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7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75화(175/599)
최근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을 겪어 버린 오가토르프 저택은 간만에 평소와 같은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엘드미아가 왕국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대형 사건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이미 왕실과 원만한 형태로 협의가 되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에 그로 인한 후폭풍을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뿐더러, 그 모든 게 레비엥 변경백의 결백을 입증함과 동시에 반역자를 처단하는 과정이었다는 걸까지 알려진 뒤로는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까지 맴돌고 있었다.
그랬기에 저택의 사용인들은 요즘 한창 이슈인 엘드미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이 대수로울 건 없었다. 대부분 돌아오면 성대하게 환영해주자는 형태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한 소녀가 방문함과 동시에 그 여유롭던 분위기가 역변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에카프 츠신 오가토르프 경의 자택이 맞느냐?”
문지기들은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 알아서 사고가 멈춰버렸다. 애당초 황금을 두르고 다니는 것과 진배 없는 보라색 드레스을 입은 새하얗게 빛나는 백발을 지닌 작디작은 소녀라는 건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에스뮈에 비스팀 텔 누아. 제국의 빛나는 하얀 별.
멀리서 빛날 때는 한없이 고고한 존재로 느끼는 한편 평생 연이 닿을 일이 없기에 덤덤했으나…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방문한 것은 미안하지만 가주를 만나고 싶느니라.”
…저택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흉성凶星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
간단한 식사와 함께 나눈 담소는 생각보다 큰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간단하게 먹었을 뿐이지 렐리에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의 식사량은 빈말로라도 ‘간단’이라 말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구금소에 갇혀 있는 동안 느끼지 못 했던 화기애애한 식사를 마음껏 즐긴 뒤에야 나는 정겨운 오가토르프 저택으로 돌아왔다.
“정겹기 그지없군.”
심지어 경비병들마저도 날 발견하자마자 뛰어나와 나를 반겨 주는…
“야임마! 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냐!”
…게 아니었네?
내가 뭔 짓을 하고 어디에 있다 왔는지는 다 알고 있을 텐데 변함없는 태도로 대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건 뭔가 반응이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임시 구금소에 갇혀 있었죠.”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지! 너 아침에 나왔다며! 왜 이제서야 와!”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 기왕 나온 거 두 번 나오기 귀찮으니까 볼일 좀 보고 오는 길이긴 하죠.”
설령 알았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게 있나 싶다.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새삼스레 이렇게 늦게 돌아온 꼬맹이 보는 부모처럼 대하는 이유가 쉬이 짐작이 되지 않는데?
“아침부터 제국의 황녀님께서 오시더니 널 찾고 계신다고!”
“오, 이런.”
그런 이유라면 인정이지.
상황 파악이 완료된 나는 경비들에게 짧게 사과한 뒤 재빨리 저택으로 달려들어갔다.
“아가씨부터 찾아라! 가주님은 아직 왕성에서 돌아오지 않으셔서 대신 응대 중이시다!”
대답하는 것보다 그냥 빨리 뛰어가 주는 게 저들의 정신 건강에 좋은 상황인 거 같아 그냥 손만 흔들어줬다.
“일은 다 끝난 거 같은데 어째 바쁘구만.”
내가 서둘러 뛰어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황 파악을 끝낸 사용인들이 알려 준 대로 집무실로 향해 문을 두드리자 평소와 비교하면 명확하게 경직된 목소리로 셰릴이 말했다.
-무슨 일이지?-
음… 지금은 전속 집사 엘드미아로 대하는 게 맞겠군.
“엘드미아 입니다.”
-…들어와.-
미묘한 간격같은 게 느껴졌는데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쉰걸까.
순간 이래 놓고 안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굉장히 궁금해졌지만, 아침부터 와 있었을 에스뮈에를 생각해서 그냥 들어갔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구금소가 나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것이냐?”
대놓고 화색이 되었다가 거의 반나절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처럼 새침하게 표정 관리에 들어가는 에스뮈에와 그런 에스뮈에의 변화를 볼 틈도 없이 동공 지진이 일어난 채 안도의 시선을 보내는 셰릴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집무실을 보고 나니 셰릴의 마음고생이 어땠을지 짐작되기 시작한다.
둘의 표정만 놓고 보면 손님과 주인의 입장 역전 세계다.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게, 마치 머리 위에 꽃을 올려 둔 고양이 같은 꼴이라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여기저기 신세를 진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느라 조금 늦게 돌아왔습니다.”
“흐음. 이번에 크게 저질러 놓은 것과 관련있는 것이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시큰둥한 표정을 연기하며 찻잔을 비운 에스뮈에는 잠깐 셰릴을 응시하더니 자연스럽게 시선을 나에게 옮기며 말을 이었다.
