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4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48화(248/599)
라그니스와의 대화는 즐거웠으나 결국 그녀가 낼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고, 우리는 저녁 식사까지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제국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가장 길게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눴기 때문일까, 처음 봤을 때보다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인! 나 이 사람 좋아!]어쩌면 식사 때를 제외하고 쉼 없이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힐링을 한 덕일지도 모르겠네. 털도 안 빠져, 냄새도 안나, 그러면서 촉감은 진짜인데다가 이제는 대소변도 안 눠. 확실히 애완 동물의 최종 진화 형태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꽤 무게가 나가는 라이카를 허벅지에 앉혀 놓은 채 한참을 있어도 불편한 기색조차 없는 라그니스에게서 라드넬반데스 식 교육의 위대함을 느끼는 사이, 깊은 아쉬움을 한숨과 함께 뱉어내며 그녀가 말했다.
“얘 두고 가면 안 돼?”
“정신 차려. 걔 마검… 아니, 마견魔犬이야.”
사람을 홀린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마검보다 더 흉악한 성능을 발휘하는 라이카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인지 아예 품에 안은 채 코까지 파묻던 라그니스는 못 이기는 척 녀석을 놓아주었다.
“뭔가 좀 신기해. 정신적으로 치유되는 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인데.”
“우리 마견에게는 그런 기능은 달려 있지 않…겠지? 라이카, 없는 거 맞지?”
[몰라!]뽈뽈뽈 다가와 자연스럽게 안기며 헥헥거리는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잠깐 고민해 보았으나 답이 나올 만한 고민은 아니었다. 이미 철로 된 똥을 싸지르며 검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로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는 라이카다. 놈에게 주는 먹이라고는 마력 뿐이니, 녀석은 악마처럼 마력만으로 구성된 몸뚱이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마검이었던 모든 재료를 다 싸질렀다면 무조건이겠지.
그럼 얘는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몸이 마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정령 아니면 악마인데.
“자기도 모른다고 하니 좀 애매하긴 한데…”
“그, 하루 정도만 더 데리고 있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으으음… 일단은 보류해 두자. 적어도 얘가 악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확신은 있어야지.”
굉장히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라그니스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근본이 마검인 녀석이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무슨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와중에 덜컥 내버려 두고 갔다가 사건이 터지면 스스로의 안일함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행히 라그니스는 내 설명에 납득하며 라이카에 대한 미련을 떨쳐 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배웅하는 그녀의 동작이 처음 봤을 때보다 한결 편해진 것 같기도 했다.
“…쓰읍.”
하지만 저택을 벗어난 뒤에도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 내지 못한 나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 라이카의 머리에 손을 얹어 마력을 주입했다.
[옹오옥?]지난번엔 포만감이 과해 그대로 드러누웠던 것을 떠올리며 살짝 조정을 가했더니 라이카의 두 눈에 총기만 맴돌고 거동에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야. 똑똑해진 머리로 고민 좀 해 봐. 정말 널 안고 있는 것만으로 라그니스의 몸 상태가 호전된 거 같냐?”
그런 녀석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어보자 뭔가 고민하듯 눈동자를 굴리던 라이카가 작은 끄덕임과 함께 대답했다.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 주인도 라이카를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지? 도적을 반쯤 억지로 살려놨잖아.]“옘병.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대로, 였다면 위험했겠지? 그건 일종의 회복 능력이었지만 희생자들의 피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혈마법 특유의 부작용이 함께 한다는 단점이 있었거든.]“그 정신줄 놔버리고 난폭해지는 거?”
[맞아! 형태는 다양하지만 보통 그런 식으로 나타나! 하지만 지금은 주인의 마력이 기반이니 설령 그게 은연중에 발동된 거라고 해도 부작용은 없어!]“…확실하니?”
[확실해! 하지만 주인이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부작용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혈마법에 대한 걸 다 설명해야 해!]개조차 이해하는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개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는 인간이 있다니. 심지어 그게 나라니. 아무리 라이카가 일반적인 개가 아니라고는 해도 뭔가 납득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나?”
[피에 담긴 원한과 마법적 작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미처 다 정제되지 못한 혈기血氣로 인한 사용자의 중독 현상에서 부작용이 비롯돼!]“…그래, 그게 다 뭔지는 알 수 없어도 결국 원인인 피를 마력으로 대체했으니 자연스럽게 부작용도 사라졌다는 이야기라는 건 알겠다.”
[맞아! 주인 똑똑해!]기르는 개한테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는 인간이 있다니. 그게 또 나라니. 이 녀석 나중에 점점 마력 많이 먹으면서 막 사람보다 똑똑해지는 거 아닐까? 지금도 일시적인 영리함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런 암담한 상상을 하면서도 정작 잘 설명했으니 칭찬해 달라는 듯 꼬리를 흔드는 녀석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행히 그 사이 골목길에서 개에게 말을 거는 미친놈으로 오해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봐, 덩치 큰 친구. 댁이 단두대지?”
