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6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64화(264/599)
처음부터 많은 학생들의 주목을 받고 시작한 덕분인지 몰라도 스승님의 수업 수강 신청은 상당히 높은 경쟁률을 자랑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통 과목이 어중간한 비중과 중요도를 지닌 탓에 인기가 없는 것을 알고 보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는데, 어차피 나와는 연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수강 신청을 위해 고생했다는 셰릴의 푸념을 들으며 한껏 비웃어줬다. 그리고 불만스러워하는 셰릴을 뒤로한 채 라이카와 함께 아카데미를 거닐며 스승님과의 연구와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물색에 나섰다.
당연히 아카데미 부지 밖에 나가는 게 아니라 날 시간제 강사마냥 잠깐 고용하고 싶다는 교수들의 수업을 알아보는 과정이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아카데미 교수들 중 내 노동력을 원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오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순수 검술과목과 전투술부터 오러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실전과목까지. 이게 정말 아카데미에서 새파랗게 어린애들을 데리고 하는 수업이 맞나 싶을 만큼 전투 민족스러운 과목들이 있었고, 나는 잠깐 발품을 팔며 고민한 끝에 실전 과목만을 선택해 해당 교수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사실 부르는 곳이 그렇게 많다고한들 나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순수 검술? 솔직히 자신은 있지. 엔벨데 그 양반한테 칼빵 맞고 자신감이 좀 떨어진 적도 있긴 했는데, 그 인간 칼밥 먹은 이야기 들어 보니 그냥 당연한 결과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아카데미 학생들과 비교하면 딱히 꿀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시간제 강사처럼 해당 수업 시간에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배울 것도 마땅찮고 가르칠 것도 마땅찮다. 내가 배운 검술이라고는 엘프 기본 검술에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가르쳐 주는 검술인데, 전자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다가 이미 내 편한 대로 어레인지를 한 상태였고 후자는 내가 섣불리 누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거라고는 내가 어릴 때 했던 베기 찌르기 훈련인데…
“그걸로 성과가 나려면 아카데미 1, 2년으로는 어림도 없지.”
하루 종일 밥 먹고 칼만 휘두를 여유가 있으면 여기가 아카데미겠어? 검술학교지.
그렇다고 오러를 응용하는 전투술 과목에 들어가 마력을 오러인 척 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단순히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뭔들 못하겠냐마는, 지금은 돈이 아쉬운 게 아니라 강해지기 위한 훈련과 학습이 아쉬운 입장이라서 굳이 그런 수업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내 거절 의사를 듣게 된 교수들이 좀 불편한 시늉을 했지만 딱히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헛돈 안 쓰게 도와줬으니 감사를 받아도 모자라거늘, 사람들이 고마운 줄 몰라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빼고 나니 남는 게 무차별급 전투 민족 실전 학습에 가까운 과목 하나뿐이었고, 나는 해당 교수의 교수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과목명조차 심히 상남자스럽다. 실전. 딱 두글자.
“반갑다. 내가 실전 과목 교수 그리알레 뤼비스다.”
하지만 그 과목을 맡고 있는 교수는 그다지 상남자스럽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마초스러운 근육 바디의 털보 아저씨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곱디 고운 적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넘겨 묶은 선이 얇은 인상의 엘프 남자를 맞이하게 된 나는 스스로의 그릇된 편견을 반성하며 인사했다.
“엘드미아 에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뤼비스 교수님.”
“음, 최근 수도에 퍼진 자네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솔직히 부탁은 했지만 다른 교수들의 수업에 더 관심이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내 소문을 알면서 수업에 써먹을 생각을 하는 기괴한 발상의 소유자 뤼비스 교수에게 들은 수업의 개요는 굉장히 심플했다.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아무리 학생들이 우수하다고 한들 고정관념이라는 건 쉬이 벗어던질 수 있는 게 아니지. 그저 한동안 특별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대련을 통해 학생들을 깨주면 된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지지부진하지 않다는 점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는 굉장히 직설적이며 과도하게 심플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내가 의아해서 잠깐 고민하는 척을 한 뒤에 넌지시 질문해야 했다.
“외람되지만 굳이 제가 필요할 거 같진 않은데 어째서 저를 고용하면서까지 수업을 진행하려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단순하다. 필요하기 때문이지. 이백 년을 살아온 엘프에게 지는 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어도 제 또래에게 일방적으로 지는 건 다르니까. 배우는 이들에게 향상심이란 중요한 원동력이거든.”
