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4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43화(343/599)
경쟁 가문의 자식과 수행원을 납치한다는 계획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유용하면서도 비겁하고 졸렬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서부 5 왕국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납치 계획을 발안하고 추진한 뒤 이행 명령까지 내린 당사자는 매우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명예를 똥통에 처박는 기분이었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함이 아닌 대의를 위해 그 정도는 참아내야 했다. 오늘 밤도 자괴감을 견디기 위해 와인 한 병을 비워야 하겠지만 그런 건 별것도 아니었다.
제국이 적대적으로 움직여 서부 5 왕국 전체에 창칼을 들이미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제국이 북동부의 미개척 지대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설설 기던 이들이 그간 불려온 배만큼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한 것도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주기적으로 침공하던 오크들마저 대족장 카쿨라의 등장으로 인해 폭풍전야와도 같은 침묵을 유지한 탓에 그들의 자신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3년 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반제국주의 사상을 퍼트리며 뜬금없는 정치공작과 민심 교란을 시도했다.
처음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헛짓거리라 여겼는데 서부의 발전이 더딘 것도, 풍족하지 못한 것도 전부 제국이 부를 독점하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놀랍도록 빠르게 백성들 사이로 퍼져나가며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사실 그 대부분은 5 왕국이 서로 심심할 때마다 싸운 게 원인이었는데 어째서 의식의 흐름이 그리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어쨌거나 졸지에 친제국주의자가 된 이들은 뒤늦게 움직인 대가로 굉장히 급진적인 대안을 내놓거나 시행해야만 했다.
이번 계획이 그랬다. 기습과 다를 바 없는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었고, 실제로 계획이 틀어질 경우 가문의 앞날은 어둠 속에 잠길 것이 분명했다. 가솔들이 돌아왔을 때 포로와 함께한 것을 보고 그가 얼마나 안도했는지는 오직 집사만이 알 것이다.
큰 희생이 있었지만 계획은 성공했다. 포로로 잡힌 이는 그가 속한 왕국 내에서도 상당히 영향력 있는 가문의 후계였다. 심지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3대 독자. 2대 가주는 이미 전장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생식 능력을 잃어버렸으니 자식의 보신을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곱게 들어 먹을 것이다.
비록 가문의 정예 열 명이 죽은 것은 참담했으나 그들 덕분에 적어도 하나의 왕국이 평화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는 귀환한 이들을 치하하고 휴식을 취하게 한 뒤 조금 늦게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근데 보고서의 내용이 굉장히 이상했다.
“엘드미아 에가?”
처음 읽을 땐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거의 피해 없이 임무를 완수했는데 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계획과 무관하게 열 명이 죽었다고?
한 번 더 읽을 땐 화가 났다. 빌어먹을. 신이시여. 반제국주의적인 발언을 듣자마자 황녀 만세를 외치며 돌아설 인간이었으면 싸우기 전부터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실 수도 있었던 거 아닙니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고 나니 의아함이 샘솟았다. 분명 이름은 익히 알고 있는 이름과 인상착의였다.
제국과 지리적으로 밀접한 서부는 필연적으로 제국의 소문과 사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귀를 닫고 사는 이가 아닌 이상 귀족 중에서 제국의 하얀 별이 마족에게 납치될 뻔한 것을 막아 내고 기적적으로 생환한 영웅의 이야기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인상착의는 특정 인물들의 열성적인 노력에 힘입어 굉장히 세밀하게 알려진 편이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읽고 있는 보고서에 묘사된 내용과 제국에서 활약한 이티스엘의 영웅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동명이인인가…?”
문제는 비슷하기만 한 것 같다는 점이다.
제국에서 들려온 엘드미아는 그야말로 기사의 귀감이었다.
예법이 완벽하며 제국에 체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아직 열다섯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칭찬 일색인 소년의 주 무기는 검이었으며, 제국 검술 교관조차 교본에 실어도 좋을 만큼 기본기가 완성된 검사라 표현했을 정도로 검술을 연마했다. 심지어 루드라의 젊은 사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내비쳤음에도 예의를 지킬 정도로 인격자라고 했었다.
그에 반해 보고서의 엘드미아는 야만 전사 그 자체다.
열 명이나 되는 그의 부하들을 순식간에 도륙 낸 실력만큼은 높이 사는 게 맞으나, 보고서에 따르면 예절따윈 조금도 모르는 태도를 보이는 주제에 타인을 갈구고 욕하기 위해 지식만큼은 많이 습득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할 정도로 하자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물론 제 목숨을 노린 이들을 두고 친절해질 수는 없는 법이라지만, 보고서만 놓고 보면 상식적인 판단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제 목숨을 위협받은 것보다 스튜를 태워 먹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 같다고…?”
신임하는 부하의 보고서니까 엄연히 사실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읽고 있는 거지, 다른 곳에서 읽었다면 소설을 쓴 게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했을 내용이다. 결정적으로 이 엘드미아는 양손 도끼가 주 무기인 듯했다.
