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5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54화(254/599)
여긴 어디?
이제는 내 별장처럼 익숙한 임시 구금소.
나는 누구?
모험가 간의 보복 문제에 과잉 대응 혐의로 임시 구금 중인 엘드미아 에가.
그렇다. 이번에야말로 이 나라 감옥 구경 좀 해 보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향한 곳은 귀족 임시 구금소였다.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간만에 보는 메시엘라 씨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오히려 그녀가 더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거기엔 내 당당한 태도 뿐만 아니라 라이카의 동행도 한몫했던 거 같지만, 그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릴 정도로 어이없어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야 어쨌든 결국 또 여기서 숙박을 하게 된 나는 당당하게 내 집처럼 행동하며 샤워까지 마친 뒤 침대에 드러누웠다. 처음 보는 방에 신나하며 한참을 살펴보던 라이카도 내 옆에 와서 따라 눕길래 놈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기를 오 분 정도.
“이건 계획이랑 다른데…?”
그 뒤에야 나는 조금 늦은 고민을 시작했다.
당텔을 죽이고 순순히 가룬을 따라 경비대에 포박되는 것까지는 상정 내였다. 과잉 대응 혐의라는 것도, 그에 따른 조사로 인해 최대 사흘 정도는 붙잡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쪽으로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착오? 귀족 임시 구금소가 괜히 ‘귀족’인 게 아니다. 죄를 지은 귀족의 체면치레를 목적으로 가둬두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형식적인 절차만 그럴싸하게 하고 풀어 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용도로도 쓰이는 정치적인 냄새가 짙은 곳이다. 상부 명령이 없는 이상 경비대는 잡은 범죄자내지 용의자들을 죄다 라그니스가 갇혔던 임시 구금소 아니면 깜빵에 집어넣지 지들 멋대로 판단하고 슬금슬금 귀족 구금소에 넣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누군가가 상황을 듣자마자 손을 써서 일단 여기에 나를 뒀다는 건데.
“짐작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레스롬 공작? 에스뮈에를 염두한 왕실의 판단? 그것도 아니면 메시나 왕녀? 혹시 위드라 씨의 귀에 들어가서 손을 썼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대응이 너무 빠르다. 이미 모험가 길드와 왕실과의 접점이 있어서 이야기가 전해진 게 아니라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는 게 타당한 추측일 정도인 상황이다.
거기까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결국 쥐고 있는 정보가 부족한 탓에 내 추론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쉴 땐 쉬어야지.”
누구 하나 접선책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결국 내 고민과 추측따위는 다 부질없는 상황이다. 나는 그리 적중률이 높지도 않은 추측을 하며 내가 세상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는 되도 않는 망상에 빠지는 것보다 속 편히 잠드는 걸 선택했다.
아실리에에게 미리 연락을 못 준 건 아쉽지만, 그 부분은 가룬이 알아서 잘 전달해주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놓자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같이 잠들었던 라이카의 뒷발이 얼굴을 밀어대는 탓에 잠에서 깼을 땐 이제야 겨우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괘씸한 뒷다리를 치우며 시계를 확인하니 대충 7시 정도. 조금 피곤한 감은 있었으나 평소 깨던 시간과 비슷하다는 게 놀랍다면 놀라운 점이었다.
“별 요상한 부분에서까지 유용한 놈이로군.”
한때 마검이자 이젠 뭐가 되고 있는 중인지 알 수 없는 살아 숨 쉬는 자명종 라이카의 엉덩이를 툭 하고 쳐보았으나 놈은 일어날 줄 몰랐다. 깊게 잠들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개들이었다면 깰 수준까지 녀석의 빵실한 엉덩이를 북치듯 두들겨 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출렁이는 털과 살의 파도 뿐이었다.
흠… 이것도 변화로 인한 이상 증상이려나? 나중에 세네란에게 말해봐야 할 거 같다.
어쨌든 당장 눈 떴다고 해서 뭔가 할 생각이 들진 않았기에 적당히 리듬에 맞춰 라이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뭘 할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엘드미아 님. 기침하셨습니까?
“예. 메시엘라 씨. 안 그래도 방금 일어났습니다.”
귀족들이 눈을 뜨기엔 이른 시간인데 어쩐 일일까. 지난번에 묵을 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이른 방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하자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엘드미아 님을 뵙고자 하는 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 시간에? 누군데요?”
-루세릭이라 말하면 아실 거라고…
…뭔데? 전혀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렇게 말할 정도면 굉장히 확신에 차서 한 말일 텐데 어떻게 기억에 없을 수가 있지?
