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5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59화(359/599)
소설이나 애니메이션같은 걸 보다 보면 그런 전개가 있지 않은가.
평범한 현대인이었던 주인공이 전투를 즐기거나, 중2병에 걸린 것처럼 광기에 취해 적을 압도하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개.
이세계로 넘어오며 억눌린 폭력성이 폭발해 게임 속 캐릭터처럼 난폭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걸 볼 때마다 겨우 눈이 돌아간 것만으로 적을 향한 대량 학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강적과 싸우면서 다치는 걸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어쩌다 보니 이세계에서 몬스터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이며 살아왔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여전히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고, 말 그대로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음에도 죽음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검을 드는 건 여기가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죽고 싶지 않기에 단련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공부했으며, 무분별한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기준을 세우고 움직인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무분별한 학살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무관심하려고 해도 알 수밖에 없다. 지금 내 도끼에 손이 잘린 남자는 한순간의 치기에 휘둘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력을 통한 해결은 법의 철퇴를 맞게 되는 현대 사회에서조차 ‘홧김에’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흔한데 이곳은 오죽할까.
애국심에 호소하고, 동료애에 호소하고, 의무감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한 채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짐이 어중간할 경우에 발생한다.
팔이 잘리고, 일격에 죽지 못하고, 자신의 내장을 흘리는 순간 그들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간다. 포션이 있고 성직자의 회복이 있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며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런 상처에 절망하는 건 여기나 현대나 똑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은 하나같이 패닉에 빠진다. 방금 내게 양팔이 잘린 병사처럼.
나는 안 죽을 줄 알았는데, 나는 안 다칠 줄 알았는데. 눈동자로 말한다는 게 뭔지 진정으로 알고 싶으면 세상을 반으로 가를 기세로 달려들었다가 팔이 잘린 사람의 눈을 보면 된다는 걸 깨달으며 도끼를 휘둘러 그의 목을 쳤다. 후회와 절망이 섞인 얼굴이 하늘로 치솟아 병사들 틈으로 떨어지는 건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 안일함이 그들의 목을 조이게 된다는 걸 알고 달려드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판타나가 일격에 죽어 버린 뒤 주춤거렸던 병사들 중에서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멈출 수도 없다. 그럴 경우 죽는 건 내가 될 테니까. 판타나가 저들의 머릿속에 지펴놓은 불을 끄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 뿐이다.
그래서 바늘을 쓰지 않는다. 알고 죽는 이보다 모르고 죽는 이가 더 많아지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끼를 휘두른다. 무지한 이들에게 폭력이란 세련된 기술이 아니라 질량이기에.
사람 하나를 도끼에 반쯤 걸린 장작 휘두르듯 던지며 주위를 둘러보니 파도처럼 몰려들 기세였던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뒤로 물러선다. 이미 판타나의 죽음으로 인해 사기가 꺾였던 이들이었으나 분위기에 휩쓸려 공격을 감행했을 뿐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번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대신 내 도끼가 닿는 거리의 배 이상 벌어진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멕켈린 백작을 바라보았다.
난 이미 이들에게 수 차례 경고했다. 그걸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들이었으니, 이제 그들을 막는 건 그들 자신이거나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멕켈린 백작이 냉철한 시선으로 병사들을 훑어 분위기를 살핀 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외쳤다.
“그만! 이 이상은 그저 개죽음에 불과하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또한 부질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먼저 무기를 버리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겠지만, 옆집 겁쟁이조차 무기를 들고 있는데 내가 무기를 내려놓을 수 없다는 식의 오기가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그들이 한 영지 내에서 얼굴 맞대고 지내온 이웃이기에 일어난 비극이지. 멕켈린 백작도 그 사실을 알기에 대치 상태가 될 때까지 입을 다물다가 이제야 목소리를 낸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이상’ 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미 죽은 이들은 개죽음이 아니었으나 살아있는 이들은 이제부터 의미 없는 죽음이라는 인식을 은연 중에 심어넣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물러나라! 비겁하게 뒤를 치고도 전멸당한 멕켈린 영지라는 오명을 남기고 싶은 것이냐!”
영지에 걸린 싸움이라는 명목이 아직 병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멕켈린 백작은 지휘관처럼 그들에게 명령할 뿐, 영주의 이름으로 명령하지 않았다. 그런 미세한 단어 선택이 저들에게 얼마나 효과를 보이는지도 역시 알 수 없었지만 ‘오명’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힘을 풀게 만들었다.
어쩌면 전멸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은 교전 만으로 모여 있던 병사들의 1/3과 기사 하나가 죽었지만 나는 자잘한 상처조차 없으니.
