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4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48화(348/599)
“그래서,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무사하다는 내용이려나?”
2 황자가 차를 준비해 오며 던진 질문에 에스뮈에는 피식 웃었다.
“그런 당연한 내용은 보고하지도 말라고 이미 언질을 넣었느니라. 간단히 추리자면, 아실리에가 말했던 부족의 엘프들과 접선하여 이동 중인데 서부 왕국에서도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어서 그의 처우와 관련하여 내 눈치를 보는 인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군.”
“…평소처럼?”
다른 형제 자매들은 대외적으로 승계권과 거리가 먼 상태인지라 이런 정보에 취약하지만 2 황자는 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에스뮈에를 제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가 연기를 하고 있는 그는 에스뮈에가 일부러 흘리고 남기는 정보를 긁어모을 정도의 힘이 있었고, 방금 대화에서 들은 ‘평소대로’가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거 위험한 상황인 거 아닙니까?”
엘드미아는 분명 사리 분별을 따져가며 움직인다. 문제는 그 판단 기준 안에 신분의 높고 낮음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티스엘에서야 이런저런 사건들이 엮이는 과정에서 제국의 눈치까지 보다 보니 신변에 문제가 없었다고 쳐도 서부는 그렇지 않다. 거긴 제국이 가만히 있어도 눈을 뒤집으며 모든 게 제국의 잘못이라 외치는 반제국주의자들이 이상하리만치 많았다.
“누님도 아시다시피 서부 왕국 지대는 통제가 안 되는 곳입니다. 저들끼리 너무 오래 해 먹은 탓인지 고집도 강하고, 왕이 의사를 밝혀도 영주가 반발하고 딴마음을 품는 곳이죠. 그런 곳에서 에가 경이 평소처럼 행동한다는 건 영주와 고위 귀족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습니까.”
“정정하고 넘어가야겠구나. 이미 적으로 돌리기 시작한 모양이니라.”
세상에. 3 황자는 태평하게 휘파람을 불었지만 2 황자는 절로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에스뮈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들고 있는 서신을 팔랑팔랑 흔들다가 뒤에 서 있던 6 황녀에게 강탈당하고 나서야 설명을 이어 나갔다.
“벨혼드라 왕국에 있는 외교관이 앞으로의 지침을 미리 전달 받고자 연락한 것이니라. 이미 엘드미아 본인이라는 건 알려졌고, 왕국의 귀족들은 그에게 제국의 입김이 닿고 있는 게 불만이라고 적혀 있더군. 일부러 제국에서 그를 파견하여 혼란을 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준비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니라.”
서부는 여러모로 웃기는 곳이었다. 가장 친제국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벨혼드라 왕국은 비단 반제국주의자들이 아니어도 매국노라 두들겨 패기 일쑤였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상황이 일어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그들을 향해 제국의 방침을 알아내라고 닦달하니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저 우스울 뿐. 상정하지 못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예상대로군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당연히 제국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고 그를 비호할 생각도 없다고 보내야지.”
순간 형제 자매들은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에스뮈에를 바라보았다.
에스뮈에는 너무나도 특출나서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행보를 취한다. 비록 모두의 이해를 벗어난 행동일지언정 그건 언제나 옳은 행동이었기에 이제 와서는 딱히 놀라울 것도 없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서만큼은 흔하디흔한 사랑에 빠친 처녀처럼 행동했기에, 지금 그녀가 내린 결정을 납득하고 넘아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2 황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되물었다.
“방치한다는 말씀입니까?”
“표현이 좀 그렇구나. 엄연히 내조하는 것이거늘.”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살짝 코를 찡그리며 ‘대체 날 뭘로 보는 게냐.’ 라는 표정까지 짓는 걸 보면 한없이 진심이 맞는 거 같은데, 왜 우리는 납득을 못 하는 걸까. 혹시 자기만 이해를 못 했나 싶어 슬쩍 동생들을 둘러보니 다 똑같은 반응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내조야? 귀족들이 군대를 움직일 거라고. 매형 죽는다니까?”
보다못한 3 황자가 거들고 나서야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에스뮈에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그런 계산이 나오느냐?”
“잉?”
뭔가 이야기가 겉도는 와중에 모두의 얼굴을 한차례 살펴본 에스뮈에가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정 경지에 오른 오러 익스퍼트의 기사만 하더라도 홀로 작정하고 도주할 경우 그를 포위하고 체포하는데 애로사항이 생기는 법이다. 그마저도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허나 지금 서부 왕국의 불온 세력들은 엘드미아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는 숲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엘프들까지 함께하고 있지. 오히려 그들에게 지금의 엘드미아를 붙잡을 방법이 있다면 내 친히 박수를 쳐 줄 의향이 있느니라.”
