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7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78화(378/599)
등짝에 불이 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실리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강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 오랜만의 상봉을 마쳤다.
오히려 뒤늦게 뛰쳐나온 라이카가 매우 격한 반응을 보여서 고생 좀 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거의 절전 모드로 한 달을 지낸 모양인데, 그게 가능했다는 것도 놀랍고 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판단을 자발적으로 내릴 수 있다는 것도 조금 놀라웠다. 난 영락없이 어휘력과 함께 지능도 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어쨌든 녀석에게 마력을 잔뜩 먹여 준 뒤 여행에 쓰인 도구들을 정리하며 아실리에에게 전해 들은 그간의 근황은 꽤 다사다난했다.
게이트가 닫히고 카쿨라가 사라지자마자 오크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흩어져 버린 것부터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대충보면 좋은 결과였으나, 문제는 놈들이 너무나도 빠르고 신속하게 도망친 탓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사방팔방에서 오크 토벌 의뢰가 빗발칠 정도로 많이 살아남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오크 토벌에 지원하거나 의뢰를 받았던 모험가들 대다수가 최근까지 고생하다가 겨우 돌아왔다고 해.”
내가 없어진 마당에 엄연히 동거인인 아실리에에게까지 그런 부탁을 하거나 강요를 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별 탈 없이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공짜로 부려 먹힌 것도 아니고 돈은 돈대로 받았으니 겨울인 걸 감안하면 상당한 돈을 벌었을 테지만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예카트리나 씨도 어제인가 돌아왔다고 들었어.”
“연락을 해?”
“응. 그때 라그니스랑 같이 움직이다 보니 꽤 말이 잘 통하더라고.”
뭐… 예카트리나가 문명전사이긴 하지.
어쨌든 그나마 수도라서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안정화된 거에 불과했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 봤던 그 난장판은 비단 동부만의 일이 아니라 이티스엘 전체에 만연한 모습일 거라는 아실리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새삼 오크들이 얼마나 많이 넘어온 것인지 실감이 됐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평온하게 보내긴 글러 먹은 감이 있다는 불안한 예감을 뒤로하며, 나는 라이카를 무릎에 올려 둔 채 그간 겪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사실 대초원에서 겪은 오크 냄새 나는 일들만으로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건 결국 카쿨라를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그럼 저게 카쿨라의 도끼라고?”
“어. 꽤 좋은 무기라서 겸사겸사 챙겼어.”
켈바스트에서 겪은 일, 셀레비안과 만난 일, 멕켈린 백작의 영지에 처들어간 일 등등 할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비록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아실리에가 뒷목을 잡기 직전까지 갔지만 결코 막 지르고 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기에 겨우겨우 평정심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근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도망쳤어.”
사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중간에 치트키를 좀 섞었다. 내 말을 듣고 귀까지 새빨개진 아실리에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건 자신이 알아서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어영부영 넘어간 덕에 화를 낼 타이밍도 같이 지나갔다.
“…후우, 그럼 이젠 어떻게 할 거니? 한동안 바빠질 거 같은데.”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락 좀 돌려야지.”
왕실은 어차피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 테니 굳이 신경 쓸 것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냥 할 일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상한 사고에 엮이고 한 달 만에 돌아온 것만으로 연락을 돌리고 안부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 나도 신기할 정도다.
“일단 스승님 찾아 뵈면서 세네란도 겸사겸사 만나고, 셰릴이랑 라그니스도 봐야 하고, 예카트리나도 돌아왔다면 안부는 전해야 하고, 지크멜 녀석도 나름 신경 써 줬다고 하니 한 번 봐야 할 거 같고…”
체크해 보니 새삼 정신이 없다. 게이트에서 막 벗어났을 땐 그냥 오늘부터 움직일까 싶기도 했지만, 이건 오늘이라도 쉬지 않으면 계속 피곤할 각이라서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마음먹으며 아실리에와 담소를 나누었다.
혼자서 여행하며 불편했던 것, 생각보다 할 만 했던 것 등등 당시에는 코앞에 닥쳤으니 기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막상 집에 와서 돌이켜보니 참으로 귀찮거나 유쾌했거나 영 내키지 않았던 기억으로 변하며 저절로 감정이 담겼다. 이르미즈에서 일하는 노예들을 보며 스스로의 감정이 무뎌진 것이 아닌가 짧게 고민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의도치 않은 정신 감정을 하게 된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아실리에가 준비해준 차와 다과를 먹으며 두 시간 정도 계속 떠들었더니 거실의 문이 열리며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옌 티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오셨습니까 엘드미아 님.”
마치 내가 와 있을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반응과 함께 양손 가득 식재료를 챙긴 상태로 말이다.