그저 어느샌가 다가온 놈들이 골목 양쪽을 틀어막으며 포위해 올 뿐.
개중에서 그나마 가장 큰 떡대와 흉악스러운 얼굴에 새겨진 긴 자상을 소유한 놈이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어보길래 난 기지개를 켜며 대답해주었다.
“어, 맞아. 내가 단두대 엘드미아 에가다.”
“시치미 떼도 소용…엉? 맞아?”
아까 전이야 기분이 좋았으니 좋게 좋게 넘어가 주려고 했던 거지. 평범한 기분인 상태에서까지 그런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기에 가볍게 목을 풀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너흰 뭔데 아까부터 날 귀찮게 하냐?”
“하, 웃기는 새끼일세 이거. 아깐 뭐 아니라고 잡아 떼고 우리 애들 죽도 제대로 못 먹게 만들어놨다더니…”
“말은 바로 해라. 죽만 먹게 해줬다. 턱주가리를 찢어 버린 것도 아닌데 죽을 왜 못 처먹어.”
덤덤하게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줬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떡대의 표정이 구겨졌다. 비단 녀석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녀석들 전부가 좋지 못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이거 자신감 넘치는 거 봐라. 한낱 청급 새끼가 파티 잘 만나고 나니 눈에 뵈는 게 없지?”
“한낱 오러도 못 쓰는 폐급 새끼들이 등급 타령을 하고 자빠졌네. 너넨 소문을 듣는 귀가 없는 거냐 아니면 뇌가 없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인상을 구기고 있던 떡대가 갑자기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건물 벽을 후려쳤다.
-쿠웅!
건틀릿 하나 없이 휘둘러진 주먹은 마치 골판지 박스에 자국을 남기듯 벽에 도장을 찍어 버렸다. 동시에 주변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주먹을 턴 떡대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오러도 못 쓰는 폐급? 다시 말해 보시지?”
굳이 다시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도 주먹을 휘둘러 벽을 후려쳤다.
-콰가각!
방금 떡대의 주먹질처럼 주변을 울리는 묵직한 충격은 없다. 하지만 잽만큼이나 가볍게 휘둘러진 훅 한 방에 벽에는 깊은 홈이 파여 버렸고, 난 애먼 힘 자랑에 주택이 손상된 불쌍한 시민에게 애도를 표하며 놈을 바라보았다.
“…어?”
놈도, 그 뒤에 있던 다른 놈들도 부릅뜬 두 눈이 벽에 파인 홈에 못 박힌 채로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었기에 난 먼저 입을 열어 녀석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정정할게. 티끌만한 오러나 겨우 쓰는 병신 폐급 새끼가 등급 타령하고 자빠졌네. 너넨 소문을 듣는 귀가 없는 거냐 아니면 뇌가 없는 거냐?”
“어…? 어? 어떻게? 어?”
“뇌가 없는 거였네.”
건물 주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지만 방금 그 한 번의 무력 행사만으로 내가 할 일은 매우 편해졌다. 성큼성큼 다가가는 와중에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떡대는 내가 코앞까지 다다른 뒤에야 식은땀을 흘리며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너흰 뭔데 아까부터 날 귀찮게 하니?”
떡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고, 난 대화 상대를 잘못 고른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하며 놈의 인중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응컥!”
핏물섞인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기절한 떡대가 무너지는 것만으로도 골목길을 가로막던 네다섯 명의 모험가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그 뻔하디 뻔한 반응을 구경하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봐도 놈들의 의도와 정체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일부 모험가들 중에서 커리어가 탄탄하게 쌓인 이들이 파티를 꾸리다 못해 일종의 용역업체처럼 자기들의 길드를 꾸려서 전문적으로 일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다.
하지만 그건 표현이 용역업체인 거지, 보통은 은퇴한 중견 모험가들이 신인 모험가들의 생존율을 올리며 안정적인 수익을 지원해 줄 겸 자신들의 노후도 준비하는 일종의 향우회 같은 집단에 가깝다. 수도가 아니면 진짜 날고기는 모험가들이 거점 삼아 활동하는 마경 한 가운데에 위치한 수렵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히 보기드문 형태이기도 하다.
모험가 길드와도 협업을 할 뿐더러 괜히 더러운 일에 엮였다가는 평탄한 은퇴 생활이 대차게 꼬일 수 있기에 굉장히 깔끔하게 운영되는 편이고 말이지.
“세상 참 불합리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이 오러는 쓸 줄 알다니. 안 그래?”
수도에서 지낸 2년 남짓한 세월이 있는 만큼 그런 집단은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연이 닿을 일이 전혀 없어서 신경을 안 쓸 뿐이었지.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이런 깡패같은 행동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도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부족한 지식에 딱히 아쉬워하거나 집착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이대로 도망칠지 아니면 다 같이 달려들어야 할지를 놓고 아직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놈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과연 어떠려나? 오러는 못 쓰지만 말은 잘하는 부류일까, 아니면 오러도 쓰면서 말도 잘하는 부류일까?”
둘 다 못 하는 병신들일 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두들겨 보면 답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