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4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47화(347/599)
날이 갈수록 내 바느질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전투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전투를 끝내고 마력시로 주변을 확인해 보니 자꾸 귀찮게 따라붙던 마법은 사라진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는 평원 저 너머로 꼬리처럼 이어지던 마나의 흐름이 사라진 걸 보아하니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을 친 모양이다.
놈인지 년인지 몰라도 눈치는 빨랐나보다. 다 잡을 때까지 구경하고 있으면 냅다 달려가서 조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사망자는 내 도끼에 맞아 죽은 의뢰인이라는 놈과 마법 쓰려다가 바늘 맞고 죽은 배틀 메이지 둘 뿐이었고, 나머지는 어디 하나 잘려 나가거나 중상을 입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실력이 괜찮아 사지가 멀쩡하게 남아 있는 놈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무나도 흔해빠진 스토리라서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영주에게 고용된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마, 맞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저 사람이 의뢰주니까요.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흐으음… 저거 이쪽으로 가져와봐.”
거두절미하고 말했는데도 놈은 눈치 빠르게 벌떡 일어나 내 도끼에 맞아 죽은 시체를 질질 끌며 돌아왔다.
의뢰주라는 놈의 시체에 신원을 증명할 만한 게 없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원래 이놈들에게 지불하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묵직한 돈주머니가 있었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죽은 마법사 두 놈의 시체도 마저 끌고 오게 해서 뒤져보니 돈도, 장비도 생각보다 훨씬 쏠쏠했다.
“장비가 좋네? 좀 구른 놈들인가?”
“그… 나름 이 바닥에서 유명한 놈들입니다. 칼날바람이랑 모래바람이라고 불리는 놈들인데…”
“뭔 바람돌이도 아니고, 페어로 다니는 놈들이야?”
“아뇨. 따로 다니는 놈들이었습니다. 같은 뒷골목 마법사 협회 소속이라서 서로를 라이벌로 봤던 거 같긴 합니다만…”
뒷골목 마법사 협회? 서부엔 별개 다 있군. 어쨌든 놈들의 가방과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 중 효과가 확실하고 뭔지 알 수 있는 것들만 추려 챙긴 뒤 대충 내던진 나는 성실하게 설명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놈을 향해 서부 공용 은화 두 개를 던져 줬다.
“질문. 여기서 너희가 도시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마법사 둘과 의뢰주가 죽고 부상자까지 잔뜩 생겼으니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겁니다.”
“일 처리 똑바로 못한 너희에게 지랄을 할까?”
“그… 지랄이야 하겠지만 저희를 처리하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왜?”
“영주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건 저희가 가장 실력이 좋았었거든요.”
과거형이라, 훌륭한 판단력이군. 만족스러운 정보였기에 은화를 한 개 더 던져 줬다.
“다 데리고 돌아가.”
“…살려주시는 겁니까?”
“난 정보만 얻고 죽이는 짓은 안 해. 영주가 나 어디 가냐고 물어보거든 동쪽으로 간다고 해라.”
“동…쪽이요?”
“어. 동쪽. 집으로 돌아가려면 거기로 가야 하더라고.”
녀석의 표정이 기괴해지며 이게 페이크인지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굳이 지적해주진 않았다. 그럴 의리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에겐 나쁠 게 없었으니까.
볼일을 마친 나는 놈들을 뒤로한 채 말에 다시 올라타 셀레비안 일행의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시체에서 얻어낸 꽤 디테일이 살아있는 지도를 펼쳐 현재 위치를 확인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셀레비안은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숲이 나온다고 했지만, 지도를 보니 도시 세 개는 더 지나쳐야 북쪽으로 넓게 이어진 숲 하나가 겨우 나온다고 되어 있다.
“하여간 장생종들은…”
그리고 그건 내가 초원에서부터 왔던 거리를 기반으로 어림잡았을 때 못해도 2주는 걸릴 거리였다.
평생을 부족의 곁에서 지냈다는 셀레비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
제국의 하얀 별 에스뮈에 비스팀 텔 누아의 전속 집사 올렌드는 황제의 직계들만 참여할 수 있는 연례 행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에스뮈에 앞으로 날아온 급보를 받아 든 채 짧은 고민에 빠졌다.
“서부에서 왔다고 했나?”
“예.”
눈처럼 새햐안 봉투에 찍힌 것은 하얀 봉랍이 아닌 검은 봉랍. 에스뮈에가 오직 한 사람의 정보를 구분 짓기 위해 따로 주문한 그 표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올렌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의아해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서부에서? 이티스엘에 있는 거 아니었나? 최근 바쁘다는 이유로 정보 관리를 조금 소홀히 했던 자신에게 살짝 실망한 올렌드는 급보를 들고 온 하인에게 짧게 되물었다.
“잘못된 정보는 아니겠지?”
