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6화(36/599)
“거기 둘!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의뢰비는 지불할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열 걸음을 떼기도 전에 뒤에서 들려온 인솔자의 외침에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대답해주었다.
“계약서 뚫어져라 읽어봤으니 지랄하지 마렴! 계약 위반으로 위약금 쳐맞기 싫으면 아가리 닥치고!”
“뭐, 뭣?!”
이세계의 문맹률은 높은 편일까? 통계를 접할 일이 없어서 확신은 안 서지만 세계가 굴러가는 꼴이나 전체적인 양상을 놓고 짐작해보면 그다지 낙관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다.
모험가들도 거기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중견 모험가 정도로 취급받는 이들 중에서 글을 못 읽는 이들은 없지만, 전문적인 용어 및 단어 그리고 조금만 복잡한 문장이 나열되어도 의미를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허다하다고 아실리에가 오래전에 이야기 해줬었다. 공부를 등한시 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유난히 자주 들려주고, 구체적인 사례까지 언급하며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제대로 계약서를 파악하지 못해 애먼 피해를 입거나, 굳이 필요없는 일을 떠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바로 저기 뛰어가는 한심이들처럼 말이다.
“넌 꼭 모험가 일 할 때면 입이 거칠어지더라?”
“이 시대의 살아있는 지성인 엘드미아는 언제나 상대방의 수준에 맞춰서 놀 줄 아는 맞춤형 인간일 뿐이란다.”
“헛소리 같은데.”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자 하는 법이지.”
셰릴은 걸어가던 도중 앞에 걸린 돌맹이를 내 쪽으로 걷어차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시덥잖게 노는 사이 이미 모험가들은 저 앞을 달려 거리를 반 이상 줄인 상태였다. 대충 처음 거리가 300미터 정도 였던가? 순전히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하는 거라 정확하진 않아도 얼추는 들어맞을 것 같다.
그렇게 스무 명 정도가 거리를 반으로 줄였을 때 갑자기 숲속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씨발 궁병이다!!”
“달려! 숲까지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쓰러지면 화살받이가 된다!”
냉철하게 판단하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한 발 맞자마자 쓰러져서 정신 못 차리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쓰러진 녀석들을 향해 확인 사살을 위한 화살이 날아들지는 않는다. 남은 거리를 뛰어들어 숲으로 들어가려는 녀석들에게만 화살이 날아갈 뿐이다.
“이 씨발 새끼들이 우릴 가지고 놀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은 좀 미묘하다. 첫 사격에 죽은 애들도 몇 명 있으니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숲속에서 숲 밖의 인물들을 요격하고 유인해서 무력화 및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훈련을 하고 있다. 단순 연습이나 훈련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그 실력을 검증해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셰릴에게 물어보았다.
“너 여기 와인 농장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
“응. 별로 유력 귀족은 아닐거야.”
“그럼 일단 숲속에 있는 놈들이 누구든 간에 싹 다 죽이고 나머지를 생각해봐도 되겠네?”
당장 눈에 보이는 이해 못할 상황을 이해하려면 결론이 하나였다. 녹, 청급 모험가를 상대로 살인 연습을 한다. 수 차례에 걸친 모험가들의 토벌 실패는 사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도적놈들이라고 생각하며 왔는데 정규 훈련을 받은 군인이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보통은 죽는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마나도, 오러도 없어 평범하지만 경험과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전투. 녹, 청급 모험가라는 건 원래 딱 그 정도 선이었다.
윗 단계인 적赤급으로 가야 마법사와 오러 사용자가 가끔 보일 정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개짓거리를 할 수 없는 실력이라 놈들도 적급까지는 모으지 않은 게 분명하다.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거기까지 추측했기에, 셰릴은 귀족의 얼굴을 한 채 나에게 지시했다.
“감히 왕국의 수도 앞에서 이딴 살생을 저지르며 왕가를 능멸하는 개만도 못한 것들을 살려둘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천재의 영역에 속해있는 그녀조차 이 상황을 보고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나랑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셰릴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검을 뽑아든 채 오러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15살은커녕 정말 사람이 뛰는 게 맞나 의심이 되는 속도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숲에 다다른다. 마찬가지로 화살이 한 발 날아왔지만, 속도를 예상치 못한 탓에 이미 한참을 앞에 나간 셰릴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표적을 놓친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셰릴의 모습은 이미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처음으로 숲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속으로는 제발 우리가 헛다리를 짚었기를 빌면서 나도 검을 뽑아들었다.
