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8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86화(386/599)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눈앞의 인간폭탄을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야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머리에서 나사 몇 개 빠진 인간이지만 테네아시는 마신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과, 저 거짓을 판별하는 성법이라는 것의 효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그 결과 저딴 괴상한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거다.
애당초 마신의 챔피언이 무조건적으로 마왕을 도울 거라 여기지 않는 주제에 용사를 위협할 가능성을 염두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정적 용사 살해자다. 하지만 내가 지크프리트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단순히 성법을 믿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고 온 거라고 가정하면 얼추 아귀가 들어맞는다.
저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굴러가는 건지 몰라도 상대방의 진정성을 읽어내는 데에 있어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적중률을 발휘해 왔을 것이다. 그러니 저 지랄을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나눈 시점에서 성녀 테네아시에게 ‘이럴지도 모르잖아.’ 같은 가정은 의미가 없게 된다.
대화를 한 이상, 안 그럴 거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기에.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지만… 애초에 마나와 오러를 느끼고 강약을 짐작하는 세계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내가 따져 봤자 의미가 없었다. 순간 기운이 쫙 빠져서 허탈해 하고 있었더니 테네아시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 태도가 또 묘하게 소심하면서 정말 미안하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터라 나도 모르게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방금 있었던 무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이걸 드릴게요.”
“이게 무례라는 표현으로 끝날…하아, 이건 또 뭡니까?”
받고보니 뭔가 정교한 은 공예품에 감싸진 유리구슬 같은 물건이 세 개 쥐어져 있었다. 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일렁였지만 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테네아시가 멋쩍어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그게 또 묘하게 쑥스럽다는 태도라서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이미 그녀에게서는 어떠한 긴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 신성력을 모아 만든 일종의 포션이에요. 성수를 매체로 삼은 게 아닌, 신성력 자체를 응축시킨 거라 겉을 보호하고 있는 성물이 손상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쓸 수 있을 거랍니다.”
그녀의 설명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친년이라 하더라도 성녀는 성녀다. 그런 테네아시가 직접 제작한 특수가공 포션이라면 파란 포션 못지 않을 것이다.
“효과가 어느 정도입니까?”
“죽지만 않으면 살릴 수 있을 정도…?”
테네아시의 눈에서 은빛이 빠져 있는 걸 본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많이 고민했겠지. 하지만 내가 지크프리트의 목숨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움을 주고 다니는데 그걸 자폭으로 보답하려 한 것은 명백한 비약이다.
내가 걔를 죽이려고 했다면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그 모든 걸 한순간의 불안 때문에 망각하고 건너뛴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테네아시의 잘못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짓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난 씨발 살면서 날 도와준 사람에게 이딴 짓거리를 한 적은 없다고 에파가 님 앞에서 맹세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최소한 경거망동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걸 쥐어줬으니 덕분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야 할 겁니다.”
그랬기에 몸에 돌리고 있던 마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얻은 가속으로 검을 뽑았다.
안 그래도 계속 곤두서 있던 신경이 마력의 강화까지 받아 테네아시가 세상 모르고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검집을 벗어난 검 끝이 그녀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어…?”
두 눈을 크게 뜬 테네아시가 당황하거나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목 왼쪽 경동맥에서 피가 솟구쳤다.
◈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교단의 포션은 성수를 베이스로 한다. 바르면 상처가 낫고, 마시면 내상이 낫는, 심히 사이비 약팔이들이 주장할 법한 효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가 회복의 가속이지 없어진 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몸에서 빠져나간 피 같은 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포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물처럼 마셔대면서 싸울 수는 없다.
거기서 차이를 불러오는 게 포션의 질이다. 몸의 회복력을 끌어다 쓰는 구조 자체는 동일하지만,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고 회복시키는가의 차이. 더 나아가 치유 성법을 받은 것처럼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급이 나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파란 포션은 상급에 속한다.
최상급이 아닌 이유는 각 교단이 만들어 내는 최상급 포션의 효능을 따라잡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거의 기적에 영역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개수도 얼마 없지만 엄연히 0티어라 불릴 만한 효과를 발휘하기에, 파란 포션을 제작하는 마법사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영구적인 효과 보존이 가능하다는 장점과 충분히 뛰어난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상급 중에서는 가장 윗등급이라고 할 수 있다.