“수 차례 정보원들을 통해 검증했습니다.”
일말의 주저도 없는 대답에 올렌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봉랍이 찍힌 이상 즉각 에스뮈에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황제 폐하와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닌 이상 그리하라고 명 받았으니까.
화려한 복도를 지나고 건물을 잇는 통로를 건너 도착한 곳은 황궁 내 정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었다.
창문 하나 없이 지어진 건물의 주변은 황족들이 각자 대동한 호위 병력들로 시끌시끌 했다. 겉으로 보기엔 가벼운 환담을 나누는 것 같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그들은 올렌드의 접근을 알아 차리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웃음이 사라지고 서슬 퍼런 안광이 일제히 쏟아지는 광경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으나, 올렌드는 그런 호위 병력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실례, 제 1 황녀님께 전해드려야 하는 급보가 있기에. 잠시 주변에서 물러나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올렌드의 부탁을 들은 기사들은 일언반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건물을 등 진 채 멀찍이 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들이 내뿜는 예기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들 중 올렌드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가 이상한 행동을 취한다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달려들 게 분명했다.
황가를 수호하는 자들다운 그 모습에 새삼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올렌드는 조용히 건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고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이중 삼중으로 걸린 수많은 결계와 마법들이 발동하며 올렌드가 접근이 허용된 인물인지 확인하고 방음 마법이 설치된 내부까지 신호를 보냈다.
이 외에 밖에서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은 없었다. 만약 에스뮈에가 그의 방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대로 돌아가거나 다시 한번 신호를 보내 의중을 전달해야만 한다.
다행히 올렌드가 두 번 발품을 파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육중한 문이 너무나도 가볍게 열리며 고개 숙인 올렌드의 머리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더냐.”
에스뮈에였다. 안에는 시종 하나 없이 오직 황족들만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올렌드는 고개 숙인 자세 그대로 편지만 들어 올리며 보고했다.
“검은 별과 관련된 급보입니다.”
“…잘했다. 금방 확인할 테니 대기하도록.”
편지를 받아 든 에스뮈에가 다시 문을 닫는 짧은 순간, 그 틈 사이를 잠깐 보게 된 올렌드와 다른 황족들의 눈이 마주쳤다. 2황자부터 6황녀까지 하나같이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확인하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을 풀고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금방 문이 닫혀 눈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지만, 그 밝은 모습에 올렌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대외적으로는 암살 모의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척을 해야 했기에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그 곁을 지켜왔던 올렌드는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다시 온갖 마법들이 발동되는 것을 확인한 에스뮈에는 자신에게 집중된 이목에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새침한 척 말했다.
“음, 여의 낭군과 관련된 정보라 급히 좀 받았느니라.”
직접 주고받는 편지도 아니고 그냥 정보일 뿐인데도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 하는 그 반응에 다섯 형제 자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에셀루아가 말했던 그!”
“오라버니! 차 좀 더 준비해주세요!”
“너무 호들갑들 떠는 거 아니야? 편지도 아니고 그냥 정보잖아.”
에스뮈에와 황제의 자리를 두고 알력 다툼을 하고 있다고 알려진 2 황자가 신나서 차를 준비하고, 에셀루아는 하인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다과를 챙기는 사이 3 황자와 5 황녀는 에스뮈에의 곁으로 쿠션을 들고 달려가 재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홀로 별 관심 없는 척을 하던 6 황녀 역시 슬금슬금 에스뮈에의 뒤로 다가가 그녀가 뜯기 시작한 봉투의 내용물을 슬쩍 살펴보는 동안 에스뮈에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흠! 흠! 메넬뮈에라의 말대로이니라. 누가 보면 연애편지라도 되는 줄 알겠구나. 그저 보고일 뿐이라니까.”
“아 됐고, 빨리 읽어봐요 누나. 그 사람 소문이 아주 가관이던데 이번에도 뭐 일 터트린 거 아니야?”
“요놈이.”
딱히 엘드미아를 험담한 것도 아닌데 가관이라는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에스뮈에는 주저 없이 3 황자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그래 봤자 워낙 가녀린 그녀인지라 가렵지도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어디 보자…아, 서부에서 이제야 그의 행적을 추적한 모양이구나. 아실리에가 예상한 대로 대초원과 이어져 있는 게이트였군.”
“와, 매형은 삶을 참 파란만장하게 보내는구나? 인생이 지루하진 않겠어.”
3 황자가 매형이라는 표현을 쓰자마자 입꼬리가 귀까지 걸릴 뻔한 에스뮈에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방금 자신이 딱밤을 먹였던 그의 이마를 문질러 주었다.
물론 풀어질 대로 풀어진 분위기 탓에 그녀의 입꼬리는 지렁이처럼 춤을 추며 귀를 향해 올라라고 있었고, 형제 자매들 중 매형이라는 표현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