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3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35화(235/599)
라이카를 테이밍한 뒤로는 주변 정리 밖에 남지 않아 어려울 게 없었다.
불에 탄 시체가 시각과 후각을 거슬리게 한다는 소소한 문제는 애써 무시해가며 도적들의 소지품을 확인하고, 주변을 한차례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은 예상대로 나를 빡치게 만들었다.
“길드장 이 새끼는 가자마자 죽인다.”
우리 전리품은커녕 말도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지. 옆에 있던 센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 놈들이 전리품을 훔친다니, 고블린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변명이 통할 거라 믿은 걸까요.”
“변명과 핑계가 계획적인 걸 믿는 게 아니야. 개짓거리 많이 하고, 그걸 용인해 줄 뒷배가 있다 보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거겠지.”
“오…”
최대한 덤덤히 대답해줬지만 이가 갈린다. 그나마 빠른 속도로 이 분노가 안정될 수 있었던 건 세상 해맑게 방방 뛰어다니는 라이카 덕분이었다.
[헥헥! 신나! 신나!]마검의 힘을 사용할 생각도 없고, 검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라이카는 개의 형태로 내버려 두기로 했는데 저 좋아하는 꼴을 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얼굴이 좀 험악하게 생겨서 그렇지 저건 저거 나름대로 힐링이 되거든. 뭐, 개의 본성이 굉장히 강하게 남아 있어서 사냥개처럼 기를 수도 있을 거고 나쁘지 않다.
그렇게 라이카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세네란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물었다.
“후회하지 않겠어? 저 모습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검으로 못 돌아갈 텐데?”
“불쌍해서 살려줘 놓고 그 불쌍한 꼴로 써먹는 건 악마도 울고 갈 인성입니다. 어차피 저렇게 방방 뛰어다니면 그 나름대로 쓸모도 있겠죠. 그보다 쟤한테 계속 피를 줘야 하는 겁니까?”
“검의 형태로 뒀다면 어느 정도 피를 마신 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잠잠해지겠지만, 저렇게 뛰어다녀서야 꾸준히 줘야겠지?”
“그냥 마력 주면 안 되나?”
“…오?”
학구열에 눈동자를 빛내는 세네란의 반응이 대답을 대신해줬기에 당장 시험해 보기로 했다.
“라이카, 이리 와봐.”
[주인? 헥! 주인! 헥!]쇠로 된 몸인 탓에 발바닥이 부딪칠 때마다 깡! 깡! 소리를 내는 주제에 기쁘게 달려오는 라이카였다.
“…저거 호흡기관 없는 거 아닙니까? 습관적으로 헥헥 거리는데.”
“가만히 검의 형태로 있으면 힘이 비축되겠지만 저렇게 활동하면 점점 소모되니까. 마검이 지닌 감각과 연계해서 반응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
“쓸데없이 현실성 넘치네…”
그래도 배변훈련은 필요 없을 거라는 게 털 안 날리고 씻길 필요 없다는 것 다음으로 위안이 된다.
“라이카. 배고파?”
호다닥 달려와 칼 같이 자리에 앉은 라이카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파! 뛰었더니 배고파!]“좋아, 내가 지금 너한테 뭔가 할 건데 배가 불러오는지 잘 느껴봐.”
[응!]워낙 어휘력이 떨어져서 제대로 이해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되긴 했지만, 일단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검에 하던 것처럼 마력을 흘러넣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부여한 검조차 막아 내던 녀석이니 갑자기 파킨! 하면서 죽어버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며 쭈욱 마력을 부여하자 라이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오오옹엑?]그러더니 빨래집개로 목을 집힌 고양이마냥 바짝 굳은 상태로 벌러덩 드러누워 버리는 게 아닌가?
이상행동에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떼며 상태를 물어보려는 찰나 라이카가 힘겨우면서도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헥..헥…주, 주인. 너무 배불러 죽을 거 같아.]“와, 씨. 식겁했네. 어디 이상하진 않고?”
[응! 멀쩡해! 원래 피를 마신 뒤 라이카가 자체적으로 마력으로 치환해야 하는 과정이 사라진 것뿐이야! 너무 편해!]“……”
“뭐래? 효과 있대?”
라이카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게 나뿐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얘 어휘력이 갑자기 상승한 걸 들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데 말이지. 난 헛웃음과 함께 세네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네 뭐… 배부르다고 하네요. 배가 불러지자마자 어휘력이 상승하기도 했구요.”
“아까도 그렇게 말하더니, 그렇게나 차이가 심해?”
“저능아와 아카데미 생도 정도로 차이가 나요. 제가 맛이 가기 직전보다 더 심한 거 같은데.”
액면가만 놓고 본다면 스스로가 괴리감을 느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인 거 같은데 라이카는 그냥 세상 행복하게 헥헥거릴 뿐이다.
[이건 과포화 상태라서 그래.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힘이 빠져나갈 정도로 갑자기 넘칠 때만 가능한 거야.]…의외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 뒤에서 똑똑해진 만큼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 스스로 막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그러지 않아?”
[별로? 어느 날 묘하게 몸 상태가 좋아서 평소보다 더 잘 뛸 수 있게 된 거랑 비슷한 감각이야.]“그거 참으로 확 와닿는 비유로구나.”
그런 감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낙차가 심한 거 아닌가 싶지만 라이카 스스로가 느끼기에 아무런 불편도 없다고 하니 굳이 따져 물을 이유도 없었다.
[너무 배불러서 불편해! 뛰고 올게!]“그래라. 하지만 근처에서만 뛰어. 곧 나갈 거니까.”
