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9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91화(191/599)
정말 간만에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었다.
목숨의 위협을 무사히 넘기고, 동료들도 지켜낸 기념으로 그들과 함께 간만에 가족들 얼굴을 보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그리고 반가운 가족들이 성대하게 벌이는 파티 속에서 생명의 은인을 거창하게 소개하는 꿈을. 처음엔 사나운 눈매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귀인이 이내 가족들의 배려에 웃음꽃을 피우며 과오를 용서해주는…
“야. 풀링. 눈 떠라.”
…달콤한 꿈을.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 속에서 두 눈이 번쩍 뜨인 센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옆자리의 메르델라였다. 그리고 아무 문제없이 자고 있는 그녀를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할 수 있었다.
“교대인가요?”
대답 없이 모닥불 쪽으로 멀어져가는 인기척을 느끼며 텐트 구석에 둔 장비를 적당히 챙겨 일어난 센은 천천히 텐트를 벗어났다. 그리고 불침번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갈 귀인을 배웅하려다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하실 이야기라도 있으십니까?”
자신의 텐트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모닥불가에 앉아 있던 귀인이 조용히 손짓한 것이다. 한 손에 메르델라의 지팡이를 든 채 근처에서 적당히 구해 온 통나무에 걸터앉은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기에 딱히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대화를 해보려는 게 아닐까? 어쩌면 꿈은 일종의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서 신이 난 센이 다가가자, 귀인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나는 엘드미아 에가다.”
“히엑!”
그녀가 비상이라고 외치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도망치지 않은 건 소동물적인 감각으로 재빨리 그의 표정을 체크했기 때문이었다. 경악하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파악한 남자의 얼굴은 아무런 적의 없이 의아함만 내비치고 있었다.
단순한 자기소개에 불과했던 것이다. 뒤늦게 센의 반응을 이해한 그가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죄, 죄송합니다.”
기껏 기회가 왔는데 혹여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불안한 센이었지만, 그는 그냥 고개를 내저어 보일 뿐이었다. 오히려 센의 반응에 묘하게 만족한 거 같은 반응이었다.
“죄송할 건 없지. 그런 반응이 나오길 바라면서 말하고 다니는 거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넌 키쿠이델 센이고, 마법사년은 메르델라였지. 나머지 둘은 이름이 뭐냐.”
통성명은 하기 싫었어도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거라 여긴 것일까? 뭐가 됐든 좋은 징조였기에 센은 화색이 되어 즉시 대답했다.
“석궁을 들고 있는 친구는 칼스라고 합니다. 혼자 쇠뭉텅이처럼 갑옷을 입고 있던 놈은 바이제구요.”
“애들은?”
“남자애는 스노왈, 여자는 벨레시카라고 하더군요. 성은 못 들었습니다.”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이름을 되새기던 엘드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센에게 지팡이를 던졌다.
대체 불침번을 서면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뭔진 몰라도 정말 좋은 징조일 것 같다는 생각에 미소 지으려던 그녀의 입꼬리를 강제로 붙잡고 끌어내리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꼬리가 또 붙었다.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깨워라. 자연스럽게. 원래 지금 일어나려고 했던 것처럼.”
◈
적들이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간만에 내린 정령님의 은총 덕분이었다.
한밤중에 오르골을 연주하는 정신 나간 트롤링을 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할 게 없을까 싶던 와중에 드물게 강한 촉이 오더니 간만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같은 건 아니고 서로의 생각을 읽고 읽히는 식의 느낌인지라 영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내 정령 교감은 대부분 불통을 기반으로 깔고 가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감지덕지다. 그렇게 한참 신나게 근황 보고를 하고 있었을 때,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며들며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무 명이 넘는 괴한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 내가 썰어 버렸던 사교도들과 똑같은 이들을 보자마자 난 눈치 없게 정령님께 되물어보는 대신 센부터 깨웠다.
“…그러니까, 정령이 보여줬다고?”
“응.”
“…으으음. 나중에 한 번 정령사를 만나볼 필요가 있을 거 같은데. 아무튼 알았어. 쟤들을 감시하면 되는 거지?”
“혼자서도 별 문제는 없으니까. 오히려 몇 놈 튀어나오면 누나가 쟤들 좀 지켜줘야 할 수도 있고.”
“응. 준비할게.”
뭔가 개운하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투를 준비하는 아실리에를 뒤로한 채 모닥불에 모여 앉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센과 그 일행들에게 다가가자, 우리를 감시했던 마법을 펼쳐서 시야를 확보한 메르델라가 한창 설명 중인 상태였다.
“정말이야. 대략 스물 정도. 복장이 같은 걸 보면 사교도 놈들이겠지. 이번엔 마법사 혹은 사제가 같이 있는 거 같아. 횃불이 아닌 뭔가가 빛나면서 주변을 밝히고 있어.”
“빌어먹을… 거리는 얼마나 되는 거 같아?”
