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8화(28/599)
정신 연령 30세를 초과한 엘드미아의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126년간 살아온 엘프도 울었으니까. 지극히 타당한 눈물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아실리에는 그러한 내 정신 승리에 기가 막혀하며 등짝을 때렸다.
결국 이튿날 눈이 퉁퉁 부어 버린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이 부은 걸 제외하면 특별한 건 없었다.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언제나 그래 왔듯이 단련하고, 평소보다 좀 더 아실리에의 일을 많이 뺏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남은 하루를 보냈다. 모험가 길드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기로 다짐한 것 말고는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 왔던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그렇게 하면 결국 시간이 흘러도 자연스럽게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마치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내 짐을 챙긴 뒤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사실 짐이라고 해 봤자 별 건 없었다. 가벼운 옷가지와 아실리에가 쓰던 수통 하나, 붕대 조금과 여러 가지 약초를 종류별로 넣어 둔 아실리에의 파우치. 작은 침낭이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옷가지를 침낭에 넣고 검집에 둘둘 말아 등에 메고 나니 어디 멀리 가는 게 아니라 옆 동산에 피크닉을 간다 해도 믿을 정도로 가벼운 차림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호위단과 함께 가는데 굳이 검을 찰 필요는 없지. 오히려 지금의 엘디가 검을 차면 호위단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진검을 든 뒤로는 한 번도 등에 검을 멘 적이 없는 터라 많이 어색했지만, 아실리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사로 인정받은 것도 아닌 미성년의 평민 아이가 무기를 놓지 못한다는 건, 결국 호위단을 믿지 못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그녀의 설명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이리 와봐.”
모든 채비를 마치고 나자 아실리에가 의자를 가리키며 나를 불렀다. 바로 쫄래쫄래 가서 자리에 앉자 뒤에 서서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던 아실리에가 무언가를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귀걸이?”
아실리에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그녀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을 띠고 있는 귀걸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로 마치 땋은 머리마냥 생긴 귀걸이는 무슨 실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어도 코팅되고 압착된 것처럼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뭐야아아악!”
그리고 그녀는 그걸 감상하던 내가 의아해하며 물어볼 틈도 없이 냅다 그걸 내 귀에 달아버렸다! 귓불에 무언가가 박히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의외로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 옆으로 날아드는 작은 갈고리에 놀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깜짝이야!”
“엘프의 귀걸이야.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의미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땋아 모양을 만들고 마법으로 가공하여 완성하는 일종의 부적 같은 거지.”
“아실리에…!”
이걸 만들려고 어제부터 그렇게 뭔가 쪼물딱 거리면서 만들고 있었구나 싶어, 감동에 겨워 그대로 일어나 아실리에를 바라보자 그녀도 자기 귀에 귀걸이를 걸고 있었다.
“응?”
모양은 같았지만 내 것과 달리 흑단마냥 검게 반짝이는 색이다. 가만 보니 내 귀에 걸린 게 아실리에의 머리카락이면 저건 내 머리카락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 아닌가?
“엊그제 잘 때 잘랐어.”
마치 그런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아실리에가 덤덤히 말했다. 최근에는 손질을 자주 하지 않아 좀 길어진 탓에 숱만 조금 쳐도 저 정도는 나올 테니 쥐파먹은 것마냥 보일 걱정은 없었지만, 솔직히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거면 직접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니, 자르는 건 상관없는데 그거 자기가 만들어도 의미가 있는 거야?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상관없으니까 걱정 마. 이건 마음과 형태가 중요한 거야.”
상관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뭔가 미묘하지 않나 싶었지만 스스로 귀에 걸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웃어 보인 그녀였기에 딱히 사족을 덧붙이진 않기로 했다. 뭐, 어찌 되었든 둘 다 만족스러우면 되는 거지.
“다녀와 엘디. 틈 날 때마다 편지하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빌려온 군마에 올라탄 나를 보며 아실리에는 짧게 인사했다.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웃으며 대답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응. 다녀올게 아실리에. 도착하면 바로 보낼 테니 마을에 자주 들러.”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그녀를 뒤로하며 말을 몰았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오두막이 작아지고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돌아선 채 손을 흔들었다.
◈
결국 중간 정도 왔을 때부터 해이해지기 시작한 눈물샘을 억지로 붙잡으며 야영지에 도착했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바로 마중을 나온 라그니스는 내 꼴을 보자마자 상황을 이해했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엘드미아가 눈물도 흘릴 줄 아네?”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렇다는 건 에카프 경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걸로 봐도 되는 거지?”
