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9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95화(195/599)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덕분에 출발 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생겨 버렸다.
나는 벨레시카만 따로 불러 정리중인 숙영지와 조금 거리를 둔 채 질문을 던졌다.
“벨레시카 아가씨는 이 상황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하심은…?”
“본인이 성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성광십자회는 주로 변방에 신전을 차리고 자리 잡는다.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에는 이미 다른 이들의 자애가 충만하니 손길이 쉬이 닿지 않은 곳에 신의 가르침을 설파한다는, 그야말로 성직자다운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그러다가 해당 마을이 도시가 되고 대도시로 커지는 오그웬 같은 경우도 있긴 하다. 현 성광십자회의 총본산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굉장한 대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상태다.
하지만 그런 결과야 어쨌든 간에 그들이 기본적으로 외진 곳에 신전을 세우고, 신앙을 전파한다는 건 변함없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살피며 신의 이름으로 몬스터와 도적들의 대가리를 깨고 다닌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깨고 다닌다. 군사력이나 모험가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을 무력으로 지키는 것도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인지라 상당히 거침없이 깨고 다닌다.
그래서 변방에서는 신도가 많은 종교 중 하나다. 힘없는 자들의 종교라는 인식도 강하고, 영지의 부족한 군사력을 무상에 가까운 노동력으로 보충해주며 영지의 안녕까지 수호해 주다보니 가난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동부와 남부에는 성광십자회 지부가 얼마 없는 편이죠. 그나마 남부에 있는 성광십자회는 대부분 마족과의 전쟁에 얽혀 있는 도시들이라 안전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름 고향이라 할 수 있던 곳의 유일한 종교시설이다 보니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전쟁에 직접적으로 휩쓸리지 않은 남부 일부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성광십자회 신전을 찾는다면 서부 끝자락의 오그웬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이 성녀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들에게 쫓겨 오그웬으로 향하고 계셨던 겁니까?”
벨레시카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내리깔았다. 마치 거짓말이 들통난 아이 같은 반응이다. 덕분에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잠깐의 침묵 끝에 돌아온 건 오히려 질문이었다.
“에가 경은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좀 많이 알고 있습니다. 베렉트 남작에게 친척이 없다는 건 알고 있죠. 자식이 외동아들 하나뿐이라는 것도, 유일한 손주는 아직 갓난아기라는 것도. 그럼에도 아가씨가 베렉트 남작의 가족일 거라는 제 지레짐작을 정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오그웬은 수도의 지원을 통해 도시 확장 공사 중인 상태인지라 다른 귀족들을 사적으로 초대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죠.”
도시에 투자하라고 준 돈으로 사치와 향락의 파티를 벌이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생긴 법이었지 아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라그니스를 데려가기 위해 호위단이 방문했을 때 굳이 도시 밖에 숙영지를 건설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귀족임이 확실 시 된 순간부터 종교 시설 방문과 일시적인 방문을 제외하면 도시 내에서 어떠한 형태로도 숙박할 수 없다나? 덕분에 라그니스도 잠은 숙영지에서 잤다고 했었지.
“…어쩐지 예법을 알고 계심에도 성을 물어보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교육을 잘한 것인지, 벨레시카가 열심히 배운 것인지는 몰라도 머리가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긴장되는 것인지 두 손을 잡고 쪼물거리던 벨레시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인사를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저는 벨레시카 다 뤼비스. 남부에 있는 뤼비스 남작 가문의 장녀입니다.”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독실한 성광십자회 신도들이었고, 12세가 되는 해에 세례를 받고자 이티스엘에서 유일하게 성광십자회 대신전이 존재하는 동부의 대도시 페데라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을만큼 소탈하게 살아가는 가문이었다고 한다.
올해로 12살이 된 벨레시카도 그러한 가문의 전통을 따랐다. 생일에 맞춰 페데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 세례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온 게 한 달 전의 일. 이변은 그 뒤 이주 후에 나타났다.
사교도가 나타난 것이다.
회유부터 협박까지 온갖 수단으로 벨레시카를 데려가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눈치챈 뤼비스 남작은 딸아이의 세례식 이후에 발생한 이 사건의 연관성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녀가 성광십자회의 성녀 후보이며, 대신전에서는 이를 눈치채고 그녀를 제거하려 한다는 것을.
결단을 내린 뤼비스 남작은 두 대의 마차를 준비해 얼마 없는 사병들을 이끌고 오그웬으로 향했다. 한 대에는 그와 아내가 타서 미끼가 되고, 다른 한 대에는 자식들을 태워 오그웬까지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지만… 저희가 잡혔죠.”
