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4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46화(246/599)
이제 와서 알게 되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마력이라는 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족 놈들은 저한테 있는 마력을 느끼던데요?”
“그건 말 그대로 ‘느끼는’ 거지. 따뜻한 물이랑 찬물을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아, 저 사람 몸에 마력이 움직이는구나.’ 라는 느낌에 불과하다고. 겨우 게이트를 통과한 것만으로 마력을 볼 수 있게 되다니 대체 어떻게 돼먹은 몸뚱이인건데.”
에파가님의 은혜로 전생하게 된 몸뚱이라고 밝힐 수도 없으니 이거 참 할 말이 없구만. 개탄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리면서도 이런저런 도구들로 건강검진하듯 계속 날 살펴보는 행동은 멈추지 않던 세네란은 이내 처음 꺼냈던 주사기인지 스포이드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을 내 앞에서 흔들거리며 물어보았다.
“일단은, 이게 어떻게 보여?”
“그게… 그다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모양새는 아니라서요. 꼭 물에 푼 기름에 빛이 반사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막 지저분해 보이진 않고 참 예쁘고 은은한 빛이지만 정말 뭐라 표현할 길이 마땅치 않다. 3D 그래픽으로 효과 준 거 같다고 말해봤자 못 알아듣잖아.
하지만 그런 두리뭉실한 설명에도 세네란은 조금도 개의치 않아하며 그 도구를 정체를 알 수 없는 양철 통으로 만들어진 기계 같은 것에 집어넣었고 열심히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방안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웠다.
새삼 돌아보면 참 난잡하고 정신없는 방이다. 정리가 안 된 상태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쌓아두는 거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애매한 상태의 방에는 지금 세네란이 만지고 있는 것들 외에도 도무지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물건들이 산재해 있었다.
굳이 저게 다 뭐 하는데 쓰는 거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미 여행하면서 그녀가 마력 연구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는지 확인했으니까. 다 그거랑 연관이 있는 것들이겠지.
“…진짜네.”
그렇게 한참을 기계와 씨름하던 세네란은 넣었던 도구를 꺼내더니 다른 서랍에서 비슷한 물건 서너 개를 가져와 내 앞에 늘어놓았다.
“이게 네게서 추출한 마력. 나머지는 마족들의 마력이야.”
“…단순하네요.”
“단순하지.”
붉은빛. 푸른빛. 회색빛. 뭐 대충 그리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물들은 내게서 추출했다는 마력과 확연히 달랐다.
“저 기계는 마력이 무슨 빛인지 확인하는 건가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장치에 가깝지. 난 지금도 이것들이 무슨 빛인지 안 보여. 기계에 넣어서 조작을 좀 해야 보이지.”
생긴 거만 놓고 보면 무슨 양조 기계 같은데 현미경같은 역할을 하는 거였나보군. 실없는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새삼 진지한 표정이 된 세네란이 마력이 담긴 도구들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마력을 인위적으로 보관하는 것도, 이렇게 확인하는 것도 하나같이 전문적인 도구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해. 그건 인간뿐만 아니라… 마족도 마찬가지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 한해서 마력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면서 마치 내 속내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것뿐이었다.
“저야 주어진 걸 쓸 뿐인 칼잡이니까요.”
“…하아. 그랬지. 혹시 시간 있어? 너만 괜찮다면 좀 더 이것저것 확인해 보고 싶은데.”
좀 더 조사하면 구체적인 뭔가를 알 수 있으려나? 그럴 수 있다면 분명 나에게도 좋은 일이겠으나, 아쉽게도 그 날이 오늘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힘들 거 같네요. 다음에 다시 시간을 잡아보죠.”
“선약?”
“네. 오랜만에 레비엥 변경백께서 시간을 할애해주셨거든요.”
제대로 배웅도 못한 채 여행이 길어진 탓일까. 오그웬에서의 용무를 모두 마친 뒤 라그니스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적잖이 심통이 난 상태였다. 그동안 본인도 여러모로 바빴던 것인지 다크 서클이 짙게 깔린 상태로 오늘의 만남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라그니스의 모습에는 독기까지 서려 있었다.
그렇게 몇 주 만에 약속을 잡고 보는 건데 이거 펑크냈다가는 라그니스한테 머리털이 다 뽑히는 불상사가 일어날 게 분명하다.
◈
잠에서 깨어난 라그니스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피로감에 한탄하며 침대 위를 구르다가 갑자기 번쩍 정신을 차렸다.
