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8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87화(187/599)
사실 이중 인격인 게 아닐까.
방금 보여줬던 예의 바른 태도는 환상이었던 것처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사교도들의 로브를 잘라 검을 닦아내며 남자가 다가왔다. 거기에 반응해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나온 메르델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메르델라가 벌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쥐며 말했지만 남자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내가 뭘 생각하는데?”
“…저희가 살아남기 위해, 당신과 당신의 일행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전부 제가…”
“난 지금 좆같다고 생각했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는데. 뭘 니 좆대로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고 한 거냐. 전혀 다르잖아.”
평소의 메르델라였으면 있지도 않은 걸 왜 자꾸 갖다 붙이며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냐고 발광을 떨었을 발언이었으나, 당연하게도 지금의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 니년은 저것들한테 휘말려서 우리가 뒈졌어도 ‘죄송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같은 소리가 지껄이며 정신 승리하고 끝냈겠구나. 아니, 오히려 그 정도면 봐줄 만한 수준인가? 모험가는 원래 그런 거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뭐 이딴 개소리나 지껄이면서 너희의 마모된 양심을 보호했을 가능성이 더 높겠네. 안 그래?”
메르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한쪽 건틀릿을 벗으며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아무런 경고 없이 손바닥으로 뺨을 올려쳤기 때문이었다.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일행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메르델라가 두 다리로 서 있었으니까.
앞서 보여 준 모습들로 미루어 봤을 때 남자가 전력으로 싸대기를 갈겼다면 죽었을 게 분명하다. 오히려 뺨을 치기 위해 일부러 건틀릿까지 벗었으니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메르델라는 그딴 건 생각도 못할 정도로 더럽게 아파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뿐이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도 주저앉지 않는 건 순전히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들으려는 건 그딴 당연한 내용이 아니다 이기적인 년아. 그림자 발의 지인인 풀링 말고 너희까지 전부 살려 둬야겠다고 여길 만한 다른 무언가를 들어 보려는 거지. 나한테는 저 사교도인지 가면무도회 참가자인지 알 수 없는 전사들보다 너희가 더 적대적인 존재로 보일 거라는 생각 안 해봤냐?”
순식간에 부어오르는 뺨의 통증과 찢어진 입안에서 나는 피맛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반박하려던 메르델라를 차갑게 노려보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메르델라의 입이 다물어지고 떨림은 더더욱 심해졌다.
“뭐, 전부 네가 판단한거니까 너만 죽이고 끝내달라고? 네 같잖은 자기희생따위로 동료들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헛된 생각은 하지도 마라. 어차피 파티인 이상 너희는 공범이고, 하나같이 다 우리 목숨을 위협한 개새끼들이야. 내 입장에서는 너희가 한통속에 불과한데 왜 너가 뒈지기를 자청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를 살려줘? 네가 발악하며 저항해도 뒈지는 건 똑같았을 텐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다시 건틀릿을 착용하는 남자의 태도는 험악한 표정과 말투와는 달리 여유로웠다. 물론 입에 담는 건 그런 태도와 상반된 살벌한 내용이었다.
“나는 내 목숨을 지들 멋대로 저울대 위에 올리려는 새끼들을 결코 간과하지 않아. 그리고 이대로 가면 그게 너희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남겠지.”
그리고 거기에 반비례하듯 메르델라와 일행들의 얼마 없던 여유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니 내가 마지막 기회를 줄 때 마법사답게 그 잘난 대가리를 굴려서 살아남기 위한 말을 쥐어 짜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열 명에서 두 명으로 줄었으니 다 같이 덤벼볼래?”
메르델라는 반박할 수 없었다. 마지막 말을 마치며 남자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는 걸 보면서도 꼼짝조차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더라도 그녀는 남자를 강제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할 게 아니라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해야 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어차피 자신들의 위협을 방치하고 도망칠 것이다. 그렇게 판단했고, 그랬기 때문에 이용하려 했다.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그걸 알았기에 메르델라는 펑펑 울면서도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냉담한 시선에 희망을 잃어가면서도 죄송하다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그딴 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뒤로 몸을 빼며 제대로 검을 쥐려 했다.
“유언치고는 식상하네.”
아무런 살기도 적의도 없었지만 그 뒤에 이어질 행동은 너무나도 쉽게 일행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남자의 움직임을 이미 질릴 정도로 본 칼스와 중갑의 모험가가 모든 걸 체념한 채 앞으로 뛰쳐나가려고 몸을 움찔거렸을 때.
“저기, 귀인 씨? 잠깐 괜찮을까요?”
센이 앞으로 나서며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거기에는 남자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센은 최대한 웃어 보였다.
“당연히 안괜찮지.”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귀인 씨의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니, 변명도 굳이 메르델라의 입으로만 들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미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겁에 질려 주저앉아버린 메르델라는 고개조차 못 돌렸지만 칼스와 중갑 모험가는 뜨악한 얼굴로 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조차 저런 넉살을 부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센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나선 게 아니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끼어들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림자 발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보장받고 있는 건 그녀였으니까.
