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7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76화(276/599)
갑작스러운 용사의 등장에 적잖게 당황한 발쿤 씨였으나 그는 프로답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지크프리트의 대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허, 이만한 크기를 들고 휘두른다고?”
“롱소드처럼 가볍게 휘두르더군요.”
“대단하군. 생전 용사를 직접 보게 된 것도 놀랍지만 이건 더 놀라워.”
무거운 병기를 사용하는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구태여 그런 무기를 사용할 이유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오러로 신체를 강화해서 든다고 한들 그만큼 오러의 소모도 늘어나는 법이고, 이는 결국 장기전에서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 괜히 사람들이 예카트리나의 무기를 보고 기겁하는 게 아니다.
지크프리트처럼 수납 마법으로 예상되는 특혜와 용사의 피지컬이 있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 한참을 살펴보던 발쿤 씨가 조금은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만드는 건 문제가 없지만 재료가 만만찮군. 용사라면 마법과 정령술에도 조예가 있을 테니 마법검이 가장 좋은 선택일 텐데, 이만한 걸 만들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걸 거의 다 털어 넣어야 할 거야. 괜찮겠나?”
“저야 괜찮죠.”
씨익 웃으며 지크프리트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제국 황실의 인장이 찍힌 수표였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대장장이들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나였어도 다른 곳에서 갑자기 저런 게 나왔다면 놀랐을 것이다. 그 보기 드문 상단 금화조차 ‘따위’로 만들어버릴 물건을 보고 침착하기가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껄껄껄, 이거 생각이 짧았군. 제국이 용사를 향한 지원을 아낄리가 없는데 말이야.”
지크프리트에게 수표를 받아 든 발쿤 씨는 주판과 필기구를 챙겨 오더니 우리가 보는 앞에서 계산과 설명을 동시에 이어나기 시작했다.
“마법검이라고는 하지만 주문 발동형 마법 같은 걸 넣지는 않겠네. 어차피 용사에겐 불필요한 마법이 될 테니까. 대신 주문 합금을 이용해 마법지팡이의 역할도 같이 할 수 있도록 만들 거야. 체내의 마나 운용이 좀 더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지. 완성된 물건을 쥐어 보면 체감이 될걸세.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두 배까지도 효율이 좋아진 경우도 있거든. 그리고…”
그냥 설명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한 치의 주저함이나 버벅임 없이 계산과 설명을 모두 이어 나가는 모습만으로도 발쿤 씨는 장인이 분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지크프리트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는 게 참으로 보기 흉해서 적당히 뒤로 빠지자, 에셀루아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엘드미아? 잠깐 괜찮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름에 조금 당황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서자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이상 사태, 어쩌면 악마가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뭔가 짐작 가시는 거라도?”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귀에 도청장치는 안달렸냐며 면박을 주고도 남았을 소리였지만 불과 며칠 전에 성광십자회에 침투한 악마를 때려잡고 온 인물의 말이라는 건 그렇게 막무가내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악마의 토벌을 공표했을 뿐, 잔당이 남아 있습니다. 비단 성광십자회만 파고든 게 아니라 이티스엘에 있던 반란세력들과 함께 일을 꾸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씨발.
진짜 너무 싫어서 순간 몸을 뒤로 쫙 뺄 뻔한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견뎌 낸 나는 가까스로 표정까지 다잡을 수 있었다. 지금 그러니까 그 악마 숭배자 잔당새끼들이 아카데미에 기어들어와서 반동분자 새끼들이랑 합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아찔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나는 짐작 가는 답을 입에 올렸다.
“고대 수로입니까?”
“네. 대륙에서 가장 많은 고대 수로를 보수하며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몇 안되는 단점이지요.”
마법만큼 위대한 과거의 영광. 고대의 지하수로.
그 시대를 뛰어넘는 건축물 덕분에 많은 도시가 길바닥에 똥오줌이 뿌려지는 일을 겪지 않게 되었지만, 관리되고 있는 장소 외의 입구가 발견되어 악용될 경우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를 창출한다는 게 단점인 건축물. 그러나 그런 단점따위는 가볍게 씹어먹을 정도로 유용해서 차라리 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인력과 비용을 지출할지언정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총본산과 수도의 거리를 생각해봤을 때 결코 우연이 아니겠군요.”
“성광십자회도 그렇게 추측했습니다.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탓에 일이 좀 꼬인 상황이죠.”