사교도들을 이용한 대신전의 누군가가 치밀하게 구상한 계획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미끼인 뤼비스 남작의 마차가 아니라 벨레시카의 마차를 정확하게 노렸다. 충성스러운 가문의 사병들이 목숨을 바쳤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렇게 사교도의 신전까지 끌려가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센과 그녀의 일행들에게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하하하. 애 운명도 기구하지만 하필 거기에 엮인 나도 대단하다. 귀족들 정치판에서 도망쳤다고 좋아했더니 이젠 권력에 눈이 먼 종교쟁이 새끼들이 지랄이네.
그래도 예상보다 깔끔하게 말해 줘서 대충 맥락을 파악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알고 계신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준비도 끝난 거 같으니 이제 출발하시죠.”
“…네?’
마치 혼나는 아이처럼 잔뜩 움츠리고 있던 벨레시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지? 이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있나?
“가, 같이 가신다구요?”
“…혹시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꼬맹이들 마음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을 바뀐다고 하지만 이건 좀… 이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벨레시카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어떤 상황인지 이제 알게 되셨잖아요? 그런데도 동행하시겠다구요?”
“그렇…죠?”
뭐가 문제인 거지…?
“에, 에가 경은 전혀 연관도 없는 일에 휘말리신 게 되잖아요? 절 사교도들에게 판 사람들은 성광십자회의 높은 분들일 수 있어요. 저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면…”
오? 요 맹랑한 꼬맹이가 내 걱정을 다 해주는 거였네?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나. 너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뻔했다.
“하하하.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 거에 연연하고 살지 않으니까요.”
“아니, 이건 연연이라는 형태로 표현할 만큼 단순한 문제가…”
“단순한 문제입니다. 그냥 벨레시카 아가씨께서 오그웬에 도착해 성광십자회 신전에 방문하면 끝나는 일이니까요.”
이해는 한다. 12살이면 아무리 성숙하게 행동하려고 해도 아직은 애니까. 심각한 일이 닥칠수록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매우 쉬운 법이다.
“이런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가씨가 성녀일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대신전에서 해결하지 않고 일부러 아가씨의 귀향 후 일을 벌였다는 건, 대신전 내부에서 성녀의 등장을 원치 않은 이들은 극소수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지를 받을 수 없으니 몰래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성광십자회 전체가 성녀를 원치 않고 없애려고 했다면 그냥 적당히 받아들여서 적당한 핑계로 전장에 파견보내고 적당히 죽이면 해결될 문제다. 그 모든 일들을 적당히 할 능력이 안 되니까 몰래 해결하려 든 것이고, 되도않는 악마 숭배자들의 손까지 빌리려고 했던 것이겠지.
“아가씨는 오그웬에서 성녀가 되고, 전 저 사교도놈들의 본거지를 박살 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될 일입니다. 별로 복잡할 것도 없지요.”
“보, 복잡할 거도 없다구요?”
“네. 차라리 하늘에서 비룡 머리를 내려찍는 게 더 어려울 겁니다.”
웃으면서 대답한 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출발 준비가 끝난 숙영지로 돌아왔다.
벨레시카가 뒤에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에서 비룡 머리를 노리는 건 당연히 어려운 거 아닌…가?’ 같은 말을 중얼거렸지만 딱히 신경 쓸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이야기는 정리됐어?”
내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말을 쓰다듬던 아실리에가 웃으며 물어본다. 원한다면 방금 대화 정도는 얼마든지 훔쳐들을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어. 그냥 오그웬부터 가면 될 거 같아. 좀 귀찮은 게 엮이긴 했는데… 별수 없지 그건.”
“뭔가 말하는 거와 달리 엘디는 깔끔하게 해결된 표정인데… 저 아이는 그렇지 않은 거 같네?”
“이야기하다가 예시를 좀 들었는데 그게 잘 와닿지 않았나 봐.”
“흐응. 하긴, 아직은 어리니까.”
“뭐 별로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으니 적당히 고민하다가 관두겠지.”
당연하다는 듯 같은 말에 올라타려는 그녀를 도와주는 사이 메르델라와 함께 말을 탄 센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 이야기는 잘 끝나셨나요?”
“어. 별거 없더라. 일단 오그웬으로 간다.”
둘 다 내 대답을 듣고 벨레시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기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건 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