테네아시가 내게 건넨 물건의 성능이 그 정도만 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판단을 마치고 휘두른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경동맥을 베어냈다.
상처는 얕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버려 둘 경우 십수 초내에 죽을 정도는 된다. 뒤늦게 자신의 목에서 맥박에 맞춰 치솟은 피를 확인하고 본능적으로 손으로 틀어막은 성녀가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눈은 조금 전과 달리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제 목을 치료하기 위한 치유의 성법이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 성법을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그녀가 거짓말 탐지기 성법에 의존했을 뿐이라는 가설에 확신을 가지며 검을 집어넣은 나는 짧고 빠르게 설명했다.
“경고입니다.”
그 한마디로 내 의도를 다 이해할 거라고 믿진 않았다. 그냥 지금 당장 내가 자기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됐기에 내뱉은 말에 불과했다. 그러고는 당황하는 테네아시의 목 근처에 그녀가 건네준 구슬 하나를 가져갔다가 뒤늦은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겁니까?”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두고 고민하는 것인지 이리저리 움직이던 테네아시의 눈동자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고 한 교단의 성녀로 지내다보니 아주 눈치가 개판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히, 힘을 줘서 쥐면.”
“세공품이 유리를 깨고 발동하는 구조로군요. 이해했습니다.”
손 다칠 위험은 적어서 좋군. 난 테네아시가 내 중얼거림에 동의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빠르게 구슬을 으스러 뜨렸다.
거창한 빛무리가 푸악! 하고 퍼져나오지는 않았다. 굳이 비유하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안개에 가까웠다. 동시에 손안에 있던 구슬이 마치 안개에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천천히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건… 권능의 영역입니까?”
“일단은 성녀니까요.”
정신나간 대화였다. 자기 손으로 경동맥을 베어 놓고 치유해주며 지껄일 소리도, 그렇게 당해 놓고 태연하게 입에 담을 대답도 아니었다. 하지만 테네아시는 이미 내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움직였는지 이해했다는 듯 아무런 적의도 내비치지 않은 채 막고 있던 경동맥에서 손까지 내리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침착함의 근원은 아무래도 구슬 포션에 대한 확신이었던 듯싶다. 실제로 나는 처음으로 직접 마주하게 된 성녀의 힘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효과 발군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진 않죠.”
뿜어져 나왔던 피가 사라져간다. 그렇다고 다시 그녀의 목으로 역행해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 속에서 사라지는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했다.
“시간을 되감는 수준이군요.”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치유술은 사람의 혈액마저 회복시킨다. 하긴, 그러니까 권능의 영역이지.
“…신기하네요. 지크도 비슷한 감상을 말했었는데.”
덕분에 피를 닦기 위해 오후는 대청소를 할 예정이었던 나는 깔끔한 교수실과 그녀의 목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 성능이면 두 번은 죽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정상참작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랬기에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통보했다.
“성녀님이 용사님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 중요시 여기는지는 좆도 관심없습니다. 하지만 어쭙잖은 의혹으로 이딴 개짓거리를 또 할 경우 빛의 에테께 벼락을 처맞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처럼 곱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성녀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저로 하여금 용사님을 적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테네아시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노려보거나 눈치를 보는 등의 모든 뻔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며 허리 숙여 연신 사과할 뿐. 그 나사 빠진 태도에 절로 미간이 찡그러졌지만 대충 손을 내저어서 정리했다.
“진짜 이게 무슨 되도않는 마음고생인지… 그럼 용무는 끝나신 겁니까?”
“아! 제 용무는 끝났는데, 아직 1 황녀님께서 부탁하신 용무가 남아 있어요.”
어떡해. 진짜 미친년인가봐.
지금 나랑 동반자살까지 각오했으면서 멀쩡히 끝났을 때를 위한 부탁을 받아왔다고? 내 안의 제국 신성회 성녀에 대한 평가가 어벙한 소심이에서 진성 얀데레 사이코패스로 확실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니가 선택한 성녀다 지크프리트. 난 모르겠으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