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5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57화(357/599)
저거 두께가 얼마나 되려나? 대충 내 주먹만 하나?
아무튼 놈의 타워 실드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대하려면 우회하거나 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저건 방패라기보단 움직이는 성문짝에 가까웠으니까. 그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카쿨라의 도끼를 평가했을 때, 이 도끼는 10점 만점에 12점인 진짜 도끼라고 할 만했다.
놈의 타워 실드를 아래에서부터 반 이상 쪼개버릴 정도로 튼튼하고 날카로웠으니까. 비록 공성추의 업적을 뛰어넘진 못해도 지금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나는 졸지에 예술가가 만든 정체불명의 오브제같은 꼴이 되어 버린 놈의 타워 실드 중앙까지 틀어박힌 도끼를 빼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도끼 자루를 옆으로 있는 힘껏 걷어차며 검을 뽑아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 무기를 버려라!”
안 그러면 다 죽여 버려야 하니.
저만한 방패를 들고 뛸 정도의 힘이 있는 녀석이라 조금 걱정은 됐지만 다행히 놈은 양손 도끼 하나만큼 무거워진 방패를 컨트롤 하는데 실패했다. 방패만 믿고 나서는 놈이었다면 그대로 끝났겠지만 녀석은 무게 중심을 잃는 와중에도 최대한 자세를 다 잡으며 제 검을 고쳐쥐었다.
글라디우스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제작된 검은 내 검보다 반절 가까이 짧았지만 놈의 자세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은 그 정도 간격은 기술로 커버할 실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덕분에 확실해졌다. 서부 놈들은 이티스엘과 달리 파워 싸움보다 기술 싸움에 능숙하다.
이티스엘 검술이 원래 그랬던 건 아니나, 긴 시간 동안 마족을 상대해 오면서 기술보다는 오러 자체의 출력에 더 중점을 두고 싸우는 기조가 강했다.
아무리 기술이 특출나다고 해도 압도적인 힘으로 조금 더 빠르게 찍어누를 수 있다면 찍소리도 못하고 눌리기 마련이다. 어른과 아이만큼의 수준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거구나 장신이 지니는 이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근 7년간 이티스엘의 주적은 인간이 아닌 압도적인 출력의 마족이었다. 기술쓰다가 눌려 죽는 거 몇 번 보다 보면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그에 반해 서부는 인간들의 싸움이다. 오크라는 장벽이 있어도 결국 카쿨라 같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고만고만한 수준이니까. 같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기술을 갈고닦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왜 둘 다 연마하지 않냐고? 효율 문제인 거지. 한계가 분명한 삶과 재능 안에서 어느 스탯에 투자하느냐의 차이다. 그걸 넘어서는 인간들이 소위 말하는 초인으로 취급받는 거고.
기쉬와 엔벨데가 보여 준 검술의 간극은 그런 곳에서 왔던 모양이다. 그걸 여기서 깨닫게 될 줄은 몰랐지만.
-피이이익!
방패 뒤에 숨어 석궁을 재장전하는 병사들을 향해 바늘을 날리고, 기사를 향해서도 한 발 날려봤지만 놈은 내 검을 막아 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관자놀이로 날아든 바늘을 피했다. 제대로 투구도 쓰고 있는데 저기까지 시야가 보인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수 차례의 공격으로 거리를 벌린 뒤 투지가 불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멕켈린 영지의 기사, 바날리아 판타나다!”
“어쩌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 대답을 가까스로 멈추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통성명 하자는 거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은 오해로 인해 졸지에 놈을 향한 적의가 살짝 수그러들었다.
◈
외성이 뚫렸다는 전보를 받은 멕켈린 백작은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성 성벽을 올랐다.
마도구를 사용한다는 내용도 전달 받았지만 그에게는 당장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온 가문의 영지와 위신이 박살 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아버지, 제가 나가서 대신 살필테니…”
황급히 그를 따라나선 그의 아들이 만류하려 들었으나 멕켈린 백작은 눈을 한 번 흘기는 것만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어찌나 눈이 매서웠는지 그 뒤를 따라 움직이던 왕실의 입회인마저 잠깐 움찔했을 정도였다.
“내가 영주다.”
