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1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11화(211/599)
“그러게. 자기들끼리는 참 우애가 돈독하네.”
어이없는 것을 봤다는 반응을 보이는 아실리에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난 표정이 완전히 썩은 상태였으니까. 인신 공양이나 하는 패배자들의 유대감이라니. 정말 간만에 못 볼 꼴을 본 기분이다.
머저리들이 지들끼리 둥가둥가 하는 꼬라지를 본 탓에 더부룩해진 속을 다스리며 빠르게 야영지로 돌아온 우리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일행들에게 내가 보고 온 것을 설명해주었다.
“쟤들 본거지가 폐던전 같은 꼴이라는 것부터 말해줬어야지 임마.”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센에게 몰래 눈칫밥부터 먹인 다음에 말이다.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헤헤헤.”
헤헤헤는 씨벌 딱밤을 먹여 버릴라.
머리가 굳어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잔뜩 기를 죽여놓은 게 안 좋은 방향으로도 작용했나보다.
하도 교단이네 뭐네 해서 영락없이 탁 트인 개활지에 그리스 로마 양식의 고대 신전같은 걸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작 놈들은 익숙한 외형을 지닌 폐던전같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일단 초기 계획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었지만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기에 일단은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실수였다.
“허허. 이거 우린 아무래도 폐던전과 인연이 많이 있는 거 같구먼.”
웃으면서 반응하는 건 긴 뿐만이 아니었다. 가엔달 씨도 고개를 내저으며 웃어 보였고 일단 렐리에와 예카트리나도 ‘또 폐던전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며 웃긴 했으니까.
하지만 예카트리나는 그 뒤 많이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에이, 이러면 또 내가 못 나서잖아?”
“내부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대충 봐도 그때보단 입구가 커 보였습니다. 그럼 내부 공간도 좀 더 널찍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확답은 못하네만 연관이 아예 없진 않을걸세.”
긴이 덧붙인 가설에 이번에도 후열에서 멍하니 있게 되는 것을 격하게 아쉬워하던 예카트리나가 방긋 웃어 보인다. 분명 몸만 놓고 보면 역전의 용사가 따로 없지만 저 순둥순둥해 보이는 얼굴로 전투를 환영하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괴리감이 느껴진다.
센 일행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괴리감을 넘어 무언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굳이 설명할 이유는 없었기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저들은 백 명을 훌쩍 넘긴 규모라고 했었지? 그만한 인원을 수용하면서 장기간 거주할 수 있을 정도면 꽤 넓은 편일걸세. 하지만 지난번처럼 내부 설계도가 있는 게 아닌 만큼 이번엔 잘 생각해야 할 거 같구먼. 어찌할 예정인가?”
말을 꺼낸 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함께 나에게 쏟아졌다. 아무래도 이번 의뢰를 내가 물고 왔으니 잠정적으로 날 리더로 두고 있었나보다.
내가 잘하는 건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거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워낙 손패가 확실하다 보니 딱히 머리를 많이 쓸 필요도 없어서 겸허히 리더로서 행동하기로 했다.
“일단 지금 저희 파티에 마법사만 셋이다 보니 내부로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꿀릴 거 같진 않습니다. 아실리에가 활을 통해 원호해 줄 수 있을 뿐더러 저와 달리 정령술과 마법에도 능하니까요. 칼스 역시 석궁을 가지고 있으니 다방면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 우리는 상당히 우월한 파티 구성인 게 맞았다. 난 침묵으로 이루어진 동의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폐던전이라는 것을 알기 전엔 숲속의 이점을 살려 각개 격파라도 시도하려 했었지만, 지금은 녀석들이 머릿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만들 방법이 생긴 것과 다름 없으니 폐던전 앞에서 선발대를 기습하고 녀석들이 실내에서 대비를 마치기 전에 밀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아실리에만 있었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담 없이 활개칠테니 귀찮을지언정 딱히 위협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센 일행만 하더라도 녀석들 10명 정도도 상대하지 못해 버거워하는 마당에 우리 실력만 믿고 굳이 악수를 택할 필요는 없다.
“한 곳에 몰아 놓고 잡는 게 편하지. 저것들 도망친다고 사방팔방 퍼지면 귀찮아.”
그런 내 의도를 확실히 이해한 예카트리나가 벌레라도 쫓는 것처럼 손바닥을 휘휘 내저으며 호탕하게 웃어 보이자 다른 이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방심하지 않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현상이다.
