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화(3/599)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도적 놈들의 장비와 소지품을 정리하고 말들을 묶어 두고, 그 무지렁이들의 시체를 부모님 무덤에서 멀찍히 치워 놓은 우리는 산속에 있는 내 집에 도착했다.
원래 언제 어떻게 습격이 올지 몰라 토굴에서 지냈었는데, 아실리에가 말하길 더 이상 주변에 위협은 없다고 한다.
집 안은 깔끔했다.
그날 어머니가 마을에 내려가지 않았으면 가족 모두 살아 있었을 거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갑자기 슬픔이 복받쳐 온다.
“가죠. 일단은 씻어야합니다. 청결은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니까요.”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는지 간단한 옷가지를 챙기는 사이 둔해진 손놀림을 보고 눈치를 챈 건지 모르겠지만, 벽난로에서 비누를 대신할 재 가루를 모아 작은 나무통에 담은 아실리에가 부드럽게 말하며 내 어깨를 품어 주었다. 겨우 3일인데도 사람다운 온기가 너무나도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진다.
계곡은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리 멀리 갈 필요 없었지만 어두웠다. 횃불이라도 만들어야 싶었는데 아실리에는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빛의 구슬을 소환해서 날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르른 계곡은 정작 보름달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서 굳이 빛의 구슬이 없어도 될 만큼 밝았다. 가을의 찬 계곡물로 씻을 생각에 벌써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도 아실리에는 어김없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계곡물이 구체 모양으로 떠오르더니 물가로 날아오는 게 아닌가?
“이건 정령들의 도움을 받은 겁니다.”
어느새 아실리에의 손끝에서부터 작은 불도마뱀 같은 것들이 날아올라 허공에 떠 있는 물 구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하는 건지 눈치챌 수 있었기에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수라니…! 이런 환경에서 친환경 온수라니! 내 감격한 얼굴을 보며 한 차례 웃어 보인 아실리에가 내 머리를 씻겨 주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습니다. 규모로 놓고 보면 도시에 좀 더 가깝겠군요. 도적들의 장비와 말들을 가져다 팔면 돈이 될 겁니다.”
달빛이 비친 계곡을 바라보니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딱 좋은 온수가 끊임없이 머리를 적시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머리를 감겨 주는 아실리에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이야기를 들었다.
“검과 단검 그리고 건틀릿 정도는 남겨두고 쓰면 유용하겠군요. 어차피 가진 것도 얼마 없는 자들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원래 잡혀 있던 노예 상인을 털어서 주머니는 두둑할 겁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있어도 될 법한 내용 같은데 계약을 신경 쓰는 건지 대화 자체를 신경 쓰는 건지 그녀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나에게 이야기해준다. 그건 매우 좋았지만 이어지는 존댓말은 좀 불편했다.
“누나 그냥 말 편하게 하세요.”
“에?”
“아뇨, 어차피 말이 계약이지 제가 윗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8년은 볼 사이인데 괜히 누나가 존댓말을 쓰는 건 좀 그래요.”
“그, 그럴…까?”
“네.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 그런데 아직 네 이름을 못 들었구나.”
이런. 정신없다 보니 자기소개도 까먹고 있었다.
“엘드미아 에가라고 해요. 라단 에가와 에비셔 루이나의 아들 엘드미아 에가.”
“너는…그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거 같지 않은데, 네 또래에게 그런 소개를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단다. 정말 볼수록 신기한 아이로구나.”
“애같지 않아서?”
웃음기 섞인 질문을 던지자 머리를 감겨 주던 손이 웃음과 함께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자신도 자각하는 거니?”
“알죠. 그거 감추느라 부단히 노력했는데.”
“감춰? 누구한테?”
“마을 사람들이랑 부모님 모두요.”
덕분에 말없는 아이로 취급 받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할 정도로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진 않았으니, 주변 애들 행동을 보며 적당히 따라 한 탓에 생긴 인식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실리에는 그건 꽤 힘들었겠구나 라며 맞장구 쳐줬다. 이것이 120살의 연륜인 것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도적들을 상대할 때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어떻게 한 거니?”
주제의 전환이 좀 갑작스럽다. 아마 내가 과거를 떠올리며 우울해지는 걸 염두하는 듯싶다. 그 배려를 굳이 걷어 찰 이유는 없었기에 그냥 대화를 따라가기로 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했어요.”
“응? 벌써 마법을 쓸 줄 아는 거니?”
“아뇨. 마법은 못 써요. 그냥 마력만 느끼는 정도에다가 몸에 둘러서 힘만 세게 할 수 있는 정도예요.”
