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3화(23/599)
떨어져도 상관없다.
라그니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일출과 강한 바람에 눈물이 났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은 울었을 테니까.
아직 영지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 다른 귀족 영애들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 로맨스를 꿈꾸며 정말 많은 소설들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은 또래 귀족들에겐 자극적인 소재에 불과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마왕군에게 패배하고 피폐해지는 삶과 절망적인 미래따위는존재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에서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껴졌다. 많은 영웅들이 탄생하고, 기사들이 태동하며, 사랑과 명예를 노래하게 되는 영광과 낭만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돌이켜보면 철없고 우스운 어린 날이었지만 자신이 그런 기사와의 만남을 꿈꾼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랑을 고백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용을 잡는 기사님, 자기 명예를 위해 싸우고 그 영광을 한 송이 꽃과 함께 선물하는 기사님 등등 정말 다양한 상상을 하며 가슴 졸였다. 몇몇 영애들이 화가를 고용해 자신들의 상상 속 기사님이나 왕자님을 작게 그려 보여 줄 땐 자기도 괜히 가지고 싶어서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그랬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 자신이 상상했던 모든 기사들과 다른 영애들이 상상했던 기사까지 데려온다 한들,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며 비룡의 머리를 뚫어버리고 섬광과도 같이 납치범을 베어 버리는 모습보다 멋있을 수는 없다고.
“엘드미아!”
기쁨과 환희 속에서 라그니스는 울음을 터트렸다.
구해 줄 거라 믿고 싶었다. 무조건 구해 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에 그저 믿고 싶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그저 믿고 기다려야 하는 자기 모습이 치가 떨릴 정도로 혐오스럽게 느껴졌음에도 그 믿음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게 되네!”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미소보다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리는 엘드미아는 추락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죽어버린 비룡도 추락하고 있다. 그의 웃음을 봐서는 죽은 것이 분명한 납치범도 당연히 추락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드미아는 아무런 걱정도 할 것 없다는 듯이 그저 웃어 보였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태연하게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고 빠지지 않게 묶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호쾌하고 후련하게 웃어 보였다.
그랬기에 라그니스는 같이 웃었다.
“이제 집에 가자! 라그니스!”
“응!”
그녀를 밝혀주는 빛을 믿기에, 활짝 웃어 보였다.
◈
설마 이세계에 와서 전생에서도 하지 않았던 스카이 다이빙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성공적인 경험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전력전심으로 사용한 육체 강화 탓에 온몸이 삐그덕 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 그 자체였다. 기에스는 정말로 능숙하게 속도를 맞춰 아무런 부담 없이 라그니스를 받아 낼 뿐더러 안정적으로 나를 다시 뒤에 태워주기까지 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야. 가명이 아닐까 싶기도하고.”
그렇게 추락사를 모면한 우리는 지상에 내려와 모닥불을 피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밤을 지새며 이어진 비행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피로감을 선사했다. 사실 가장 피곤한 건 기에스와 비룡이겠지만.
그래도 잠을 잘만큼 여유롭지도 못한 상황이라 졸음도 이겨낼 겸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라그니스는 델트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다. 하늘을 날기 전까지는 델트를 운 좋게 죽일 경우 소지품이라도 확인해 볼 요량이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떨어진 시체와 장비가 멀쩡할 리 없어서 이제는 포기했다. 아마 찾게 되더라도 시체가 아니라 시체의 파편을 보게 되리라.
그 높이면 비룡조차 사체를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기에스가 말해줬다.
“아까 날아오면서 가까운 곳에 작지 않은 마을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거기서 뭐라도 먹고 출발하죠. 또 한참을 날아가야 하니.”
쉬는 동안 기에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라그니스는 자기 이름을 걸고 그를 보호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 심지어 지금은 아직 성인이 아니라 변경백의 이름을 건 약속은 하지 못하니, 성인이 된 후 정당한 절차에 걸쳐 보호와 보상을 다시 한번 약속하겠다는 확답을 해 줌으로써 기에스의 걱정을 일소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 기에스의 나이가 이십대 중반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지만, 정신연령 30세를 초월한 나는 굳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와서 형이라고 하기도 뻘쭘하잖아.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한 채 마을을 향해 움직일 수 있었다.
“비룡 조종사라는 확실한 신원까지 있으니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겠네.”
“그러게. 이렇게 또 도움을 받게 되네.”
“이미 운명공동체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는 도움이라 하기도 민망하죠.”
왕국에서 보증해 주는 신원인 만큼, 실제로 마을에 들어섰을 때 경계의 시선은커녕 선망의 시선마저 받는 기에스였다. 사람 인연이라는 건 정말 종 잡을 수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세 명의 식대보다 비룡의 식대가 더 들어갔다. 기에스가 태연하게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살 땐 깜짝 놀랐지만, 비룡이 혼자서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비싼 유지비가 들어갈만 했다.