이백 년을 살면 저렇게 특이한 화법의 엘프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손님에게 직접 차를 내오는 예의는 차리면서도 말과 행동은 딱딱하고 그런 거치고 또 격식은 없는 것이 참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차를 한 모금 마신 뤼비스 교수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수업은 주에 세 번이다. 각각 학년별로 3학년까지만 가르치지. 수업 특성상 1회 수업 시간이 두 시간으로 다른 수업보다는 조금 긴 편이다. 딱히 시간을 다 채워달라고는 안 한다. 학생들이 버티면 채우는 거고, 못 버티면 빨리 끝나겠지. 그대가 수락만 한다면 내가 받는 급여를 수업일수에 맞춰 나눠서 보수로 지불하지.”
알아서 보수 이야기를 먼저 꺼내주는 것도 좋고, 그 보수가 파격적인 것도 좋았다. 지식을 터득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이들이 받는 급여는 굉장히 쏠쏠했으니까.
“굉장히 후하시네요. 혹시 급여를 적게 받기로 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시겠죠?”
반쯤 장난으로 던지면서도 진지한 질문이었는데 뤼비스 교수는 웃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주제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런 장난질은 안친다. 왕립 아카데미 교수다운 액수를 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동시에 그가 내민 계약서를 확인한 나는 내용과 액수를 보고는 주저 없이 서명했다.
“저야 좋은데, 제 실력은 확인 안 해 보셔도 됩니까?”
겨루기는 뭐든 간에 테스트가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심플해서 물어보니 뤼비스 교수가 다시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한 채 오히려 의아하다는 것처럼 반문했다.
“제국 용사를 이긴 이를… 굳이?”
흠. 지크프리트 녀석이 그 지랄을 떨면서도 나름 명성을 쌓은 건지 선대의 용사들이 새겨 놓은 명성 덕인지는 모르겠네. 뭐, 나야 편하니 좋은 일이었다.
“마침 오늘 있는 2학년 수업은 아직인데, 어떻게 하겠나? 오늘부터 해 보겠나?”
계약서 썼으니 당장 시작하라고 강요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텐데 상당히 신사적으로 나오는 뤼비스 교수의 제안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좋게도 셰릴의 학년이라고 하니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이번 기회에 얼마나 성장했나 봐주고 싶기도 했고, 제국 아카데미와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날 지 궁금하기도 했다.
“수업까지는 이십여 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일단 대련장을 보는 게 좋겠지. 환상공이 만든 대련장을 지니고 있는 제국과 달리 우리는 평범한 시설이라 미리 보는 편이 좋을 거다.”
“굉장한 시설이긴 했었죠. 제국 마법사들의 환상 마법 실력이 우수하다고만 여겼는데 환상공이라는 분이 만드신 겁니까?”
“거의 혼자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그 전에 있던 환영 마법도 훌륭했었지만… 그가 손댄 이후와 비교하면 볼품없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다.”
대체 얼마나 수준 차이가 났길래 이백 년을 살아온 엘프가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는 것일까. 그래도 그런 수준의 환영 마법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지간한 공격 마법보다 까다로울 거 같았는데 걱정이 줄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뤼비스 교수를 따라 이동하던 도중 그가 라이카를 향해 턱짓을 하며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마검은 일부러 개의 형상으로 데리고 다니는 건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며칠 전이면 모를까, 지금의 라이카는 머리부터 말끝까지 평범한 웰시 코기에 불과하다. 처음엔 은빛을 띄고 있던 털색마저도 이제는 평범해졌는데 대체 어딜 보고 알아차린 거지? 내 질문에 뤼비스 교수는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라이카를 바라본 채 대답했다.
“굉장히 낯설어서 긴가민가했지만 마검 특유의 이질감이 남아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저리 두었는지 몰라도 곧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정도로.”
“이질감이요?”
“음… 이건 뭐라 설명하기 애매하군. 그냥 내 감이 좋다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워서 말이야. 마검으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의도로 질문한 건지 얼굴을 봐서는 조금도 감이 오지 않았기에, 의중을 파악하길 포기하고 그냥 대답해주었다.
“불쌍해서 그랬습니다. 영혼을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악마들이나 할 짓 아닙니까.”
그래도 꼴에 엘프인데 아까운 짓을 했군 같은 말을 내뱉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말한 대답을 들은 뤼비스 교수는 딱딱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가 주인을 잘 만났군.”
그러고는 또다시 표정 없는 무덤덤한 얼굴을 한 채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의중은 몰라도 라이카를 부르는 명칭이 마검에서 개로 바뀐 걸 보아하니 악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로 질문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 같은 행동을 취한 사람은 못 봤다며 현재의 라이카가 어떤 상태인지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대련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