“우리가 빨리 출발해도… 한 시간이면 잡힐 거 같…”
“난 저딴 거 달고 도망치는 취미 없다.”
차라리 마력 좀 써가며 기마병을 상대로 땅바닥을 뒹구는 게 낫지. 마법사들까지 있으면 말이 위험해진다.
저거 비싼 말이라고 씨발.
“에, 에가 님?! 저것들이랑 싸우시겠다구요?”
내 목소리에 바짝 쫄아서 마치 남몰래 나쁜 짓이라도 한 애마냥 벌벌 떠는 메르델라였다. 웃기는 년일세. 마법 못 쓰게 할 거면 지팡이는 왜 돌려줬겠어. 그래도 센에게 상황 설명은 제대로 들었는지 이름을 부르는 건 다행이었다. 괜히 귀인이다 뭐다 하며 당황하다가 칼 맞아 죽으면 내 투자가 무산되니까.
“넌 애가 왜 그리 폭력적이야? 모든 일은 대화가 우선이다.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이니 잘 새겨 들어라.”
나이만 놓고 보면 나보다 다섯 살 이상 더 많아 보이지만 알게 뭔가. 전생까지 합치면 내가 더 오래 살았다. 다행히 눈치 있는 메르델라는 그런 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너 아까 당해봤잖아. 어지간한 마법사는 문제없어. 차라리 사제가 아니길 빌어.”
신성력은 어떤 형태로 움직이고 구현되는지 전혀 모르니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마법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제서야 자신의 마법이 파훼당했던 기억을 떠올린 건지 아! 하는 표정을 짓는 메르델라와 달리 칼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아직 불안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쫓아온 거지? 아니, 그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아이 두 명을 제물 삼으려고 했던 것을 방해한 게?”
그래도 얜 생각이 있었군. 난 또 적이 스물에 육박한다고 쫀 줄 알았네.
어쨌든 그 발언에 공감한 나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두 소년 소녀에게로 쏟아졌지만, 정작 그 둘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치였다.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나 싶었는데 얘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다.
“고민해서 뭐 하겠냐. 이유야 붙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지. 너희는 여기 모여서 방비나 잘해라. 텐트 태워 먹지 말고.”
“…예?”
“예는 뭔 예야? 집 잘 지키라고. 갔다 올 테니까.”
“자, 잠깐만요! 혼자 가시겠다구요?”
적잖게 당황하며 금방이라도 날 붙잡을 것처럼 반응하는 센이었다.
“왜?”
“아,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요? 분명 이 곳으로 향하면서 앞서 추격하던 이들의 시체를 발견했을 겁니다. 대화는커녕 그대로 들이받아 버릴지도 몰라요!”
“뭐라는거야. 그러니까 앞에서 맞이해야지. 대화하려 했다가 네 말대로 달려들면 말도 죽고 텐트도 박살 날 거 아냐?”
“…???”
얼굴만 놓고 보면 대체 무슨 사고를 거쳐서 그런 발상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 의문을 해소 시켜준 건 귀족 소녀 벨레시카였다.
“에가 님? 저들을 보고 아무런 위협도 안 느끼세요?”
“…아.”
전사 10명만으로 꾸려진 추적도 힘겨워 했던 놈들이다. 그게 두 배로 불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원거리 수단도 섞여 있으니 지들만 있었다면 눈앞이 깜깜해질 상황이었겠군. 그 불안이 내가 일괄 기상을 외친 이유마저 왜곡한 듯싶다.
“아까 그 전사들 수준이면 별거 아닙니다. 모두를 깨운 건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스무 명이나 되다 보니 우회해서 올 놈들을 대비하려는 거였습니다.”
“에…”
“지, 진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인 놈들을 굳이 납득시켜주는 것도 수고스러웠기에 난 그냥 고개를 내저으며 사교도들의 말 중 대충 한 마리를 잡아 짐을 내려 두고 올라탔다.
“너희를 설득해서 뭐에 써 먹겠니.우리가 왔던 방향 맞지?”
“아, 예. 맞습니다.”
“잘 기다리고 있어라. 개수작 부리면 곱게는 못 죽을 테니까.”
말 대신 격렬한 끄덕임으로 대답하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나는 어두운 평원을 되짚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어긋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평원에 시야를 가리는 것은 마땅치 않았으니 저들이 밝히고 오는 불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시야에 빛이 들어오면 적당히 말에서 내려 걸어갈 뿐. 아예 모여서 숙영지를 차리고 있으면 모를까, 이런 한밤중에 홀로 평원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을 보게 되면 보통은 말을 멈추고 확인에 들어갈 것이다. 상대방을 특정했으면 아는 척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말을 묻거나 정체를 캐물어보겠지.
“…실례하겠소 여행자. 혹시 이 근방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숙영 중인 다른 모험가들을 보지 못했소?”
바로 이렇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