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8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80화(380/599)
세네란의 강경한 주장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된 예카트리나와 렐리에를 마지막으로 시끌벅적했던 저녁 식사도 막을 내렸다.
뒤에 예카트리나와 아실리에가 대작을 하면서 진탕 취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식사 시간의 일환이었기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비록 다음 날 아실리에는 웃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다행히 그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양해를 구해서 이번 주 만큼은 푹 쉰 다음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왕실에는 스승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달해주겠다고 하셔서 굳이 발품을 팔 필요도 없어졌다.
결국 그렇게 겨울 바캉스를 찾다가 고생만 한 끝에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나는 주어진 휴식에 감사하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집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부에서 벌어온 환전용 보석들도 적당히 처분해야 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필요 물품들을 보충하며 점검을 끝마쳐야만 마음이 편해지기에, 나는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잠과 숙취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불신 가득한 아실리에의 눈총을 받으면서 반드시 저녁 전에 돌아오겠다고 맹세한 뒤 거리로 나섰다.
[산책! 신나!]내가 없어서 한 달 가까이 집에서 잠만 잔 라이카와 함께 말이다. 아예 엉덩이가 빠져라 흔들어대는 녀석을 보니 새삼 웃음이 나왔다.
그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수도는 별로 바뀐 것 같지 않았다. 하긴, 수 년간 이어진 전쟁 속에서도 멀쩡했는데 오크들이 좀 많이 나타난 걸로 변화가 생겼으면 그것도 이상하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바뀐 것을 찾자면 좀 더 추워진 날씨와 나를 보고 격하게 움찔거리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 정도?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살아서 걷고 있는 걸 본 듯한 반응을 보인 이들은 황급히 발걸음을 피하거나 골목길로 몸을 숨기기 일쑤였다.
어쩌면 또 어디선간 빌어먹을 사칭범이 내 이름을 팔아 악명을 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예 몰랐다면 그런 걱정은 자의식과잉이라 여기고 하지도 않았을 텐데 두 번이나 겪고 나니 아주 합리적인 의심으로 느껴졌다.
그 외엔 지극히 평범한 수도의 일상이었다. 아침부터 북적이는 거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까지 전…
“진짜인가…?”
“가짜겠지. 요즘 저런 사람이 한둘이야? 괜히 마주치지 말고 빨리 지나가자.”
…부 다, 평범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나와 라이카를 보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반응을 보인 이들의 짧은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린 친구 둘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며 골목 어딘가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굳이 쫓아가서 그들을 붙잡고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보거나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의문에 빠져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딴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아도 뭔 상황인지 너무나도 뻔했으니까 말이죠 씻팔.
“옘병할 사칭범 새끼들이 진짜.”
덕분에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정해졌다.
◈
오크들로 인한 갑작스러운 겨울 성수기를 맞이한 모험가 길드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새벽까지 술독에 빠져 놀다가 뒤늦게 비척이며 숙소로 기어들어 가는 모험가들이나, 겨울을 안정적으로 나기 위한 부수입을 찾아 의뢰 게시판을 훑어보는 신입들만 간간이 보였을 시간대였지만 긴급 의뢰의 짭짤한 수익과 오크의 조합은 사람들을 강제로 성실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심성마저 선하거나 이타적利他的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아 씨발 좀 비켜라! 무슨 의뢰 하나 잡는데 한 세월이야!”
“실력 없으면 꺼져!”
“이 새끼야, 그거 내가 먼저 잡은 의뢰야!”
“늦게 뜯은 새끼가 문제지 뭔 개소리?”
게시판 앞은 보기 드물 정도로 심한 몸싸움과 욕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 열기가 너무 과해 심약한 신참 모험가들은 아예 손을 놓고 자리에 앉아 거친 분위기가 가라앉길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말이다.
길드에 이런 분위기가 만연하게 된 것도 벌써 3주째. 격렬하게 싸우는 이들 대부분은 원래 수도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신입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구르고 구른 중견 모험가들이 대부분이다.
“이 상도덕도 없는 새끼가, 나와 이 새끼야!”
“오냐, 안 그래도 버러지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덤벼!”
그들은 오크 대군에 대한 소문을 접하자마자 오랜 모험가 경험을 기반으로 돈 냄새를 맡아 자신이 있던 도시를 벗어나 비싼 게이트 요금까지 내가며 수도로 날아온 자들이었다.
의뢰라는 건 아무리 길드가 중재한다 하더라도 도시마다 금액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돈이라는 게 땅에서 솟아나는 건 아니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나마 평소엔 최대한 균형을 맞춰가며 모험가들이 돈을 좇아 특정 지역에 쏠리는 현상을 막고 있지만, 긴급 의뢰라는 건 일단 가진 거 최대한 풀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성향이 매우 강해서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즉, 균형을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많은 돈을 뿌린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도시들보다는 굵직한 대도시의 긴급 의뢰가 더 쏠쏠한 게 당연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잔뼈 굵은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실력과 게이트 비용을 두고 열심히 저울질한 끝에 충분히 한탕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마자 수도로 날아왔다. 사건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면서 가장 돈 많은 도시를 합리적으로 고른 결과였다.