[응!]일반적으로 배가 더부룩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놈을 봤다면 바로 미친놈 취급 했겠지만 라이카는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에너지가 소비된다니 상관없겠지.
그렇게 휴식을 마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 정리를 돕고 나니 적지 않은 짐이 추가로 생겨 버렸다.
“얘네 묘하게 장비가 좋은데?”
그렇다. 도적놈들 주제에 묘하게 장비가 좋아서 챙길 게 많았던 것이다. 개중에는 내가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지내며 지식으로 습득한 특정 가문의 제식 장비 같은 것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음. 아무래도 엔벨데랑 연관있던 놈들이 맞는 거 같네.”
덕분에 한결 더 후련해진 기분이 되었군. 이렇게 이티스엘은 오늘도 평화롭…지 않구나.
이 씨발 길드장 새끼를 죽여 없애버려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
“챙기고 가죠. 제발 밖에서 우릴 습격하려는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으면 좋겠네.”
왜 그런 불길한 바람을 가지냐고 물어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신난 라이카의 발소리만 깡깡 울려 퍼질 뿐.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해 이번엔 내가 앞장서기로 했다. 그게 나한테도 유리하니까.
그런 내 기도를 에파가 님께서 들어 주신 것일까. 내가 수로 입구를 벗어나자마 보게 된 것은 용병단이었다.
“이런, 생각보다 일찍 나오셨는데?”
용병단 소속의 용병과 모험가의 구분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장비가 규격에 맞춰 나름대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는 극소수의 유명 용병단이니 부질없는 사항이고, 깔끔하게 방어구만 걸치고 있으면 보통 용병이다.
모험가는 필연적으로 파우치를 선호하거든. 항상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지라 방어구는 안 챙겨도 도구가방과 기타 물건들이 들어 있는 파우치는 꼭 챙길 정도로 주머니 사랑이 남다르다.
그에 비해 용병단은 집단 이동 후 전투에만 치중된 삶을 이어나가다 보니 군장을 꾸릴 지언정 자질구레하게 파우치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난전 중에 거슬려서 죽을 위험이 높아진다나?
“너흰 뭐 하는 친구들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니?”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서른 남짓 되는 인상 더러운 칼잡이들처럼 말이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느긋하게 퍼질러 있던 용병들이 능숙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수로를 중심으로 원형 방패를 들고 방진을 짜기 시작한다. 동시에 양쪽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들의 나무 창문이 열리며 궁수들이 활을 겨눈다.
그나마 원형으로 포위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상황 속에서 난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등 뒤로 넘겨 일행들의 걸음을 저지했다.
“길드장을 때린 거, 너 맞지? 처음 들었을 땐 우리 용병단에도 비슷하게 생겼을 거 같은 놈만 다섯이 넘어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인상착의 존나 정확하게 설명해 준 거였네.”
“…어디 용병단인데?”
팔짱을 끼면서 불만스러움을 가장하여 한 번 더 질문하자 드라마 속 바이킹처럼 머리를 깎아 뒤로 묶은 떠벌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미안한데 그런 대답은 못 해 줘.”
“유명하냐?”
살려 둘만한 가치가 있나, 없나를 따져야 하는 만큼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놈을 비롯한 다른 용병들은 어이없다는 표정 끝에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 이거 물건일세? 지금 그게 중요하냐? 눈치가 없진 않은 거 같은데?”
“장의사 불러야 하는 상황인 건 알지. 대답 안 할 거냐?”
그 장의사가 나를 위한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뒷말은 그냥 삼긴 채로 가만히 바라보자 녀석이 웃음기를 조금 지우며 대답했다. 조금은 진지한 반응이었으나, 그래도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하, 자신감 하나는 더럽게 멋있구만. 그래, 유명하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해?”
“유명하지도 않은 새끼들 몇 놈 살려 보내봤자 별 효과도 없을 테니까. 유명하다니까 다행이네. 그게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표정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바뀔 때쯤, 캉캉 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신나게 헥헥 거리며 등장한 라이카가 놈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끌어모았다.
나도 시선을 내려 바라보니 격하게 꼬리를 움직이며 용병들을 바라보던 라이카가 나를 향해 고개를 올리며 물어보았다.
[주인? 먹이야?]“아니. 넌 이제 저런 지저분한 거 안 먹는다. 아까 줬던 거만 네 먹이야.”
[마력! 좋아! 피 맛 없었어! 그럼 쟤넨?]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기에 맞춰 여섯 개의 바늘들이 가죽 주머니에서 튀어나와 내가 인식했던 궁수들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엄폐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만만하게 활을 겨누고 있던 궁수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으나 그래도 용병으로서의 짬밥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인지 사람 쓰러지는 소리에 반응하여 그들을 바라본 용병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더 이상 원거리 공격수단은 없어 보였기에, 나도 팔짱을 풀고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나는 엘드미아 에가라고 한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부분의 용병들이 이해 못 하고 벙쪄 있는 사이 거의 유일하게 심각한 반응을 보인 떠벌이가 내 소개를 듣고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한다.
“엘드…? 길드장 이 개씨발 새끼가?!”
예상치 못했으나 상당히 마음에 드는 반응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라이카에게 지시했다.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만 물어. 죽이는 건 내가 골라 죽인다.”
“자, 잠깐! 이건 오해…!”
[라이카! 말 잘 들어!]곧 피가 난무하고 모가지가 날아다닐 장소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빵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더럽게 빠른 속도로 라이카가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