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6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69화(369/599)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장간 옆 공터로 걸음을 옮긴 뤼밍스는 도저히 장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르며 쾌활하게 말했다.
“인족 친구 단련 상태를 보면 맨몸으로도 꽤 열심히 수련한 거 같던데, 일단 오러 빼고 해보자.”
‘이건가? 아니, 이거였나?’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동작을 바꾸는데, 상 중 하단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검술을 바꾸고 있다. 내가 개뿔도 모르고 봤다면 검 처음 잡아본 초짜라고 생각했을 정도인 것이, 보편적인 파지법으로 몇 번 검을 휘두르다가 이젠 아예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까지 바꿔가며 자세를 잡는 중이다.
“오러 없는 전사들 사이에서는 아이사빌 류 검술이 득세 했었지 아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까, 유독 혼잣말이 많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 뤼밍스는 준비가 됐다는 듯 내 쪽을 바라보며 매우 정석적인 중단 자세를 취했고, 나도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머리까지 든 검을 수평으로 눕혀 뤼밍스의 얼굴을 겨눈 뒤 잠깐의 유예를 두는 사이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용각龍角이라, 공격적인 친구로군.”
그러더니 대뜸 나랑 비슷한 형태의 자세를 잡았다.
미친, 내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만 듣고 자세를 맞춘 뒤 대응했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마터면 자세가 풀릴 뻔 했지만 이어지는 말과 행동이 정신줄을 붙잡게 만들었다.
“매우 안정되어 있으니 굳이 선수를 양보할 필요는 없겠지?”
무려 뤼밍스가 먼저 한 달음에 거리를 좁히며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뤼밍스의 움직임에 있었다.
잠깐이나마 이 인간이 오러를 빼고 해 보자고 했던 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빠른 몸놀림. 그나마 이어진 공격이 얼굴을 노리는 찌르기가 아닌 짧은 횡 베기였기에 늦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
“반응 좋은데?”
이어지는 연격. 이미 80년정도 검을 만져 봤다는 말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틈새를 파고드는 속도부터가 다르다. 내게 있어서 검술 짬밥은 오가토르프 가문의 검술 교관과 에카프 경이 쌍으로 0위고 1위가 엔벨데였는데, 그녀는 겨우 여섯 번의 공격을 통해 그걸 갈아 엎고 0순위로 등극해 버렸다.
한 번 한 번이 매서운 공격임에도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그녀가 장님이기 때문이다.
내게 악수를 건넸을 때 보여줬던 것처럼, 완벽하게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닌 탓에 뤼밍스의 공격에는 찌르기의 빈도가 극단적으로 낮았다. 그나마 섞여 들어오는 찌르기도 대부분 범위가 넓은 몸을 노린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겨우 찌르기 하나 빠졌다고 얼마나 차이가 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검끼리 부딪쳤을 때 상대방의 검을 누르며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공격도 찌르기고, 거리가 벌어졌을 때 가장 빠르게 시도할 수 있는 공격도 찌르기다. 그만큼 반격의 위험성도 크고 받아칠 경우 무방비해지는 것도 찌르기지만 애당초 저 정도 실력이면 거기서 또 다른 반격이 이어지는 걸 전제로 깔고 가야 한다.
검 한 번 부딪치는 순간 염두해야 하는 수십 가지의 변수를 고민하느라 순식간에 스트레스 수치 MAX를 찍을 수준으로 본능과 지능 모두 총 동원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십수 갈래 정도 되는 변수가 아예 사라져 버리는 건 굉장히 큰 차이다.
문제는 그러한 이점이 있음에도 이 장님 엘프의 공격을 버티는 게 전부라는 점에 있지. 차포 떼고 장기 둔다는 말이 딱 이 상황이었다.
키나 덩치가 나보다 큰 게 아니었음에도 제대로 된 자세에서 휘둘러지는 공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다. 찌르기를 대체하기 위해 섞여 있는 끊어 베기는 아차하는 순간 내 검을 밀어내고 살점을 파고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녔다.
강하다. 그 외엔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다.
“허어… 그걸 다 막네?”
눈이 안 보여도 이 정도인데 두 눈 멀쩡했다면… 아니, 하다못해 한쪽 눈만이라도 멀쩡했으면 대체 얼마나 강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아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뤼밍스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다 막았지? 진짜 오러 안 쓰고 있는 거 맞아?”
마치 진즉에 털렸어야 하는데 버티고 있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오기가 받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이제 와서는 칭찬으로밖에 안 들렸다.
“오히려 그건 제가 여쭙고 싶은 말입니다만.”
“하하하.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난 썼지.”
“그럴… 예?!”
아니 씨발 뭐라구요?
어이없는 답변에 얼빠진 목소리를 내버렸지만 뤼밍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어깨를 풀었다.
“이번엔 좀 더 본격적으로 쓸테니까 너도 써.”
차오르는 배신감을 주체할 틈도 없이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뤼밍스가 파고들었다.
◈
“이런 옘병…!”
