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0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04화(304/599)
근무 교대라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가는 녀석들을 지나치며 회관 안쪽으로 점차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란스럽던 회관도 조금씩 조용해져갔다.
생각이 제대로 박힌 놈들은 경계를, 조금 덜 떨어진 놈들은 어김없이 아실리에와 나를 번갈아 보며 혀를 차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그들 사이에 여자 모험가나 용병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엘프와 비빌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지닌 이들은 없는 게 원인인 듯싶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방금 전까지 일종의 여왕 취급을 받던 여자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썩어들어갔다. 흠, 저런 건 어딜 가도 있군.
“그쪽이 바드나 벡헨?”
주변의 시선에 기죽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지만 혹여 누가 시비라도 걸지 않을까 싶어 시도한 경계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고기를 지푸라기라도 되는 것처럼 먹고 있는 바드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그 주변에서 꿋꿋하게 같이 식사를 하던 세 명이 순식간에 도끼눈을 치켜뜨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 줌으로써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뭐지? 두 눈을 뽑히고 싶다는 암시인가?
누구 하나 들고 일어나는 일은 없었으나 마치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바드나는 그 침묵 속에서 여전히 식사를 이어 나가며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되물었다.
“그쪽은?”
그 꼴이 마치 마피아 영화에서 볼 법한 여유로운 보스와도 같은데… 이놈이 지금 텃세를 부리는 건지, 그냥 원래 컨셉에 충만한 놈인 건지 긴가민가하다.
“수도에서 라비엘 모험가 길드의 의뢰를 받고 온 모험가. 관리자 시엘에게 물어보니 모험가 업무는 당신이 관리한다던데?”
내 대답에 이번엔 스튜 그릇에 박혀 있던 바드나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다른 녀석들처럼 감정적이기보단 자신의 식사 태도만큼이나 무미건조한 시선이었다. 그렇게 쓸데없이 무게를 잡던 녀석은 여전히 최악의 먹방을 이어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바드나 벡헨. 라비엘의 민간 길드 ‘접힌 금화’ 소속 적급 모험가다.”
옘병, 자기소개 한 번 더럽게 독특하게 하는 친구로군. 이거 진짜 무게 잡는 건가? 순간 왜 길드 이름을 접힌 금화라고 지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주변 놈들의 반응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빨리 대화를 마치기로 했다.
이 녀석이 밥 먹는 거 계속 지켜보다간 나도 모르게 뒤통수 한 대 때릴 것만 같다.
“적급 모험가 엘드미아 에가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됐으니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정적은 똑같이 이어졌으나 반응이 달랐다. 방금 전까지 도끼눈을 뜨던 놈들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바드나는 잠깐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수도엔 엘드미아 에가라는 이름이 흔한가보군.”
“왜? 같은 이름인 사람이라도 만났나?”
“만나진 못했지만 소문은 들었지. 최근 단두대라는 별명으로 엄청 유명해서 말이야. 너도 수도에서 왔다면 알 텐데?”
그리고 이번에는 녀석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내가 얼빠질 차례였다.
진짜 이놈의 판타지 세계에서 소문과 정보라는 것들은 병신같이 흐른다. 사기꾼한테 속는 새끼가 나오지를 않나, 그래놓고 당사자를 놓고도 동일 인물이라고 인식을 못 하질 않나. 이게 말이 되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하루로군. 잠깐 마른세수를 하며 고민을 마친 나는 일단 이들에게 확실히 말해 두기로 했다.
“그게 나야.”
“뭐?”
“그게 나라고.”
솔직히 바드나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사기꾼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놈에게 뺨 맞은 적이 있다 보니 저절로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이름을 알린 뒤에 개피 보는 경우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정하기 않았기에 입안이 쓰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씨발,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어쩌면 이세계에 핸드폰같은 게 보급되기 전까지는 계속 이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참담한 심경을 느끼는 나와 달리 주변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바드나 이 새끼는 원래 표정이 그 모양인 건지 박장대소하는 다른 놈들과 달리 어깨를 들썩이며 묘한 낄낄 거림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 있던 놈들은 아예 큰소리로 외쳤다.
“흐하하하! 들었냐? 단두대라고 하신다! 그 유명한 단두대가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오셨네!”
“반역자의 목까지 쳤으면서 돈이 부족해지셨나? 아니구만! 전쟁이라고 나라에서 돈을 떼어먹은 게 분명하겠어! 이거 안타깝구만!”
“가엔달 파티랑 같이 다닌다던데 그치들은 어디 가고 혼자 오셨나? 아, 나중에 오나? 이거 내가 너무 서둘렀네! 으하하하!”
이 씨벌 것들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네.
◈
“망할 모험가 새끼들은 이래서 안 돼. 시간을 지킬 줄 모른다니까.”
“낄낄낄. 그러게 애들 다 데리고 오지 왜 인원을 찢어서 엉뚱한 놈들이랑 섞여 고생을 하십니까 그래.”
늦게 온 근무자들과 교대를 마친 아브남은 걸음을 서두르며 투덜거리는 것에 딴지를 걸며 웃는 메켈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며 말했다.
“늬들이 제때 적급으로 승급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 이 자식아!”
