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0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07화(207/599)
인간의 영토와 마족의 영토를 가로 지르는 산맥은 험준하기 그지없다.
비단 지형의 험악함뿐만 아니라 나타나는 몬스터도 위협적인 탓에 이곳을 통해 양쪽을 왕래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쟁 전에도, 전쟁 이후에도.
마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나 선천적으로 뛰어난 육체와 능력 덕에 인간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그래서 종종 피치못한 사정이나 목적을 지닌 이들은 산맥을 통해 인간들의 영토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은 형태로 끝나기 마련이었으나, 반드시 넘어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에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서리 낀 숲속을 달리고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두터운 망토를 제복처럼 똑같이 걸친 다섯 명은 누가 봐도 마족이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깊게 눌러 쓴 후드는 말 그대로 추위를 피하기 위함이었을 뿐, 아예 뿔을 빼기 위해 아예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거길 비집고 나온 뿔들은 가감없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절도 있는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은 마치 군인과도 같았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정말 군인이라 여겼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군인이 아닌 이들이 산맥을 넘어간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 와중에 그들 가운데에서 달리던 이가 손을 들어 올리자 가장 앞서 나가던 마족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정지.”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 한 마디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멈춘 이들은 몸을 돌려 가운데 인물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등에 멘 유독 큰 원형 방패에 그대로 짓눌릴 것만 같은 왜소한 덩치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키가 작거나 한 건 아니다. 그저 방패와 주변 인물들이 좀 많이 크다 보니 더욱 부각되어 보일 뿐. 그들의 시선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주변을 둘러본 인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야영을 준비하도록 하죠. 정보대로라면 이 앞부터 높은 확률로 마수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안한 것인지 몰라도 잔뜩 잠겨 있던 목소리는 조금은 앳된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마족들은 그녀의 명령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으며 일사불란하게 휴식준비에 들어갔다. 모닥불을 준비하고, 눈을 치우고, 주변 나무에 무언가를 설치하며 주문을 외우는 등 자신들의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는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소녀는 메고 있던 방패를 내려 두고 후드를 벗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귀 뒤쪽에서부터 자라나 굵직한 산양의 그것처럼 휘어 이마 위까지 솟아난 뿔. 그 아래에서 이어지는 새하얗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긴 여독으로 인해 살짝 풀어진 표정과 달리 날카로웠으며 감겨 있는 두 눈은 마치 잠든 이의 그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다. 대충 뒤로 넘겨 묶어두었던 검보랏빛 머리카락을 풀어 내리며 길게 숨을 토해낸 마족 소녀는 이내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기도를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다른 마족들도 하나둘씩 후드를 벗으며 모여 앉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녀가 나직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마신 에파가 님의 은총과 보우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지는 고난 속에서도 저희를 지탱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마신을 향한 기도문을 외우는 이들은 한없이 진지했다. 누구 하나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기도를 마친 그들은 다 꾸려진 야영지 모닥불에 둘러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서로의 사이가 어색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묵언 수행을 해나가는 수도승처럼 불필요한 대화를 배제한 채 묵묵히 식사를 이어 나가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밑도 끝도 없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당연히 자신을 향한 질문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반응한 소녀를 바라보며 마족이 입을 열었으나, 쉬이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했다. 침착하게 말을 고르는 듯한 그 모습은 점점 다른 이들의 시선을 모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마치 그가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이해하고 있다는 듯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이 어떨지는 모르겠다는 듯, 마족들의 시선은 소녀에게로 옮겨졌다.
이야기를 꺼낸 마족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묘한 기대감이 담긴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던 소녀가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꼭 제가 가야 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은 건가요?”
“…송구하오나, 네. 맞습니다. 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녀가 약한가?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모두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녀의 방패는 밀릴 줄 몰랐으며 철퇴는 일격에 마수들의 머리통을 부술만큼 강력하다. 이러한 위험한 길을 고르고 나아가는데 있어 그녀의 실력을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소녀가 억지를 부리는가? 라고 물어보더라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아니라고 할 것이다. 소녀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렇기에 그들이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녀를 따라 이 먼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녀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굉장히 갑작스러운 여정을 굳이 소녀가 함께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생긴 혼란 속에서 마신의 이름을 팔아 그릇된 믿음을 전파하는 사교도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런 이들을 색출해 심판하는 일 역시도 항상 있었던 일이다. 그랬기에 그 일을 위해 움직이는 것 자체는 아무런 의문도 생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소녀가 함께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교단 내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별 볼 일 없는 사교도 퇴치를 위해 성녀가 직접 움직인다는 건 결코 흔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반드시 제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소녀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처음 그녀가 마신교의 성녀로 천명받았을 때처럼 흔들림 없는 대답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기에 마족들의 깊었던 의문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대신 가벼운 궁금증만이 함께할 뿐이었다.
“신탁神託입니까?”
“아뇨. 신탁이면 그대들만 보냈어도 충분했겠죠.”
신탁은 고정된 미래다. 그게 불행한 사건이든,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든 반드시 일어나는 사건과도 같은 것. 세 살짜리 갓난아이를 보내더라도 변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신탁이었다면 굳이 그녀가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계시를 받았습니다.”
점점 흐릿해져만가는 신의 목소리였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가르침이었다. 그랬기에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섰다. 본디 혼자 움직이려 했으나 이 부분만큼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교단의 의사를 존중해서 일종의 호위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해야 했지만 말이다.
“사교도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해에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계시라는 말이 나온 순간 마족들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작 성녀인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며 참 극성이라고 생각해 버렸지만 말이다.
“에파가 님의 뜻을 의심할 생각은 없으나… 하필 인간들의 영토라는 게 여전히 걸리는군요.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겁니다.”
신앙적인 의문이 걷히고 한결 편해진 마음을 지니게 된 다른 마족이 입에 담은 걱정은 실로 타당했다. 아무리 변방이라고는 하나 결국 한창 전쟁 중인 나라의 영토내에서 일어난 문제였다. 중간중간 마음 편히 도시에 들릴 수 있는 마족령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할 것이며, 그만큼 피곤하고 변수도 많을 것이다.
“하물며 계시라면… 어떤 시련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때에는 자비롭게, 어떤 때에는 한없이 잔혹하게. 계시는 항상 다양한 형태로 그들에게 시험과 보상을 내려주었다. 신앙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그러한 시련은 항상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위협에서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신앙을 추구할 뿐. 광신을 추구하지 않으니.”
“…필멸자의 삿된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곡해하지 않는 한 깨달음은 항상 온기 속에서 함께하리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어지는 기도문에 잠깐 일렁이던 불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형제님들께서 어떤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합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걱정이 아니라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형제들을 비롯해 교단의 모든 형제자매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흔들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움직임이 자칫 잘못하면 박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요.”
지금까지 줄곧 감겨 있던 소녀의 두 눈이 떠지자 마치 달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은백색 눈동자가 이채를 띠며 빛나기 시작했다.
“저 역시 계시의 편린 밖에 보지 못했기에 명확하게 설명해드리기는 힘드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계시는… 분명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마신교의 성녀이자 성전사인 데오니 비레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