내 입장에서야 판타나를 처리하고 싸움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나 저들에겐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결과일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누군가 목이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겨우겨우 중얼거린 한 마디만이 광장을 맴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나에게 용무가 있어 보이는 이들이 없는 듯해서 휘적휘적 도끼를 휘두르며 멕켈린 백작 쪽으로 향했다. 이미 백작의 명령을 듣는다는 명분으로 완벽하게 자기 합리화를 끝낸 병사들은 그 가벼운 동작만으로도 겁에 질려 우르르 물러섰다.
판타나의 자기주장이 남긴 이 여파는 분명 영지에 큰 피해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도 않게 느껴졌다. 나는 성벽 위의 노기사를 턱으로 가리키며 멕켈린 백작에게 물었다.
“저 성벽 위의 기사는?”
“그는 싸우지 않는다.”
깔끔한 자세로 검을 뽑는 멕켈린 백작이었지만 그가 취해 보인 자세는 실전으로 다져진 검술이 아니라 귀족들이 교양의 일환으로 배우는 대련 검술의 그것이었다.
제국 변경의 어딘가에서 만들어져 여러 차례 다듬어진 끝에 공격과 방어가 규칙으로 정해진 대련 검술은,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제국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대륙까지 퍼진 스포츠에 불과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몸으로 하는 체스라고 해야 하나? 그 특유의 파지법 때문에 농담이 아니라 마력 없이 힘으로만 휘둘러도 검을 날리고 목을 벨 수 있다. 아마 그 사실을 멕켈린 백작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앞으로 나섰다. 그 행동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후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 결심만큼은 아주 조금 존중해 줄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면 기다려 줄 수 있는데.”
“아쉽게도 소양이 없어서.”
멕켈린 백작은 짧은 대답과 함께 준비가 됐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나는 한숨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누르며 도끼를 내려놓고 검을 고쳐 잡았다.
“하압!”
정말 오러를 조금도 쓰지 못하는지 나에게 달려오는 그의 움직임은 평범함 그 자체다.
왼손은 허리춤에 올리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동시에 휘두른 검은 목도 아니고 어깨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사실 막을 필요조차 없는 공격이었지만 일부러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그러자 반격을 한 것도 아닌데 멕켈린 백작의 검은 그대로 뒤로 돌아서서 상단 방어 자세를 취한다.
정말 검술에 아무런 조예도 없다. 그저 익힌대로 할 뿐.
스스로도 자신의 다음 동작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주저 없이 진지한 얼굴로 동작을 이어 나갔다. 거기에는 내 빈틈을 노리려는 시도조차 없다.
만약. 정말 만약 저런 검술을 펼치며 기세가 등등한 삼류 악당이었으면 그대로 반으로 쪼개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춤사위라는 걸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검을 다섯 번까지 받아주기로 했다.
적에게 보여주는 최소한의 배려? 그럴 리가.
그보다는 자신이 죽을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은 이에게 보이는 존중에 가까웠다.
그가 여전히 침착하게 여섯 번째 공격을 시도한 순간, 그의 검을 내 칼날과 크로스 가드에 끼워 가볍게 위로 튕기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멕켈린 백작의 손에서 검이 빠져나오며 하늘로 치솟았다.
“아!”
멕켈린 백작이 잘 싸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까? 사방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으나 당사자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그는 내 검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휘둘러지는 그 순간까지 침착하게 나를 응시하며 최후를 맞이 했다.
“아버지!!”
성벽 위에서 길게 울려 퍼지는 절규와 함께 멕켈린 백작의 목이 떨어졌다.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그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피해 주변을 훑어본 뒤 입회인을 바라보자, 묘하게 침착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잠깐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영지의 병력은 전투를 포기했고, 멕켈린 백작은 죽음을 맞이했소. 왕실을 대변하는 입회인으로서, 나는 멕켈린 가문이 충분히 많은 피를 흘렸다고 생각하오. 엘드미아 에가,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원래 백작의 죽음만으로 끝내고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려던 일이었으니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명예를 되찾길 원한 것일 뿐, 학살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비 잃은 자식은 생각을 달리 할지도 모르지. 나는 시선을 내성 쪽으로 돌려 노기사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멕켈린의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들이 불복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죠.”
모두의 시선이 성벽으로 향했다.
나를 향한 멕켈린 아들의 침통한 시선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녀석은 갈등하고, 또 갈등했다.
하지만 노기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질끈 눈을 감더니 한참을 침묵한 끝에 힘겹게 대답했다.
“멕…켈린… 영지는… 항복을…… 선언하겠소.”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짙게 깔린 침묵 속에서 그 말은 너무나도 잘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