성녀와 더불어 용사의 도움을 받아 당위성을 얻어 교단 정화에 나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필 썩어도 단단히 썩어빠진 탓에 엔벨데하고도 연관이 있었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놈 나름 열심히 판을 짜 올리고 있었던 건 사실인가 보다.
“제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사실… 매우 난처한 상황입니다. 지크프리트는 일을 마무리 짓는다며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할 생각이지만 저희는 어디까지나 제국인이니까요. 반역자까지 엮인 사안에 저희가 일방적으로 끼어들면 왕실의 체면이 깎여 버리게 되겠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들이 가리키는 결과는 하나였다.
“황실과 왕실 모두 제가 개입하길 바라겠군요.”
“…정확합니다.”
지크프리트는 악마를 놔줄 생각이 없고, 왕실은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하며, 제국은 의도치 않게 왕실의 깊은 부분까지 파고들어 가버린 것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아 도움만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갈 경우 결국 표면상 제국이 술수를 부려 이런저런 핑계로 왕국의 사정에 멋대로 개입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제국은 음험한 침략국, 이티스엘은 무능한 나라의 프레임을 뒤집어 쓰기 좋은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반역자 엔벨데를 처단한 레비엥의 단두대가 나서면 이야기가 편해진다. ‘용사가 멋대로 나댔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도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로 인해 아무도 안 믿어 줄 상황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용사를 관리할 능력조차 안 된다는 오명을 쓰게 되는 제국의 입장에서도, 이미 갈 때까지 가서 제국에게 빌붙어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한다는 오명을 듣게 생긴 왕국의 입장에서도.
복잡할 거 하나 없이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해 용사가 레비엥의 단두대의 부탁을 받아 악을 처단하기 위해 나섰다는, 매우 보기 좋은 이야기 하나로 모두가 사이좋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돌겠군.”
나만 빼고.
이거 한 방이면 지금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얼굴마담 대국민 영웅 확정이다.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게 엔벨데를 따버렸으니 내 존재를 꺼려하는 반대파에게도 힘이 실어질 수 있었던 건데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절로 미간이 찡그려지는 상황인지라 가감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악마새끼들은 삶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간만에 일천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열심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뭔가, 나보다 좀 더 앞으로 내세울 수 있으면서 아카데미의 일에 개입하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악마 숭배자 새끼들과 반역자 찌끄래기들을 상대로 싸우는 게 납득될 만한 실력을 지닌, 협조성과 실력, 정당성을 두루 갖춘 최적의 인물이…
“…있네?”
있었다.
바로 옆에.
“셰릴. 잠깐 이리 와봐.”
그녀의 기준으로 헤실헤실 웃는다 해도 좋을 만큼 입꼬리가 풀려 있는 셰릴을 부르니 머리 위로 갈고리를 수집하며 다가온다. 난 그런 셰릴에게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광십자회를 뒤흔들었던 악마 숭배자들과 엔벨데의 부하들이 아직 아카데미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같다.”
그 한 마디에 셰릴의 단무지 눈썹이 분기탱천하며 눈빛만으로 설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아니 그걸 그렇게 막 말하기가 어딨습니까?’라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에셀루아를 외면한 채 빠르게 설명을 마쳤고, 이야기를 들으며 화를 추스른 셰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다. 안 그래도 엔벨데의 죽음 이후로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학생들이 꽤 있었지. 모두들 역모에 가담하여 도망쳤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지하수로로 파고들어 가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을지도 모를 노릇이겠군.”
굳이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이미 얘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뻔했고, 얘도 내가 왜 자기한테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셰릴은 같은 학년의 학생들 중 입이 무겁고 신임할 수 있는 이들을 추려 놈들을 추적할 계획까지 순식간에 세워 버렸다.
이제 정의감 넘치는 왕립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역모 뿐만 아니라 악마마저 숭배한 인류의 배신자들을 직접 처단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어린 나이의 치기를 이기지 못한 채 자신들의 힘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줄 것이며, 거기서 엘드미아는 그들의 구심점이 된 셰릴의 전속 집사였던 인연과 아카데미 조교라는 입장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게 될 것이다. 그 도움에는 앞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우연의 연장으로 용사파티가 딸려오겠지.
그렇게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왕실과 귀족원 모두 왕국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인재들의 영웅담에 자진해서 힘을 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비록 레비엥의 단두대와 제국의 용사가 포함되어있다고 한들 이번 사건의 해결사는 그들로 기억될 것이다.
일부는 오가토르프 가문의 여식이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겠지만… 내 알 바인가?
꼬우면 나한테 이야기가 닿기 전에 알아서 잘 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