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19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197화(197/599)
“알리샤 누나! 나 왔어!”
“야, 야 이 새끼야! 편지 한 통 없이 어딜 기어 들어와!”
음. 근 2년 만에 들어 보는 외침이지만 한결같이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울림이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을 뛰쳐나온 알리샤 여사님이 후다닥 다가와서 쩍! 소리가 날 정도로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어욱! 아직 현역이시네.”
“지랄났다. 아주 그냥 칼잡이 다 됐구나. 너 지난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막 귀족 같은 사람들이 오고 난리도 아니었… 아이고! 아실리에 씨도 마침 같이 계셨구만!”
“오랜만이네요 알리샤. 다행히 그때 일은 그럭저럭 정리가 됐어요.”
험악한 얼굴로 날 때리던 알리샤 여사님은 아실리에에게는 한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잘됐다고 추임새를 넣을 뿐이었다. 이 한바탕 소란 속에서 뭔 일인가 싶어 기웃기웃 모습을 드러내는 애들의 얼굴을 훑어 봤지만, 의외로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애들 다 독립했어? 아는 얼굴이 없네?”
“독립은 무슨. 다 일하러 갔지. 이 시간에 일 안 하는 놈들에게 줄 방은 없어!”
“오. 잘 굴러 가고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근데 혹시 남는 방 없나?”
“남는 방은 왜 찾아? 집이나 가.”
“나름대로 일행이라고 할 것들이 있어서. 우리는 몰라도 숙소는 잡아야 하거든.”
내 대답에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을 흘긴 알리샤 여사님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너랑 아실리에 씨면 모를까 여유 없어. 이젠 여관이 아니니까. 모험가 길드 근처에 여관 많이 생겼으니 거기나 알아봐.”
“많이 생겼다고 말할 정도야?”
“그래. 예전에는 아무 매력 없는 변방이었지만, 전쟁과는 엮이고 싶지 않은 신출내기 모험가들에겐 괜찮은 곳이 됐거든.”
음? 이 부분은 아실리에의 편지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실리에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눈치다.
“엘디가 간 뒤로는 좀… 유유자적하게 살았거든.”
“말도 마라. 정말 한동안은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아서 보기가…”
“아아알리샤? 스튜가 타는 거 같은데요!”
“응? 이런!”
누가 봐도 기회를 봐서 말을 돌린 태도를 보이는 아실리에를 게슴츠레하게 바라보았다가 괜히 반대쪽 팔뚝도 맞아버렸다.
“형도 여기서 살았어요?”
“응?”
고개를 내려보니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꼬마들 중 한 녀석이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출신? 아니지. 형은 여길 만든 사람이란다.”
“네? 여긴 알리샤 여사님께서 사제님들이랑 만들었는데요?”
“이럴 수가! 누나? 대체 애들한테 역사 공부를 어떻게 가르치는 거야?”
알리샤 여사님의 여관 초대 멤버 라그니스와 기타 등등 들을 이끈 선지자 엘드미아 에가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를 모르고 자라다니. 역사 의식에 문제가 있구만.
“지랄 그만하고 할 거 없으면 갔다가 저녁에 와라. 바쁘다!”
“그러지 뭐. 궁금하면 저녁 식사 시간을 제대로 지키거라 꼬마들아. 너희가 이렇게 축복 받은 환경에서 지내게 된 것은 다 이 형님의 발자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 연설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흙 묻은 파 뿌리에 저지당해 버렸다.
정확하게 나만 노리고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하며 이제는 보육원이 되어 버린 건물을 벗어나자 안에서 애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저리 즐겁게 웃다니. 글러 먹은 모험가의 자질이 있는 녀석들이로군.”
“즐겁긴 즐겁나보네? 말장난이 저절로 나오는 거 보니.”
“뭐… 나쁘진 않지.”
라그니스의 일을 제외하면 나쁜 기억이라고 할 만한 게 딱히 없는 곳이 알리샤의 여관이었으니까. 여러모로 내 안에서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장소였다.
다시 말에 올라타서 아실리에를 앞에 앉힌 나는 묘하게 상쾌해진 기분 속에서 말했다.
“방문 인사는 했으니, 이제 오두막을 가 볼까?”
“으음. 좀 처참한 꼴일 거 같긴 한데. 결국은 가 봐야지.”
뭔소린가했더니 내가 마족들의 게이트에 휘말렸을 때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오두막의 문조차 못 닫고 나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집안은 물론이거니와 기르고있던 가축들도 멀쩡히 살아 있긴 힘들 거 같다.
도시가 그렇게 바뀌었음에도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잎이 지고 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숲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주기 시작하며 계곡에서부터 타고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마저 조금씩 들릴 무렵이 되어서야 마을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나는, 잠시 말을 멈춰 세우고 언덕을 바라보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무덤은 여기서도 잘 보였다.
“들렀다가 갈래?”
“…아니. 떠나기 전에 들리려고.”
어릴적 그 옛날 다 울어 버린 것도 있었고 아실리에와 함께 지내며 슬픔이 많이 희석된 것도 있었기에, 이제 와서는 감정보다는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이 더 큰 기분이다. 오히려 폐허와 무덤을 뒤로하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이 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2년 남짓한 시간이 만만한 기간은 아니라서 그런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겨우 요 며칠 사이가 무슨 몇 년은 지난 거 같네.”
