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6화(16/599)
14년.
돌이켜 보면 정말 휴식이라는 걸 제대로 즐겨본 적 없는 삶이었다.
8살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꿈과 기대를 품고 시간을 써 왔던 것이 분노와 독기를 품고 시간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좋게 말하면 밀도 있고 알차게 써 왔고, 나쁘게 말하면 아동학대에 가깝게 자신을 혹사시켰다. 스스로도 일종의 강박증이 생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몰아붙였던 만큼, 나는 이번 기회에 그냥 푹 쉬고자 마음먹었다.
“관광이다!”
모험가 길드에서 간단한 용무를 마친 나는 라그니스에게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모험가 길드는 왜 간 거야?”
“별거 없어. 최근 못 보던 모험가가 늘었나 안늘었나 물어 봤을 뿐이야.”
납치를 노리는 이상, 녀석들이 쓸 수 있는 업계의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감시역이 있다 하더라도 용병 아니면 모험가다. 도적들은 마을에 들어오는 것마저도 리스크가 되어 버리고, 도중에 잡힐 경우 손쓸 틈도 없이 뒤를 불어버릴 수 있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해야하는 이들은 흔적이 남고 나중에 뒤처리가 힘들어진다.
비싼 실력자는 자신을 토사구팽할 경우 역으로 고용주의 목을 따버리는 게 가능한 수준인 세상이다. 그런 사람을 함부로 쓰진 못할 것이다.
캥기는 게 많은 놈들일수록 쉽게 자를 수 있는 꼬리를 원하는 법이니까.
접수원 누나에게 애교와 간식을 뇌물로 바치며 매일 매일 정보를 확인해 보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과의 첫 단추였다. 오늘 들은 정보는 ‘딱히 새로운 얼굴은 없었다.’였다. 거기까지는 예상했던 만큼 난 미련 없이 관광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오그웬 관광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평소에 가지 않았던 곳, 갈 필요가 없었던 곳이어도 사람만 많으면 일단 발걸음을 옮기고 봤다. 모험가를 상대로 장사하는 상점들에는 값이 좀 나가지만 일반적으로는 겪어볼일 없는 음식부터 장비까지 많은 게 존재했고, 그걸 구경하는 건 우리 둘 모두에게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런데 많이 와 봤던 거야?”
“아니. 전혀.”
내가 너무 거침없이 리드해 나가자 자기가 처한 상황마저 개의치 않으며 이 산책을 즐기던 강심장의 라그니스가 질문했다.
“어? 알고 가는 게 아니야?”
“정확하게는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내가 여기 올 일이 뭐가 있겠니.”
어차피 필수적인 도구나 모험가 꿀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들은 아실리에가 알려주고, 방어구를 비롯한 장비들은 아직 성장기인 내가 구매할 이유가 없다. 그 외에 자잘한 모든 것들이 나중엔 사게 될지언정 지금은 의미 없는 것들에 불과했다. 사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16살이 되기 전에는 일부러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마냥 돌아다닌다고 했어도 이제 막 요새 도시로 커져가는 도시에 데이트 코스나 관광 명소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있었으면 모르지만 오그웬에 그런 건 없었고, 지금은 전시인 만큼 변경의 도시에 그런 걸 만들 여유따위 없었다. 뭐, 나중에 모험가 길드가 커지고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 어떨지 몰라도 아직은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 아이쇼핑이나 즐기는 정도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모험가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가게에서 평소엔 먹기 힘든 초콜릿이나 당분 넘치는 간식거리를 사 먹을 수는 있으니, 의외로 일종의 모험가 지구에 가까운 이 구역이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긴 했다.
“그나저나 모험가들을 상대로 이런 걸 팔 줄 몰랐어. 역시 모험가는 돈을 많이 버는걸까?”
“뭐, 초콜릿?”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과자 가게에서 대문짝만하게 초콜릿을 광고하는 입간판을 세워놓은 걸 구경하며 라그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단 과자들도 그렇고.”
“머리를 많이 쓰면 단 음식이 도움이 되니까. 당분이 많아서 잘 썩지도 않고, 초콜릿 같은 경우는 열량도 높아 비상식으로도 나쁘지 않지. 돈을 많이 벌어서라기보단 그들에겐 일종의 구급품에 가까운 물건 아닐까?”
이세계에 포션이 존재하긴 하지만 역시 비싸다. 저품질부터 고품질까지 그냥 다 비싸다. 트롤마냥 순식간에 상처를 재생시켜 주는 정신 나간 효능부터 자기 전에 마시는 영양제스러운 수준의 효능을 지닌 것까지 다양하기 그지없지만 비싸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일정 수준에 오른 모험가가 아닌 이상은 결국 전생에서처럼 음식과 약초 그리고 민간요법에 의료 지식 등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다.
아실리에도 나에게 숲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초와 독초에 대해 매우 열성적으로 교육해줬다. 엘프의 민간요법부터 모험가들이 대중적으로 쓰는 민간요법까지 정말 두루두루 알려 줬지. 몇 개는 좀 미신에 가까운 것도 있었기에 모험가들의 민간요법은 걸러 들어야 했지만.
“뭔가 되게 체계적이네. 하지만 초콜릿은 비싸잖아? 그걸 구급품으로 쓴다고?”
“딱 걸렸다. 누나! 이거 초콜릿 두 개만 주세요!”
“누나? 호호. 동화 9개만 주렴.”
“동?!”
“역시 예쁜 누나가 마음씨도 고운법이라니까. 고마워요!”
40대 아주머니가 주는 영양갱 반 토막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 초콜릿 두 개를 받아 하나는 라그니스에게 건네주고 씹어 먹었다. 음. 대충 카카오 85%와 99%의 사이인 거 같다.