식사를 하며 들어보니 저 비룡도 결국 귀족파 누군가의 자산임은 분명하지만, 애당초 떳떳하지 못한 형태로 일을 치른 탓에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덕분에 라그니스는 아예 기에스와 비룡을 하나로 묶어서 처우를 신경 써 줄 요량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그녀의 얼굴에 귀족다운 냉철함이 드러났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새롭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또 다시 한참을 날아 이티스엘로 귀환했을 때는 이제 막 점심을 넘긴 시간이었다. 차라리 아예 늦게 도착해서 사람들의 시선이라도 피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한참 시끌벅적할 때 도착해 버렸다.
이미 도시에는 비상이 걸렸는지 관문 경비병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경비대를 불러 연행 아닌 연행을 했고, 우리는 많은 시선들을 받으며 알리샤의 여관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레비야!”
“이모님!”
살다 살다 알리샤 여사의 우는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울상인 정도가 아니라 눈물까지 흘려가며 달려와 라그니스를 안아주는 것을 보니 얼마나 걱정이 심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욕지기로는 숨길 수 없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다.
“엘디.”
그 너머에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아실리에가 있었다. 그 부름에 나는 방금 전까지 넘치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날아가며 쭈구리가 되는 기분 속에서 쫄래쫄래 그녀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진이 알려 줬어. 말도 타지 않고 두 발로 뛰어와서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무시하겠니.”
“도와달라 그랬다고?”
“순찰대가 그 모양이 되었으니 경비대도 불안하다고 도와달라던 걸.”
대단한 놈이다 정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대체 뭐 하던 놈인지 꼭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아실리에와의 면담이 우선이었으니, 어차피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마당에 그대로 이실직고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판단해서, 상황이 꼬이는 바람에 결국 사람을 죽였어. 미안.”
“엘디가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나름 라그니스랑 같이 머리를 싸맸는데…딱 한 수 앞을 더 읽고 있더라고.”
델트가 내 실력마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면 아예 모험가 놈들을 버림패로만 여기고 야영지에 아무것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라그니스는 이 자리에 없었겠지. 순전히 운이 좋았다.
아직 경비대의 취조에는 시간이 있었던 터라 그 사이 대략적인 경과를 설명해주자, 아실리에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판단할 수 있으면 누나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냉정한 판단을 했으면 됐어.”
“고마워 누나.”
“그보다 누나는 엘디가 어떻게 그런 상대를 이겼는지가 궁금하네? 심지어 비룡을 타고 날아갔으면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엘디가 많이 불리했을 텐데?”
“아 그거.”
아실리에의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델트와 싸웠다면, 설령 그의 검술이 형편없었다 하더라도 추락하는 건 내가 됐을 것이다.
오러라고 해봤자 결국엔 강화의 개념이다. 몸을 강화하던, 쥐고 있는 무기를 강화하던 단순하게 놓고 보면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게 오러의 역할이다. 종종 검술이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정신 나간 놈들이 있다는 전설과 소문은 들어 봤어도 내가 그걸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참나 사람이 휘두르는 검이 어떻게 공간을 자름? 그런 건 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결국 무협지처럼 검기를 화살마냥 쏘거나 어검술로 검이 알아서 날아다니게 만들지 못하는 이상, 공중전에서는 마법사에게 일방적으로 처맞을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 강경책으로 스타트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야. 안 그래도 좀 심장이 쫄깃했었지. 기에스, 그러니까 저 비룡 조종사 친구 이름인데, 저 친구의 뛰어난 비행술이 크게 한 몫 했어.”
“어머 그래?”
“응. 뛰어내리자마자 알겠더라고. 오? 이대로 가면 바로 비룡 정수리에 칼침 놓을 수 있겠는데? 하고 말이야.”
“……응?”
“사람이 긴장하면 세상이 느리게 느껴진다는 거 순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놓치지 않게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정수리를 내려찍기까지 겨우 1초? 2초? 정도 지났나? 그 시간이 진짜 영겁같이 느껴지더라니까. 아마 델트라는 그 녀석도 나랑 비슷한…”
“잠깐, 엘디? 뛰어내려? 비룡의 머리를 노리고? 어디서?”
“응? 당연히 우리가 타고 있던 비룡에서지.”
새삼스레 무슨 소리인가 하고 상황 묘사를 멈춘 뒤 아실리에를 바라보자…
나를 바라보던 아실리에가 옅은 미소와 함께 경직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눈을 뒤집으면서 졸도해 버렸다.
“으아아악?! 누나?! 라, 라그니스! 물! 물!”
“엘드..? 끼야아악! 아실리에씨!!”
아이고 씨발 세상에! 말하지 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