최근 몇 주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근육통의 여운을 느끼며 황급히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이 라드넬반데스의 도서관이 아닌 자택에서 깼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엔벨데 사건이 정리되고 정치적인 입지와 신변의 안전이 갑작스럽게 해결되기 시작하며 업무가 줄어들기 시작한 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라드넬반데스였다.
제국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찾아가 실전 위주의 마법 수업을 부탁했을 때, 라드넬반데스는 아무런 당혹감도 내비치지 않은 채 묵묵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심지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조차 물어보지 않고 너무나도 흔쾌히 수락한 탓에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 제안했던 라그니스가 오히려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라그니스가 오그웬에서 벗어나 처음 수도에 입성한 그날부터 라드넬반데스가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태도가 바로 제자인 그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다. 원래 정치적으로 잘 움직이지 않았던 그가 왕실의 편에 서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 죽은 부친에 대한 예우를 다하려는 의리도 있었을 것이고 사제 지간의 의리 역시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라드넬반데스는 라그니스가 영토 수복을 위해 전선으로 나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들었다.
철저한 보호. 가끔은 손녀를 위험에서 떼어놓으려는 할아버지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매우 열성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아무리 대화를 나누더라도 그 결심을 굽힐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라드넬반데스였다. 그런 그가 거짓말처럼 뜻을 굽히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하지만 머지않아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라그니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수업의 강도였다. 첫 주를 겨우 버티고 맞이한 휴일에, 라드넬반데스가 자신의 의욕을 꺾고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악의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한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로 그의 수업은 혹독했다.
아무리 라그니스가 가문의 몰락 이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고 한들 경험한 적 없는 실전에 한없이 가깝게 짜여진 상황에서 마법과 육체를 연마하는 과정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라드넬반데스는 환영 마법사의 자문까지 받아 가며 집요하게 그녀의 한계를 시험했고, 동시에 인정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이론 교육으로 그녀의 정신이 좀 먹힐 틈조차 주지 않는 치밀함까지 보여 주었다.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엘드미아의 복수에 힘을 보태겠다는 일념 하나 덕분이었다.
사실 자신을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로 키우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혹독한 단련까지 병행하며 하루 4시간의 숙면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 라드넬반데스의 말마따나 ‘간단하고 가장 기초적인 선행 학습’에 불과한 그 과정을 수료한 게 이틀 전의 일이다. 라드넬반데스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짧은 휴식기를 얻게 되어 자택으로 돌아온 라그니스는 그 뒤로 먹고 자는 것 외에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침대에 박혀 지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도 그러고 싶었으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맑아진 상태로 강제로 몸을 일으켜 세우라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곧 엘드미아가 올 시간이야…”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라그니스는 종을 울려 시녀들을 불렀다. 그리고 근육통으로 인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목욕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몇 번이고 엇갈리는 바람에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로 거의 한 달이 흘러버렸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항의하고 싶은 상황이었으나 엘드미아가 저지른 사건들이 대부분 라그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그리 바빴던 것도 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빠져나와 모험가 지구로 거처를 옮겼다는 걸 듣고도 정작 구경조차 못 간 것은 내심 아쉬웠다. 아실리에하고만 같이 지낸다는 점도 심통이 나긴 했으나,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기에 어떻게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가 왜 오가토르프 가문을 벗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딱히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라그니스가 아는 엘드미아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부분 알고 움직이는 남자였다.
서두르는 것 없이, 그 나이 또래들과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뚜렷한 계획 아래 움직이는 게 엘드미아다. 그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만 궁금할 뿐이다. 자신도 거기에 맞춰 움직여야 했으니까.
생각을 이어 나가는 동안 시녀의 도움을 받아 몸단장까지 마친 라그니스는 옷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 휴식을 가졌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맞이하는 휴식이었으나,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데 익숙해져버린 머리가 멋대로 돌아가며 지난 몇 주간의 훈련과 수업 내용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쉴 때는 좀 쉬고 싶은데…”
결국 이리저리 몸부림쳐봐도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복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라그니스는 아예 다른 주제를 두고 고민하기로 했다.
간단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주제였다. 몇 주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엘드미아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다녔을 것인가?
다행히 그 시도는 효과가 있었고, 라그니스는 엘드미아가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녀가 방에 들어설 때까지 미간을 찡그리며 끙끙거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