“안 울었다니까.”
“누가 뭐래니?”
목소리에 은은한 기대감이 담겨 있는 것을 감출 생각도 안하며 남의 속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는 라그니스가 괘씸했지만, 사실이기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래. 어차피 할 복수, 그 편이 더 살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아실리에도 동의했어.”
“응응. 그게 맞지. 솔직히 엘드미아의 성격상 거절하고 나서 수 년 후에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들릴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정말 잘 생각한 거야.”
“네 안의 나는 대체 어떤 놈인 거냐.”
“앞뒤 없이 일단 달려들고 보는 무모한 남자?”
“따아아악히이이이 맞는 말도 아닌 거 같으면서 틀린 말조차 아닌 거 같다는 게 좀 그러네.”
계획을 세우고 달려들지만 그 계획에 항상 무모라는 게 함께하다 보니 부정도 긍정도 하기 힘들다. 덕분에 슬픈 기분도 잊어 버리고 오묘한 표정을 지어 버린 나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어 보인 라그니스는 에카프 경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제안을 받아들여 줘서 고맙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제가 감사드려야죠.”
이제부터 가르침과 더불어 날 먹이고 재워주기까지 할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존칭을 붙이게 된 에카프 경은 내 결정에 상당히 기뻐했다. 그 정도씩이나 되는 기사가 가르칠 이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아 신기해하고 있자, 이를 눈치챈 라드넬반데스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여줬다.
“자네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 친구가 딸을 좀 많이 아끼거든. 근데 또래에서는 어지간하면 따라올 애들이 없다 보니 그걸로 고민 중이던 차에 자네를 만난 거지.”
그가 말하기로 에카프 경은 그 지위와 명성에 비하면 굉장히 겸손하고 진중한 편이고, 그걸 미덕으로 여기는 남자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랑스럽게 자라고 있는 딸아이가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잘난 탓에 자만에 빠질까 봐 최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기린아들이 모인다는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그곳에 들어가면 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면서도 당장에 눈에 밟히는 걸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런 관심없는 설명을 다 떠나서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아첨인가 싶을 만큼 칭찬 일색인 설명이었는데 라드넬반데스가 입에 담으니 그냥 담백한 진실로 느껴진다는 게 놀랍다. 역시 마법사는 진실만을 말하는 동물인 것인가? 그냥 막 진실로 들리는데?
“이번에 왕립 아카데미에 수석으로 입학 자격을 따냈으니 사실 잘났긴 해. 말은 좀 적지만 심성도 착하고 말이야.”
“…최근에는 어째 좀 거리감이 생겨서 씁쓸하기도 합니다만.”
아버지인 에카프 경보다 더 칭찬하는 거 보면 마냥 빈말은 아닌가 보다. 그나저나 나랑 동갑이라면 14살이라는 건데, 거리감을 느낀다는 건 역시 사춘기인 걸까?
“끅끅끅.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뭐 옷을 분류해서 빨지 않았다고 심통이 나서 사용인이랑 말도 안 나눴다고 했던가?”
“그래도 면박을 주거나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만…하아.”
이세계 사춘기도 진짜 별다를 건 없나보다.
심지어 왕의 3검씩이나 되는 인물조차 딸과 엮이니 저런 한숨을 내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이세계에서 주워들은 보편적인 귀족들은 저렇게까지 깊은 가족애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편이었는데 말이지.
츠신이 들어가는 만큼 엄청 높은 귀족일 텐데, 오히려 세간에 알려진 보편적인 귀족들과 달리 고위 귀족들은 끈끈한 가족애로 뭉쳐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라드넬반데스님의 말을 부정하진 않겠네. 분명 서로의 발전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그야말로 선인이라 느낄 수밖에 없는 중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에카프 경의 등에서 미미한 후광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실리에를 마주했을 때랑 비교할 수 없는 밝기였지만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인격자일지도!
“감사합니다 에카프 경. 라그니스? 솔직히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
인사를 위해 돌아본 라그니스는 미묘하게 굳은 미소를 지은 채 다소곳이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자기 엄지를 꾸욱 꾸욱 누르고 있었다. 그건 왠지 모르게…미묘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언가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긴 이의 그것처럼…
“은인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아직 다 갚으려면 한참 멀었으니 더 기대해도 좋아.”
미묘하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는 것처럼 보이는 건…기분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