섣부르게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괜히 확신을 가진 상대방에게 개 쪽을 줄 수 있으니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사이 메시엘라가 사족을 덧붙여줬다.
-귀족은 아닌 듯했으나, 예법이 몸에 배어 있는 남자였습니다.
기억났다. 레스롬 공작의 직속 대행자 루세릭.
“…덕분에 떠올랐네요.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차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준비하겠습니다.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멀어지는 메시엘라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꾸물꾸물 침대를 벗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분명 어제 늦게 입소했음에도 마법이라도 쓴 것인지 깔끔하게 다림질까지 끝난 상태로 걸려 있는 내 옷을 입으며 메시엘라의 뛰어난 업무 능력에 갈채를 보낸 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세상 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카의 엉덩이를 한 번 더 두드린 다음 1층으로 내려왔다.
방문을 열어뒀으니 깨면 알아서 나오겠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엘드미아 님.”
“오랜만입니다 루세릭.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무탈하게 지내는 중입니다. 엔벨데 사건 이후로 귀족원 내부도 많이 조용해졌거든요.”
흠. 나 때문에 잘 못지낸다는 대답 정도는 각오했는데 빈말인지 진담인지는 몰라도 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 엔글렘에서 보여주신 활약 덕분에 더 수월해진 것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움직이려면 명분이라는 게 필요하다 보니 좀 더 시간이 걸릴 문제였거든요.”
아무래도 진담이었나보다. 짧게 안부를 나눈 루세릭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여유롭게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메시엘라를 기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차를 준비해 온 메시엘라에게 찻잔을 받아들어 한 모금 마신 뒤에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기 시작했다. 확실히 예법이 몸에 아로 새겨진 인물이다.
“결례를 무릅쓰고 이른 아침부터 찾아뵌 이유부터 설명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설명해 주길 바랐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한 홍차를 한 모금 더 들이키자 루세릭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일찍 찾아뵌 것은 오늘 하루 저희의 업무가 바빠질 것이기에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든 탓이 컸습니다. 허나 이는 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정리하기 위함이니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귀족원에서 모험가의 일을 정리한다구요?”
“네. 엘드미아 님은 아직 엔글렘에서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훈장을 받지 못하신 상태거든요. 이번에 엘드미아 님께 드릴 보상을 제안 하고 협상한 분이 각하이신 만큼, 훈장이 수여되기 전까지는 귀족원의 비호 아래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훈장? 전혀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다. 이미 돈이랑 집을 받는 것조차 레스롬 공작이 신경 써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대변인을 통해 전달받은 형태로 끝냈는데 이제 와서 받을 훈장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전혀 없다. 그 영감님은 내가 그런 자리를 귀찮아 할 거라는 걸 알고 다 쳐 낸 뒤 물질만 넘겨 줬으니까.
“그런 일은 문서로 남기지 않습니까? 공문서 위조일 거 같은데.”
즉, 저건 내 변호를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거짓말이라는 소리다. 내가 거기까지 짐작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루세릭은 잠깐 두 눈을 크게 떴다.
“각하께서 말하면 알 거라고 했을 땐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만, 정확한 통찰력이십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각하 혼자 일을 진행하시진 않으니까요.”
왕실의 허락과 협조를 받았다는 말을 애둘러 표현하는 걸 보아하니 루세릭도 레스롬 공작과 왕실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괜히 직속 대행자가 아니라는 거겠지. 덕분에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된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움직인 겁니까? 모험가의 일 하나하나를 왕실에서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거 같진 않은데 말이죠.”
“최근 모험가 길드장은 반역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왕실에 조력중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엘드미아 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지라 바로 손을 쓸 수 있었죠.”
흐으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놀랍군. 어쩌면 가엔달 파티와 처음으로 같이 맡았던 의뢰조차 그런 활동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인해 엘드미아 님은 내일 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으실 겁니다. 이 역시 최대한 서두른 결과이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못해도 사흘은 더 붙잡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음, 안 그래도 각하께서 엘드미아 님께서 감사를 표할 경우 한 가지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만…”
진짜 능구렁이 같은 영감님이다. 뭘 어디까지 내다보는 걸까. 눈빛만으로 무슨 이야기인지를 재촉하자 루세릭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심심하니 한 번 놀러오라고 하시더군요. 명분은 훈장 수여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죠.”
그래, 어차피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으니 잘됐다. 난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차를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