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6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63화(263/599)
스승님의 수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다. 제목부터가 심플하지 않은가? 마법의 이해와 실전 응용.
근데 이건 마치 내가 예전에 임시 구금소에 틀어박혀 있었을 때 읽었던 마법의 기초 어쩌고 하던 책처럼 거하게 사람을 낚는 수준의 과목명이라 할 수 있겠다.
스승님이 말하는 마법의 이해라는 건 마나가 아니라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마법이다.
즉, 마족들이나 용들이 사용하는 마법을 말하는 것이고 실전 응용이라는 것은 그런 대상들을 상대로 마나를 이용하는 마법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읽어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던 건 오직 전장에서의 전투만을 목적으로 연구하고 파생되어 온 전쟁 마법은 기존의 단기 결전을 노리던 인간 대 인간의 개념에서 벗어나, 마나라는 불순물을 여러 형태로 조작, 투여해 마왕군에게 일종의 중독 증상을 일으키고 전투력을 낮추는 디버프 형태로 변하는 중이라는 거다.
마나의 소모도 다른 마법을 시전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고 효과도 뛰어나다 보니 나처럼 정말 약한 불 정도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사들도 배워서 쓸 수 있을 정도의 범용성을 자랑하는 이 신생 마법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마족들의 마법을 이해하는 과정되시겠다.
대충 비유하자면 더럽게 튼튼한 기계를 때려 부술 수 없으니 해당 기계를 공부해서 망가지면 치명적인 부품에 손을 댄다는 개념에 가까운데, 전장에서의 효과는 가히 획기적인 수준이라는 모양이다. 숙련도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지만 마족들의 약체화는 체감이 될 정도이며 실상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꿔 지난 7년간 전쟁이 이어질 수 있게 공헌한 수준의 마법이라고, 스승님이 적은 수업 서론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스승님이 학생들 앞에서 진중한 모습으로 강의중인 내용이기도 하지. 강단 끄트머리에 목각 인형마냥 서서 들어야 하는 게 좀 그런 걸 제외하면 나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 졸릴 일은 없었다.
얼핏 들으면 기사들은 비겁하다고 경을 칠 것 같은 내용이지만 애당초 스펙차이가 심각한 탓인지 정정당당같은 거에 구애되는 기사들은 이미 애저녁에 죽어 없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배울 수 있으면 배우고 못 배우면 눈물 나게 아쉬운 머스트 해브 스킬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긴 전쟁이 고리타분한 기사들을 좀 많이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나 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번 체험 수업에 들어온 절대다수의 학생들 역시 굉장한 흥미를 보이고 있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덕인지 마나를 아예 못 쓰는 검술과 기사 지망생 애들은 여기에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심드렁한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긴 전쟁으로 인해 아카데미의 교육방침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목을 푸는 사이 스승님의 설명이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족보다는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시전자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경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지.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짐작되는 학생 있나? 그래, 거기 손 든 학생. 왜 일 것 같나?”
“마력과 마나는 그 차이가 큰만큼 불순물로써의 역할을 확실히 하지만, 같은 마나끼리는 그 정도가 크지 않아서일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불순도는 술식을 통해 보강할 수도 있기에 완전한 정답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감이 있군. 하지만 반은 맞췄네. 다른 의견은 없나?”
뭘까. 내 입장에서는 조금도 예상이 안 가는데. 잠시 뜸을 들이며 시간을 줬음에도 방금 학생을 마지막으로 선뜻 손을 드는 이가 나오지 않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지금 이 반응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우리에게 마나와 정제 그리고 변형이라는 건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반대로 마족들의 마법은 낯설기 그지없으니까. 이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학생이 있었다면 굉장히 추리력이 뛰어나거나 마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 학생이었겠지. 심지어 후자에 속하는 조교조차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딱히 기 죽을 필요 없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갑자기 나를 제물로 삼다니?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난 옅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그 순간 강의실의 모든 이목이 내게로 쏠린 거 같았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고 스승님은 그대로 몸을 돌려 뒤에 있던 칠판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마법은 발전과 개선의 역사다. 엘프, 드워프, 수인, 우리 인족 등등 모든 인간들이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이어져 온 힘이며, 앞으로도 끝없이 발전할 미래의 힘이기도 하다. 그 힘을 철저하게 이론으로 공부하고 도식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한 사람의 마법사로 서게 되는 것이지. 정작 그 힘을 다루는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몸에 있는 마나 회로는 하나의 거대한 미로가 되어 버린다. 내가 알 수 있게 쌓고, 정리하고, 길을 뚫어 사용하는 동안 타인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안식처가 되지.”