“우선은 그대가 신세를 지고 있는 곳이기에 인사 차 들리면서 이번에 왕실에서 나눈 이야기들에 대한 것도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해 두었느니라. 나머지는 제국의 입장에서 그대의 공적을 어떻게 치하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그대의 ‘주인’이 함께 있어야 하느냐?”
오랜만에 일천하고도 하나의 작은 엘드미아들이 두개골 안에서 미쳐 날뛰며 상황에 맞는 변명을 순식간에 제조해냈다.
“아뇨. 어디까지나 제 자의에 의한 고용이기에 그러한 제약은 없습니다.”
이젠 정말 자신할 수 있다. 내 눈치가 개화했음을. 분명 지금 함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으면 도끼눈을 떴을 거다.
“……”
근데 왜 셰릴 네가 도끼눈을 뜨니…?
“…그럼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편히 말씀하시지요.”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 써줘서 고맙구나. 내 빠른 시일 안에 보답하겠느니라.”
잠깐이나마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낸 셰릴은 정중히 예를 취하고는 에스뮈에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뚱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폴짝 일어난 에스뮈에가 종종걸음으로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내 배에 앙증 맞은 주먹을 날렸다.
“의기양양하게 방문해서 곧 그대가 올 것이라 호언장담을 했는데 이제야 오면 어쩌자는 것이냐!”
아직 언성을 높이지는 못 하고 속삭이듯 투덜거리는 에스뮈에였다.
“한 시간씩 시간이 흐를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단 말이다!”
“아, 알았으면 당연히 바로 왔지. 구금소에 관련된 사람들은 아무도 안 왔길래 그냥 왕성에서 조용히 풀어줬다고 생각했어.”
어지간히 부끄러웠는지 침착함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에스뮈에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이해는 간다. ‘이제 곧 들어옵니다!’라고 말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 상황이 몇 시간이나 유지하고 있다면 나도 부끄러워 죽고 싶을 거야.
“라그니스랑 아실리에는 만났어?”
“어제 자로 재판이 마무리된 탓에 라그니스는 이제 자택으로 가서 사후 처리를 하고 있다 하더구나. 듣자 하니 아실리에도 손을 빌려주기 위해 따라갔다고 하니 지금은 저택에 없을 것이니라.”
“이런.”
타이밍이 안 좋았구만. 그래도 내가 오늘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바쁜 와중에 기다린다고 시간을 허비했을지도 모르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다행이다.
“뭐, 그건 그거고. 아까 말한 거나 마저 말해 줘. 제국의 방침에 대해 내가 뭐 알아 둬야 하는 게 있을까?”
“그건 그냥 둘만 있고 싶어서 둘러댄 핑계였느니라. 방침은 이미 다 정해져 있으니 적절한 시기에 부름에 응하기만 하면 되느니라.”
항상 돌직구인 애정 표현 때문에 피부가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처음엔 에스뮈에가 금사빠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도 좀 많이 쉬운 남자인 거 아닐까? 아니겠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대에게 제안 하고자 하는 것은 있었느니라.”
“제안?”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배워 보지 않겠느냐?”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제안이로군.
“그대의 목적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당장 전선으로 향하지 않은 것 역시 스스로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여기기 때문이지 않느냐?”
“으음. 그건 맞는데…”
아카데미에서 배운다해도 거기에 마력을 다루는 사람이 없으면 별 도움이 안 된단 말이지.
오러를 깨우친 것만으로도 어린아이가 바위조차 부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그 뒤의 강함은 얼마나 더 많은 오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느냐가 관건이다.
기본 신체 능력과 전투 기술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오러 레벨이 1 오를 때마다 강함이 10씩 증가 한다고 치면 그런 일반적인 단련과 기술의 성장은 1 레벨당 2의 강함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게 일정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면 보너스 스탯 그 이상의 시너지를 일으켜서 훅훅 널뛰기를 한다고 볼 수 있긴 한데…
나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
나는 그저 철저하게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좀 더 빨리 강함을 손에 넣은 것에 불과하다. 정녕 재능 있는 이들이라면 그런 교육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개화하게 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저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성실함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난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거로 큰 효과를 볼 수 없어 에스뮈에.”
“으음, 그대가 이미 많은 것을 깨닫고 있다는 건은 충분히 이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오러나 마나를 쓰지 않아. 교수들의 가르침 대부분은 내가 응용하질 못해.”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그래도 에스뮈에의 표정이 뭔 개소리를 하는 건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의아한 표정이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난 마력을 써.”
“…으응?”
“마족들처럼 마력을 쓸 수 있어. 아실리에도 이미 알고 있고.”
“…으으응?”
“보는 게 좀 더 빠르겠다.”
난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움직여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손 안 대고 뽑아 들었다.
마법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에스뮈에는,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단번에 이해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히약?!”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던져진 오이에 반응하는 고양이처럼 펄쩍 뛰며 소파 등받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하고 있는 에스뮈에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그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