여러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으나, 이 모든 사태의 책임자는 자신이니 감히 ‘대신’이라는 말을 담지 말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멕켈린의 사람은 가문을 위해 말 한마디, 결단 하나조차 신중해야만 한다. 거기에 선악과 옳고 그름은 없다. 가문의 영달을 위한 최선의 선택만이 정의였다. 멕켈린 백작 자신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의 선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면 살면서 가장 잘못된 결단을 내린 대가를 최악의 형태로 치러야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거기서 유일한 후계자가 ‘대신’ 움직이면 무슨 사달이 날지 알 수 없었기에 멕켈린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네 동행을 허락한 이유는 하나라도 더 배우라는 의도에 불과하다. 이 일에 개입해도 된다는 게 아니니 그 사실을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아들에게 짧은 훈계를 마치고 성벽을 마저 오른 멕켈린 백작의 눈에 들어온 건, 마침 도개교 앞 광장에서 석궁병들과 대치하기 시작한 엘드미아의 모습이었다.
설마 그 많은 외성 경비병력을 홀로 처치한 것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저 멀리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헐레벌떡 달려오는 병사들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병력이 무사한 것 같았지만 그의 명령을 받아 외성으로 나선 기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력들 역시 전부 무사하지는 않을 터. 최악의 경우 죽었을 수도 있다.
겨우 한 명을 상대한 것치고 너무나도 큰 손실인데, 심지어 적은 지금도 멀쩡히 석궁병들의 사격을 피하고 있었다.
“…반즈 경.”
2열의 사격을 알 수 없는 마도구를 통해 막아 내고 기사 판타나의 자랑인 타워 실드를 반 이상 갈라버리는 괴력에 절로 침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멕켈린 백작은 영지 내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기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멕켈린 가문의 집사와 함께 백작의 최측근으로 살아온 노기사가 말없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백작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은 이였지만 가장 큰 덩치와 꼿꼿한 자세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그대가 보기에 어떤 것 같나.”
이 역시 함축적인 질문이었으나 기사 반즈는 되묻는 일 없이 방금 멕켈린 백작이 봤던 것들을 똑같이 훑어보고는 짧게 대답했다.
“우선, 외성 병력들이 도착하기 전에 내성으로 진입할 것 같습니다.”
질끈 감길 뻔한 눈을 천천히 감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했다. 다시 눈을 뜨면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에 멕켈린 백작은 그 상태 그대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손해는?”
“저 자가 얼마나 손속에 자비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대가 나선다면, 아니. 아니로군.”
과묵하고 충직할 뿐, 노기사 반즈는 결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될 거라 여겨졌으면 이런 질의응답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설 수 있도록 허가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영주인 자신을 지키려면 곁에 있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짐작은 정확했다.
“예. 느껴지는 오러는 미미하나, 사실 그런 건 저 움직임 앞에 부질없습니다. 부끄럽지만 결코 승리를 확답드릴 수 없습니다.”
늙음이라 적고 살아남음이라 읽을 만한 인물을 칼드라 왕국에서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될 사람이 바로 반즈였다. 평생을 바쳐 멕켈린 영지의 기사들을 키워내고 병력을 강화시킨 그가 내뱉은 말은 백작으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딱히 억울하지는 않았다.
삶의 대부분을 강자의 위치에서 지내며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일을 해 왔다. 더 강한 이는 피하고, 비슷한 이는 집요하게 약점을 찾아내고, 약한 이는 확실히 깔아 뭉개는 모든 행동을 오롯이 자신의 판단만으로 행해온 멕켈린 백작이었다.
그게 서부 귀족의 삶이었으니. 그러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
하필 그중 가장 최악의 운이 적용한 게 지금일 뿐이다. 자신이 짓밟아서 가문의 주춧돌로 삼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심각한 피해를 짊어지고 불확실한 승리를 노리거나, 모든 병력을 물리고 직접 엘드미아와 붙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가문을 살리거나.
전자라면 이겨도 영지의 주된 병력에 큰 손실이 생길 것이 자명하다. 결투인 만큼 엘드미아 에가의 암살 미수는 무죄로 인정받겠지만 왕국에서 쉬쉬하는 여러 불법적인 사업에 손댄 대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옥살이를 해야겠지. 그렇게 병력도, 자금도 없어진 채 왕실의 눈치까지 보게 된다면 주변 세력들이 결코 가만히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고, 귀족의 죽음으로 죄를 물었기에 왕국에서도 과도한 배상금 징수는 하지 않는다. 기껏 해봤자 엘드미아가 귀 사냥꾼에게서 찾아내 보낸 노예 사업과 관련된 연결점만 끊기는 수준이다.
덧붙여, 자신이 죽을 뿐. 그저 그 뿐.
멕켈린 백작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어려울 것 없는 결단이었다.
“모든 병사를 물려라. 직접 엘드미아와 담판을 짓겠다.”
모든 것은 가문의 영달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