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1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17화(317/599)
“뭐야, 이 새끼들 왜 이래?”
대충 서른 마리 정도 베어 넘기며 앞으로 나아갔을 무렵부터 오크 놈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라도 벌이는 것처럼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전쟁신과 전쟁여신이 분노했다며 어눌한 공용어로 지랄을 하는데 이게 한두놈이 아니라 전체가 그러네?
앞으로 도망치려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다시 뒤로 도망치는 듯한 꼴이 뭘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어째 하나같이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공포 앞에 겁을 주워 먹은 꼴이라서 저절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너무 빨리 도망친다. 못해도 절반 이상이 살아서 도망치고 있었다. 심지어 정말 게이트가 존재하는 것인지 놈들은 나한테 베이는 걸 감내하면서까지 자기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바늘이라도 온전히 쓸 수 있었다면 그래도 좀 많이 잡을 텐데 몸뚱이가 하나뿐이라 잡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갑자기 허탈해져서 그냥 팔짱만 끼고 있는데도 공격할 의사는커녕 날 보지도 않고 달려가는 놈들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드미아! 대체 뭘 했길래 쟤들이 저렇게 도망치는 거야?”
“제가 물어보고 싶은 말입니다 예카트리나. 대체 뭘 얼마나 겁을 줬길래 쟤들이 전쟁여신이 노했네 뭐 했네 하며 튑니까?”
전쟁신은 몰라도 전쟁여신이 누군지는 뻔했다. 여기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 여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예카트리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었으니까. 지금도 도망치는 오크들의 뒤통수에 한 번이라도 더 칼을 꽂으려는 모험가들의 최선두에서 당당하게 대장처럼 걸어오고 있잖은가.
“그냥 선물 하나 줬더니 저러던데?”
“선물이요?”
“이거.”
쾌활하게 웃으며 예카트리나가 내게 던진 건 워 해머였다. 마치 가볍게 토스하듯 던져진 워 해머를 보고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은 순순히 납득하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말 그대로 지축을 울리는 웅장한 소리를 내며 워 해머가 눈밭에 파묻혔다. 뭔 일인가 싶어 모험가들의 시선이 쏠릴 정도로 큰 소리였고, 내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소리였다.
이건 무조건 마도구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걸 들고 말을 탄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기사가 전신갑옷을 입고 던져져도 이런 소리는 안 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래도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며 태연한 척 예카트리나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매우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왜 안 깔려 죽었지?’ 라는 반응인가?
“어라? 왜 피해?”
“깔려 죽기 싫으니까요?”
“엥? 엘드미아 정도면 들 수 있잖아?”
풀 컨디션의 퍼펙트 엘드미아라면 모를까, 지금 저거 들려고 괜히 마력 운용하면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몸 상태가 만전이 아닌지라.”
마력 운용에 차질이 없었다면 풀로 땡겨서 한 번 받아봤겠지만 아직 상황이 다 정리된 것도 아닌데 이런 형태로 괜히 힘을 뺄 이유가 없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는 예카트리나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이거 받은 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깔려 죽었나?”
“아니? 버티긴 하던데?”
허어… 곧 죽어도 오크는 오크라고 해야 하나, 과연 오러에 버금가는 근력을 지닌 놈들 답다고 해야 하나.
혹시나 싶어 슬쩍 워 해머를 발로 밀어보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잖은 저항이 느껴졌다.
“음. 전언철회. 이건 몸 상태가 만전이라 하더라도 들지 못할 거 같은데요.”
“하하하! 약한 소리를 하다니. 엘드미아 답지 않은데?”
“전 약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추측을 말할 뿐이지.”
가끔 가엔달 파티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대련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런 물건이었을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거에 맞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함과 동시에 이런 워 해머에 작게나마 구멍을 내고 멀쩡했던 바늘의 강도에 내심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 마을 저 끝에서부터 말을 탄 채 용병들을 이끌고 기사답게 달려오던 비스퀜테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세상에. 이 작전이 정말 완벽하게 먹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뭐, 내가 봐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잘 먹히긴 했다. 예카트리나가 생각 이상으로 압도적인 무용을 펼친 덕분이겠지. 비스퀜테는 자신이 직접 봤기 때문인지 서부 왕국의 영웅담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는 둥 칭찬을 멈출 줄 몰라 했고, 예카트리나는 그 칭찬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워 해머를 주우면서 적잖이 뻘쭘해 하더니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예정이십니까? 이대로 추격할 건가요?”
오크들의 거점이 달려서 한 두 시간 내에 도착할 만한 곳은 아니었기에 별로 권장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휘자는 어디까지나 비스퀜테였기에 나도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자 시선을 옮겼다.
“아뇨. 놈들을 물러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손실 하나 없이 시간을 벌었으니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죠. 놈들이 설령 재정비를 하고 다시 들이닥친다고 한들 이틀은 소요될 것이고, 게이트와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급보를 보냈으니 그때 쯤이면 수도에서도 지원이 올 겁니다.”
양식있는 귀족답게 적정선에서 만족하고 물러날 줄 아는 비스퀜테였다. 만약 추격한다고 말했다면 주술사와 부족장이 없었던 걸 들먹이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야 했을 텐데 수고를 덜었군.
