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0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02화(302/599)
‘이거 애먼 놈이면 좆되겠는데.’
광대놀음을 하며 분위기를 띄울 줄 알던 아브남의 측근 메켈은 추위와는 다른 이유로 솜털까지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적대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검을 바닥으로 기울였다. 적이라면 위태롭고, 적이 아니라면 굳이 반감을 심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엘프 쪽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남자 쪽은 그 짧은 순간에 자신들이 꺼내 놓은 무기를 보더니 순식간에 적대적인 눈깔로 바뀌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여긴 메켈은 동료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최우선은 대장의 보호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령권자로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을 다른 사람이 해야 했다.
“거 실례합니다! 이곳은 관문 도시 라비엘에서 지원하고 있는 개척 마을인데, 어쩐 일로 오셨는지?”
제발 다짜고짜 달려드는 개같은 일은 없길 바라며 시도한 대화는 꽤 성공적이었다. 대번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으니까.
“라비엘 모험가 길드에서 요청한 지원 의뢰를 수주한 적급 모험가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담당자를 만나고 싶습니다만.”
하지만 돌아온 정중한 대답에 이번에는 메켈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눈빛이 바뀌고 말았다.
대장의 손을 잘랐다는 인간. 그랬음에도 복수는커녕 무조건 피하라고 그렇게나 난리쳤던 인간이 왜 여기에? 우연인가? 엔글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또 마주치는 걸 과연 우연이라고 봐도 될까?
순간 다양한 고민이 메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당장 중요한 건 자신들이 움찔거렸음에도 자신을 엘드미아 에가라고 밝힌 저 남자가 그다지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가 됐든 자신의 이름을 듣고 움찔거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녀석이 대장을 추적한 거였다면 대뜸 도끼눈을 떴을 테니까.
“아, 그러셨구만. 딱히 검문이라고 할 건 없지만 형식 상 모험가 패좀 보여주시겠수? 옆의 엘프 분도 같은 모험가이신가?”
“네. 마찬가지로 같은 적급입니다.”
“어디보자… 확인했수다. 협조 고맙수. 길드에서 파견된 관리자는 저어기 보이는 신전같은 건물에 있을 거요.”
그리고 메켈의 추측은 정확했다. 별 말 없이 길을 열어 주자 처음 보여줬던 반응은 온데간데없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까지 건넨 엘드미아의 뒷모습이 저 멀리 눈보라 너머로 흐릿해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메켈은 뒤늦게 아브남을 돌아보았다.
“대장. 숨셔요 숨. 갔잖습니까.”
“후우…씨이이바아알…”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려 준다. 세상에, 누가 보면 혼자 여름인 줄 알겠군. 직접 보기 전까지는 왜 그렇게 이름만 들어도 경을 치나 의아했는데 직접 마주 보고 나니 이해가 갔다.
저건 실력을 떠나서 존나게 위험한 새끼다. 상대의 숫자가 얼마가 됐든 수 틀리면 칼부터 뽑는 놈들의 눈빛이 보통 저랬다. 그리고 그런 미친놈들은 대부분 한가락 하는 놈들이었다.
“미친, 저게 15살이라고?”
“대체 어린놈이 뭘 먹고 단련을 하면 몸이 저렇게 되는 거야? 나도 좀 알고 싶네 씨벌.”
태연한 척 모닥불 옆에 앉아 있지만 여전히 손을 벌벌 떠는 아브남을 보면서 부하들이 한 마디 씩 거들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이를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 한번 정도는 마음이 꺾일 만한 치명적인 일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래도 대장 얼굴 못 알아보고 지나간 거 아닙니까? 괜찮은 거 아뇨?”
“나도 몰라 씨발…”
정말 몰라서 그냥 지나간 것인지, 오그웬 인근 서부에는 얼씬도 안 해서 봐준 건지, 그도 아니면 아브남이 엘드미아를 찾아간 게 아니라 엘드미아가 아브남이 있는 곳으로 왔으니 눈 감아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팔이 잘리던 그날 입에 담았던 말은 철저하게 지켰으니 차라리 당당하게 밝히는 게 나을까? 괜히 밝혔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기억에 눈 돌아간 저놈이 내 목을 치려고 하면 어쩌지?
“일단… 나중에 공적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눌 일이 생기겠지. 의뢰로 왔다고 했으니 관리자가 한 번쯤은 사람들을 모아서 통성명 시킬 테니까. 그 때 반응을 보고 결정하련다.”
“뭔 결정이요?”
“뭐긴 뭐야 도망치든, 계속 의뢰를 이어나가든 하나는 선택해야지.”
