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2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22화(322/599)
엔벨데와의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났던 것처럼 나는 오러나 마력을 수련한 강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 같은 건 없다.
남들은 노력 조금 하면 배울 수 있는 기술을 엄두도 못 낸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전례가 없는 마력 사용자인 다른 마당에 곡 소리를 낼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어차피 전생에서도 상대방이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보통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문제였으니 그러려니 하며 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이게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죄다 나보다 하위호환으로 보인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바짝 긴장하고 사는 편인데…
그 긴장이 지금 최고조에 치달았다.
“씨발 저게 대체 몇 마리야!?”
“조, 좆됐다!”
좌절하며 불안에 떠는 목소리를 내는 놈들도 이번만큼은 무죄다. 방금 비룡 기사들이 펼친 마법으로 분명 피해가 있었을 텐데도 달려오는 놈들이 더럽게 많다. 불길을 뚫고 달려오는 놈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족히 수십이 넘어갔다.
흔하디흔한 미개한 오크가 아니라 가죽 갑옷과 철갑옷을 확실하게 챙겨 입은 오크 병사들이 예카트리나의 말마따나 늑대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흉악하고 비대한 괴수들 위에 올라 탄 채 달려온다. 강함의 정도를 느껴지는 기운으로 파악한다는, 심히 판타지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위협과 별개로 순수하게 물량과 질량이 가져다주는 위협은 나에게도 익숙한 형태였다.
마치 전력 질주하는 덤프 트럭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
심지어 저 위에서 비룡 기사들은 여전히 마법을 쏴 갈기고 있는데도 저 숫자에, 뒤로도 더 달려온다고? 숫자가 줄어들면 자기들 살 궁리부터 하는 오크들인데? 그게 의미하는 게 너무나도 명확해서 현실을 부정할 수조차 없다.
저놈들이 들이닥치면 마을이 초토화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엘디! 이건 후퇴해야 해! 저 숫자는 지금의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
방금 막 기수로 짐작되는 유독 빠른 한 마리가 거침없이 우리 진형으로 달려들었다가 예카트리나의 일격에 곤죽이 되었음에도 사기가 오르기는커녕 모랄빵이 나게 생긴 상황 속에서 아실리에가 황급히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정령님이 안겨 준 온기로 아직 몸이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자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엘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라도 도망과는 거리가 먼 표정인가 보군. 지금 내 생각이 그러니까 당연한 거겠다만. 난 헛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다음 라이카에게 말했다.
“라이카, 덩치 커지는 거 가능해?”
[마력만 있으면!]“이리 와, 오늘 좀 날뛰어보자.”
겉보기와 달리 나조차 제대로 끊지 못했던 강철 댕댕이니까 못해도 탱킹은 할 수 있겠지. 정신 나간 오크 하나가 너무 일찍 달려왔다고 한들 나머지 놈들이 여기까지 들이닥치는 데에 1분조차 걸리지 않을 상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비록 마력이 넘어갈 때마다 내 무릎의 힘도 같이 빠지고 온 몸에 고통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아직 충돌까지 수십 초가량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쪽으로 한눈을 팔 여력이 있던 모험가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저, 저건 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반응이 각박하군. 지들 목숨줄 하나 열심히 만드는 중인데 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의 갑옷 입은 늑대 같은 형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그저 웰시코기가 초거대 웰시코기로 진화할 뿐. 하지만 가끔은 그 단순한 외형적 변화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다.
당장 저 큼직한 오크 기병들조차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해진 웰시코기라면 설령 그 외견이 위협적이지 않더라도 일단 주춤거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응오오옹? 뭔가, 뭔가 다른 데… 좋아!]예상했던 거랑 다르다는 건가? 뭐가 됐든 간에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여겼는지 제 몸을 다 키운 라이카가 주저 없이 오크 기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꾸익??”
아군들은 기겁했고, 오크들은 놀랐다. 차라리 무섭게 생겼으면 쉬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라이카를 공격한다는 선택이라도 했겠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오크들이 내비친 건 적의가 아닌 당혹감이었고, 그렇게 늦어진 반응의 그 대가는 컸다.
“꾸, 꾸익!”
“뀌이이익!!”
라이카의 움직임은 덩치가 커졌어도 여전히 재빨랐다. 불합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속도로 달려 순식간에 측면에서부터 나무를 박살 내며 파고든 녀석이 오크 기병 하나를 입에 문 채 놈들의 첫 진열을 와해시키는데에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녀석들의 돌격이 주춤거리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으나, 말과 달리 재빨리 반응한 마수들이 몸을 굴러서라도 피하려고 드는 탓에 타고 있던 기수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해 보고 그 밑에 깔려 죽는 모습을 확인한 것은 더 큰 수확이었다.
“마수! 마수를 노려! 말이랑 달라서 기수를 깔아 뭉개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살려고 한다! 말이 아니라 마수라는 걸 잊지 마!”
혼돈의 도가니와 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서도 정확하게 그 광경을 목격한 칼 굴스가 검으로 방패를 두드리며 외쳤지만 놈들의 약점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기세가 다시 오른 건 아니었다. 그러기엔 적이 너무 많았고, 라이카가 아무리 재빠르게 움직인다고 한들 저 많은 적들을 혼자 도륙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모든 광경을 바닥에 누운 채 보고 있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안이라고는 딱 두 개 뿐이었다. 어떻게든 마력을 끌어올려 바늘을 사용하는 것과 도망치는 것.
라이카에게 마력 좀 많이 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몸이 내 의지를 거부하고 바닥을 찾은 탓에 후자의 선택지가 매우 끌리긴 하다. 더럽게 아프기도 하고.
“엘디?!”
“괜… 찮아. 현기증이 심할 뿐…이야.”