“역시 소가주다운 행동력이야.”
훈련이 목적이면 훈련을 시킨 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훈련을 시킨 이가 가장 원치 않을 상황이라는 건 훈련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일 것이며, 가장 확실하게 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은 누가 뭐라 해도 훈련 중인 놈들의 사망이다.
그러니 그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몸에 마력을 두른다.
오가토르프 가문에 와서 오러 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극적으로 발전하게 된 마력 운용 덕에, 예전에는 두꺼운 갑옷을 억지로 입는 느낌으로 둘렀던 마력이 이제는 온 몸에 딱 맞게 달라붙는 수영 슈트같은 느낌으로 둘러진다. 마력으로 강화되어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오감이 육체의 변화를 인식하고 적응 해 나간다.
그렇게 오랜 훈련으로 익숙해진 감각이 적정선에 이른 순간 나는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200미터는 남아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배경이 숲으로 바뀌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활을 들고, 이제 막 활 시위를 당기려던 남자의 얼굴에 경악이 물든다.
“오, 오러…!”
흉갑. 그리브. 건틀렛과 투구. 허리에는 숏소드 한 자루에 별다른 가방은 없는 모습. 그렇게 세 명. 활을 들고 있던 이를 제외한 둘은 제대로 반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한 번 더 가속한다.
“…사용…!”
확실하다. 이들은 도적이 아니라 병사였다.
판단을 마치면서 휘두른 검이 빨려들어가듯 움직이며 남자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남은 둘의 목을 일 합에 베어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7년간의 단련은 결코 허투루 한 게 아니었으니까.
혹시 모를 공격에 신경쓰며 허리를 숙이고 잠시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병사의 단말마는 숲 밖에서 들려오는 모험가들의 고함소리와 어중간하게 섞여 다른 이들에게 닿지 않은 듯 했다. 그 사이 참호마냥 파여 있는 주변을 확인하고 셰릴이 남아있지 않은 것까지 확인을 마친 나는 검을 다시 집어넣은 뒤 죽인 병사들의 숏소드를 뺏어 들고 숲 안으로 달렸다.
아직은 숲속을 아무것도 없는 개활지마냥 달릴 수 없었기에 속도는 아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 사이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금 이들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아실리에가 봤다면 전투 중에 딴 데 정신을 팔았다며 혼낼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될 정도로 충분히 여유로운 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물론 모험가라는 직종이 평균적으로는 인권도, 시민권도 없다시피 한 직종인 건 맞다. 고정적으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계급을 지닌 게 아닌 이상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며 비정기적인 수익을 거두는 모험가를 시민 취급하며 지켜줄 정도로 왕국은 자비롭지 않다. 의무가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직종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권리도 주지 않으면 인외의 문제들을 싸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모험가라는 인력을 일방적으로 등처먹으려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당연히 그럴 경우 모험가는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되고, 모험가들이 해결해왔던 모든 의뢰들이 왕국의 문제가 되어 넘쳐흐른다.
그렇기에 왕국은 모험가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는 해준다. 그래서 의뢰 내용을 속이거나 모험가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입히면 왕국법으로 처벌된다.
“하, 한 놈 더 있…!”
상당한 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이자마자 들고 있던 숏소드 두 개를 따로 던졌다. 수는 역시 세 명. 철저한 전우조 활동을 하던 동료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칼이 솟아나는 마술을 보고 기겁하며 뒤늦게 검을 고쳐쥐려던 놈은 내게 죽빵을 맞자마자 검을 놓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헉!”
그대로 놈의 배를 걷어차 뒤집은 뒤 경추를 뒷꿈치로 밟자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거 같던 녀석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기 시작한다. 솔직히 어떻게든 내 발을 떼어내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판단이 빠른 친구였나보다. 당첨 뽑기를 뽑은 기분이다.
“자,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 기회는 한 번! 너희들 무슨 생각으로 모험가를 실전 훈련용 허수아비마냥 써 먹고 있는거냐?”
“며, 명령 때문입니다!”
“빠른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 앞으로 내 질문에는 최대한 대가리를 굴려서 한 방에 설명해라. 질질 끌면 그냥 죽이고 딴 놈 잡으러 간다. 누구 명령?”
“저희 고용주입니다! 파바에라 남작! 와인 농장의 주인!”
이 놈 참 빠릿빠릿한 게 완전 마음에 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