“다들 공감해주시는 거 같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도착하면 가엔달 씨와 긴 씨는 일단 센 일행과 함께 적당한 곳에 위치를 잡아 협공을 준비해주세요. 입구에서의 습격은 저랑 예카트리나가 시작하겠습니다. 녀석이 온갖 호들갑은 다 떨어놔서 처음에 나온 녀석들은 그래도 나름 실력이 되는 녀석들일 테니 제 무기와 예카트리나의 워해머로 기습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게 나을 거 같거든요. 누나는 우리가 폐던전에 진입하기 전까진 알아서 행동해 줘.”
숲속의 엘프는 무적이고 아실리에는 신이야!
까지는 되지 못해도 충분히 강력하다. 풀뿌리 하나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종족이니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게 백 번 낫다.
“진입하기 전에는 휘파람이라도 부르렴. 알아서 따라 들어갈게.”
대답과 동시에 아실리에는 녀석들의 동태도 살필 겸 먼저 움직이며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히 다섯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모습을 감춰 일행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와. 저 엘프가 숲속에서 사라지는 거 처음 봤어요.”
아마 지난번에 정령들의 도움을 받을 때 경험했던 그거 같다. 관찰자의 시점으로는 갑자기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군. 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설명보다 기습이 우선이었기에 우리는 일단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84번인가 하던 놈 앞에서 우리의 정확한 야습 시간을 언급한 적은 없으니 저쪽도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고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저 녀석이 도망쳐 나온 걸 우리에게 언제 들킬지 알 수 없다 보니 습격하기로 마음먹으려면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
그걸 감안하고 마력까지 써가며 최대한 빠르게 야영지로 돌아오긴 했으나 우리도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놈들 못지않게 촉박한 입장이다.
“어떻게 할까. 지난번처럼 내가 먼저?”
폐던전 의뢰 당시 마을에서 귀환하던 놈들을 기습했던 게 떠올랐는지 멋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어보는 예카트리나에게 나도 미소로 대답했다.
“제가 먼저 시도하죠. 막 입구에서 나오는 녀석들을 상대로는 그게 더 효과적일 거 같거든요.”
장담컨데 제 3자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질나쁜 악당들처럼 보일 미소였다.
다리가 짧은 센이 좀 많이 고생하긴 했지만 우리는 늦지 않게 적당한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아직 반응이 없나보군. 인근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네.”
드워프만의 감각인 것일까. 잠깐 눈을 감고 집중하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던 긴 씨가 놈들의 은신처를 보며 확답했다. 그러자 가엔달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제시했다.
“흠. 아직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경우와 저들 중 마법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어서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 뭐가 더 높을까?”
나야 지금 당장 활성화된 마법이 보이지 않으니 무조건 전자라고 여기지만 이걸 또 명확한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하려니 문제가 있어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일행들은 가엔달의 의문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내 세네란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전자라고 봐. 설령 후자라고 하더라도 마법은 마법사들이 눈치챌 수 있으니까. 만약 쟤들이 정말 어느 정신 나간 신의 신성을 빌려 쓰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처럼 숨어 있는 사람들을 속속들이 눈치챌 수 있는 만능의 기적일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고 말이지.”
“설령 후자가 맞다 하더라도 결국 저들은 밖으로 나와 대처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니 저희는 혹시 모를 기습만 조심하면 될 거 같아요.”
역시 마법사들은 칼잡이와 다르게 머리가 잘 돌아간다. 세네란의 주장에 렐리에가 동조하자 메르델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두 사람의 의견에 동참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럼 우린 여기서 적당히 입구를 포위하기 편한 위치로 찢어지는 편이 낫겠군.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 거지만, 어떻게 시작할 건가?”
파티 리더 경험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가엔달을 향해 난 말 대신 바늘을 꺼내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미 바늘의 개쩌는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일행들은 아무런 질문 없이 좌우로 갈라져서 다른 수풀 속에 모습을 감췄다. 수풀에 쭈그리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와 달리 워해머를 들고 휘두를 것을 염두하여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예카트리나와 기습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며 5분 정도 시간이 더 흘렀을 무렵.
널찍한 입구에서 내 귀에도 들릴 만큼 부산스러운 소리를 자아내며 익숙한 복장의 사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엔달 일행과 같이 하는 일은 확실히 운이 좋은 편이긴 한 것 같다. 놈들은 덜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빠른 이동을 위한 것인지 몰라도 검을 허리춤에 찬 상태로 허겁지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충 열댓 명 정도가 그 꼴로 던전 입구를 벗어났을 때 나는 만족스럽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휘, 휘파람!”
휘파람 소리를 듣고 기겁하며 반응하는 사교도들을 향해 아홉 개의 바늘이 산탄처럼 비산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10명을 학살한 공격이었으니 정말 열심히 설명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고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