아브남의 열다섯 부하들은 죄다 청급이었고, 이번 일은 엄연히 적급 의뢰였다. 엔글렘이었다면 아무 문제없이 적당히 대화로 해결보고 다 데려올 수 있었겠지만 이 곳은 라비엘이었다. 그나마 메켈을 비롯한 부하 셋을 자신의 명의로 동행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청급 실적이 좋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두 놈만 더 적급이었더라면. 그렇게 혀를 차는 아브남을 보며 메켈이 아이가 없다는 듯이 반박했다.
“에이 씨. 언제는 따지 말라고 했으면서 진짜.”
청급으로 있으면 모험가를 상대로 싸울 때 방심을 유도하기 좋다는 이유로 승급 심사를 등한시해도 뭐라 하지 않았던 건 대장인 아브남이었기에 지극히 타당한 반박이었다.
졸지에 비겁하게 팩트로 맞아버린 아브남은 우물쭈물거리다가 괜히 메켈의 뒤통수를 한 번 더 때렸다.
“꼬우면 대장해!”
“에잇 퉷퉷. 더럽고 치사하다 진짜!”
다른 부하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사납게 웃어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짝 굳어 있던 아브남이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것은 순전히 메켈 덕이었기에 그들은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띄울 뿐이었다.
“아까 긴장해서 그런가 더럽게 배고프네. 엘드미아는 이미 식사 끝냈겠지?”
“들어간지 한참 지났으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관리자랑 뭐 나눌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닐 텐데.”
“그, 그렇겠지? 아는 사이도 아닐 테니.”
관리자 시엘과 엘드미아가 구면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아브남은 메켈의 추임새에 힘입어 회관으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어차피 소개를 하더라도 이런 눈보라 치는 저녁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 하겠지라는 안일한 믿음도 속도를 올리는 데 한몫했다.
그 결과 아브남과 그의 부하들은 금방 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맞이하는 온기와 큰 웃음소리에 의아해했다.
“뭐야, 뭔 일 있나? 간만에 분위기가 좋은데?”
평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접힌 금화 소속 모험가들과 다른 모험가들끼리 기 싸움을 하느라 삭막했었는데 참 보기 드문 일이었다. 지금까지 눈보라로부터 몸을 지켜 준 두꺼운 망토를 벗으며 살펴보니 용병, 모험가 할 것 없이 모두가 신나게 웃고 있어서 아브남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새끼들, 뭐 좋은 일이 있었길……”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게 없을까 주변을 훑으며 중얼거리던 아브남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보던 메켈과 부하들은 뒤늦게 아브남의 반응을 눈치챘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함과 동시에 똑같이 굳어 버렸다.
모험가들이 웃음과 비웃음을 터트리며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엘프를 동행하고 있는 모험가는 엘드미아 뿐이었으니까.
“우리 단두대 님께서는 입이 무겁구만? 단두대라서 입이 없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자기가 단두대라고 아까 잘만 말하던데!”
“미, 미, 미…!”
이 미친 새끼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거야!?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져 나올 뻔한 외침을 꾸역꾸역 삼키며 아브남은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싸늘하게 식어 있던 몸에서 다시금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내일 감기 몸살에 걸리는 건 기정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딴 것보다 중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한 아브남은 발걸음을 움직였다. 지금 봐야 하는 건 엘드미아의 뒤통수가 아니라 표정이었다. 다행히 엘드미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남은 금방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웃는 와중에 홀로 빡쳐 있는 엘드미아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말의 주저 없이 달렸다.
“씨발씨발씨발씨발!”
종종걸음으로 엘드미아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과는 상반되는 긴박한 움직임으로 미친 듯이 회관의 정문까지 달리자, 상황을 파악한 그의 부하들도 재빠르게 아브남의 뒤를 따랐다. 중간중간 다른 이들이 아브남을 미친놈 보듯 했으나 아브남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원래 미친놈들은 그런 법이다. 지들이 미친 줄 모른다.
“이봐! 단두대! 댁이 싸울 때마다 외치는 말이 있다며?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 여기서도 한 번 시원하게 질러보라고!”
오그웬에서 교훈을 얻은 이후로 미친놈들과는 상종을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아브남이었으나, 화톳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정신나간 외침에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반응하고 말았다.
“이 씨발 미친 새끼들아!! 작작해!!”
그의 울음 섞인 외침에 회관 안에서 신나게 웃던 이들이 놀라며 아브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한 발이라도 더 회관에서 멀어지기 위해 죽어라 달렸다. 엘드미아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혼자서 귀족 저택을 초토화시킨 인간이 작정하고 날뛰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걸 굳이 제 몸을 희생해가며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예기치 못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한 회관에, 꿈에서조차 듣게 되면 오줌을 지리며 깨어나야 했던 한 마디가 아브남의 귓가에 들려왔다.
“엘드미아 에가라고 한다.”
“으아아아!!”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죄다 쏟아 내며 달리던 아브남은 코앞에 보이는 출구를 향해 일말의 주저도 없이 몸을 던졌다. 제대로 된 착지를 염두하지 않은 탓에 쓰러지마자 입구의 계단에서 구르고 부하들에게 부딪치는 등 난장판이 되었지만 아브남이 느낀 것은 격한 안도감이었다.
그와 동시에 회관에서부터 무언가 거하게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