적당한 원을 그리고 안을 아무렇게나 분필로 휘저어 꼬인 실타레처럼 만든 뒤, 또 다시 적당히 손가락으로 지워 미로를 흉내낸 그림은 낙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완벽한 예시였다.
“하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마족의 마법은 다르다. 그들이 육체를 강화하든, 마법을 쓰든 간에 필수적으로 구체화하고 완성시켜야 하는 마력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적당한 원형 미로 옆에 비슷한 크기의 원이 다시 그려지고, 이번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두 군데 정도만 지워 통로를 만든 스승님은 그제서야 몸을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전장에서 침식 마법이라 불리는 이 술식은 마족의 마법 회로가 아닌 마력 기관을 공격한다. 아무리 강대한 마족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기관이고, 강화할 수 없는 기관이지. 그렇기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마나 정제 기관을 공격해봤자 방금 학생이 말했던 것처럼 불순물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내가 사족을 덧붙였던 것처럼 술식을 통해 불순도를 올리면 동급의 적을 상대할 때는 효과가 있겠지만 고등 마법사에겐 마찬가지로 효과가 미미해지지.”
다시 몸을 돌린 스승님이 큰 화살표 하나를 실타레 미로가 그려진 원의 중심을 향해 그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다보니 인간에게 이 마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자연스럽게 마나 회로를 공격해야 하는데, 보다시피 타인의 마나 회로는 그들만의 미로라서 파고들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를 뚫으려면 디스펠의 운용과 비슷한 수준의 고난도 마법이 되는지라 매우 비효율적이지. 마법의 흐름을 보고 손을 쓸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말이야.”
마지막 말에 산발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을 보아하니 꽤 잘 먹히는 농담인 거 같은데 정작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남들은 웃긴 농담정도로 치부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는 거지? 에파가 님과 면담을 하게 되면 물어볼 게 또 하나 늘어나버렸군.
“마왕군이 이 마법을 해석했음에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진행할 수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스승님이 천천히 칠판을 지우는 틈을 타 슬쩍 시계를 확인하니 정확히 수업이 끝나기 5분전이었다. 사실 생체 시계라도 내장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마무리를 짓기 시작한 스승님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학생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이 침식 마법은 결국 지식의 산물이다. 미지의 적을 분석하고 연구한 끝에 인간이 얻어낸 사용법이지. 다양한 지식을 통해 새로운 사고와 인식을 찾아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증거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수업은 언젠가는 식상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지금은 생소한 개념들을 통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 다시 한번 자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 과목이다. 마법 기사와 마검사를 꿈꾸지 않는 기사 지망생들에게도 충분히 유익하니까.
“앞으로 내 수업을 듣게 된다면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바쁜 와중에 시간을 할애하여 자리를 빛내서 고맙다.”
딱히 박수를 강요하기 위해 내가 먼저 손을 들어 올릴 필요는 없었다. 강의를 마친 스승님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박수 세례 후 간단한 QnA 시간을 가진 끝에 강단을 내려왔다.
“생각보다 할 만하군. 왕궁에서 일할 때보다 편한데.”
짧은 한숨과 함께 웃으며 말하는 스승님에게 나도 미소로 화답하며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
“유익한 수업이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마족의 혈통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네요.”
“하하. 마족은 아무리 피가 옅어져도 반드시 뿔이 난다. 네가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뿔을 갈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마족일 리는 없지.”
이건 또 새로운 지식이로군. 한동안은 내가 강박증에 빠질 틈 없이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마력 기관을 만들고 나면 저도 그 침식 마법에 피해를 입게 되는 건가요?”
“이 마법의 본질은 몸에 있는 마력이 사용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걸 방해하는 것에 가깝단다. 지난번에 말했지? 마족들이라고 해서 마력의 위험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니라고. 그런 상황에 직접적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을지언정 끊임없이 위협하는 게 이 침식 마법의 본질이다. 그러니 너에게는 효과가 없을 거다.”
이미 마력 기관없이 마력을 의지에 맞춰 쓰고 있으니까.
전에 말해줬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제가 정말 마력을 쓰고 있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너도 나도 앞으로 갈 길이 멀구나.”
갈피를 못 잡는 것보다야 멀어도 보이는 길이 낫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일단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