1년만 더 버텼으면 배웠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실리에는 머리를 감겨 주던 손이 멈추면서 내 몸을 돌리고 얼굴을 마주했다. 뭔가 싶어서 올려다본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마력을 느낀지 얼마나 되었니?”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3년은 됐죠?”
“3년? 5살 때? 혹시 그사이 어디 아프거나 열병이 난 적은 없었니?”
“8년 인생 항상 건강했는데요.”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혹시 그거인가? 나 재능 충이었던 건가? 알고 보니 환생한 이유가 있는 놈이었나?
하지만 왜요? 라며 넌지시 물어봐서 들은 대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거…하지 마렴.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죽는단다.”
“…네?”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가린 채 고민하면서도 아실리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답했다.
“정말…네 상황에 이런 말을 하기도 모호하지만 신께서 보우하신 수준이야. 아마도가 아니라 그러면 죽는 게 정상이란다.”
엘드미아 궁극기라고 생각했던 기술이 사실 자살기랜다. 애써 표정을 정리한 뒤 다시 나를 씻겨 주며 알려 준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법사는 마나로 마법을 발현한다. 기사는 오러로 육체를 강화한다. 그건 단순히 이음동의어가 아니라 진짜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하는 거였다.
마력을 정제해서 마나로 치환하는 거고 마력을 정제해서 오러로 치환한다. 마력은 원석에 불과하다.
“전투 마법사나 마법 기사는 매우 보기 드물단다. 정말로 같은 마력을 쓴다면 굳이 드물 이유가 없겠지?”
굳이 비유가 필요하진 않다고 여겼는데 막상 듣고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단순히 익히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예 한 길만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에서는 두 갈래 길을 어떤 방법으로든 다 파려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적다. 그런데도 이름을 알린 사람들은 극소수다. 그 이유는 그냥 이론만 다른 게 아니라 진짜 아예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제빵 장인이 케이크 장인을 꿈꾸는 정도의 문제일 거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테이크 장인과 초밥 장인 만큼의 괴리감이 존재했다.
그렇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건 정제되지 않는 순수한 마력이었다. 아무도 통으로 쓸 생각하지 않는 그냥 마력 덩어리.
“비유하자면…암염이지. 조금 조각내서, 가루로 빻아 조금씩 먹어야 하는 소금을 넌 지금 덩어리로 먹고 있는 것이란다.”
그야말로 입안이 짜지는 엄청난 비유였다. 심지어 하필 소금이라서 진짜 존나 몸에 안 좋을 거 같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자 아실리에의 표정은 한차례 더 의아함에 빠져들었다.
“정말 볼수록 뜻밖이구나. 인간들은 비싸다는 이유로 아끼는 거지 오히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무조건 몸에 좋다는 풍조까지 있는데?”
집으로 돌아와 몸과 머리를 말리는 손길에 휘둘리며 생각하니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싶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기에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그 치들이 미개한 거라고 하죠 그냥.”
“후후후. 8년이 지루할 거 같지 않구나. 아샤께서 인도하심인 걸까.”
세계수의 수호자이자 엘프의 신이었던가? 종교적인 가르침이 따로 있는 건가 하는 식의 궁금증이 일었지만 다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튼 지금은 암염이다.
당연히 몸에 좋지 않다.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첫 시도하자마자 죽은 사람들이 기록된 것만 수백 명이라고 한다.
진짜 말 그대로 펑 하고 터져 죽는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강한 마법사와 기사들은 그 정제의 기술과 더불어 점점 익숙하게 마력의 배율을 늘리는 것에 가깝단다. 최종적으로 대마법사의 위치에 오르는 이들조차 마력을 통째로 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어.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애당초 마법사가 알려 준 마력을 느끼는 방법은 말 그대로 느끼는 거에 불과했다. 아무리 수십 년간 죽어라 연습해도 손가락에만 느껴지던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에 불과하지 그렇게 느낀 마력을 직접 운용하게 되는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즉, 난 원래 아무것도 못 해야 정상이다.
딴 건 자동차 면허였는데 아무 문제없이 비행기를 운전한 격이다. 아니 그럼 난 뭐야 대체?
“일단은 나도 너를 더 알아야 하니 두고 보자꾸나. 네가 역사에 유례가 없는 신동일 수도있지만, 그런 희박한 가능성에 은인의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아.”
“네.”
어차피 조바심 낼 건 없기에 덤덤히 받아들였다. 나는 정신연령 서른을 바라보는 엘드미아 에가니까. 기다릴 줄 아는 남자다.
아실리에는 그런 덤덤한 반응에 우려를 표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로 끝냈다. 신뢰라고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