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6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66화(366/599)
임팩트 넘치는 만남 이후 이어진 아르웰 씨의 반응은 지극히 평범했다.
자리를 비켜 주겠다며 들어오는 것을 사양한 셀레비안을 뒤로한 채 아르웰 씨의 적극적인 안내를 받아 들어선 집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잠깐 사이 내 방문을 눈치채고 서둘러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한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르웰 씨가 먼저 나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동시에 튀어나왔다면 난 누가 어머님이고 아버님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네의 기도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네. 잠깐 앉지.”
“아, 예…”
그런 것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준비된 음식들과 찻잔이 식탁에 깔리는 중이었다. 촌장 쪽에서도 뭔가 준비를 한다고 했고, 시간도 저녁 무렵인지라 그게 식사 준비일 가능이 높았지만…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어색한 침묵이 흐른 건 아니었다. 아실리에의 안부를 물어보는 아르웰 씨에게 이것저것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꽤 빠르게 지나갔다.
중요한 내용은 모두가 앉은 다음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인지 그가 물어보는 것들은 대수롭지 않으면서 굉장히 상투적인 것들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잘 어울리냐, 아프지는 않냐 등등. 그렇게 종족이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부모 마음이라는 건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체감하는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다른 가족들도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에 참여했다.
사실, 관계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아실리에가 자리에 없다보니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적극적인 포옹으로 시작한 아르웰 씨와 달리 다른 가족들은 초면이라는 사실이 안겨주는 어색함에 시달려야했다.
나는 아실리에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여 그들에게 대답하는 동안 아실리에의 어머니 성함이 히미르 라는 것과, 두 쌍둥이 형제의 이름이 아밀과 히밀이라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 여동생의 이름이 아미에라는 것을 가까스로 알게 되었다.
나름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과 달리 다들 경황이 없어 질문하기에 급급했던 탓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질문 공세에 답변하며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들어서고 난 뒤에야 나는 아실리에의 이름이 하이 엘프가 되며 개명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아리에였었죠. 벌써 몇십 년 전 일이라 이젠 아실리에가 더 익숙하긴 하지만.”
일종의 세례명과 비슷한 개념인 거 같은데, 이름을 짓는 건 신관들이라서 어떤 의미와 형태를 지니고 지어지는 것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아예 이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원래 이름에 ‘실’ 하나 더 들어간 수준이라 편해서 좋았다는 게 그들의 감상이었다.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었는데… 아샤께서 보우하심이 분명해.”
“그러게 말이야. 그냥 무사한 것도 아니고 남편감까지 데려올 줄 누가 알았겠어?”
아실리에가 무사히 잘 지낸다는 이야기에 안도한 두 형제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바짝 긴장한 채 유지하고 있던 자세에서 힘을 풀었다. 그건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생긴 잠깐의 침묵을 틈 타 지금까지 최대한 조용히 있었지만 뭔가 안절부절못하며 질문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막내 아미에 씨가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언니하고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살짝 정신이 아찔해질 수도 있는 질문을 말이다.
“그… 어릴 적 우연히 마을에서 인연이 닿아 도적들에게 붙잡힌 아실리에를 구해주게 됐습니다. 그 대가로 제게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로 했었죠.”
“지식이라니, 욕심이 없는 분이로군요? 그래서 언니가 반했나?”
“하하하…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아실리에에게 직접 들을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내 나이에 대한 건 셀레비안 일행이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폭탄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여기서 터트릴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말을 돌리며 아실리에의 과거쪽으로 슬금슬금 방향을 틀었더니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실리에의 성격이 괄괄했었다구요…?”
“아실리에가 얌전하다고…?”
서로가 서로의 설명을 듣고 마치 평행세계의 아실리에가 아니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꼴은 제 3자가 봤다면 퍽 우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형제 자매들은 물론이고 부모인 아르웰 씨와 히미르 씨마저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과거의 아실리에는 어떤 성격이었던 것일까.
“그 왈가닥이… 그래도 아주 혼자 살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나보군.”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뒤늦게 안도감이 몰려온 것인지 아르웰 씨와 히미르 씨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딸이 뜬금없이 인족 남자를 남편감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전달 받았음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압도적인 나이 차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셀레비안이 다시 방문한 그 순간까지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한 채 시종일관 미소로 응대했다.
그러나 촌장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이 위태위태한 외줄타기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었다.
“딸아이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위가 될 사람이니, 응당 우리 집에서 재우는 게 맞지 않겠나.”
“음… 지당하군. 촌장님께 말씀드리겠네.”
