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0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01화(201/599)
“근데 제가 올 시간은 대체 어떻게 알고 기다리신 겁니까? 이거 분명 제가 걔들한테 일방적으로 통보한 건데?”
애셜 사제를 따라 가면서 갑자기 깨닫게 되어 질문을 던졌더니,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7시부터 아침 미사가 시작되는 곳이지만 어차피 사제들은 대부분 5시에 일어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적당히 6시에 찾아가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미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 지을 것이다.’ 틀렸냐?”
“아니 미친 세상에?! 뤼비스카 님은 독심술도 가르치십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놀랐다. 하지만 애셜 사제는 그런 내가 진심으로 웃기다는 듯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시간에 쫓기느라 자기 용무만 보고 싶은 이들은 백이면 백 다 그래 이 녀석아. 사람 생각하는 건 어딜 가나 비슷하거든.”
이런. 이세계 전생자만의 ‘신전에서 빠르게 용무를 보고 튀는 개쩌는 개꿀팁’이 아니었나보군. 놀라움이 머쓱함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가 진짜로 올 지는 미지수였으니 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안 오면 그냥 갈 생각이었다. 모험가들은 다른 형제가 맞이해서 별실로 안내할 거란다. 오늘은 너한테만 용무가 있는 거니까.”
“그거 참 무서운 말씀이네요. 왜죠?”
“그 부분도 성녀님께 들었거든. 모종의 이유로 네게 삶을 저당잡혔다고.”
젠장.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애셜 사제를 따라가기로 했다.
성광십자회 오그웬 지부의 규모를 굳이 비교하자면 전생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었던 성당 정도 되는 크기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성당이라고 치면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 중 ‘높기만 하고 별로 크지는 않아 보이네?’ 라고 평가할 만한 정도의 크기. 차이가 있다면 그 높이가 기도하는 공간의 인테리어로 쓰인 게 아니라 철저하게 분할되어 생활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 정도.
기도를 드리기 위한 예배당마저도 서른 명 정도가 앉으면 꽉 찰 정도다. 성광십자회의 규모가 작아서라기보다 그들의 교리탓이었다.
“신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데 있어…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였던가요?”
행동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이들이라고 해야 할까. 꾸밈과 과시보단 실천과 실용을 우선시하는… 성직자보다 전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들이다. 애셜 사제를 따라 기도실을 지나다 보니 문득 떠오른 말을 입에 담자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겨우 한 번 들었으면서 잘도 기억하고 있구나. 수도에서 뤼비스카 님을 따르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이냐?”
“그럴 리가요. 인상 깊었던 가르침이다 보니 제 마음속 만신전에 위치한 뤼비스카님의 신단 한 켠에 작게나마 새겨져 있을 뿐입니다.”
“……괜찮은 표현인데…?”
농담으로 던지는 말이 아니었는지 정말 혹하더니 언젠가 써먹을 것처럼 계속 중얼거리며 외우는 모습은 겉보기와 다르게 참으로 순박하기 그지없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범법자들의 악몽으로 여겨지는 성광십자회의 이단사냥꾼이라고 여길까.
“그런데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귀한 손님을 멀뚱히 세워두고 대화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우리 신전에도 응접실은 있으니까.”
아무래도 보상이나 주려고 부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제가 여기서 귀한 손님이 될 줄은 몰랐는데요.”
“우리들 역시 성녀님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지만, 성녀님을 직접 모셔온 넌 짐작했어야지.”
“성녀 후보 아닙니까?”
“아니. 성녀님이시다.”
아무런 주저도 찾아볼 수 없는 확답. 그게 무슨 의미인지 뻔한데도 감정의 변화 없이 태연하게 대답해준다. 그럴 거라 생각하고 애셜 사제를 소개한 것이긴 하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결국 한 교단의 심층부가 썩어 악취를 풍기는 고름이 맺혔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말이 쉬운 거지, 곧 있으면 이단 심문이 시작되며 피바람이 몰아친다는 의미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어차피 가서 하게 되겠다만…한 명의 신도로서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성녀님을 보호하기 위한 뤼비스카 님의 안배였겠죠.”
“허허.”
물론 진짜 그리 생각하기보단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그게 정말 ‘안배’였으면 뤼비스카 님이 길고 긴 신생神生에 지루함을 느껴 엘드미아 에가의 개쩌는 인성질이나 구경할 겸 벨레시카가 타고 있던 마차를 전복시키고 시작했다는 소리가 되니까. 센의 말빨과 담보가 기준 미달이었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고.
듣는 당사자는 그런 내막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외로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수도로 가더니 빈말도 늘었구나. 허나 그렇다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성광십자회 전체가 네게 빚을 진 것과 다를 바 없는 게 사실이니, 어떤 형태로는 합당한 보상이 있을 거란다.”
“보상이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 모험가들 선에서 정리하고 떨어질 생각이었구만?”
“네.”
어차피 걸린 거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 허술한 대처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속이는 게 가능했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뭐,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보거라.”
말과 걸음을 멈추고 도달한 곳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장소였다. 애당초 내가 성광십자회 신전에서 아는 장소라고는 예배당뿐이긴 했지만.
