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4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40화(240/599)
구금소를 벗어났을 땐 점심 식사를 위해 사방팔방에서 음식 냄새가 만연한 시간이었다.
도적놈들로 인한 봉쇄령 때문에 여관에 짱박힌 채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모험가들이 많아져서인지는 몰라도 수도의 모험가 지구보다도 훨씬 분주한 기분이 든다. 덕분에 강렬한 허기를 느껴야했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일행들도 막 식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샛길로 빠지지 않고 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와, 진짜 멀쩡히 걸어나오셨네.”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센은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일행들과 맥주를 홀짝이다말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그 반응에 일행들의 시선은 물론이고 알게 모르게 주변의 다른 모험가들마저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 진짜로? 그 난리를 쳤는데?”
“저게 그 수도의 미친개인가…”
“사실은 왕실과 인연이…”
옘병. 인연은 무슨, 악연이지.
술자리를 맴도는 소문 하나하나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못 들은 척 지나치며 테이블로 다가가자 아실리에의 의자 아래에서 몸을 말고 있던 라이카가 발발 거리며 다가온다. 구금소에 들어가며 나 없는 동안은 너무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을 잘 이행했는지 라이카는 이틀 동안 마력을 주지 않았음에도 딱히 배고프다는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정말 말 잘 듣네.
새삼 기특해져서 아실리에가 만들어 준 자리에 앉아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식사를 주문하자, 가엔달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출소 축하하네.”
“출소라뇨. 말이 심하시네. 구금 해제일 뿐입니다.”
“하하. 어쨌든 일이 잘 풀린 거 같아서 다행이로군. 자네가 오기 전에 꽤 많은 물건들이 오고 갔는데, 이야기는 들었나?”
“네. 쿤즈 씨가 직접 와서 설명해 준 덕에 대충 갈피는 잡고 있습니다.”
극적인 반응은 없다. 어차피 구금소에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이야기는 미리 나눠놓았으니 당연하다.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이런 귀찮은 일에 엮인 신세를 한탄하고, 보상에 기뻐한 뒤 만족스럽게 만찬을 즐겼다.
조금 디테일한 이야기는 그렇게 식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엘드미아님, 그 길드장은 대체 뭘 어떻게 하신 건가요?”
“길드장? 던졌는데.”
“그게요? 누가 봐도 한 4층 건물에서 떨어진 꼴이었는데? 뷩스의 저택은 2층짜리잖아요?”
“그래서 높이 던졌지. 머리부터 잘 떨어지더라.”
멀쩡한 사람들이 들었으면 심히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였으나 모험가들이다 보니 나쁜 놈 죽는 거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무용담을 선호하는 편일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발상으로 접근하고 적극적으로 대화 소재로 써먹는 편이다.
“에잉, 엘드미아 님의 싸움은 영 참고가 안 되네요.”
그러다 보니 센과 함께 은근히 기대하다가 실망한 표정을 짓는 칼스와 바이제의 반응도 납득이 된다. 만남의 첫 단추 꿰기를 저능아처럼 꿰서 그렇지, 얘들도 엄연히 상승 욕구가 있는 베테랑 모험가들이니까.
그래서일까, 꼴에 몇 주 같이 지냈다고 슬금슬금 편해지면서 이것저것 듣고 싶은 게 많다는 티를 내고 있다. 그 모습이 괜히 헛웃음을 자아낸다.
“할 수 있는 거나 열심히 해라. 아니면 오러를 깨우치던가. 오러도 못 쓰면서 무슨 오러 사용자를 참고하겠다고.”
“아니, 누가 보면 개나 소나 오러 쓸 수 있는 줄 알겠네. 정규 기사단에서조차 못 쓰는 인간과 쓸 줄 아는 인간을 구분하는 마당에 너무 쉽게 말씀하시네요.”
“쉽지 않은 거 아니까 하는 말이다. 내가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소가주 전속 집사로 일하는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몇 명의 수습 기사들이 오러에 눈 떴을 거 같냐?”
재능있다고 뽑힌 애들만 스물인데 그중 오러를 개화한 녀석들은 셋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많은 거라고 하니 선별은커녕 지천에 널리고 널린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정말 가뭄에 콩나는 수준으로 튀어나오겠지. 당장 가엔달만 해도 미래가 기대되는 엘리트 모험가의 수순을 밟고 있으니까.
물론 오러 못 쓴다는 것만으로 마냥 시궁창인 건 아니다. 당장 예카트리나만 하더라도 오러를 못 쓴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육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오직 검술과 육체 능력만으로 어지간한 오러 사용자와 비비는 수준의 기사도 꽤 있는 편이니까.
