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29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295화(295/599)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가져 왔습니다. 귀족들이 건조해지기 쉬운 겨울에 쓰는 물건이라고 하더라구요. 난로가 옆에 두기만 해도 된다고 합니다.”
소모성 가습기라도 되는 것일까. 집들이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성실하게 선물까지 사 온 정성을 봐서 이번 일은 넘어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지크멜이 건네주는 선물을 받으며 확실하게 말해 두었다.
“다음에는 이런 경우라도 꼭 나한테 먼저 언질을 넣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친구보단 적이 많잖아? 네 정보 분석 능력을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귀족들하고도 척을 지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서 그래.”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크멜은 갱생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례답게 똑 부러지게 대답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녀석을 배웅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멀뚱히 라이카를 바라보고 서 있던 옌 티에에게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볼일 다 끝나고 갈 길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예. 아직 제 목숨값을 다 지불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뭔가 다른 용건이 있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쟤네 교단은 원래 저런가? 조금 많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물론 내 입장에서 네가 상단 금화 50개만큼의 일을 했다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그건 애당초 엔벨데에게 제시된 금액이었잖아?”
“길가에 떨어져 있던 보석을 주웠다하여 그 보석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잖습니까.”
“…으으음. 일단 들어와라.”
애 반응을 보아하니 잠깐 이야기한 거로 물러날 것 같지도 않아서 일단 집안에 들어가 이야기하기로 했다. 눈사람을 완성시키지 못한 걸 내심 아쉬워하며 따라 들어온 아실리에는 우리가 식탁에 자리 잡는 동안 마실 것을 준비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는 옌 티에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아무리 생각을 정리해도 얜 이미 내 머리 밖에 난 사람이었기에 정말 뭐 물어볼 게 없었다. 고용 기간 다 끝난 다음 날 뜬금없이 출근해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직원을 보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아실리에가 내준 차를 한 번 홀짝일 때가 되어서야 근황 물어보듯 운을 뗐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교단에 다녀왔습니다. 계약을 새로이 갱신했음을 보고해야 했거든요. 에가 님께 말씀드리고 가려고 했으나, 바삐 움직이실 뿐만 아니라 제게도 별 관심 없어 보이셔서 딱히 문제가 생길 것도 없다고 여기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잠입하던 애라 그런가 눈치가 백단이군. 내가 여기서 영지물을 찍고 있었다면 당장 쌍수를 들고 고용할 엘리트였겠지만… 정말 난감하게도 난 얘를 쓸 데가 전혀 없다.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녀석들의 역추적? 그런 게 있다면 기분은 좀 별로일 수 있겠으나, 내가 저질러 온 일의 경중을 따져보면 그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작두 타다가 선 넘는 놈들이 튀어나올 때 발목을 잘라도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내 안의 옌 티에 무용론에 힘을 실어 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난 꼬우면 직접 들이받아버린다고. 잠입 특화인 애를 옆에 둬봤자 쓸 데가 없다.
“네가 약속과 계약을 이행하는데 매우 성실하다는 점은 높게 사는데, 이미 레비엥 변경백이 정리된 이상 너에게 뭘 부탁할 게 없다. 그냥 계약 만료라 여기고 갈 길 가는 게 어때?”
엄연히 사람인데 계약을 빌미 삼아 얘를 남들한테 선물주듯이 주는 것도 영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목숨값만큼 돈으로 내놓으라고 말하는 건 일천 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이 만장일치로 개쓰레기 짓이라 외치는 수준이다. 비록 난감할지언정 은혜를 갚겠다는 사람에게 그건 좀 아니지.
그러니 좋게 좋게 설득하고 싶은데 옌 티에는 도무지 물러날 줄을 몰랐다.
“제 능력을 증명하여 교단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네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너도 봐서 알잖아? 난 누굴 감시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애가 멍청한 건 아니니 이 정도면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렸을 거라 기대한 내 바람이 통했는지, 옌 티에가 ‘아.’ 하는 표정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 자기 일에 열과 성의를 다 하다 보면 주변이 안 보일 수도 있…
“걱정하지 마시지요. 저희는 잠입을 위해 많은 기술들을 배우고 직업들을 흉내냅니다. 메이드의 업무도 자신 있으니 맡겨 주시길.”
…긴 개뿔. 어필하는 방향성만 구체적이게 변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이 작은 집에 무슨 사용인이 필요하겠…”
말하면서 생각해 보니 의외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실리에도 앞으로를 대비해 모험가 일을 늘리며 감을 되찾을 예정이라고 하고, 나 역시 상황이 정리되면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올 때까지 아카데미에서 죽치고 살게 될 테니까. 그 와중에 집 관리를 못할 건 없지만 수고를 덜 수 있다면 굳이 사서 고생할 이유도 없었다.