실제로 그들의 예상은 제대로 적중해, 평소의 두 배에서 2.5배 이상의 가격으로 오크 토벌 의뢰가 게시판에 걸렸으니 실력 있는 이들에게는 호재도 이런 호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딱히 극소수만 알고 있는 영업 비밀 같은 게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평소라면 소문이라도 늦게 퍼져 움직인 이들이 적었겠으나, 이번 사건은 수도 인근에서 발생한 초유의 비상 사태였던 만큼 왕실에서 비룡 기사들까지 동원해 주변 도시로 정보를 뿌렸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오크 토벌대에 참여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다 쉽고 안전한 형태로 돈만 긁어 먹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이들도 있었다. 바로 지금 게시판 앞에서 투닥거리는 이들처럼 말이다.
한탕 수익을 위해 자기 돈까지 써가며 수도로 온 이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밥그릇을 키우고 지킨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총동원해 길드에서 제재가 들어오지 않는 수준에서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해댔다. 욕설과 주먹다짐은 기본이요 심한 경우 뒤에 가서 경쟁 상대의 뒤통수를 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가 오히려 역으로 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잘 골라 이득을 취했다.
때문에 근 한 달 사이 근심걱정이 늘어 머리숱이 확연하게 비어 버린 수도 모험가 길드장 엔그림은 오늘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집무실에서 게시판 앞의 개싸움을 바라봐야만 했다.
“진짜 개새끼들이 따로 없군.”
실제로 개를 안거나 끌고 다니는 것들이 많아진 것도 한 몫했지만 무엇보다 ‘못 배워 먹은 놈들’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인간들이 너무 갑자기, 그리고 많이 늘어난 게 문제였다.
모험가의 이동을 금지하는 봉쇄령은 게이트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무식하게 두 발로 나아가다가 객사하는 걸 막는 게 목적이니 안전한 게이트를 통한 이동을 막지 못 하는 게 당연했다. 원래대로라면 좀 더 실력 있는 이들이 나서서 저 난장판의 주범들에게 경고를 하거나 텃세를 부려 눈치를 보게 만들어야 했으나, 이번엔 그러지도 못했다.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아무리 합당한 금액을 제시했다고 한들 강제로 골수까지 빨아 먹힌 오크 토벌대 참여 모험가들 대부분이 휴식기에 들어간 것도 이유였고, 수도라는 특성상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모험가들이 다른 위험 지대보다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였으며, 오크 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직전 엘드미아의 손에 나름 중견이라 할 수 있는 모험가들 일부가 떼죽음을 당한 것도 이유였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는 건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길드장이기에 그럴 수 없었던 엔그림은 결국 우울한 얼굴로 내방자에게 말을 걸었다.
“가룬. 어떻게 좀 안 되겠나.”
“에이,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시나. 저건 내 능력 밖이야.”
태연하게 엔그림 비장의 초콜릿을 주워 먹으며 가룬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은 척후로 유명했던 거였고, 그나마도 아는 사람들만 알아주는 실력자였기에 아무런 위압감도 주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오히려 당장 저기 내려가 봤자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은 한 손에 꼽을 것이다. 비웃음이나 안 사면 다행이려나.
“차라리 지금 길드 문을 박차고 엘드미아 형씨가 들어오길 바라쇼. 당장 내 눈에도 별 같잖은 것들이 형씨 흉내낸 게 보이니까 아마 들어오자마자 반절을 줘패고 시작할걸. 저 친구들은 저게 제 목숨을 갉아먹는 행동이라는 걸 알랑가?”
낄낄 거리며 웃고는 있었지만 가룬의 속도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편법으로 넘어와서 저러고 있는 것뿐이지, 저들 대부분은 원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자들이었다. 돈 좀 더 많이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들이 있던 도시도 버리고 넘어와 이곳에 있는 신입들마저 괴롭히는 꼴이 보기 좋을 리 없었다.
심지어 엘드미아를 흉내 내는 사기꾼들은 말도 듣지 않는 똥개들을 끌고 다니며 온갖 난장판을 만들기까지 했다. 지금 당장 게시판 앞에도 저들끼리 눈치 보는 사기꾼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이쿠, 저 친구 오늘도 화가 단단히 났나보군.”
그런 가룬과 엔그림의 눈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원래 수도에서 활동하던 이들 중 방금 막 길드에 들어온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씹새끼들아! 좆 같은 똥개 끌고 당장 꺼져! 감히 누구 흉내를 내?!”
가장 열성적인 엘드미아 신봉자, 발루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리고 독하게 의뢰를 받으며 돈을 모으고 알뜰하게 장비를 맞춘, 길드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은 신입 모험가 중 한 명이 씩씩 거리며 길드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