어라? 그게 그렇게 되나?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와중에도 에스뮈에는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제국과 연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힐 경우 되려 엘드미아의 행동에 제약이 생기게 되느니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제국의 뜻과 이어져 있다는 게 되어 버리니까. 사랑하는 이를 돕진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쓰겠느냐.”
아주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반응에 뭐라 더 말하기도 힘든 분위기가 펼쳐졌지만 에셀루아는 한 번만 더 사견을 덧붙여 보기로 했다.
“어… 하지만, 위험하잖아요? 차라리 제국의 이름으로 그의 신병을 인도 받는 편이…”
“뭐, 마음 같아서야 당장 그러고 싶지만.”
올렌드에게 지침을 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6 황녀가 들고 있던 서신을 다시 빼앗은 에스뮈에는 난로불에 서신을 던져 불태우며 말했다.
“그리 사적으로 움직여서야 어찌 황제라 할 수 있겠느냐. 마족의 건과 이티스엘의 건은 빌미를 만들 수 있었다. 제국과 연관있는 일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제 3자조차 못 되는 상황이 아니더냐. 여가 정녕 사랑에 눈이 멀어 경거망동할 거라 믿는 건 아닐 테지?”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권력을 떠나 평생 홀로 살다 갈 것만 같았던 고고한 장녀가 진심으로 짝을 찾았다 여기니 지키는 게 맞다고 여겼을 뿐. 본인이 저렇게까지 나오면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위험하다면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할 테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니… 이럴 땐 낭군의 능력을 믿는 것이 도리이니라. 실제로 능력도 있고, 무모한 건 사실이지만 묘하게 뒷감당도 잘 한단 말이지.”
에스뮈에가 굳게 닫혀 있던 밀실의 문을 낑낑거리며 여는 동안 다시 자세를 잡고 무뚝뚝함을 연기한 황족들은 다시 한번 에스뮈에에게 감탄했다.
자신들이었다면 절대 저리 판단하고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밀리에 움직여서라도 대상의 안전을 확보했겠지.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니라.”
올렌드에게 이야기를 전달한 에스뮈에가 다시 문을 닫으며 두 손을 털었다. 그리고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모처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일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구나.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지?’
한 켠으로는 정말 괜찮은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들은 에스뮈에를 믿고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녀의 판단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다시 쿠션을 끌고 와서 편하게 드러눕기 시작한 3 황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메넬뮈에라가 아카데미를 안 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지.”
“아 진짜, 오빠!”
“맞다! 그랬지! 메니 이 녀석, 또 어디서 이상한 헛바람이 들어서…”
그렇게 대외적으로는 황족 회의로 알려진 형제 자매들만의 다과회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엘드미아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가 아주 힘겹게 말을 이었다.
“어, 그러니까 이게… 영웅 예카트리나의 위용을 기념하는 청동상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몇 번을 물어보나. 악랄하기 그지없었던 카스탈 남작의 병력이 도시의 방벽을 믿고 기고만장할 때, 영웅 예카트리나가 한달음에 성문을 박살 낸 것을 기리는 예술품이지!”
셀레비안 일행은 그런갑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엘드미아는 여러 이유로 웃음을 참느라 초월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예카트리나의 위업은 그 여파가 상당했던 것인지, 청동상은 남자의 설명대로 예술품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디테일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동상은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선 채 한 손에 그녀의 거병을 높게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마침 구름 낀 하늘 틈 사이로 비춰진 햇살이 위에서부터 내리쬐어 굉장히 웅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도시 사람들이라면 가끔 길 가다가 보고 절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완성도라는 점에는 엘드미아도 충분히 공감했다.
‘와, 진짜 옆에 말풍선 달아주고 싶네.’
문제는 그 자세였다.
어디서 나무판자 하나 뜯어와서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 라고 적은 뒤 붙여주고 싶은, 세기말 권왕의 마지막 자세를 취하고 있는 예카트리나의 동상은 엘드미아에겐 그저 웃기는 동상이자 거대한 흑역사로 느껴졌다.
덕분에 혼자 낄낄 거리는 걸 셀레비안이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엘드미아는 지인의 동상이라 그냥 웃겼다고 둘러대며 숙소로 향했다.
아직 목적지인 숲에 도달하려면 도시 두 개를 더 지나야 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유쾌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