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1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12화(312/599)
역모죄로 죄다 모가지가 날아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진행한 사업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라비엘의 반응은 마을에서 경비만 서고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즉각적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겨우 하룻밤 만에 거짓말처럼 맑아진 하늘에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비룡의 움직임이 마을 감시탑에서조차 보일 정도였거든. 급보를 보내야 할 땐 평범한 고도로 날아가다가 다른 비룡들과 마찰이 생길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평소보다 고도를 올려서 다닌다고는 들었었는데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도에 살면서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흠, 아닌가? 단순히 내가 하늘을 좀 덜 보고 살고 있었던 건가?”
돌이켜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전생에서도 여유가 없을 땐 2층 건물 이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적 없이 수개월을 살기도 했었지. 워낙 탁 트인 세계라 딱히 자각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공중에서 뜬금없이 습격당하는 경우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 의식적으로 하늘 좀 보고 살아야겠다.
그런 감상에 빠져 여유롭게 감시탑에 앉아 쉬고 있었더니 아래에서 아브남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드미아 님! 라비엘에 갔던 용병이 돌아왔습니다!”
팔 잘렸던 놈이라고 부르니까 조심스레 이름을 알려주더라고. 안 그래도 부르기 힘들었는데 확실히 눈치가 빠른 인간으로 진화했다.
“혼자?”
“아뇨! 기사랑 같이 왔습니다! 관리자 시엘이 만신전에서 모여 대표끼리 회의를 할 테니 잠깐 오시라던데요!”
누구랑 같이 왔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이야기였으나 그 대상이 의외였다. 관문 도시에 상주할 수 있는 기사라고는 셋 밖에 없을 텐데 거기서 한 명을 뽑아 보냈다고? 세게 나오는데?
“회의는 그렇다 치고, 기사? 나이는?”
“어… 어려 보였습니다?”
뭐야, 왜 뒤가 의문형인데.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이어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미심쩍은 눈으로 아브남을 바라봤지만 녀석은 그저 우물쭈물거릴 뿐이었고,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엔 글렀다는 확신과 함께 일단 감시탐에서 내려왔다.
“나 대신 잠깐 근무 좀 서 줘라. 다녀올게.”
“넵! 느긋하게 다녀오십쇼!”
뭔가 근무 짬 때리는 거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지만 일단은 모험가 놈들 대표직을 무력으로 꿰찼으니 안 갈 수도 없었기에 나중에 돌아올 때 주방에서 술 한 병이라도 사서 쥐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녀석이 알려 준대로 만신전 방향으로 향했다.
밤 중에 오크들이 당도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뒤늦게 추가 보고를 했는데도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기사가 라비엘을 대표해서 방문한 건 굉장히 신선했다. 그만큼 지금의 라비엘에 모험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일손이 부족해진 것인지 궁금해졌다.
생각보다 그 길드장이 이것저것 많이 해 먹었던 걸까? 그렇다면 엔글렘도 그렇고 관문도시 모험가 길드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졌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나중에 시간 내서 바드나를 붙잡고 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 오셨군요! 안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시탑과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니었기에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근무를 서고 있는 이콥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안으로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내 시선은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에게 향했고, 왜 아브남이 나이에 대한 질문에 어중간하게 반응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겉보기엔 참 멀쩡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금발 청년은 아무리 많이 봐줘도 스무 살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어지간한 천재가 아닌 이상 이제 갓 서임을 받은 평기사라는 이야기지. 그에 비해 걸치고 있는 갑옷에서는 말 그대로 빛이 나고, 허리에 매고 있는 검도 싸구려가 아니라 적당한 장식과 금박을 통해 값 좀 나간다는 것을 어필한다.
아무런 뒷배 없이 시작하는 평기사라면 결코 꿈꿀 수 없는 장비들이다.
“비스퀜테 경, 이쪽이 모험가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적급 모험가 엘드미아 에가입니다. 엘드미아 님? 이분은 관문 도시 라비엘에서 파견된 기사 비스퀜테 다 라비엘 경입니다.”
다행히 시엘이 먼저 나서서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들여야 했던 수고를 덜어줬다. 그나저나 라비엘이라니, 사사건건 휘둘리기만 하는 관문 도시라고 여겼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저 나이면 무조건 후계자일 텐데 오크 수백마리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곳에 찔러넣을 줄이야.
단순히 왕가를 향한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버림패로 썼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침착한 반응이니,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안정적인 지원을 받아 업적 하나 안겨주겠다는 의도이리라.
“적급 모험가 엘드미아 에가입니다. 직접 이번 정찰에 나서서 오크들의 부락을 확인한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예를 취하며 인사를 건네자 웃음 따위 지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비스퀜테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목격자가 관리자라니, 번거롭게 일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요. 라비엘은 오크의 군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허투루 여기지 않고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귀하의 관측이 정확했다면 이후에 큰 보상이 있을 겁니다.”
권력자의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존칭을 써 주고, 적당히 자신들이 취한 행동을 포장하며 신뢰를 내비침과 동시에 협박까지 할 줄 아는 똑똑한 친구로군. 나쁘지 않은 인재의 냄새가 났기에 난 정중하게 웃으며 화답해줬다.