졸지에 내 숙소가 아실리에가 예전에 쓰던 방으로 잡혀 버렸기 때문이지. 지당하고 합당하다며 억지조차 부리지 못하고 쉽게 물러나는 셀레비안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뜻한 배웅을 뒤로하며 셀레비안과 함께 도착한 장소는 입구에서부터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겨 오는 마을 회관과도 같은 건물이었다.
듣자 하니 평소에도 셀레비안같은 정찰병이나 경비병들의 식사를 이곳에서 함께 해결한다고 하는데, 딱히 방이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 식사 중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선이 쏠릴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르웰의 집에서 이미 식사를 한 것 같던데…”
“괜찮습니다. 먹는 양을 조절했거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차피 전생이었으면 먹방을 찍을 만큼 많은 식사를 요구하는 몸뚱이었기에 다 먹고 왔어도 또 먹긴 했을 것이다.
가볍게 웃어 보이는 셀레비안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꽤 널찍한 홀에 마흔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엘프들이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왔다고 해서 갑자기 정적이 흐르거나 그들의 행동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확실히 시선은 쏠렸지만 그들은 최대한 정중히 행동하며 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촌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촌장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일어나 두 팔을 벌린 그는 놀랍게도 ‘늙은’ 엘프였으니까.
“수백년 만에 맞이한 인족 손님이 세계수의 목소리를 들은 자라니, 대대손손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생겼군.”
노인은 아니다. 하지만 긴 세월을 살아왔음이 분명한 셀레비안조차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많아야 삼십 대 초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면 촌장은 인간으로 치면 족히 쉰은 넘어 보였다.
그래도 잘생긴 이목구비는 어디 안 갔지만, 대체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야 엘프가 늙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내 머릿속에 없었기에 살짝 뇌 정지가 왔다. 내가 그렇게 얼타는 사이 촌장은 인자한 미소를 유지한 채 먼저 손을 내밀었다.
“촌장인 라베리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네.”
“엘드미아 에가라고 합니다. 환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귀 사냥꾼을 처치해준 영웅인데 어찌 소홀히 대하겠나. 오늘을 위해 마을에서 요리 좀 한다는 여인들의 도움을 받았다네. 음식이 입에 맞으면 좋겠군.”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자리를 권하는 촌장을 따라 앉으니 셀레비안도 촌장의 반대편 옆자리로 가서 의자를 빼 앉았다. 촌장과 잠깐 형식적인 인삿말을 나누는 동안 상에 차려지는 음식들은 확실히 먹음직스러웠다.
아실리에가 그랬고, 그녀의 가족들도 그랬던 것처럼 식탁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야채와 고기가 다양하게 버무러져 영양 밸런스적으로도 굉장히 잘 맞아 보였다. 향신료로 떡칠을 해 놓고 요리에 힘썼다고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식사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진행됐다.
“자네가 세계수의 영토에서 기도드리는 동안 대략적인 이야기는 셀레비안을 통해 전해 들었다네. 아실리에도 만만찮은 여장부였는데 자네는 더 대단하더군.”
음, 여기서도 아실리에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군. 아무래도 엘프 사냥꾼 놈들에게 붙잡히고 난 뒤의 여정 속에서 아실리에의 성격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한창 까마득한 삶을 살아왔을 노인 앞에서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웃음으로 답했더니 촌장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자네를 돕기로 한 것은 아실리에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느낌에 불과했다네. 그녀가 이 일대를 괴롭혀 왔던 사냥꾼 집단 하나를 무력화 시킨 일에 대해서는 들었겠지?”
“예, 그 과정에서 붙잡혔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엔 욱하는 성격을 못 참고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행동이 모두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점에 이견은 없었지. 그랬기에 셀레비안을 필두로 수색대를 보낼 수 있었지만… 아마 그대로 자네를 데려왔다면 이중 절반 정도 되는 이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을 거라네.”
셀레비안도 첫 만남에서 중립적인 시야를 지니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환경 속에 있다고 했었던가.
“엘프 사냥꾼이 저지른 일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젊은 친구가 배려심까지 있군. 그에 비해 우리 젊은 것들은 가끔 속이 좁을 때가 있으니 원…”
그리 말하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모습만큼은 정말 영락없는 노인네였다.
“하지만 되려 귀 사냥꾼을 처단해주었으니 결국 우리가 도움을 받았지. 우리 부족 뿐만 아니라 일대의 모든 엘프들이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다네. 그래서 나름의 성의를 보이고자 선물을 주고 싶어 하더군.”
“선물이요…?”
슬쩍 셀레비안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인지 슬쩍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이에 다시 촌장을 바라보니, 촌장이 어울리지 않게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방어구 하나 맞출 생각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