하지만 그런 특이점 같은 사람들을 노리라고 하는 것보단 오히려 오러를 깨우칠 수 있도로 노력하라는 게 더 현실적인 조언이 될 것이다.
“어쩌면 모험가가 기사들보다 환경적으로는 더 오러 개화의 가능성이 높을지도 몰라. 근 몇 년간 아카데미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연구 주제가 ‘전투와 생사의 기로가 가져오는 오러 개화의 가능성’이라고 하더라. 지금 전선이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의외로 신빙성 있는 연구일지도 모르지.”
인간의 장점이 물량이라고는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도적놈들 백 명이 달려들어도 나 하나 이기기가 벅찬 것만큼의 격차가 일반적인 인간과 마족 사이에 존재한다. 그걸 지금까지 끌고 왔다는 건 전선에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고 여기는 편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분위기에 취했기 때문인지 귀찮은 일을 해결해서 풀어진 정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런 가설을 기반으로 나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려던 찰나, 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뜸 질문을 던졌다.
“예?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집사로 일했다구요?”
기껏 좋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더니 요상한 거에 꽂혀서 말이다. 그런데 그 떡밥을 센만 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물기 시작했다.
“어쩐지 묘하게 어디에 묵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했더니.”
“와, 집사? 에가 씨 정말 15살 맞아요?”
“아니, 집사장님은 따로 계시고. 어디까지나 소가주…”
“잠깐? 2년이요? 그럼 종종 보여주는 예법이나 지식 같은걸 터득한 지 2년밖에 안 된 거라구요?”
옘병. 긴장이 풀어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결국 나는 심도 있는 이야기는커녕 내 개인 신상정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썰들을 저녁까지 풀고 나서야 숙소로 올라올 수 있었다.
“엘디 오늘 이야기 좀 많이 했네?”
“하도 떠들어서 입이 아플 지경이네. 15살 난 놈 일생에 뭐 저리 관심이 많을까.”
모처럼만에 따뜻한 물로 말끔히 씻어낸 뒤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직이 투덜거리자, 이미 취침 준비를 마치고 자기의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아실리에가 웃으며 대답했다.
“평범하지가 않잖아. 당장 엘디가 최근 몇 주 동안 엮인 일들만 하더라도 남들 평생의 무용담일걸? 그런 게 줄줄이 튀어나오면 나라도 재밌어서 계속 듣고 싶을 거 같은데.”
하긴, 당장 내 침대에서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라이카부터가 마검이니 그렇긴 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순순히 납득하며 라이카의 골 때리는 자태를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아실리에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갑자기 뭐가 그리 웃기셨어?”
“엘디가 구금소에 있는 동안 라이카가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어. 영락없는 개였거든.”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앞발을 움찔거리는 모습도 영락없는 개다. 녀석이 마검이라는 점과 대조해서보면 퍽 우스운 광경이긴 했으나, 아실리에가 웃은 포인트는 그쪽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쟤가 마검이라는 걸 새삼 되새겼더니 옛날 일이 같이 떠올랐어.”
“처음 만났을 때?”
“응. 맞아.”
“나도 얘 처음 봤을 때 그 도적놈들이 떠오르긴 하더라.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살면 저런 걸 흘리고 다니는 머저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걸 떠올리며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어처구니없음이었지 웃음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가끔 느끼는 거지만 아실리에의 웃음 포인트는 묘한 구석이…
“도적들보다는, 그때 내 족쇄를 풀어 주고 노예 계약에 대해 설명해주니까 엘디 표정이 사색이 되던 게 떠올랐어. 막 ‘도움!’ 이라고 외쳤잖아.”
…없구나. 웃을 만 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살짝 부끄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절박했다니까. 도적들 죽이겠답시고 연기하던 순간보다 더 충격적이었다고.”
“표정만 봐도 알겠더라. 그 상황에서조차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니까.”
결국 지금이야 웃고 넘기는 거지 그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맞았으니까. 사실 이렇게 웃어 넘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 상황을 무사히 넘긴 내 기지에 감탄하고 싶을 지경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졸지에 엉뚱한 일에 엮였네. 수도로 돌아가면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레그네바라는 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는 거 아니니?”
“…시기 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는데.”
이번엔 수도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오그웬으로 직행할 예정이니 충분히 가능성있는 이야기다. 수도로 돌아갈 때쯤이면 벌써 3주가 넘게 흘렀을 테니까.
“시간 진짜 미친 듯이 빠르게 흘러가네. 오그웬에서 볼일 다 보고 수도로 돌아가면 우리 거의 4주 가까이 돌아다닌 거 아닌가?”
“그렇게 되겠지? 물론 중간에 또 다른 일에 엮이지 않는다면.”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누나… 그러지 마…”
내가 그간 노력해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동안은 좀 얌전히 훈련과 공부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