“그러게. 다사다난하긴 했어.”
사실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다사다난이 아니라 재난에 가까운 일들이긴 했지. 심지어 여기로 오는 길마저도 말이야.
생각해 보면 처음 떠날 땐 마족 지휘관 정도는 잡은 뒤에야 돌아올 거라 여겼는데 조금 머쓱하군.
“으음?”
“왜?”
“오두막에 누가 있어.”
이런 미친. 그거 몇 주 지났다고 벌써 빈집을 찾아 점령한 외부인이 있다고?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간 잘못이 있다고는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은데?
“근데… 가축도 살아 있네?”
귀를 쫑긋거리며 아실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난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냅다 달려가서 정수리를 쪼갤 마음으로 말을 빨리 몬 덕에 이미 우리 눈에 오두막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닭 모이를 주던 덩치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진?”
“어라? 형님? 돌아오신 겁니까?”
바다 너머 라단에서 온 외국인이자 서스럼없이 나를 형님이라 부르던 진은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뭐 하긴요. 지난번에 아실리에 씨가 갑자기 나타난 귀족분들이랑 사라진 뒤로 집 좀 지키고 있었죠.”
“…그 뒤로 계속?”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니구요. 그냥 이 친구들 배곯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멋쩍게 웃어 보이는 녀석은 심지어 말도 없이 걸어서 온 것 같았다. 게다가 가축들 먹이만 줬다는 것처럼 말하는 거와 달리 집 주변이 깔끔한 걸로 미루어보아 청소까지 신경 써줬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고마워라. 솔직히 도망쳤거나 굶어 죽었을거라 생각했는데.”
“받은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보다 돌아오신 겁니까?”
“아니. 아직 전장 근처에도 못 가 봤다. 이번엔 집이랑 짐 좀 정리 하려고 온 거야.”
“정리라니… 함께 다니기로 하신 건가요?”
말에서 아실리에를 내려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아실리에 씨가 형님이 간 뒤로…”
“집 청소 좀 해야겠네!”
“어… 다 해놨는…”
아무래도 내가 떠난 뒤의 침울했던 모습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필사적으로 말을 끊는 아실리에를 보며 난 그냥 웃어 보였고, 상황을 이해한 진도 굳이 말을 마무리 짓는 대신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더 강해지신 거 같군요.”
“너도 덩치가 더 커진 거 같다? 모험가 일이라도 하니?”
“하하하. 제가 오그웬의 성벽 건설에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지 들으시면 놀라실 겁니다. 이래 봬도 인기 있는 인력이거든요.”
하긴. 인종 차이로 인해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을 뿐이지, 익숙해진 뒤로 이 녀석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진은 그걸 내 은혜라고 떠들지만, 결국 라단에 존재하는 노예제도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화들이 쌓아 올린 편견을 깬 건 녀석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그나저나 짐을 정리하신다면 가축들도 처분하시겠네요?”
“그래야지. 나중에 본 아저씨네 가서 도축한 다음 알리샤 여사님한테 선물로 줄까 싶다.”
어차피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 가져다주면 좋아하겠지. 미약하게나마 도움도 될 것이고.
“이제 본 아저씨의 푸줏간이 아니라 군터의 푸줏간입니다.”
“엥? 그놈이 가업을 이었어? 모험가될 거라고 설치더니?”
“실제로 되긴 했었죠. 한 달도 안 지나서 포기하고 돌아와서 그렇지. 나중에 형님도 가서 보면 엄청 웃기실 걸요? 목에 철로 된 모험가 징표를 걸고 무슨 자랑거리마냥 근엄하게 고기를 써는데…”
“옘병, 지랄났네. 황급도 못 달고 튀었다고?”
얼굴만큼은 역전의 용사처럼 삭아 있던 허풍쟁이를 떠올리며 시작된 대화는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알렉과 레미리의 피말리는 연애 전선, 늘어나는 모험가로 잠깐 생겨났던 헛바람, 낭만적인 분위기를 꾸미며 애들한테 손대려고 했던 모험가들에게 몰아친 알리샤 여사님의 칼부림 등등.
“많은 일이 있었네.”
“형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
진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사실 처음 수도에 올라간 뒤 1년 정도는 잠잠했다. 배우기 바빴고,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주려는 특혜를 정당하게 거절하기 위해 머리 쓰기 바빴으며, 모험가 등록을 처음한 뒤 등급 올리겠답시고 온갖 또라이들과 협업하며 빡빡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최근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밖에 안 된다.
“정확히는 최근 몇 개월간 일이 많았지.”
배에 칼찌도 당해 보고, 마족 놈한테 죽을 뻔도 해 보고 했던 모든 일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나온다.
과거라는 건 마법과도 같다.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덤덤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신비롭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오늘 저녁에 알리샤 여사님의 보육원에서 이야기 좀 풀 수준은 될 정도로.”
에스뮈에나 마족과 관련된 이야기 몇 개정도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