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3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38화(238/599)
라이카는 영리했다. 굳이 죽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무력화만 노리고 날뛰었으니까.
길드장뿐만 아니라 저놈들 뒤에 있는 뷩스 준남작인지 뭔지 하는 인간까지 같이 처리하고 사후처리할 걸 생각하면 살려 두는 편이 더 유용했기에 나도 오랜만에 죽이는 게 아니라 무력화를 목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물론 말이 무력화지, 팔다리 정도는 날아다녔다. 지혈하면 살고 못하면 죽겠지 뭐. 주먹만으로 싸워줄 의리는 없다.
“그놈 참 생각보다 잘 싸우네.”
마력을 씌운 검격도 버텨 내는 녀석인지라 제대로 오러조차 다루지 못 하는 놈들은 라이카를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찔러 들어오는 창칼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다리를 물고 도리질을 하면 무슨 곰이 휘두르는 것마냥 사람이 날아다닌다. 3D 게임 속 물리 엔진이 고장 난 거 같은 꼬락서니는 당사자에겐 공포요, 제 3자에겐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웃긴 장면이다.
사이좋게 깽판을 치고 나니 스무 명가량 되는 사병들과 후진입한 용병 같은 놈들을 전부 제압하여 바닥을 기어 다니게 만들기까지 3분도 안 걸렸다. 이제 슬슬 한 놈 붙잡고 뷩스인지 뭔지 하는 인간 저택에 쳐들어갈 준비나 할까 하던 찰나, 갑자기 번뜩인 생각에 라이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라이카. 너 혹시 냄새 맡을 수 있냐?”
솔직히 겉으로 보기에나 개의 형상이지 실속은 마검인지라 반신반의하면서 물어본 거였는데 의외로 녀석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라이카 냄새 잘 맡아!]“잘됐다. 여기서 아무 놈이나 냄새 맡고 추적 좀 해 보자.”
[피 냄새 때문에 구분 하기 힘들어!]“아…”
옘병.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군. 결국 내가 아니라 라이카에게 휘말린 탓에 사지가 멀쩡할 수 있었던 사병 하나를 대충 붙잡아야만 했다.
“아, 안내하겠습니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의무감이라던가 충성심이 투철한 부류의 친구는 아니었는지 멱살만 붙잡았는데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별도의 수고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놈을 이끌고 나오는 동안 대충 둘러본 길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접수원들은 경비대와 성직자를 찾기 바빴고, 일부 모험가들의 도움을 빌려 부상자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기에 그대로 내게 멱살 잡힌 놈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이젠 진짜 죽일 시간이다.
◈
엘드미아와 라이카의 깽판을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사병 하나가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려 뷩스 준남작의 저택으로 귀환하여 보고한 내용을 전해 들은 뷩스 준남작과 그론즈엘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저, 전멸을 했다고…?”
정확히는 전멸할 거라는 예감이 들자마자 도망친 것에 불과했지만, 사병은 자신의 탈주를 예쁘게 포장한 뒤 정보를 전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짓말은 뷩스 준남작과 사병 둘 모두에게 이로운 거짓말이 되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일찍 도망친 덕에 뷩스 준남작에게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더 생겼고, 사병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들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기에 그론즈엘과 뷩스 준남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싸매야 했다.
사실, 그론즈엘은 고민할 여력도 없는 상황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브남이 남기고 간 마지막 조언만이 맴돌 뿐이었다.
‘이 인간이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면 무조건 죽어.’
말이 씨가 되었다며 아브남을 탓할 정도까지는 현실 도피에 능하지 못한 그론즈엘이었기에, 그는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두려움에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브남의 조언을 무시한 순간부터 남은 선택지가 파멸 뿐이었다는 걸 뒤늦게 후회하며 그론즈엘은 머리를 쥐어 뜯었다.
뷩스 준남작은 조금 다른 형태로 식은땀을 흘린다. 도시의 관료들과 자산가를 비롯한 유지들이 떠드는 말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수년간 그를 배불리 먹여 준 뒷배는 몇 주전 아예 박살이 나버렸고,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뒷배라는 게 엔벨데 다 보샤 백작이었던 것이다.
엔벨데는 버림말로 쓸 이들에게 낙관적인 사고를 주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어중간하게 똑똑한 놈들보단 아예 멍청한 놈들이 공수표와 다를 바 없는 반역 성공이 가져다줄 이익에 눈이 멀기 쉽기 때문이었으며, 실제로 그 방식은 가문의 부를 이어받았을 뿐인 뷩스 준남작에게만큼은 기가 막히게 먹혀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불안감 없이 엔벨데가 뿌린 공수표만 믿고 겁없이 살았다.
엔벨데의 반역을 위해 많은 돈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에서 레비엥의 단두대라 불리는 누군가에게 엔벨데의 목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것만으로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몇 주가 지나도 자신에게까지 왕실의 병력은 접근하지 않았고, 뷩스 준남작은 그 사실에 의아해하면서도 ‘혹시 괜찮나?’라는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엔벨데가 부여한 낙관적인 사고의 결과물이었다. 반역에 핵심이 되는 인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목이 날아가 버린 탓에 조사가 늦어지고 있을 뿐, 가만히 있었다면 이번 주가 다 지나기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상황이었으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뷩스 준남작은 자신이 살아남았다고 안도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론즈엘이 ‘부탁’을 위해 갑작스레 방문했다.
