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9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93화(293/599)
“좆 같은 악마 새끼.”
에스뮈에가 줬던 반지는 분명 검지에 끼고 있었는데 어째서 검지 뿐만 아니라 중지까지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도 경험 못 해본 이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그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와서 저주를 걸어? 저주 한 번 잘못 걸렸다가 뒤지지도 못하고 미쳐버린 마족놈이 떠올라서 잠깐이나마 소름이 끼쳤다.
“더럽게 불합리하네 진짜. 그 짧은 순간에 저주를 완성시켰다고?”
공물을 잔뜩 꼴아박는 게 아닌 이상 어떤 형태로든 긴 준비 기간을 요구하는 게 저주다. 심지어 인간 수백 명을 담보로 건다고 하더라도 제약이 발생하는데, 그걸 눈앞에서 즉석으로 콩 볶듯이 만들어 버리다니. 저 새끼가 빙의하기 위해 처먹은 핏값 때문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두 번 죽여도 시원찮을 지경이다.
뒈진 악마를 향해 속으로 한사발 쌍욕을 때려 박은 후에 내 검은 검집에 넣고 지크프리트의 대검은 대충 어깨에 걸친 뒤 바늘을 쥔 나는 지크프리트가 봤으면 환장했을 꼴로 천천히 낙하 속도를 늦췄다. 솔직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 낙하에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으나, 그 짧은 순간에 참 높이도 올라온 탓에 떨어져 죽고 싶은 게 아닌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쓸데없이 예쁘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수도는 퍽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병 시절 야간 사격장 저 멀리서 빛나던 문명의 불빛을 봤을 때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인다. 눈 돌아간 악마 새끼가 한바탕 깽판을 칠 수도 있었던 세상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야경과 달리 아카데미로 달려오고 있는 다양한 빛무리들은 내 골머리를 썩힐 요소였다. 저 잡것이 곱게 지하에서 뒈졌으면 좋았을 텐데 이걸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당장 아카데미에서도 학생과 교직원을 가릴 것 없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거나 올려다보는 이들이 한가득이다. 분명 그 최후의 발악인 유사 브레스가 시선을 끈 거겠지.
“에휴, 인명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위안으로 삼자면, 지하에서부터 다이렉트로 거대 싱크홀을 개통한 브레스가 쏘아진 이곳이 아카데미 뒤편에 있는 야외 훈련장이라는 점이다. 지형에 따른 전술 훈련을 목적으로 나름 공들여 만든 곳이라고 기억하는데… 재수없는 누군가가 하필 오늘 시설 관리를 한 게 아닌 이상에야 이 시간에는 인적이 전혀 없는 곳이긴 했다.
동시에 내가 다시 저 싱크홀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은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강 속도를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당장에 눈에 띌 걱정이 없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지크프리트가 기어이 외쳤다.
“메리 포핀스!”
“내가 말을 말지.”
딴지를 걸 기운도 없어서 그냥 착지하자마자 대검을 던져 주는 것으로 대신 대답하며 주저앉으니 나를 향해 셰릴이 달려왔다. 한껏 울상일 뿐만 아니라 토끼눈이 된 채 눈물까지 흘리며 달려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엘드미아!”
“그래, 괜찮다. 다 끝났…”
그래서 방심했다.
셰릴은 달려오던 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내 안면에 니킥을 때려 박았다.
“이 미친 새끼야!!”
아직 신체 강화를 풀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장렬하게 틀어박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안 들어간 일격은 내가 알고 있던 맛과는 좀 많이 달랐다. 그렇게 행해진 갑작스러운 공격도 공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셰릴의 입에서 격식을 다 내던진 쌍욕이 가감 없이 튀어나왔다는 게 신기했다.
아픈 건 둘째치고 일단은 제 무게를 다 실어서 날린 공격이었던 탓에 나는 셰릴과 함께 뒤로 자빠지고 말았고, 배운 집 자식인 셰릴은 그대로 내 마운트를 잡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가슴팍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 이 씨발! 씨발! 미친 새끼!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새끼!”
니킥은 그나마 무게를 실었기에 아주 조금 타격이 있었지만 가슴팍을 때리는 손은 주먹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어서 안마조차 못됐다. 얘하고 모험가 일을 하며 싸울 때는 퍽 얌전하게 싸웠던 탓에 이런 극적인 전투에는 면역이 없어서 적잖이 충격을 먹은 모양이다.
솔직히 가장 확실하게 목을 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고, 그 새끼가 갑자기 주작처럼 날아오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퍽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사람 걱정하게 만든 입장에서 입에 담을 말은 아닌 거 같았기에 일단 침묵하기로 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2년 동안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얼굴을 한 적이 없다 보니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군.