“계약서입니다.”
그런 내 고민을 눈치챈 옌 티에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움직여 품고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 두며 말을 이었다.
“계약과 동시에 저 옌 티에는 교단의 대리인이자 꿈을 섬기는 자로서 엘드미아 에가 님을 고용주로 여길 것이며, 이는 교역 금화 50개에 해당하는 업무를 마치거나 다른 계시가 있을 때까지 유효할 것입니다. 또한 고용과 동시에 고용주께 업무와 관련된 것 외에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며, 고용주의 안전과 관련된 일에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계약 중 보고 듣는 모든 개인 정보는 신의 이름으로 지켜지며, 이는 교단 계약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어 영구히 외부로 유출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죠?”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엔벨데가 원했던 계약이 이거였다는 것을.
“목숨을 구한 대가로 목숨을 건다는 건 많이 불합리하지 않냐?”
“뭐,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교단에 방문했을 때 받은 계시를 기반으로 작성된 조건이니까요.”
대체 뭘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며 뭔놈의 계시가 내려졌길래 이러는 건지는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말뿐만 아니라 계약서에 적힌 내용조차 고용주에게 한없이 유리한 조건들 뿐이었다. 너무 조건이 좋다 보니 이렇게까지 계약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강제 소매넣기. 고양이조차 집사를 간택할 때 이렇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진 않을 것이다. 방금 말한 계시라는 것과 연관이 있나?
세상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옆에 앉은 아실리에는 계약서의 내용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의견을 말했다.
“누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나중에 우리가 집을 비울 일이 있어도 걱정 없다는 거잖아? 그러면서 엘디가 신경써야 할 것도 없고.”
“그건 맞는데…”
엄연히 한 교단의 상징과도 같은 지위를 지닌 사람을 단순 집안 관리 및 유지를 위해 고용한다는 게 걸렸다.
“너 진짜 괜찮은 거냐? 대부분 마당이나 쓸고 마구간 청소나 하게 되는 건데?”
삶은 유한하다. 얘가 아무리 자기 종교에 신실하다고 한들 이런 형태로 신실하기 위해 다양한 잠입기술을 배운 건 아니겠지.
내 알 바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딱히 나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 준 것도 아닌 애라서 내 안에 숨어 있던 꼰대 근성 중 하나가 고개를 들며 인생 허투루 보냈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하지만 옌 티에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쁘지 않네요. 죽을 일은 없을 거 아닙니까.”
결국 나는 꿈을 섬기는 자를 가정부로 고용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늘어난 식솔 옌 티에는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해보이기 시작했다.
쓸 일이 없어 간단한 물건을 넣어 두는 창고용으로 쓰던 1층의 작은 방을 순식간에 정리하여 자신의 방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적어둔 집안 물품 정리 노트를 통해 자재와 재고를 파악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오겠다며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을 땐 여행자처럼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도에서 흔히 보이는 시민이 되어 있었다.
“교단을 방문한 사이에 다양한 일에 엮이셨었군요.”
심지어 대체 그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동안 어디서 주워들어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정보들까지 물고 말이다. 수많은 헛소문 중에서도 진짜에 가까운 것들을 정확하게 추려내는 그녀의 솜씨에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이 집에 같이 살고 있었던 것처럼 사 온 물건들을 능숙하게 정리정돈하는 옌 티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실리에의 모습이 웃겨서 보고 있었더니, 물건 정리를 마친 옌 티에가 점심 식사를 준비할 것처럼 식자재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개중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모험가 길드와 관련된 내용 정도인 거 같습니다. 에가 님과 대화하길 원하는 분위기라고 하더군요.”
“길드가?”
“주로 당텔 사건에 대해 길드장이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밖으로 도는 이야기에 불과하니 정말 그거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죠. 적당한 핑계를 찾고 있는 듯했으나, 에가 님께서 그 사건 이후로 모험가 일을 멈추고 아카데미에 재직 중이라 눈치를 보는 것 같더군요. 먼저 한 발 내딛고 생색을 내는 것만으로도 우위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정한다. 감탄하기엔 너무 일렀다. 난 이제야 진짜 감탄했다.
“나갔다 온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그런 걸 어디서 알아보고 온 거야?”
그러자 옌 티에는 오늘 처음으로 옅게 웃어 보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자신 있다고.”
대체 언제부터 유능한 메이드의 조건에 정보상 뺨치는 정보수집 항목이 들어간 것인지 몰라도 충분히 당당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