황급히 나를 부축해주는 아실리에에게 어찌저찌 대답은 했지만 그러기 위해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평소였다면 몸에서 마력이 고갈나는 것이 느껴졌을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신 모든 감각이 맛이 갔다. 제대로 느껴지는 건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드는 격통과 울렁거림 뿐.
하지만 아예 새로운 감각은 아니었다. 마족들이 손 댄 게이트를 넘나들 때 느꼈던 것과 어느 정도 유사점이 있었으니까.
“과도한 마력으로 인한… 거부 반응? 과민 반응? 마력 기관은…”
“에, 엘디?”
아실리에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건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구분이 안 된다. 속이 뒤집히고 온 몸은 통증으로 벌벌 떨리며 눈은 핑핑 도는 와중에도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매우 정신없는 상황이었기에 걱정하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말 한 마디조차 해 줄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감각이 뒤틀리고 아플 뿐. 움직인다. 어쩌면 이상 증상으로 인해 멀쩡하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후우, 후우… 에파가 님. 보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움직일 수 있고, 마력도 운용할 수 있다면 싸울 수 있다. 후폭풍이 어디까지 올 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이 몸뚱이를 안배해주신 에파가 님만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엘드…!”
“예…엘…이상…!”
온 세상이 뒤섞인다. 예카트리나의 상체가 물에 탄 기름처럼 늘어나는가 싶다가 갑작스럽게 비대해져서 코앞까지 다가온다. 정말 다가온 게 맞나? 멀리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고열에 시달리는 것처럼 엉망인 시야와 균형 감각 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였다. 억지로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피를 토할 정도로 반복해온 훈련을 믿으며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땅바닥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감각 속에서도 일단 멀쩡히 서 있을 수는 있었다.
술에 취해서 동작 하나 하나를 심혈을 다해 조종해야 하는 감각의 심화 과정이 따로 없다. 부디 지금 내 동작이 우스꽝스럽지 않으면 좋겠는데.
“…!”
아실리에의 얼굴이 몽크의 절규처럼 어그러져 보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나를 향한 걱정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뒤틀린 감각 때문에 정말 웃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웃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고 난 뒤 피부 아래를 다 태워 버릴 기세로 끓어오르는 듯한 마력을 움직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나에게 오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휘파람을 불었다.
◈
예카트리나도, 아실리에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느닷없이 검을 뽑아 자세를 잡는 엘드미아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엘드미아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목소리에도 반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근거리까지 달려든 오크 기병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아실리에의 화살이 오크의 미간을 꿰뚫고, 예카트리나의 워 해머가 마수의 두개골을 찍어누르는 광경 속에서도 그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몸 상태가 만전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했던 걸까? 아니면 한때 마검이었던 개에게 뭔가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나?
놀란 예카트리나가 황급히 다가와 쓰러진 엘드미아에게 손을 뻗으려던 순간, 엘드미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에, 엘디?! 괜찮은 거야?!”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아실리에가 황급히 엘드미아의 두 눈을 확인했지만 초점이 맞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엘드미아가 보여준 동작은 방금 전까지 바닥에 드러누워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던 사람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검을 뽑고 상단 자세를 잡는 과정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며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멀리서 봤다면 꼼짝없이 엘드미아가 멀쩡하다고 믿었을 정도로.
“엘드미아! 내 말 들…? 아니, 제정신인 게 맞나?”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예카트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카가 날뛰는 덕에 돌격이 늦춰진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연’이지 ‘저지’가 아니다. 불길과 라이카를 피한 기병들은 이미 제멋대로 달려들어 공격을 시도 하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싸움에 목숨을 거는 오크들답게 숙영지를 지나쳐서 마을로 달려가는 놈들이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상황. 놈들의 돌격은 기마병을 상대하는 것과는 또 달라서 용병들의 방진조차 위태롭다.
상태가 안 좋은 엘드미아를 들쳐메고 도망치거나 등을 맡기거나 둘 중 하나를 확실하게 정해야 하는데… 방금 그가 보여 준 모습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었다.
자세는 완벽하다. 하지만 정신이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저 몸이 기억해서 움직인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 때쯤, 엘드미아가 아실리에를 보며 웃었다.
“엘디?”
아니, 웃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린 것에 불과한 거 같았다.
의식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안심시키려고 저러는 건가? 말조차 못하고 여전히 눈의 초점이 어긋나 있다는 건 그만큼 정상이 아니라는 말 아닌가? 웃음이 나오나? 걱정은 나도 하고 있는데 저쪽에만 대고 웃어?
-피이이이이익!!
오만 가지가 생각이 떠올랐지만 엘드미아가 갑자기 분 휘파람으로 인해 전부 날아가 버렸다. 격전 속에서 잠깐의 여유가 생긴 이들의 시선이 엘드미아에게 쏠릴 정도로 큰 휘파람 소리였다. 누구는 새로운 신호인가 싶어서, 누구는 뭐 또 다른 일이 생긴 건가 싶어서 바라보는 와중에 엘드미아의 허리 춤에서 열 개의 바늘이 튀어나와 그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르는 이가 보기엔 뭔가 기이한 광경이었지만,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이를 본 대부분의 이가 그 짧은 순간 떠올린 생각이라고는 칼날을 갈기 위한 숫돌도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살살 돌아갈 것이라는 시답잖은 감상 정도였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 두 사람만이 남들과는 다른 감각으로 회전하는 바늘들과 엘드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에파가이시여.”
그 와중에 엘드미아의 입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예카트리나와 아실리에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작지만 또렷한 발음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뜬금없이 흘러나온 마신의 이름에 예카트리나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직 성인식 안 지났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이 고민할 틈도 없이, 무미건조한 중얼거림을 신호 삼아 바늘들이 파공음을 자아내며 앞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