“어딥니까?”
“신전장께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더구나.”
아, 응접실이 신전장의 응접실이었군. 잔뜩 싫은 티를 내며 애셜 사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내 간절함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친절하게 직접 문을 두드려주었다. 씨발.
“신전장님. 엘드미아 에가를 데려왔습니다.”
-아, 고마워요 애셜 형제님. 들어오세요.-
심지어 친절하게 문까지 열어 주는 애셜 사제에게 이를 드러내는 미소로 화답한 뒤 들어서자 나이 지긋하신 여성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이군요 엘드미아. 이렇게 직접 보는 건 4년 만인가요?”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히스예나 신전장님.”
“신실한 이들을 잊어 버리는 게 더 힘든 세상이지요. 수고하셨어요 애셜 형제님. 번거로우시겠지만 다른 모험가분들을 부탁할게요.”
“네, 신전장님.”
우연히 예배당에서 마주쳐서 이야기를 나눴던 게 고작인 사람이 과연 신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평소 워낙 시끄럽게 돌아다니던 문제아라서 기억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응접실이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할 법한 곳이었다. 성광십자회답게 장식도, 가구도 최소한으로 배제한 인테리어는 가끔씩 사제들이 개인 기도실로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가운데에 서서 나를 맞이한 히스예나 신전장은 쉰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와 굽어지지 않은 어깨가 인상적인 여성이다. 비슷한 느낌인 레스롬 공작과는 또 다르다. 머리에 쓰고 있는 베일이 없었다면 그냥 베테랑 전사로 보일 외견이었지만, 얼굴만큼은 인자하기 그지없다.
“오그웬을 떠나기 전에도 거구라고 느꼈는데 그 사이 더 커진 것 같군요. 이대로면 곧 애셜 형제님도 넘겠어요.”
“열심히 단련하다 보니 키도 크더라구요. 그에 반해 신전장님은 세월조차 피해 가는 것 같네요.”
“후후후. 저 역시 열심히 단련한 결과라고 생각한답니다.”
저게 대체 어딜 봐서 한 신전을 책임지는 신전장이 할 대답이야. 전사의 대답이지.
간단한 인사를 마친 히스예나 신전장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허례허식없이 본론을 입에 담았다.
“굳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는 건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성녀님에 대한 사실을 한동안 함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랍니다. 사교도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좀 섞여 있지만 말이죠.”
“…다른 지역의 신전들과 이야기가 될 때까지 말이죠?”
“이해가 빠르군요. 혹시 사교도와 관련된 이야기도 어떤 내용일지 예상이 되나요?”
“신전이 움직이고 있다는 티가 나지 않도록 처리 해 달라…?”
히스예나 신정장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웃어 보였다.
“성녀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서른이나 되는 사교도들을 홀로 쓰러뜨렸다고 말이죠.”
“정확히는 10명, 20명이었지만 말이죠.”
“올바른 지적이지만 엘드미아에겐 별 의미 없는 지적일 거 같네요. 다치지도 않았다죠?”
아무래도 하룻밤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모양이다. 난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고,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히스예나 신전장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마신은 엄연히 신이고 신앙이며 악신惡神조차 아니죠.”
그저 다를 뿐. 그녀는 그 점을 명확히 하며 말을 이었다.
“설령 용사와 마왕이라는 운명에 엮여 서로 싸운다 하더라도 그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별개의 문제죠.”
오직 자신들의 즐거움과 목적을 위해 끝없는 파괴와 고통을 뿌리는 존재.
갱생의 여지조차 남지 않은 타락을 상징하는 징표와도 같기에 신전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성자들이 살아 숨쉬며 신의 은혜를 증명하는 것처럼, 악마들이 살아 숨쉬는 것은 인간의 악의와 죄악을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뭔가 공통적인 해석이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대충 보고 지나간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는군.
“저희 성광십자회 오그웬 지부는 당신에게 사교도 퇴치와 더불어 조사를 의뢰하고 싶어요. 받아줄 수 있나요?”
마치 같이 산책이나 하지 않겠냐는 듯이 가벼운 제안.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님에도 이렇게 평온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악마나 사교도들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성녀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교단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조차 문제인데, 하필 그걸 의뢰한 이들이 악마 숭배자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모험가 길드에 알려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입막음을 위해 많은 노력과 자금이 필요하겠지.
지금 그들의 입장에서 나라는 녀석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너무나도 괜찮은 해결방안일 것이다.
어차피 나 역시 놈들을 다 죽여 버리려고 했던 입장이었기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의뢰비로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당장 생각이 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더니 히스예나 신전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쁘지 않을 거랍니다. 당신의 숙원이 아직 그대로라면,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되거든요.”
“도움이요?”
“전선에서 마왕군과 싸워온 신전 전사들의 경험과 정보. 그리고 신전의 지원. 기타 등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말이죠. 물론 성녀님 구출을 포함한 보수는 별개입니다.”
과연. 성녀와 관련된 일에 인색하게 굴 생각은 없다 이거지?
내 숙원이야 맨날 동네에 말하고 다니던 거니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나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영업용 미소와 함께 말했다.
“당장 계약서 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