“이건… 정말 난감하군.”
상식적으로 놓고 보면 이름만 같고 외형이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무시무시한 실력자일 가능성보다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이번에 한해서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보다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문제였다.
기사 엘드미아는 이티스엘 출신인데다가 가장 최근에는 이티스엘 왕립 아카데미에 전 궁정 마법사였던 교수의 조수로 취직하여 아카데미 지하에 아무도 모르게 잠들어 있던 사룡을 토벌했다는,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영웅적인 행보를 보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대륙의 모든 게이트를 타면서 서부로 왔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랬을 경우 이미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야만 전사 엘드미아는… 정황상 켈바스트에서부터 왔다. 그와 거리를 두고 며칠 뒤를 밟아본 바, 켈바스트 영주의 신분 보증패를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하니 확실할 것이다.
이름이 같고, 생김새도 비슷한데, 한쪽은 이티스엘 사람이고 한쪽은 출신을 알 수 없는 서부 왕국 출신이며, 출중한 실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지지한다고?
“…집사장.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항상 그의 곁에서 중요한 일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해 온 늙은 집사장에게 보고서를 넘겨 주자 그는 빠르게 내용을 확인했다. 과연 반평생을 함께 해오며 업무에 익숙한 자 다웠다.
빠른 건 거기까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 안에 울리던 침음은 이중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서부 5 왕국 여행도 벌써 닷새 째. 밤중에 스튜를 태워 먹을 뻔한 위기를 가져다준 놈들과 헤어진 뒤로는 한동안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틀 뒤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추적과 감시의 낌새가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나름대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내 행동을 살펴보는 게 목적이었나보다.
내가 켈바스트 이후로 처음 도착한 도시는 브룩스라고 불리는 대도시로, 켈바스트와 가장 인접한 왕국 중 하나인 알타니아의 국경 도시였다. 여기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다른 왕국의 도시가 있다고 하는데, 서로 그다지 관계가 좋진 않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거기에도 게이트는 없었다.
수도에서 먼 오지의 도시라서 없다고 하기엔 굉장히 깔끔하고 잘 지어진 대도시였다. 적당히 용돈을 찔러 주며 관문지기에게 물어보니 켈바스트와의 거래가 꽤 돈이 된다는 모양이다. 코앞이 대초원이고 사방팔방에 널린 게 몬스터에 던전이라나? 오크나 놈들이 타고다니는 마수를 제외하면 딱히 몬스터나 활동중인 모험가라고 할 만한 걸 본 기억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크들의 영역이라서 그랬던 거 같다.
다른 때였으면 관광도 다니고 했겠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기에 하루 동안 묵으면서 부족한 물자와 정보를 갱신한 뒤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좋은 여관에서 푹 잔 것만으로 피로가 풀리는 몸뚱이라 참 다행이었다.
거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이런 겨울에 여행이라니, 초원에서 얼마나 잘 벌고 오셨길래 그리 급하게 돌아가시나?”
도시를 지나 이틀간 여행하며 마주친 이들과 종종 같이 휴식을 취하고 이야기를 나눈 게 문제였는지, 어디선가 잡것들이 따라 붙었다.
어김없이 숲에서 야영을 하려고 터를 닦고 있는 사이 점차 포위망을 구축하더니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더라고. 혹시라도 스튜를 조질뻔한 놈들인가 싶어 냅두고 있었는데 흔하디흔한 도적놈들이었다.
“이렇게 추운날 가진 거 다 빼앗기면 얼어 죽지 않겠어? 네가 번 거만 내놓으면 곱게 보내주지.”
인터넷이 있었다면 저런 놈들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티스엘에서 지랄해 놓은 것 정도는 들었을 텐데. 그런 정보 통신 수단은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어디 보자… 몇 놈을 살려보내야 소문이 잘 퍼질까…”
“허! 이거 완전 미친…”
나를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제 동료에게 눈을 돌리던 도적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사망했다.
문제는 내가 죽인 게 아니라는 거지.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빗발치며 나를 둘러싼 스무 명 남짓하는 도적들을 한큐에 보내버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무…크억!”
대다수가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하고 죽어 나가는 사이 뻔한 반응을 보이던 놈이 마지막으로 고꾸라지자 화살비도 같이 멈췄다. 이번에야말로 스튜를 망칠뻔했던 그놈들인가 싶었는데, 모습을 드러낸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이었다.
“…엘프?”
비슷한 디자인의 복장을 한 채 긴 귀가 밖으로 나오는 구조의 후드를 눌러 쓴 엘프 일곱 명이 활시위를 풀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경계한다기보다는 쓰러진 도적들 중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하는 게 분명한 움직임을 보이며 내게 다가온 그들 중 한 명이 천천히 활시위를 풀며 말했다.
“엘드미아 에가, 맞나?”
덕분에 난 오랜만에 뇌정지가 오는 기분을 느꼈다.
엘프들에게 인터넷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실리에한테도 못 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