목소리에서부터 진심이 느껴지는 짧은 욕지기와 함께 엘드미아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이어졌던 자신의 공격을 정말 순수하게 육체 능력만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뤼밍스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엘드미아에게 했던 대답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일부러 조금씩 출력을 조정하며 변칙적인 공격을 유도했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나름 확실하게 쐐기를 박아볼 요량으로 맞부딪친 상태에서 시도한 끊어치기에 힘을 실었다.
물론 진심으로 엘드미아를 다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오러를 추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미미한 오러 유저라 하더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티를 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엘드미아가 위협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취하는 방어 자세를 파악할 수 있고, 그때 생겨나는 빈틈을 기반으로 부족한 곳을 채워줄 방어구를 만드는 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엘드미아는 그마저도 막아 냈다. 고지식하리만큼 정석적인 검술로 말이다. 심지어 자신이 오러를 쓰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렇다면 가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굉장히 한정적이다.
마나도, 오러도 없이 오롯이 육체만으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영웅이거나…
용족 혹은 마족이거나.
‘용족은 아니야.’
용족은 아무리 겉모습을 바꾸더라도 정령과 자연이 알아본다. 만약 엘드미아가 정말 용족이었다면 숲에 기이한 정적이 흘렀을 것이다.
마족? 열다섯이면 장님이 아닌 이상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뿔이 자라는 종족이다. 기껏 해봤자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는 게 고작일 텐데, 셀레비안이 그 정도도 알아차리지 못할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영웅?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저 어린 나이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이들을 단순히 날 때부터 잘났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은 시련을 통해 신들의 감탄과 축복을 받으며 켜켜이 쌓아나간 위업 속에서 저도 모르게 빛나는 거지. 그 과정 속에서 나이를 잊고 노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모종의 기운이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었다.
둘 다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특정할 수 있는 가정이 전부 틀렸다는 현실을 본능적으로 부정하고 싶을지라도 지금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정말 놀랍게도 자신 앞에 있는 인족은 그녀가 이어온 긴 삶을 통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빠르다.’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스스로 그리 생각하면서도 박한 평가라고 자조했다. 자신이 말한 ‘부족’은 장생종의 기준이다. 이 인족 소년이 검을 언제부터 들었을까? 다섯? 여덟? 뭐가 됐든 제대로 배운 건 채 10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80년간 배운 검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게 아무리 하나의 검술에 몰두한 게 아니었을지라도. 엘드미아는 그걸 육체 능력과 정체불명의 힘 그리고 자신이 쌓은 우직한 기술로 버텨 내고 있었다.
아니, 버텨낸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그는 방어에 급급한 게 아니라 틈틈이 공격도 하고 있었으니까. 그 공격은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이따금씩 저도 모르게 눈을 미리 고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강렬했고, 묵직했다.
이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면 빈틈과 허점은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 줄 게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뤼밍스는 마지막 시험을 해 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러를 발산함과 동시에 경고했다.
“쫄면 다친다!”
완벽하게 뒤로 빠진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앞으로 붙었다고 하기도 애매한 거리에서 느닷없이 뤼밍스의 검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평범한 인간의 움직임을 아득히 벗어난 공격이 노리는 부위는 단순하다. 머리, 손, 발. 오직 그뿐. 하지만 오러라는 이형의 힘을 기초로 짜여진 검술은 그녀의 팔과 검이 화살보다 빠르게 휘둘러지고 내질러지게 만들며 잔상까지 남긴다.
공방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그 검술은 마족들의 것이었다.
망치를 든 뒤로 종종 정찰대와 경비대를 상대로 대련을 해왔지만 여기까지 움직인 적은 없었다. 엉겨 붙는 늪의 신이 푸르게 타오르는 신성 아래 끝을 고하며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뒤에 태어난 엘프들은 이전 세대보다 한없이 나약했으나, 굳이 그 힘든 시기를 기준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될…
‘아.’
그랬지. 그런 시대가 있었지.
전란이 줄어들며 일족이 지닌 강함의 평균은 점차 내려갔고, 이는 비단 엘프 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러했었다. 너무나 오래되어 평소엔 떠오르지도 않던 기억이 지금 고개를 치켜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뤼밍스는 어수룩하지 않았다.
자신의 검을 거의 완벽하게 받아내고 있는 인족이 모래알 같은 희망이 온 세상을 뒤엎은 절망을 몰아내기 위해 찬란하게 타오르던 그 시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세상이 또다시 바뀌려고 하고 있군.’
하지만 ‘거의 완벽’한 정도로는 부족했기에, 정확히 23번째 참격이 기어이 엘드미아의 검을 밀어내고 그의 귓가에 닿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한 엘드미아와 뤼밍스는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드미아였다.
“…마족이 아닌 사람이, 그 검술을 거기까지 쓸 수 있는 거였습니까?”
그 젊은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지녔으면 자신이 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는 여전히 예의를 차리며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그 질문에 뤼밍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싸웠던 시대가 달라서 말이지. 그리고 마족들 중에는 더 심한 놈들도 많아.”
욕설이 섞인 작은 구시렁거림이 이어졌지만 그건 뤼밍스가 아니라 마족을 향한 거였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영웅의 반열에 들어갈 조짐이 보이는 단명종들은 보통 그랬기에 뤼밍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하며 검을 회수한 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투구부터 만들면서 이야기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