의 게으름뱅이들을 채찍질하기 위한 역할은 톡톡히 할 것이니라. 그대가 성미를 못 이기고 움직였다면 더 빨라질지도 모르지. 여는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하느니라.]참으로 에스뮈에답다고 해야 할지 이미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대로 게이트를 거꾸로 타고 들어가서 에스뮈에의 치맛자락을 붙잡는 게 훨씬 빠른 해결법이었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문장을 읽던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여라도 이 편지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게 될 가능성을 염두하여 첫 문장에 본심을 담았느니라. 아무리 몰상식한 이라 하더라도 연애편지까지 읽으라고 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그대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혼자 이 편지를 읽을 상황을 마련했으리라 여기고 이번 일과 관련된 배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느니라.]얜 대체 어디까지 수를 내다보고 사는 걸까?
본심을 담았다는 말에 괜히 얼굴이 화끈 거리는 기분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요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감추고자 머리를 썼다는 점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 뒤에 이어진 내용은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보샤 백작과 라그니스의 관계. 이를 이용하는 왕실과 귀족원. 왜 보샤 백작이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며 실책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행동을 취했는지까지.
[엔벨데라는 인물은 항상 자신의 죄를 덮어씌울 자를 끼고 움직이는 편이니라. 이번에는 그 역할을 라그니스에게 떠넘기려한 것이겠지. 그대라는 변수가 없다면 라그니스는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혈연관계인 그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것이니라. 지금에 와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하나, 그래도 아직 라그니스를 포기하지 않은 엔벨데의 입장에서 그녀가 제국과의 교두보라는 막강한 입지를 가지게 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허수아비 혹은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야 할 버림패는 자기보다 입지가 작고 약해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법.
어차피 질 재판을 하면서도 시간을 벌고 라그니스의 세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건 아직도 자신에게 유용한 쓰임이 있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언젠가 이 모든 반역의 빌미와 죄목을 대신 뒤집어쓰고 단두대에 끌려가서 그가 반역을 성공하는데 추가 시간을 벌어 준다던가.
[일반적인 귀족의 수싸움이었다면 엔벨데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흘러 갔을 것이니라. 물론 이티스엘의 왕실은 만만치 않은 두 능구렁이들이 지키고 있으니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교두보가 되는 것만큼은 확실히 막았겠지.]두 능구렁이라. 분명 레스롬 공작과 국왕을 말하는 거 같다.
[물론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기에 통하지 않았느니라. 솔직히 이걸 예상했다면 귀족이 아니라 예언가를 하는 게 더 나을 테니 이걸로 그의 능력에 박한 평가를 내리기는 좀 그렇느니라.]반역을 꿈 꿔볼 만한 수준이긴 했다.
그 뒤에 유지를 할 수 있는지는 제쳐 두고 밥상을 뒤엎는 능력까지는 있었다는 소리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여도 적극적으로 라그니스를 옹호하는 입장을 펼칠 것이니 혹여 이티스엘의 왕실이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여 재판의 결과가 안 좋은, 한숨 나오는 상황이라면 안심해도 되느니라.]글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면 이건 뜨끈뜨끈한 핫팩이었을 게 분명하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라그니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좀 더 빨리 제국으로 다시 초대할 핑계가 생긴 거 같아 마냥 싫지만은 않다는 그녀의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서두의 임펙트와 달리 깔끔하게 끝맺은 편지 마지막에 달린 추신에 이르러서야 나는 같이 따라온 반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육체적 기량은 걱정이 없고, 건틀릿을 통해 마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되었으니 이번엔 저주에 대한 대비이니라. 급히 구한 물건이라 그리 뛰어나진 않아도 두어 번 정도는 확실하게 저주를 막을 테니 항상 끼고 다니도록.]저주막이 반지라니. 감격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솔직히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비싸 보여서 약혼 반지랍시고 준 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었는데 덕분에 부담 없이 낄 수 있었다.
…근데 얘 내 손가락 둘레는 어떻게 안 거지? 묘하게 검지에 딱 맞는데.
부담이 없는 건지 있는 건지 애매한 상황 속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편지를 정리하고 몸을 돌리자 아실리에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끝났니?”
“어, 누나. 뒤에 내용 때문에 몰래 보라고 일부러 그런 식으로 서두를 적은 거였어. 이미 이쪽 상황을 알고 있더라고.”
“제국 답다고 해야 할까, 황녀 답다고 해야 할까… 그 반지는?”
“저주막이 반지래.”
“아, 그때 이야기했던 거구나.”
그때라는 건 분명 내가 마족 놈의 머리통을 따고 쓰러졌던 때를 이야기하는 거겠지. 여자들끼리의 대화 도중 나온 내용이었나보다.
“에가 씨? 이제 상황을 설명해주실까요?”
아까부터 굉장히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렐리에였다. 핫하, 하지만 지금의 난 에스뮈에의 지혜를 빌린 탓에 무적이라고.
“이번에 제가 겪고 있는 사태에 대비해서 일부러 그리 적은 거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로 여기게 만들어서 중요한 내용은 혼자 보도록.”
“…아. 거짓말.”
“진짜입니다.”
물론 여기서 렐리에가 그럼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닌 거냐고 물어보면 진짜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극악의 상황에 놓일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일행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일 뿐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다.
굉장하다 에스뮈에!
“그럼 그 반지는 뭔가?”
“아, 저주막이 반지라더군요. 만약을 대비해서 동봉한 거 같습니다.”
“흐음… 참 재밌는 삶을 사는구만 자네.”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그런 삶을 산다는 게 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네만…”
음? 뭔가 간만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화로군.
“그럼 일단 마무리가 된 거 같으니 이만 출발할까요 엘드미아 님? 준비는 끝마친 상태입니다.”
실망한 일행들과 뜻을 같이 하고 있던 주제에 자긴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듯 점잔을 빼며 말하는 기에스를 나도 모르게 못미덥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날 위한 거였다고는 해도 얘가 편지만 안 들고 왔으면 심장 쫄깃해지는 일도 없었던 거 아냐?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에잉. 아니다. 빨리 돌아가자. 졸지에 할 일이 생겼으니 서두르는 게 맞을 거 같네.”
편지는 둘째치더라도 서한은 전달해야 하니까. 이번에야말로 아쉬워하는 다른 이들과 간단한 작별 인사를 마친 나와 아실리에는 조금은 익숙해진 동작으로 비룡 위에 올라탔다.
“우리도 이쪽이 정리되면 다시 수도로 귀환하니, 일이 다 정리되면 꼭 한 번 보세나. 오늘은 제대로 못 마셨지만 회포는 풀어야지.”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길드에서 뵙도록 하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는 가엔달과 다음을 기약하기가 무섭게 비룡이 날아올랐다.
오늘의 재판 결과도 결과지만 이 서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게 된 보샤 백작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