새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들고 온 식재료들을 본 아실리에는 눈을 빛내며 티에와 함께 오늘 저녁거리에 대해 진중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벌써부터 저녁을 한가득 차릴 생각이 가득한 두 사람을 뒤로한 채 2층으로 올라와 그리운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아아, 익숙한 천장이다.”
역시 집 나가면 개고생이고 마음이 가장 편해지는 건 집이다.
참 신기하게도 분명 아침까지 푹 자다 왔지만 저절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품으로 파고는 라이카를 걷어낼 틈도 없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놀랍게도 저녁이었다.
분명 잠깐 자다 깰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밖을 보니 이미 진즉 해가 떨어지고 거리 곳곳에 가로등이 켜진 상태였다. 꼼짝도 하지 않고 잔 것인지 내 품에 안겨있는 라이카조차 마지막 기억이랑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와 씨, 팔 떨어지겠네.”
아무리 강해지고 근육이 늘어도 결국 사람의 몸인지라 몇 시간 동안 눌려 있던 팔에 감각이 없다. 슬쩍 몸을 움직이자 뒤늦게 숨통이 트인 혈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혈액이 일으키는 대환장 파티에 몸부림치는 사이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실리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디어 깼네?”
“드디어?”
“점심 먹이려고 흔들어도 안 일어나더라. 정말 잘 쉬면서 움직인 거 맞아?”
허. 기억조차 없는걸 보면 아주 깊게 잠든 모양이다. 내 멍청한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은 것인지 아실리에는 그냥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짓 했다.
“배고프겠다. 빨리 내려오렴.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어.”
“사람들?”
왜 깨자마자 멍청한 질문만 던지게 되는 거 같지. 일단은 침대에서 일어나 아실리에의 뒤를 따르고 나서야 1층이 조금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1층으로 내려와 소란스러운 식당을 바라보니 대체 언제 온 것인지 모를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과 세네란, 예카트리나와 렐리에, 라그니스와 셰릴 뿐만 아니라 지크멜 녀석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굉장히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평소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조합으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광경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이 예카트리나가 쥐고 있던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크 학살자이자 왕국의 영웅이 몸 성히 귀환했다는데 축하 파티를 안 할 수는 없잖아. 긴 씨는 일이 있어서 못 왔지만 말이야.”
과거 궁정 마법사까지 맡았던 스승님과 황금의 마법사라 불리는 세네란 뿐만 아니라 엄연히 변경백인 라그니스 그리고 오가토르프 가문의 소가주인 셰릴을 앞에 두고도 더할 나위 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되려 옆에 있던 렐리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참 유쾌했다.
“…할 말은 많지만. 일단은 안 다치고 돌아왔으니까 나중에 말하자.”
방금 전까지는 예의 바르게 웃으면서 스승님과 대화하고 있었으면서 순식간에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라그니스의 경고 아닌 경고에 슬쩍 아실리에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막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무사히 돌아와야지. 안 그러면 계약 위반이라고.”
“한 달간 네 교육을 위해 정리해 둔 내용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아 다행이구나.”
다크서클이 과도하게 짙어진 세네란 옆에서 한결같은 스승님이 옅은 미소와 함께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셰릴이 코를 한 번 찡그리고는 비어 있는 제 옆자리를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빨리 와. 배고파.”
거참 웃음 밖에 안 나오는 광경이로군. 내 귀환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입맛만 다시고 있었더니 아실리에가 옆에서 설명해주었다.
“엘디가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들 찾아왔어.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티에와 함께 힘 좀 썼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면서 셰릴의 옆자리에 앉아 아실리에와 티에가 열심히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걸 멀뚱히 보고 있었더니 이 중에서 가장 홀로 동 떨어진 지크멜 녀석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엘드미아 님.”
솔직히 나도 웃음이 나왔다. 오그웬에서 다리 부러뜨려 놓고 죽든 말든 상관 안했던 녀석이, 나 없는 사이에 내 가족을 신경 써 주고 이렇게 식사까지 초대받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이야기 들었다. 고맙다.”
이미 아실리에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기에 당장은 감사의 인사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생일 파티가 따로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이 식탁 위에 쌓인 끝에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가 되자 쾌활하게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던 예카트리나가 내게 꽉 찬 맥주잔을 건네며 물었다.
“남부에서 전설을 만들자마자 날아간 서부 왕국들에 대한 감상은 어때? 여전히 개판이려나?”
“…동상 멋있던데요 예카트리나.”
“…동상?”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공성추 예카트리나 전설을 말해 주니 그 큰 덩치를 가지고 쥐구멍에 숨고 싶어 하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예카트리나였다.
딱히 몰래 나눈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우리의 대화를 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이 쏟아지자 그녀의 넓은 어깨가 보기 드물 정도로 움츠러들었고 렐리에는 기어이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딱히 건배사 같은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잠든 사이 꽤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인지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예정에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식사였지만, 굉장히 즐거운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