“어? 동화? 9개?”
“원래는 10개야. 맛은 답을 알고 있으니 먹어봐 아가씨.”
무슨 고민인지는 알겠다. 분명 원래 알고 있던 초콜릿은 은화나 금화는 줘야 먹을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자신이 알던 초콜릿과 질이 다르다는 걸 자각해도 평민 처지에서보면 이 조막만 한 게 동화 5개나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든 것이리라. 하루 두 끼 식대와 숙박비에 목욕탕까지 갈 수 있는 돈이니까.
하지만 아예 신참 모험가가 아닌 이상, 이런걸 필요할 정도로 활동량이 격한 모험가 처지에서는 그다지 비싼 가격도 아니다. 그래서 모험가를 대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가 들고 있던 초콜릿을 과감하게 씹어 본 라그니스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으엑.”
“초콜릿의 원재료는 단맛이 없어. 이것도 단거고. 네가 먹었던 초콜릿은…뭐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엄청 달게 만들어진 요리인 거지.”
뭐, 맛도 전생과 다를 바 없고 실제로도 그렇더라. 라그니스가 귀족이었을 시절이라면 바로 뱉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그녀는 자그마치 동화 5개짜리 음식을 뱉을 수 없어 어떻게든 씹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래서 애들한테 카카오를 먹여보는 건가? 반응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음…처음엔 그냥 쓰기만 한 거 같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거 같기도 하네. 단맛이 과하지 않은 게..오히려 중독성 있을지도?”
한참 불평불만을 기다리던 내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금방 표정을 핀 라그니스는 익숙해지자마자 초콜릿을 매우 맛있게 먹어 치웠다. 세상에.
그래도 꽤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걸 잊고 즐기는 거 같으니 만족하고 넘어갔다.
◈
그 뒤로 나흘은 그렇게 돌아다녔다. 새로운 건 얼마 없었다. 결국 변경의 도시 나들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래도 이거 먹고 저기 둘러 보고 하다 보니 처음에는 뻣뻣하기만 했던 라그니스도 자연스럽게 팔에 안겨 오며 제법 연인 흉내를 잘 내기 시작했고, 시간은 언제나처럼 잘 흘러가고 있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어김 없이 하루를 보내며 오늘은 또 라그니스에게 뭔 이상한 걸 먹여볼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툭.
“아.”
지나가던 사람이 어깨를 부딪쳤다. 정확히는 스쳐 지나가며 건드린 수준이었다. 난 사람들하고 어깨빵을 하는 취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단말마가 범상치 않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유치하고 뻔한…
“어우 씨발 어깨가 다 뻐근하네.”
이어지는 중얼거림. 중얼거림? 아니 그냥 언성을 높이기 위한 전조라고 하는 게 맞겠다.
주변을 거닐던 모험가들조차 즉각 반응할 정도로 확실한 ‘그’ 대사다. 눈치 빠른 모험가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앞으로 벌어질 구질구질한 난장판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굳이 따지면 이것은 귀족들이 결투를 위해 던지는 장갑.
양아치들의 세계에서 그런 장갑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대사…
라그니스는 그게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웃으며 걷고 있었고, 나도 굳이 일부러 멈춰줄 의리는 없었기에 가던 길 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양아치? 글쎄. 그놈들에게 모험가가 바글거리는 구역에서 깡패 짓을 할 강단은 없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순수한 또라이?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애들도 마을 사람은 잘 안 건드린다. 괜히 경비대에게 잡혀갈 짓을 골라서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야 이 새끼야! 칼 찼다고 뵈는 게 없어?! 내 친구 어깨가 작살이 났다잖아?!”
거기까지 판단하고 나니, 새삼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깨달음에 번쩍 눈이 뜨였다.
가만? 양아치면 줘 패면 되는 거고, 이런 시답잖은 시비를 거는 모험가여도 줘 패면 되는 거고, 목표였던 귀족파에 고용된 무언가여도 줘 패면 되는 거 아닌가?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동시에, 나쁜 엘드미아와 더 나쁜 엘드미아가 코를 쓱 훑으며 웃는 모습이 아른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치 모지리같은 고민이나 하던 나를 비웃는 듯한 사악한 미소였다.
-후후, 병신.
-후후, 등신.
나 원…대체 스스로 뭘 고민하려 했던 건지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온다. 그와 동시에 저벅저벅 하며 분노에 찬 걸음걸이가 뒤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턱!
“씨발 귓구녕이 막혔…”
그렇게 내 어깨에 손이 올라온 순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어어?”
“에,엘드미아?!”
화들짝 놀라며 기겁하는 라그니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하고는 행동에 옮겼다.
“겁나아아아!!! 아아아아파아아아앗!!!”
“어? 이, 씨, 씨발 뭐라…”
그리고 오직 순수하게 단련된 육체의 힘만으로, 몸을 틀자마자 보인 얼굴을 향해 사나이의 로망을 선보인다.
허리를 숙이고, 온몸을 뒤틀어 쥐어짜 모든 힘을 한 주먹에 모아, 분노와 열정까지 끌어 담아 휘두르는 진정한 상남자의 펀치.
이름하여! 갤럭티카 팬텀!
“넌 뭐야 이 개 씨발놈아아아아!!!!!”
텔레폰 펀치고 뭐고 간에 반응하기보다 빠르게 치면 되는거지!
-콰앙!
그대로 안면에 주먹이 꽂힌 정체불명의 남자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나자빠졌다가 뒤늦게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끄,끄아악!!”
“돼지 새끼처럼 꿀꿀거리 전에 내 박살 난 어깨에 사과부터 해야지 이 양아치 새끼야아아아!!”
시비를 걸려면 이렇게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