그걸 제 죽음의 전조를 보는 눈이 없던 뷩스 준남작답게 이를 기회라고 여기고 냉큼 받아들인 것이다.
크게 선심을 쓰면 큰 보답이 돌아오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용병 다섯 정도만 남기고 사병 스무 명과 열 명의 용병 전부를 보낸 지금, 저택에 남은 인원이라고는 싸울 줄 모르는 사용인들 열 댓명이 고작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병력을 죽인 인물이 고작 용병 다섯에 도망친 사병 하나를 못 이길 것이라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뷩스 준남작은 멍청하지 못했다.
“나, 남작님. 여, 영주님께 언질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론즈엘의 말이 딱히 틀리지 않았으나 뷩스 준남작은 그 선택지를 논할 수 없었다. 평소 낙관적인 사고방식에 짓눌려 있던 현실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며 자신과 영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왕실에 충성하는 자와 반역 모의자.
거절 의사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이 밖에서부터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채지 못한 이는 없었다. 그들의 절망감이 착 가라앉으며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와중에 다급한 발음박질 소리와 함께 격렬하게 문을 열며 하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며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이 외쳤다.
“주, 주인님! 갑자기 미친놈 하나가 달려들더니 저택을 아주 박살을 내놓고 있습니다요!”
억울하다. 그렇게 느낄 자격이 있는 사람을 굳이 따지자면 하인 한 명뿐이었겠으나 뷩스 준남작과 그론즈엘은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억울함을 느꼈다.
“대,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왜 저런 놈이… 청급 모험가냐고…”
전형적인 남탓과 부족한 자아 성찰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긴 하인은 자기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까지 당도한 침입자와 개를 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론즈엘이랑 뷩스. 거기 있냐?”
“예, 예!”
“꺼져. 뒈지기 싫으면.”
두말없이 줄행랑을 치는 하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엘드미아는 하인이 열어둔 문 틀에 기댄 채 방안을 바라봤다.
“흐, 흐아악?!”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는 뷩스와 그론즈엘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쥐구멍이라도 찾는 것처럼 소파를 뛰어넘고 바닥을 긁으며 추하게 버둥 거리는 두 사람은 도망칠 길이라고는 방문과 창문 밖에 없는 방 안에서 어떻게든 엘드미아와 멀어지려고 거리를 벌렸다.
그런 두 사람을 삐딱한 자세로 팔짱만 낀 채 덤덤히 바라보는 엘드미아를 향해 손에 잡힌 책을 집어던지며 뷩스 준남작이 외쳤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아악!”
이미 스스로 반역자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자포자기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린 뷩스 준남작은 목숨을 구걸한다는 발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엮인 것에 불과한데도 그에게 엘드미아는 마치 원래부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안배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없어졌다. 보는 이 하나 없기에 휘파람조차 불지 않고 날린 엘드미아의 바늘이 날아오는 책을 꿰뚫으며 날아가 뷩스 준남작의 미간에 바람구멍을 내버렸기에.
“참 구질구질한 유언인데… 어찌 보면 죽음을 목전에 둔 삶을 관통하는 유언같기도 하네. 안 그래?”
그론즈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비명 한 번 지르고 끝난 뷩스의 삶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이렇게 끝났다고? 선대에서부터 부를 축적해, 엔글렘에서 손에 꼽히는 유지로 통하는 인물의 죽음이 이런 형태라고? 겨우 미친 모험가 하나 잘못 건드렸다는 것만으로?
“이, 이럴 순 없어.”
그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그론즈엘은 결국 공포로 인해 반쯤 정신을 놔버렸다.
“뭐가?”
“이건 부당해! 말도 안 된다고! 겨, 겨우 수작질 한 번 잘못 부렸다고 이딴 죽음을 맞이해야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난 엔글렘 모험가 길드장 그론즈엘이다! 이 도시에서 모험가 길드를 키우다시피 한 그론즈엘이라고! 누구도 날 이렇게 막 대할 수….꺽?!”
갑자기 목에 가해지는 압력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그론즈엘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든 속도로 갑자기 치고 들어온 엘드미아에게 자신의 멱살을 붙잡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강제로 벽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쾅! 쾅! 쾅!
마치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처럼 가차 없는 동작과 몰아치는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 세 번 휘둘렀을 뿐인데도 그론즈엘의 이마가 찢어져 흰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진데, 그론즈엘이 격통 속에서 숨을 헐떡일 틈도 없이 엘드미아는 그의 몸을 휘둘러 창문까지 깼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비산하는 유리조각이 날아들었지만 그론즈엘은 이미 너무 큰 고통 탓에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너에겐 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중요하지 않지.”
차가운 겨울바람이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것만 겨우 느끼는 와중에, 엘드미아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더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눈을 마주치며 읊조렸다.
“네가 스스로의 사리사욕을 위해 날 엿 먹였고, 그렇게 날 엿 먹인 새끼는 반드시 죽는다는 게 중요한 거야.”
“자, 잠깐…!”
그론즈엘의 몸이 하늘로 집어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