여기서 웃었다간 진짜 사이코패스 취급당하며 개처럼 처맞겠지?
“흐어엉.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대체 왜 그딴 짓을 하는 건데에.”
결국 당황한 지크프리트와 성녀 테네아시가 다가와 말리려고 할 때쯤에는 이미 힘이 빠져 어중간한 옹알이를 내뱉으며 펑펑 울어대는 셰릴만이 있었다. 정말 세상 서럽게 울어대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구 하나 죽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그만 울어. 눈화장 지워진다.”
“흐어어어. 미친놈아아아.”
기어이 한 대를 더 치는 셰릴이었지만 아프기보단 웃길 뿐이었다. 그런 셰릴의 머리를 적당히 헝클어트려주며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악마 새끼가 아주 거하게 쏴 재낀 탓에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 같더군요. 제 계획은 좀 크게 어그러진 거 같은데, 뭐 방법 없을까요?”
“흐음.”
제 검을 아공간에 수납하면서 턱을 쓰다듬던 지크프리트는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권력쟁이들하고 엮이기 싫은 거지? 일단 자세한 건 그때그때 풀어보자고. 루아가 명색에 황녀잖아? 이런 건 전문가야.”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오히려 내가 동생한테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아하니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겠다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인 것과 별개로 지크프리트는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거랑 내가 물어보고 싶은 수많은 의문들은 별개다. 이번엔 대충 못 넘어가.”
“잘됐네요. 어차피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테니 시간이나 떼운다고 생각하죠.”
아닌 게 아니라, 강화를 풀고나니 당장 내일부터 골병이 날 것만 같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순간 그림자 발이 준 포션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어디 상처가 난 것도 아니니 그냥 참기로 했다.
아끼다가 똥 된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맞다.
◈
지친 몸을 이끌고 지상으로 올라왔을 땐 이미 아카데미 교직원들 뿐만 아니라 성광십자회의 성기사단까지 잔뜩 몰려와 주변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싱크홀이 생긴 곳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사용했던 입구마저 감시하고 있던 탓에 혹여 애들이 미리 증언이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아카데미 지하가 가장 유력한 장소라 여기고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사건을 해결한 우리가 취조를 받거나 구금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사를 위해 주기적으로 조사원과 면담을 가지게 되었을 뿐. 그마저도 나는 거동조차 힘든 수준이라 집에서 요양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이 모든 걸 내 입을 통해 직접 들은 아실리에가 또다시 혼절할 뻔 했으나,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것인지 가벼운 현기증으로 끝났다. 어쩌면 미리 사건에 휘말릴 것을 알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차마 당사자 앞에서 그런 가설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여기서 더 맞았다간 진짜 힘들 거 같았거든.
“마력 기관에 무리가 갔네. 막 걱정할 건 아니야. 일종의 근육통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정신없이 밤이 흘러가는 와중에 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스승님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온 세네란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진단을 마쳤고, 나와 아실리에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기에 한동안은 헛짓거리할 생각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그녀와 스승님이 떠난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생각할 게 많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나도 피곤했기에 일단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잠들기로 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자고 일어나자 아무런 고민도 없이 현재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한 과거의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사건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미 제국과 왕국 그리고 성광십자회의 암묵적인 합의 아래 이뤄진 일이기 때문일까, 우리 집에 방문한 조사원은 내게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야 할 사항과 ‘공식적인’ 결과들을 전달하며 유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것에 그쳤다.
마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해야 할 답변들과 말들을 정리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 내가 처음에 바라던 형태의 결과를 얼추 얻어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에가 님께서 ‘사룡’의 목을 베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있었기에… 이를 제국 용사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 얼추.
하필 싱크홀에 당하지 않으면서 학업에 충실해 복습을 하던 몇몇 학생들이 날 봤다고 하더라. 솔직히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내용이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의 공을 셰릴 파티에 돌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 덕에 그냥저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든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는 법은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마지막으로, 사룡의 시체는 왕실과 다양한 마도서관들이 구입해 연구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이들은 처분에 대한 결정권을 에가 님께 위임했으니 다음 방문까지 고민하시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악마와의 연관성을 지우고자 사룡으로 공개된 짭용 크루멜리아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랬기에 사룡이라는 변명이 성립되었다.
그게 규칙을 어긴 현신 탓인지 아니면 크루멜리아의 고유 능력으로인한 의도치 않은 잔여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변형이 특기인 대악마가 남긴 잔여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높은 연구 가치가 있다는 모양이다. 당장 팔아도 문제는 없었지만 일단은 사흘 뒤에 있을 다음 방문까지 고민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대악마 주제에 돈 만질 기회는 확실하게 주었으니 나름 도움이 되는 새끼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