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3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39화(39/599)
기습은 언제나 우위를 제공하는 법이다.
그리고 오러나 마력을 통해 강화된 육체로 시도하는 기습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화살이 적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수준에 가깝다. 일반인에 불과한 놈들에겐 재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난 지금 이 망할 놈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재앙이 되어 있었다.
“도망쳐!”
어떻게든 나를 막으려던 놈들의 의지가 꺾이고 기어이 도망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 좋은 현상이다. 자기들 스스로 나를 막을 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도주를 선택하는 거니까. 지휘관이든 뭐든 결국 고만고만한 실력이라는 걸 증명해준 놈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담기가 무섭게 셰릴이 날아들어 놈의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다.
“끄억!”
발 맞춰 움직여주는 셰릴 덕에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벌써 열 놈에 가까운 녀석을 베었는데 지휘관이라고 할만한 놈이 보이지 않는 건 좀 거슬린다. 아까 세 놈 정도가 뭉쳐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걔들 중에 대가리가 있었나?
“이 개새끼가!”
고민하느라 잠깐 주춤거리는 사이 나름 빠른 속도로 파고든 놈 하나가 검을 찔러 들어온다. 좀 험악한 얼굴. 칼빵의 흔적. 잠깐의 방심을 파고 들어올 수 있는 판단력과 실력.
“니가 대장이냐 이 새끼야!”
-파캉!
“미친 씨발!?”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나의 검이 심장을 노리며 찔러오는 놈의 검을 세로로 쪼개버렸다. 덕분에 녀석도 기겁하고 나도 기겁했다.
검이 세로로 쪼개지는 거였어…?
“이게 되네?!”
스스로도 경악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이게 기회라고 자각하자마자 본능이 먼저 판단하고 몸을 움직여 검을 내리 누르면서 찌르기를 시도한다.
쇠 갈리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쪼개진 놈의 검과 내 검 사이에서 불꽃이 튀기며 마치 글라인더로 쇠를 자를 때나 보일법한 불똥을 일으킨다. 그렇게 찔러 들어가는 검 끝 너머로 놈의 절망 어린 표정이 들어왔다.
“씨발 안 돼 안…!”
-푸욱!
적지 않게 놀란 탓인지 검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못한 놈의 심장이 그대로 검에 관통 당하며 피를 쏟아냈다. 결코 달갑지 않은 죽음이 검을 타고 오르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와 시선을 마주한 지휘관 혹은 행동 대장 정도로 예상되는 놈은 두 숨도 내쉬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저, 저건 괴물이야.”
“도망, 도망쳐야…”
그걸 기점으로 그나마 주위에서 달려오던 네 놈들마저 겁에 질린 채 기겁을 하며 물러서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크게 어긋나진 않았나보군.
검에서 검을 뽑아내는 기묘한 감각 끝에 크게 휘두른 검에서 핏물이 튀겨나가자 그게 무슨 독극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놈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들보다 약한 놈들만 죽일 줄 아는 겁쟁이 새끼들 같으니. 이 숲에 널린 게 네놈들 동료 아니었냐?! 파비에라인지 파바에리인지 뭔가 하는 새끼 사병이면 신호탄 정도는 챙겼을 거 아냐? 쏴봐 이 새끼들아! 어차피 너넨 이 시간부로 범죄자 새끼들이야.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그냥 싸우다 뒈지는 게 낫지 않냐?”
“으아아아!”
“도망쳐 씨발!”
한두 놈 정도는 오기로 달려들지 않을까 했지만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무기마저 떨구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도망치는 녀석들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자 하니 옆에 다가온 셰릴이 덤덤하게 말했다.
“지휘부라고 있던 스무 명을 죄다 죽여버렸는데 쟤들이 덤빌 리가 있냐?”
“아. 그랬지.”
숲에 퍼져있는 놈들을 제외하면 여기엔 스무 명이 전부라는 듯이 말했던 게 뒤늦게 떠올랐다.
“기습했으니 닿는 대로 죽여 놔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서 까먹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숲속에 있던 놈들까지 상정하고 움직였군.
그런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셰릴이 세로로 쪼개진 검을 들어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설마 노리고 한 거냐?”
“그걸 어떻게 노리고 하겠어. 후려치려고 벴는데 박히더라. 싸구려 검이었겠지.”
“그래도 보통 이 꼴이 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 해.”
살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움직임이나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게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검을 대나무처럼 쪼개 놨다.
새삼스러워서 내 검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검을 쪼개고 긁고 들어간 날이 싹 다 작살 나 있는 상태였다. 억울한 마음에 죽은 놈들 주머니라도 털고 싶었지만 오가토르프의 이름이 언급될 게 뻔한 상황에 그런 좀스러운 짓을 했다가는 좋은 소리가 나긴 힘들 거 같아 그냥 참기로 했다.
“어떻게 할래? 쫓아가고 싶어?”