아브남도 몇 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다. 그렇게 키운 실력으로 적급도 달았으니 나름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누가 귀족 저택에 들어가 수십 명을 도륙낼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개소리 말라며 싸대기를 갈겨줄 의향이 있다. 살아서 기어나올 자신도 없거니와 설령 살아 나온다고 해도 왕국에 발 붙이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랬기 때문에 수도 한복판에서 귀족의 저택을 뒤집어 놓고도 태연하게 왕국에서 살고 있는 엘드미아를 적대한다는 발상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낌새가 이상하면 당장 튄다고 생각해라.”
“예.”
모닥불을 쬐고 있음에도 체온이 빠져나가는 기분 속에서 아브남은 제발 엘드미아가 자신을 완전히 잊었기를 바랐다.
◈
“세상 참 좁아.”
“음? 왜? 엘디가 아는 사람이야?”
“응, 딱히 아는 척 할 정도는 아니고.”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분명 오그웬에서 죽이려던 거 팔만 자르고 살려 줬던 놈이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배나온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는데 근육질에 그때와 달리 험상궂은 상처들이 많이 나서 긴가민가했지만 분명 동일 인물이었다.
“뭔가 잔뜩 긴장한 모습이던데 또 어디서 괴롭혔던 사람인 거니?”
“괴롭히다니? 합당한 응징을 했을 뿐인데요.”
다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놈을 팔도 붙일 수 있게 해주고 살려주기까지 했는데 그걸 어떻게 괴롭혔다고 표현할 수 있겠어. 처음엔 지크멜처럼 아는 척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바짝 쫄아있는 데다가 굳이 나에게 뭘 하려고 들지 않았기에 일단 넘어갔다.
실제로 오그웬 인근에서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기에 딱히 태클을 걸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고, 당장 미친 듯이 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피곤해서 빨리 쉬고 싶은 것도 있었다.
수도를 벗어나 라비엘 인근까지 도달했을 때까지는 그래도 평범하던 눈발이었으나 이 마을에 가까워질 수록 점점 거세지더니 지금은 곳곳에 밝혀진 불로 겨우 주변을 분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몰아치고 있으니, 아무리 몸이 건장해지고 나름 추위에 대비가 되어 있다고 한들 이런 눈보라를 뚫고 다니는 건 여러모로 기가 빨리는 일이었다.
우리가 좀 빨리 달려서 추워진 거라면 불의 정령님께 빌어서 온기라도 받아 냈을 테지만, 지극히 평범한 자연 현상 앞에서 그랬다간 다른 정령님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보니 나도 아실리에도 손발이 얼얼한 지경에 이르렀다.
[눈보라! 재밌어!]“그래, 재밌어서 좋겠다.”
추위를 느끼지 않는 라이카만이 신난 상황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신전으로 향하는 동안 둘러본 마을은 확실히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당시엔 신전을 제외하고는 사람 사는 건물만 겨우 지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마을 회관부터 시작해 한창 보강중인 목책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누구십니까!”
눈보라만 아니었다면 느긋하게 구경하며 갔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좀 서둘러 말을 몰았기 때문일까. 아직 조금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전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물어왔다.
“라비엘의 지원 의뢰를 수주 받은 적급 모험가 엘드미아 에가입니다! 관리자 분이 이곳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아! 잘 오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오시죠!”
단순히 고용된 용병이나 모험가라고 하기엔 참 살가운 반응이었다. 좀 더 다가가서 보니 우리를 환영한 남자는 달랑 몽둥이 하나만 들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모험가님! 이콥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궃은 날 마을을 위해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콥. 마을 분이신가보군요?”
“네. 부상자가 늘어서 일손이 부족거든요. 말들은 제가 마구간에 옮겨 두겠습… 어이쿠! 개도 있었군요?”
마을 건축은 꽤 진행된 걸로 알고 있는데 부상자로 인해 경비 인력이 부족하다니,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나는 이콥이라는 마을 사람에게 아실리에가 타고 온 말의 고삐까지 함께 넘기며 물었다.
“말을 잘 알아 듣는 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부상자가 많은 편인가요?”
“적지는 않습니다. 이 눈보라가 올 걸 알고 있었는지 몰라도 최근 며칠 사이 마물들이 좀 많이 습격했거든요. 어제만 해도 모험가 네 분이 오크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죠.”
말하면서도 딱히 겁먹지 않는 걸 보아하니 그래도 모험가들이 일은 똑바로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은 감사를 표한 뒤 그가 알려 준대로 신전 내부에 들어서자 온갖 잡동사니와 사무용품들이 잔뜩 널려 있는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후끈한 온기가 확하고 와닿는 건 좋았으나, 관리자라는 사람이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신전으로 옮겨 일하고 있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것만 같다보니 역시 느낌은 좋지 않았다.
부상자가 많거나, 묵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소리일 테니까.
“누구…”
영 달갑지 않은 추측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느라 잠깐 멍 때리는 사이 누군가 말을 걸어와서 고개를 돌려보니, 길드의 의복을 걸친 채 많은 서류 더미를 들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수많은 피해자들과 함께 내게로 와 복수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여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