“마을의 안전이 확보된다면 전적으로 라비엘의 빠르고 현명한 대처 덕분이겠죠. 이번 토벌을 주도할 비스퀜테 경의 명성 또한 수도까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휘자로 앉게 된 이상 대처 좆같게 하는 순간 너도 개쪽이니 처신 잘하라고.
똑똑한 인재의 스멜을 풍기던 비스퀜테는 단박에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웃어?
“과연. 소문은 보통 믿을 게 못 된다고 하는데, 에가 경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느껴지는군요.”
내 소문이야 평민들은 어떨지 몰라도 귀족들 사이에서는 열심히 퍼졌을 테니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건방지다고 미간을 찡그려야 정상인데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반응을 보이니 영 기분이 이상하다.
욕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상 성욕자라면 천성 욕쟁이인 내 입장에서는 근처에도 다가가고 싶지 않은데?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경이라 불릴 처지는 못 됩니다.”
“권력과 지위를 마다하였다한들 그 위업과 품위는 숨길 수 없는 법이지요. 하물며 반역자를 직접 단죄하고 왕실의 권위와 국법을 바로 세웠으니 만인의 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로 뵙게 될 줄은 몰랐으나, 레비엥의 단두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랍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중한 반응일뿐만 아니라 손에 꼽을 만큼 제대로 된 귀족적인 반응이었다.
라비엘의 영주는 부하 운은 좆박을 쳤어도 자식 농사에서는 로또를 맞았던 것인가? 심지어 비스퀜테는 시엘과 칼 굴스의 시선에도 괘념치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걸 또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뻘쭘하게 손을 내미니 아무런 힘 겨루기 없이 정중한 악수가 이어졌다.
“도시에 숨어들었던 역모의 씨앗을 경 덕분에 알아차리고 뒤늦게나마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진데 이렇게 또 한 번 라비엘에 도움을 주셨으니 반드시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호의가 듬뿍 담긴 반응 때문에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고, 그런 우리를 굉장히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칼 굴스와 시엘은 일단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침묵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반응했다.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내게 자리를 권한 비스퀜테가 매우 품위 있는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비엘에는 현재 밖으로 돌릴 수 있는 병력이 없습니다. 왕실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도시 경비 병력을 제외한 가문의 사병을 조금 서둘러 축소했거든요. 대신 가문의 금고를 뜯기로 결단을 내렸으나,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 탓에 당장 만족스러운 지원 병력이 오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충분히 납득하고 예상했던 내용인지라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오히려 생판 처음 보는 귀족이 이렇게까지 무탈하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게 더 놀라울 뿐.
내가 휘하의 병력에게 칼질을 한 것도 아니고, 구면인 것도 아닌데 정말 이렇게까지 호의적이라고? 사실 고도의 심리전인 게 아닐까?
간만에 일천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이 비스퀜테의 의중을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하는 사이 칼 굴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받았다.
“자네가 오기 전까지 우리 용병단의 추가 병력을 고용할 의사도 내비치셨지만, 이쪽도 당장 불러 올 수 있는 녀석들이 없어서 말이지.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수도에 잔류하고 있는 모험가들과 일부 호의적인 귀족들의 사병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게 한계이지 않을까 싶더군.”
모험가들이야 돈을 뿌린다면 신나서 달려올 게 뻔하지만 귀족들의 사병은 애매하다. 실상 수도에 있는 이들은 외부로 사병을 움직일 때 왕실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이변인 건 맞아도 막 그렇게 드문 이변까지는 아니라는 거지. 게이트가 의심된다는 보고가 닿았거나 애초부터 왕실이 그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승인 결재에만 하루 정도는 통째로 잡아먹을 것이다.
승인 여부조차 불확실한 안건을 위해 언제든지 출정 준비를 마치고 있을 귀족들은 없을 게 뻔하니 허가가 떨어진 뒤에도 그들이 이곳까지 오려면 하루는 걸리겠지.
그렇게 최소한으로 걸리는 일정이 이틀인데, 당장 오크들의 습격 역시 빠르면 이틀 후다.
“왕실에서 얼마나 편의를 봐주는지가 관건이겠으나, 오크들은 빠르면 내일에도 공격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전력은 수도에 잔류하고 있는 적급 이상의 모험가들이라 여기는 편이 낫겠죠. 전쟁을 치르기엔 벅차도, 몬스터 토벌의 관점으로 보면 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민간인과 용병을 앞에 두고 그런 정황을 시시콜콜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적당히 추려 이야기하자 두 사람은 그런갑다 하며 납득했고 비스퀜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모험가마저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위태롭지 않나요?”
“그 말대로입니다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엘의 질문에 비스퀜테가 정중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말했다. 뭐 마차라도 대절해서 움직이는 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당당한 반응에 우리가 눈빛만으로 궁금증을 내비치자, 비스퀜테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해주었다.
“금고를 뜯기로 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모험가들은 비룡을 타고 올 겁니다. 이미 라비엘과 수도의 모든 비룡 조종사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왕실의 허가를 받았거든요.”
그리고 내 안에서 라비엘의 영주와 비스퀜테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왕실 앞에서 아주 제대로 재롱을 부릴 작정인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