“별로. 아직 그 귀족 놈도 남아있고, 거기에 측근이라는 10명도 같이 붙어 있으니 굳이 저런 것들로 힘 뺄 필요가 없지.”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를 초토화 시킨 우리한테 칼을 들이밀까?”
“들이밀도록 지친 척을 해야지.”
“뭐?”
“엄청 지쳤지만 어떻게든 끝냈다는 느낌으로 나가면 놈도 고민하겠지. 협박을 하거나, 회유를 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그 반응까지 봐야 놈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파악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을거다.”
선택지가 있다는 착각 속에서 본성이 나오는 법이니까.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어 보인 날 가만히 바라보던 셰릴도 사납게 웃어 보였다.
“그거 마음에 드네.”
◈
추가적인 수고를 조금 더 한 끝에, 다른 놈들보다 좀 더 장비가 좋은 녀석들의 목 세 개 정도만 취한 우리는 숲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알려줬지만 가다가 걸리는 놈들이 아닌 이상 굳이 찾아가서 들쑤시지는 않았다.
걸리는 놈들은 죄다 죽여버렸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일부러 피칠갑을 하게 될 줄이야…”
본진을 너무 일방적으로 다 털어버린 탓에 상처 하나 남지 않은 우리는 고심 끝에 죽은 놈들 몇 놈을 좀 헤집어서 억지로 몸에 피를 바른 상태였다. 당연히 나도, 셰릴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별수 없었다.
그나마 셰릴은 피만 발랐지, 난 좀 더 확실히 하고자 내 가죽 갑옷에 일부러 칼질까지 하는 뼈아픈 지출을 자처해야만 했다.
“내가 격전을 치른 것보다는 네가 격전을 치른 게 더 그럴싸하잖아? 실제로도 그렇고.”
하긴 나라도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셰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피칠갑을 하고 상처 난 갑옷을 걸친 채 사람 목을 양 손에 쥐고 털레털레 걸어 나오면 일단 긴장부터 하고 볼 것이다. 상식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 모습이니까. 차라리 덩치고 좀 있고 근육질인 남자가 그러는 게 적절한 경계심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꼴로 숲 외곽을 벗어나 다시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서 딱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인솔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무슨 일이긴. 폐허에 있던 놈들 다 죽이고 나오는 일이지.”
“뭐?!”
“대충 스무 명이었나? 한 놈 잡아서 족쳐보니 본거지에 스물. 숲속에 마흔 정도가 퍼져 있다길래, 대충 죽이고 나왔수다. 이놈들은 그 중 장비가 제일 그럴싸해서 대장 같아 보이던 놈들 목이고.”
들고 있어봤자 기분만 나빠지는 머리통을 그 앞에 던지면서 말하자 인솔자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 그걸 다 죽였다고?”
“그럼 죽어서 영혼만 나온 거겠어? 숲속 놈들도 좀 죽였으니 대충 서른 정도는 잡았겠네. 그래도 우리 쪽수가 60명인데 나머지인 30명 정도는 저 치들도 정리할 수 있을 거 아뇨? 우리 둘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쉬렵니다.”
“그건 증명이 필요…”
“안 말릴 테니 들어가서 살펴보시던가. 마침 저기 귀족 나리 사병들도 있겠다, 우리 왔던 길로 곧장 걷기만 해도 알 수 있으니 마음대로 해. 우린 지쳐서 못 가니까.”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과 안면이 있는 것인지 뭔지는 알 수 없어도 인솔자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건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몇 걸음 뒤로 주춤거린 녀석은 침착하기 위한 노력조차 안 하며 황급히 몸을 돌려 숙영지로 달려가면서 외쳤다.
“기, 기다려라! 보고를 하고 오겠다!”
“…저거 대놓고 당황하는 게 절대 기뻐하는 꼬라지는 아닌 게 분명하지?”
“저게 기뻐하는 거면 저 바닥의 머리통도 웃고 있는 거겠네.”
굳이 한 번 더 머리통을 차보는 셰릴의 말에 무한한 긍정을 하며 기다리자 숙영지가 시끄러워지더니 딱 봐도 귀족인 남자가 사병들을 대동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기름진 얼굴에 돼지처럼 살찌고 손가락에는 온갖 보석 달린 반지를 끼는 뒤가 구린 귀족의 모습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할 정도로 겉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였다.
흔한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부진 몸을 지닌 남자는 얼핏 봐도 전사에 가까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서두르지 않으며 우리 앞까지 다가온 그는 점잖아 보이는 태도와 달리 날카로운 안광으로 우리를 훑으며 말을 건넸다.
“나는 이번 토벌의 의뢰주인 파바에라 남작이라고 하네. 하인에게 듣기로 자네들이 숲속에 진을 치고 있던 도적들을 토벌하고 나온 이들이라 하던데, 맞나?”
그 눈은 푸른 빛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칙칙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매우 아니꼽기 그지없는 눈이었다.