“그러니 귀인을 멋대로 휘말리게 한 대가와 목숨을 구해주신 대가를 저희가 확실한 사죄의 마음을 담아 갚아나갈 의지가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제가 메르델라 대신 말할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설령 이 발언으로 인해 남자의 심기를 건드려 다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시도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남자가 돕지 않았으면 다 죽었을 것이다. 육체 강화의 반발로 말들은 금방 지쳤을 것이고, 그 상황에서 아직 마차 안에 남아 벌벌 떨고 있을 인물들까지 지키며 사교도들을 떨쳐 낼 방법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원래 죽었을 목숨이 몇 분 더 연장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다. 적어도 대화를 하고 있잖은가? 그렇다면 다 같이 살 방법을 시도해볼 수라도 있는 지금 이 상황에 두려움에 떨며 말 한마디 못 꺼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 사고 끝에 센은 일단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과감하게 질러봤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집에 검을 집어넣은 뒤 말없이 팔짱을 낄 뿐. 그 별거 아닌 동작에 바짝 얼어 있던 공기가 아주 살짝 녹아내린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우선, 저희는 남쪽 관문 도시 엔글렘에서 주로 활동하는 적급 모험가들입니다. 실적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호평일색에 가깝고, 십여 년 가까이 합을 맞추며 지낼 만큼 협동에도 능숙하며 엔글렘 일대 지방에 한해서는 많은 정보와 지리를 꿰뚫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금전적 보상? 저 정도 실력이면 자신들이 평생 모아온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더 짧은 기간에 벌고도 남는다.
자신들의 실력? 성에 찰 리가 있나. 지금 당장 덤비더라도 남자는 칼조차 안 뽑고 오직 주먹질만으로 네 사람의 두개골을 쪼개놓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정보와 경험은 다르다. 그간 쌓아온 것들 중 가장 값지다고 할 수 있는 것들. 적어도 모험가 일을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된다. 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것들을 제시해서 남자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모든 경험과 정보들을 귀인께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돈도 달라 하시면 최대한 준비해서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저희의 능력 따위는 필요 없으실 거 같지만, 발품을 팔아야 해서 사람이 필요할 때 말씀만 해주신다면 능력이 되는 한에서 만사를 제쳐두고 돕겠습니다. 거기에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불만을 가지지도 않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구분이 명확하다. 이는 사교도와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입증되었다.
일방적으로 도륙내버릴 실력이 있음에도 분쟁을 피하기 위해 정중히 대화를 시도한 건, 사교도들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일단 정중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검을 뽑아 들지 않았거나, 남자가 제안한 것처럼 중간에 무기를 내려놓은 이가 있었더라면 분명 살려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공격했기 때문에 가차 없이 죽였다. 조언은 했어도, 설득은 시도하지 않고 몰살 시켰다.
“메르델라도 장래를 기대받고 있는 마법사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분명 어떠한 형태로든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다면 마법 각인을 통해 계약을 맺도록 저희가 설득하겠습니다. 사실,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죠.”
그에 비해 지금은 뭐라도 말해 보라며 유예를 주고 있다. 뭔가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일부러 강압적인 태도로 흥정을 하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쓰임이 있으면 살려서 써먹는다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어필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지. 마법 각인을 통한 계약은 메르델라에게도 결코 가벼이 여길 사안이 아닐테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게 보호 마법인지, 공격 마법인지 알 수 없을 뿐. 남자가 그 부분을 파고 들면 무슨 짓을 해도 메르델라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죽느니 차라리 노예 계약에 버금가는 제약이 걸리더라도 사는 게 낫다.
“나머지 놈들은?”
당당하게 주장했던 앞의 내용들과 달리 이번만큼은 센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녀는 오해받지 않기 위해 매우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등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처음 모험가를 꿈꾸며 집에서 나올 때 받은 뒤로 항상 함께 해 온 단검이었다. 그리고 풀링들 사이에서 가문의 문장이 박힌 단검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센은 단검을 정중히 남자에게 내밀며, 제발 자신이 입에 담을 말의 진의를 파악해 주길 기도했다.
“저들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저는 키쿠이델 센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보호하시는 신의 이름과 가족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 저는 목숨을 걸고 맹세를 지킬 것이며, 동료들이 이를 거부하고 도망칠 경우 가문과 함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남자의 눈가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경련이 일어났다. 같잖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담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뭐가 됐든 간에 제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놓은 센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확신을 가진 끝에 이야기를 진행하고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제시하는 건 가장 확신이 없는 거라니, 역설적이네.’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보기 위해 실없는 생각을 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센은 그냥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기로 했다.
숨 막힐 듯한 침묵 끝에 남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