그의 곁에 있던 용병이 숲속에 퍼져나간 모험가들을 부르기 위해 뿔피리를 부는 걸 보고 있었더니 이번엔 저 멀리서 라이카가 열심히 달려왔다.
[주인! 아실리에 무사해! 오크들 따라서 좀 더 보고 온다고 했어!]음, 마력이 부족한가? 말하는 게 좀 덜떨어진 거 같은데. 그래도 라이카에게 주는 마력량은 부담없는 선이라서 녀석을 안아 들며 마력을 주입해주자 라이카는 똘망똘망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망치는 오크들 대부분이 예상보다 멀쩡하고 숫자도 많아서 그대로 귀환하는 것보다는 추이를 지켜보는 편이 좋을 거 같다고 했어! 다행히 사방팔방 퍼지는 건 아니라서 역으로 추적당할 위험은 없대!]말할 줄 알고 대소변 가릴 필요 없고 씻길 필요도 없으며 털조차 날리지 않는 반려견은 정말 완벽한 생물이구나!
나는 전서견傳書犬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라이카를 쓰다듬으며 마을로 귀환했다.
◈
이번에도 아실리에가 귀환한 것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마을 회관에서는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기에, 이번에도 만신전에 모인 주요 인물들과 함께 들은 그녀의 보고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놈들의 부족장이 많이 늙은 주술사인 거 같아.”
이번 전투의 공로를 인정받아 합석을 하게 된 예카트리나와 내가 동시에 침음을 흘리자, 의아함을 내비치며 칼 굴스가 질문했다.
“주술사인 게 그렇게나 문제인 건가?”
“그것도 그거지만 ‘많이 늙은’ 주술사인 게 문제입니다.”
“…나이 먹은 게 문제라고?”
“오크들은 ‘늙음’이라고 적고 ‘살아남음’이라고 읽는 게 맞는 놈들이라서요.”
안 그래도 노화로 인한 신체의 약화가 인간보다 월등히 적은 놈들이다. 그래도 다른 능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사였다면 무시할 수 없는 페널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상대가 주술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크 주술사가 부족장을 하고 있다는 건 배틀 메이지처럼 전투 주술사라는 소리고, 그거로 늙을 때까지 경쟁자들의 뚝배기를 박살내며 부족을 꾸렸다는 말이니까.
“오크들이 주술사를 존중하기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존중의 영역이지 존경과는 다릅니다. 돌팔매질조차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안 하는 놈들인데 주술을 곱게 볼 리가 없죠. 그런 놈이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세워야 될 수 있는 부족장을 하고 있다는 말은…”
“그 해골과 깃털로 장식된 도끼로 직접 두개골을 쪼개고 다녔다는 소리지. 그러면서 강대한 주술도 사용할 줄 알고.”
내가 하던 말을 예카트리나가 마무리 지어 주자 그제서야 칼 굴스와 시엘도 우리와 함께 침음을 흘렸다.
주술은 까다롭다. 영혼과 귀신의 힘을 빌려 부리는 힘은 마력보다는 신성력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마법들과 달리 정말 기상천외하고 듣도보도 못한 무언가를 시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까지 시전자가 살면서 자신이 죽여 온 모든 짐승들의 힘을 얻어 괴력을 선보이기도 하고, 원혼들을 통해 야금야금 생명력을 갉아먹는 식의 저주와 같은 사술을 부리기도 한다.
당연히 그런 힘을 아무런 대가 없이 쓸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가뜩이나 쳬계적이지 않은 몬스터들의 주술사는 단명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실리에가 보고 온 부족장은 오크 주제에 매우 위험도가 높은 오크인 것이다.
“아실리에의 말대로라면 무조건 네임드일 겁니다. 어쩌면 정말 서부 왕국 너머 대초원에서 왔을지도 모르죠. 적어도 이티스엘에는 그런 네임드 오크가 자리 잡을 방법이 없으니까요.”
애초에 오크가 얼마 없는 지역임과 동시에 왕실의 권위 아래 나름 철저하게 방역을 이어 나가고 있는 만큼, 아무리 전쟁으로 땅덩이가 혼란스럽다 한들 그런 놈이 하루아침 사이에 툭 튀어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내 마력시로도 놈들의 주술을 끊거나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 입장에서도 안일하게 받아들일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역시 수도의 답변을 기다리는 게 정답이었던 거 같군요.”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껏 진중하게 고민하던 비스퀜테가 표정을 풀며 웃어 보였다. 정말 여유롭거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여 웃는다기보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목적이 더 강해 보였다.
“놈이 위협적이라고 한들 주술사이니 텔레포트까지는 쓸 수 없겠죠. 게이트를 통해 병력이 충원될 수 있다는 점은 조금 걸리지만… 어차피 저희도 수도의 지원을 받을 것이 확실하기에 마냥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일단 오늘의 피로를 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안도감을 주는 게 좋을 거 같군요.”
피로를 풀고 맑은 정신으로 내일 일찍 만나 이 사안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훑어보는 비스퀜테는 과연 귀족이었다.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그랬기에 상벌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쥐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보기 드물게 휴식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전투가 쉬웠어도 전투는 전투였고, 누구나 긴장은 하는 법이다. 도망친 오크들이 놈들의 거점에 도착하는 것과 그에 따른 부족장의 대처도 아직은 유예가 있었기에 우리는 비스퀜테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어차피 고민은 먹고 쉬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